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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24화 (124/241)

Chapter 124 - 124화 - 아카데미(22)

124화 - 아카데미(22)

땅바닥을 나뒹굴던 메이드가 일어나 이쪽을 노려봤다.

빠득.

제법 화난 것 같았다. 동공이 세로로 쪼개지고 이빨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너무 약하잖아. 더 없어?”

도발하는 것과 다르게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엄청나게 빨랐다. 방심했다간 한순간에 목이 잘려 나갈지도 몰랐다.

“캬아아악!”

다리 뿐만 아니라 팔까지 부풀어 올랐다. 메이드의 덩치가 순식간에 3미터를 넘겼다.

손끝이 찢어지더니 손톱이 쭈욱 늘어났다. 마치 손가락에서 검이 자라나는 것 같았다.

점점 인간 형상에서 벗어나는 메이드를 보니 기꺼웠다. 괴물따위가 사람인 척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콰아앙!

벼락처럼 떨어진 손톱이 바로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 아니 괴물의 손에 부딪친 바닥이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움푹 파였다.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캬아앗! 저놈을 죽여라!”

강철의자에 멍한 눈으로 앉아 있던 사람들의 눈에 초점이 잡혔다. 일제히 그를 쳐다보더니 손톱을 세우며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죽어!!”

‘음..’

수가 많아봤자 일반인 수준. 전혀 위협이 안 됐다. 어찌할까 고민하다 그냥 지풍으로 모조리 마비시켰다.

콰아앙!

그 틈을 노리고 기습해온 메이드의 안면을 주먹으로 후려친 것은 덤이었다.

“이.. 빌어먹을!”

괴물이 된 메이드가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허벅지가 부풀었다. 그리고 돌진하듯 몸을 날렸는데 이쪽이 아니었다.

촤아악!

도망치듯 뒤로 뛰더니 뻣뻣하게 굳은 사람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적을 앞에 두고 등을 보이다니 정신 나간 짓거리였다. 검을 뽑아 들고 검기를 날렸다.

촤악! 촤아악!

“크아아악!!”

날아간 검기가 고스란히 명중했다. 치명적인 급소를 제외하곤 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척추가 보일 정도로 등이 파이고 왼팔이 잘려 나갔다.

‘음..?’

그런데도 그를 무시하며 사람들을 도륙하는데 집중했다. 비정상적인 행동에 살짝 긴장했다.

“크하아!! 좋구나!”

마력 한 줌 느껴지지 않던 괴물의 존재감이 급격하게 커졌다. 마치 사람들의 죽음이 뭔가를 일으킨 것 같았다.

마기.

인간의 천적인 마족들의 기운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쉬잇!

막을 새도 없이 괴물의 학살이 이어졌다.

급격히 늘어난 속도에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히끗거리는 잔상만 느껴질 정도였다.

어느새 또 한 명의 목을 뽑아낸 괴물이 그것을 제 입에 털어 넣었다.

조그맣던 입이 쭈욱 늘어났다. 머리통이 과자라도 되는 것처럼 와그작 와그작 씹어댔다.

머리를 잃고 쓰러지는 시체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무언가 쭈욱 빨아들인 괴물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흐으..! 너무 맛있어서 아까울 지경이군.”

놈이 이쪽을 보며 비웃었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사이에 피와 살점이 가득했다.

‘육화(肉火).’

화르륵.

시야가 선명해지고 세상이 느릿해졌다. 순식간에 사람들을 모조리 죽인 괴물이 희번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괴물의 하나 남은 오른팔 손톱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빨랐다. 느려진 세상 속에서도 멀쩡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네놈은 무슨 맛일지 궁금하구나.”

촤아악!!

채찍처럼 늘어난 검기가 날아들었다. 손톱 하나하나에 10미터가 넘는 붉은 기운이 맺혀 있었다.

히끗거리며 날아든 공격을 반사적으로 피했다.

등 뒤에 있던 벽이 수십 조각나며 박살 났다. 건물 밖 갈대밭이 훤히 보였다.

쩌저정!

검기가 스쳐 지나간 뒤에 뒤늦게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잔상만 느껴질 정도로 빠른 공격을 피하며 정신이 점점 고양됐다.

이런 실전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동공이 확장될 정도로 집중했다.

‘지금.’

목을 향해 다가오는 붉은 검기에 오른쪽 손등을 가져다 댔다.

웅!

