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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22화 (122/241)

Chapter 122 - 122화 - 아카데미(20)

122화 - 아카데미(20)

묵직할 정도로 뿌리가 가득한 산삼을 받아들었다. 주는 영약을 마다 할 이유는 없었다.

잘 씻겨져 있어서 곧바로 먹을 수 있었다.

“고마워 헬레나. 잘 먹을게.”

오독오독한 식감과 쌉쌀한 맛이 지나고 온몸에 은은한 열감이 돌았다.

- 천년산삼을 복용하였습니다.

- 모든 스탯이 5 상승합니다.

- 마력이 추가로 1 상승합니다.

강해지는 것은 언제나 짜릿한 쾌감을 줬다.

당장이라도 달려서 넘쳐나는 활기를 해소하고 싶을 정도였다. 전신 기혈이 후끈거릴 만한 영약이었다.

‘후우.. 5년 내공 정도인가?’

스탯 5라고 해서 무시할 게 아니었다. 절정지경에 오르면서 스탯 하나하나 올리는 게 힘들어졌었는데 단번에 5나 올랐다.

마지막까지 걱정스레 바라보는 헬레나와 키스하고 도시 밖으로 향했다.

***

도시 밖.

시우가 얼굴에 칼자국이 난 남자와 악수했다.

느껴지는 마력이 희미한 것이 얼핏 보면 비각성자로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니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일류 끝자락 정도인가.’

특수한 비법을 익혔거나 아티팩트를 착용한 것 같았다. 그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시우님. 저는 북부방벽 제 3대대 레인저 백인대장 라이든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그런데 님이요..?”

아무리 헬레나의 수하라지만 첫 만남에 님이라고 부르는 건 조금 이상했다. 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공녀님께서 최대한 정중하게 대하라고 하셨거든요.”

“아..”

약간의 잡담으로 어색함을 지운 그가 설명을 이었다. 깃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메이드.

“현재 3일째 감시중인데 할렘가에서 나오질 않더군요.”

그가 손바닥만 한 태블릿을 건네며 말했다. 화면에는 지도가 켜져 있었다.

“이 지점이 마지막으로 전송된 위치입니다. 그리고 조십하십시오. 아마도 광범위한 정신계 능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

그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렘가에 도착했다.

‘메이드라···.’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에서 탄내가 맡아졌다. 담배 연기보다 훨씬 독하면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연초를 피던 남자가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약쟁이었다. 냄새만 맡아도 평범한 담배가 아닌 마약임을 알 수 있었다.

“어이 형씨! 어디가? 통행료는 내셔야지?”

놈은 구멍이 숭숭 뚫린 낡아빠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빨마저 절반은 없었다.

치아 사이의 휑한 공간을 보니 무림에서 가끔 보던 산적들이 떠올랐다.

“통행료?”

“그래. 못 보던 얼굴인데 그냥 가면 곤란하지. 여긴 여기만의 법이 따로 있다고.”

“이거면 되나?”

핏.

손가락을 튕겨 지풍을 날렸다.

당연하게도 대답은 없었다. 이미 뻣뻣하게 굳었는데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목각인형처럼 서 있는 녀석을 지나쳐 마을로 들어섰다.

‘허 참..’

갑자기 다른 세상에라도 온 것 같았다. 아카데미가 있는 서울과 도시 밖은 전혀 달랐다.

몬스터와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상이 비로소 피부로 느껴졌다.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이 주르륵 이어져 있고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널려 있었다.

쓰러지듯 누운 한 명의 가슴이 점점 느려지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몇 명이 시체를 끌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퍼억! ···털썩.

둔탁한 타격음과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방금 전에 마비시켜놨던 약쟁이가 바닥에 쓰러져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위를 누군가 올라탔다.

퍼억! 퍼억!

“히히히.. 고기다! 신선한 고기! 흐헤헤!”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남자가 희열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약쟁이를 단검으로 내리찍고 있었다.

어설픈 칼질 때문에 제 손이 베이는 것도 아랑곳않고 단검으로 푹푹 찍어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 단순한 고깃덩어리로 변해 갔다.

대로에서 살인을 해대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를 엿보듯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사람마저 있었다.

그를 털어먹으려던 사람을 구해 줄 생각은 없었지만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끔찍하군.’

헬레나가 마지막까지 말리던 이유가 있었다.

순간 괜히 왔나 싶었다.

이런 곳에 강자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이왕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순 없었다. 머릿속으로 지도를 떠올렸다.

‘상당히 안쪽이던데···.’

판잣집 사이에 난 골목길을 따라 할렘가 깊숙이 들어갔다. 갈수록 인적이 적어지고 조용해졌다.