손등에 맺힌 아주 작은 내공을 이용해 붉은 기운을 체내로 인도했다. 피부에 닿는 그 순간부터 육체를 자르고 파괴하려는 적의가 느껴졌다.

그것을 도도히 흐르는 혼원기 속에 태워 보냈다.

아주 약간씩. 처음엔 미약하게 틀어진 적의 공격이 부드럽게 몸을 타고 한 바퀴 돌았다. 반대쪽 손끝에 도착한 기운을 흩뿌렸다.

촤악!

괴물이 제 뺨에 난 붉은 혈선을 보더니 눈을 부릅떴다.

자기 공격이 고스란히 되돌아온 것을 알아챈 것이다.

“이.. 버러지가..!”

열심히 사람들을 씹어먹은 덕분인지 괴물의 왼팔이 재생됐다. 그곳에서도 검기가 피어올랐다.

두 배로 늘어난 붉은 채찍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가슴속에 간질거리던 행운유수의 감각이 온몸에 넘실거렸다.

촤차촥!

거의 동시였지만 가장 빠른 것은 분명 있었다. 최초로 도달한 검기에 손을 뻗었다. 손바닥을 반전시켰을 뿐인데 놈의 검기가 되돌아갔다.

수십 개의 붉은 검기가 서로 부딪치며 엉켜들었다.

콰콰콰쾅!

통제를 잃은 붉은 검기가 서로를 공격했다. 폭음과 함께 놈의 공격이 사그라들었다. 괴물이 눈을 부릅떴다.

“크하!”

놈이 발악하듯 허공에 손톱을 휘둘렀다. 하늘을 가득채운 검기가 피로 변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벽이나 기둥따위가 염산이라도 닿은 듯 녹아내리는 것이 보였다.

피부에 닿은 최초의 한 방울에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곧바로 내공에 항마력 특성을 담았다.

우웅.

항마력에 닿은 피들이 거칠게 반항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를 녹이고자 발악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들을 한데 모아 혼원기로 감싸 되던졌다.

촤아악!

혼원기가 뒤섞인 기운을 놈은 통제하지 못했다. 괴물에게 닿은 피가 강렬한 소리를 내며 피부를 녹였다.

“크으..!”

새빨간 근육을 드러낸 괴물이 녹아내린 제 피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더 없어?”

살짝 부족했다. 아직도 가슴속에 있는 행운유수가 간질거렸다. 한 걸음이 부족했다.

“크흐흐.. 어이가 없군.”

괴물의 조용한 웃음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우드득거리며 압축됐다.

3미터 덩치가 평범한 성인 남성 크기로 압축됐다.

“이 몸도 이제 끝이군···. 퉤!”

놈의 입에서 살덩이 섞인 피가 토해지고 이쪽을 보며 기괴하게 웃었다.

쩌저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놈의 살이 갈라져 나가며 피가 튀었다. 마치 무언가에게 공격당하는 것 같았다.

“천천히 가지고 놀 시간이 없는 게 아쉽구나.”

놈의 오른손에 있던 붉은색 검기들이 하나로 응집되더니 검은 칼날로 변했다.

목덜미가 섬뜩했다.

촤악.

단순한 찌르기.

간신히 몸을 옆으로 비틀어 피했다. 가슴팍이 길게 갈라지며 피가 터져 나왔다.

조금만 늦었으면 심장이 갈라졌을 것이다. 새하얀 갈비뼈가 얼핏 보일 정도였다.

쉬싯 쉬시싯!

눈에 보이지도 않는 참격이 이어졌다. 검은 칼날이 심상치 않았다.

‘검기가 맞나..?’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다행히 놈의 검술은 뛰어나지 않았다. 왼쪽 어깨가 절반쯤 잘려 나간 대가로 기회를 잡았다.

훤히 드러난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사악.

감촉이 이상했다.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검기가 맺힌 검으로 목을 베었는데 피부도 갈라지지 않았다. 살짝 붉어진 것이 전부였다.

“크크..!”

놈의 비웃음과 함께 벼락 같은 내려치기가 다가왔다. 단순한 세로베기지만 피하기엔 너무나 빨랐다.

‘쾌(快), 예(銳).’

정신을 집중했다. 예기를 한계까지 키운 검기를 피워올렸다. 내리꽂히듯 다가온 검은 칼날을 철검으로 막아섰다.

서걱.

미세한 절삭음이 전부였다.

검기는 물론이고 철검까지 아무런 저항 없이 잘려 나갔다. 검은 칼날은 그대로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아..’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의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그제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세포들이 맹렬하게 깨어났다.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 되어 죽음에 저항했다.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검은 칼날이 앞머리 한 가닥을 자르고 있었다. 이마에 닿기 직전이었다.

‘행운유수를···.’

습관처럼 손등을 들어 올리려다 멈췄다.

이미 솜털까지 잘려나간 뒤였다. 검기가 모여 만들어진 그 섬찟한 예기가 피부에 닿았다.

그 찰나의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손등이나 이마나 똑같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상대의 기운을 혼원기에 뒤섞는 것.

쉬익.

검은 칼날이 일도양단하듯 몸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적의 기운은 혼원기에 뒤섞였다.

괴물이 눈을 부릅뜨는 것이 보였다.

이마를 타고 들어온 검은 기운이 온몸을 거칠게 휘젓고 있었다. 검기보다 한차원 높은 기운. 마치 파괴만을 위해 태어난 화신 같았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생각을 접었다.

거칠게 흐르는 강물에 돌멩이를 쌓듯. 미세하게 흐름을 뒤틀었다. 파괴적인 에너지가 터질 것처럼 몸을 상처 입히려 했다.

영원같은 찰나의 순간이 지났다. 조금씩 비틀어진 흐름은 결국 통제 아래 놓였다.

그 흐름을 인도해 손끝에 담았다.

느릿하게 뻗어진 오른손이 괴물의 복부에 닿았다.

쩌어엉!

놈의 복부는 물론이고 그 뒤에 있던 벽까지 꿰뚫렸다. 검기에도 상처 하나 나지 않던 가죽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허.. 도대체 이건 무슨 기술이냐. 어이가 없군.”

괴물은 복부에 난 구멍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핏핏핏!

뒤늦게 어깨, 옆구리, 정강이 등 전신 곳곳이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흐름을 통제하는데 실패한 일부 기운에 몸이 베인 것이다.

‘더럽게 아프네.’

뿐만 아니라 기혈도 일부 상했다. 전신을 망치로 두들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적을 앞에 두고 고통에 빠질 여유는 없었다.

서걱.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검을 뽑아 이쪽을 멍하니 보고 있는 놈의 팔다리를 잘라버렸다.

놈은 복부가 꿰뚫린 이후로 힘이 급격하게 약해지고 있었다. 마치 제한 시간이 끝난 것 같았다.

괴물은 흉상처럼 가슴 위쪽과 머리만 남았다. 그러고도 죽지 않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방금 행운유수 한 번에 내공 절반이 넘게 날아갔다. 피곤이 급격히 몰려왔다. 당장에라도 쓰러져 잠들고 싶었지만 놈에게 물었다.

“네 아버지는 뭐 하는 놈인데 이딴 일을 시킨 거냐? 응?”

제대로 된 대답은 없었다. 괴물은 비릿하게 웃으며 이죽거렸다.

“크흐. 건방진 버러지 놈.. 감히 아버지를 입에 올리다니. 주제 파악을 시켜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는 게 너무나 아쉽구나.”

검기를 피워 놈의 하나 남은 어깨를 찔렀다.

검을 비틀었는데도 놈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흐흐.. 그래도 가축치고는 제법 강했다. 예쁘기만 한 이몸으론 무리였어···. 헛수고 하지 말고 빨리 죽여라. 다음에 다시 보자.”

인상이 팍 찡그려졌다. 어떻게 고문해야 할지 막막했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눈가를 찌푸리다가 문득 떠오르는 직감이 있었다.

‘사일(射日).’

웅웅!

평범한 철검에서 검기가 솟아났다. 처음엔 하나였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순식간에 분열한 검기들이 수십, 수백 개로 늘어났다.

온몸의 힘이 쭉 빨려 들어갔다. 수천 개의 조그마한 검기들이 한데 모여 찬란한 빛을 냈다.

검에서 피어난 셀 수 없이 많은 검기가 모조리 괴물에게 겨눠졌다.

순간 세상이 확장됐다. 마치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듯 주변 풍경이 훤하게 보였다.

무엇이든 베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이 느껴졌다.

“이 무슨 흉측한..!”

사일을 보고 경악한 듯 눈을 부릅뜨는 괴물의 머리 위로 희미하게 연결된 얇은 선이 보였다.

서걱.

그래서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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