‘여긴가?’

도착했으나 뭔가 이상했다.

겉보기엔 평범한 건물이었다. 어찌 보면 낡은 라피스 공방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너무 멀쩡한데?’

다른 판잣집들에 비해 유난히 멀쩡한 건물이었다. 다른 곳은 중세 시대 같은데 이 건물만 현대에서 지어진 듯 동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이곳엔 그 많던 노숙자가 단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이곳이 헬레나가 깃털에 걸어 놨던 위치추적 마법이 끊긴 장소였다.

‘흐음..’

순간 어떻게 조사할까 고민하다가 집어치웠다. 어차피 헬레나도 전문적인 조사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저 깃털을 가져간 메이드가 사도와 관련이 있는지. 있다면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 알아내는 게 그녀의 목적이었다.

‘그냥 들어간다.’

무인도라도 되는 것처럼 홀로 떨어져 있는 건물을 향해 태평하게 걸어갔다.

끼이익..

녹슨 문이 열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건물 내부가 드러났다.

겉모습에 어울리는 평범한 건물. 하지만 딱 하나가 이질적이었다.

‘균열..?’

균열은 바닷속에도 생기니만큼 건물 내부에 균열이 생성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찜찜함이 느껴져 자세히 관찰하다 알아챘다.

‘너무 딱 들어맞잖아.’

마치 균열을 위해 지은 건물 같았다. 아니, 애초에 균열이 먼저고 그 위에 건물을 덮은 것 같았다.

허공에 있는 균열이 딱 들어맞았다. 건물 정 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초대라도 하는 것처럼 균열 입구까지 붉은 카페트가 이어져 있었다.

아직도 뭔가 찝찝해서 고민하다가 알아차렸다.

‘···환술?’

이곳엔 환술로 보이는 힘이 떠돌고 있었다. 어쩐지 주변에 노숙자가 없는 게 이상했었다. 어떤 작용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정신보호 스킬을 해제할 수는 없었다.

‘이게 맞나?’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사실 헬레나도 이렇게 무식하게 조사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균열이라니. 들어가서 무엇이 있을지 몰랐다. 강력한 몬스터나 압도적인 강자가 있을 수도 있고 수십, 수백 명의 적들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반면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직감이 원하고 있었다.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겨우 직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듯 직감을 기다렸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붉은 카페트를 따라 균열에 들어갔다.

*

번쩍.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갈대밭이었다. 균열답지 않게 평화로웠다.

날씨도 초가을인 것이 딱 좋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갈대들이 조용히 흔들렸다.

바닥에는 흙길이지만 명백히 인공적인 길이 쭈욱 이어져 있었다.

가끔 폐허나 도시형 균열이 있다지만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너무 깨끗한데.’

최근까지도 관리한 것처럼 보였다. 영화 속에 있는 평화로운 농장에 들어온 것 같았다.

길을 따라 걸으니 초가집들이 나왔다. 이것도 최근에 지어진 건물 같았다.

“흐음..”

끼익.

대충 아무 건물이나 골라서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마자 썩은내와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불쾌한 냄새였다.

방안을 빠르게 훑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강철로 만들어진 의자에 주르륵 앉아 있었다.

그냥 앉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같이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는데 그위에 불투명한 액체가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치이익..!

살에 닿을 때마다 독한 냄새와 함께 무언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났다.

“으으..”

“흐읍···!”

고통스러운지 사람들이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고문이라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상태가 멀쩡해 보이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는 멍한 얼굴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이봐요. 영감님?”

대답이 없었다. 그는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투명한 관이 척추에 연결된 것이 보였다. 피처럼 보이는 액체가 흘러 커다란 통에 담기고 있었다.

마치 강제로 피를 뽑히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고문의자에 앉아서.

노인의 이마에 손끝을 대고 재생의 힘을 흘려 넣었다.

“으으읍..?! 커헉..!”

기침 소리와 함께 눈동자에 초점이 잡혔다.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보던 그가 뭐라 뭐라 웅얼댔다.

“...여 줘..”

“뭐라고요?”

쭈글쭈글한 피부가 추욱 늘어져 있는 노인이라 그런지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귀에 내공을 집중했다.

“빨리.. 죽여 줘..!”

“음..”

재생의 힘을 더 불어넣었다. 당장에라도 죽을 듯 불안하게 흔들리던 노인의 기운이 조금 활기를 띄었다.

“허으.. 쿨럭, 쿨럭..! 여, 여긴..?”

“영감님? 정신 좀 드십니까?”

“으으.. 아, 아직도 여기잖아..!”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노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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