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2 - 132화 - 현대
132화 - 현대
일단 훈련실로 가서 획득한 카르마를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기로 했다.
거실로 나오니 부클랜마스터 한소영이 티비를 보며 과일을 먹고 있었다.
[···작년에 비해 균열 발생률이 12.7% 상승했습니다. 이에 따라 협회는 더 많은 헌터가 필요하다며 예산에 대한······. 다음 소식입니다.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 차원침식이 발생했습니다. 정부 당국은···]
티비에서 예쁘장한 아나운서가 말하는 것을 듣다가 한소영에게 말했다.
“또 균열 터졌어?”
“응. 세 시간 전에 하나 터졌어. 그쪽 관리하던 길드에서 하나 놓쳤대. 사과 깎아놨는데 먹을래?”
“아, 고마워.”
그녀가 먹여주는 아삭한 사과를 씹으며 말했다.
“그쪽 길드 헌터들 개고생하겠네.”
“그렇긴 한데.. 오히려 좋아할걸?”
“왜?”
한소영의 목소리에 약간의 부러움이 담겨 있었다.
“거기서 광산 발견됐대.”
“아.”
이해가 갔다. 차원침식지에서 아주 가끔 발견되는 광산. 그곳에서 캔 광물들은 균열소재다.
균열에 들고 들어갈 수 있는 만큼 평범한 철광산이라고 하더라도 대박이라 할 수 있었다.
“안 좋은데···”
“응? 광산이면 대박 아니야?”
차원침식은 대부분 위험하고 쓸모없다.
하지만 가끔씩 저렇게 대박이 나면 누군가는 꼭 욕심을 부린다.
아카데미 지구에서도 반복됐던 역사였다.
“저기서 만족하면 다행인데. 일부러 균열 브레이크라도 일으킬 것 같아서.”
“에이 설마. 차원침식지가 위험했던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
뉴스에 흥미가 떨어진 한소영이 채널을 돌렸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진행자와 중년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년 남자는 안경을 썼는데 꽤나 지적으로 보였다. 화면 아래에 균열학과 교수라는 자막이 달려 있었다.
진행자가 질문했다.
“그렇다면 교수님. 차원침식이 어떤 환경으로 나타날지 예측할 수 있다는 가설이 있던데. 이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경 쓴 교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탐탁지 않은 듯 입을 뗐다.
“···아예 없는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사례가 있긴 하죠. 연쇄 균열 브레이크가 일어난 아프리카에서 유사한 지형이 한곳에 몰려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 반색한 진행자가 다시 한번 물었다.
“오! 교수님 말씀은 가평군에서 균열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또 광산이 있을 확률이 엄청나게 높다는 겁니까?”
교수가 대본을 보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한숨을 살짝 내쉬더니 대본을 덮어 버렸다.
“하아.. 제말은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하지만 애초에 확률이 너무 낮-”
진행자가 갑자기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가평은 기름이 솟아나는 유전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나라에 유전이 생긴다니! 지금 당장 균열 브레이크를 일으켜야 할 것 같은데요.”
“아. 그건 너무 위험하죠. 면밀한 검토가 끝나고 안전대책-”
교수가 연신 입을 뻐끔거렸지만 마이크가 꺼졌는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텔레비전 화면이 진행자의 얼굴로 가득 찼다.
“아! 벌써 시간이 끝났네요. 시청자 여러분. 교수님 말씀을 요약하면 차원침식은 무작위가 아니다. 가평군 일대는 광산지대와 연결됐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라고 정리하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시사 상식이었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진행자의 마이크에 손을 뻗는 것을 마지막으로 방송이 끝났다.
광고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한숨이 튀어나왔다.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고민하다가 일단 접어뒀다. 연금술사인 이연희에게 할 말이 있었다.
“소영아 연희 좀 훈련실로 불러 줄래?”
“아... 응.”
작게 입을 벌린 채 화면을 보고 있던 한소영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
훈련실에 도착하자마자 할 일을 점검했다.
현대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무거움이었다. 어느새 이 몸은 다른 지구에 비해 육체 수준이 가장 낮았다.
먼저 마력코어부터 연결했다. 혼원기공을 운기하며 절정의 경지에 걸맞은 육체로 만들었다.
뚜두둑.
시원한 뼈 소리가 들렸다. 강해지는 기분은 언제 느껴도 짜릿했다.
“후우...”
한결 가벼워진 육체를 만끽하다가 눈을 빛냈다.
-보유 카르마 : 9,729
보기만 해도 웃음이 지어졌다. 아카데미 지구에서 획득한 카르마가 아주 쏠쏠했다.
유난히 많은 카르마에 약간 의문이 들 정도. 어디서 이렇게 많이 얻었나 메시지 로그를 뒤져 봤다. 대략 느낌이 왔다.
‘설산에서 푸딩을 키우기로 한 거랑 뱀파이어 죽인 거 합쳐서 육천?’
절반 이상이 그 둘에서 획득됐다.
공통점이 뭘까 고민했다. 일단 뱀파이어는 나름 명확했다. 균열을 키우려고 헛짓거리를 하던 녀석이었다.
푸딩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헬레나가 불의 재앙과 비슷하다고 했었지.’
푸딩 혹은 봉황이 품고 있던 힘을 사도라는 놈이 탈취했을 때를 상상해봤다.
서울이 불바다가 됐다고 했었다. 사람들이 대규모로 죽었다면 균열은 더 커졌을 것이다.
‘균열을 막는 게 카르마 획득에 유리한가..?’
문득 티비에서 나왔던 내용이 떠올랐다.
그가 상관할 내용은 아니었지만 뱀파이어를 심문해서 알아낸 정보가 마음에 걸렸다.
‘인간의 죽음이 균열을 키운다라···.’
사람들이 죽고 균열이 커지면 더 높은 등급의 균열이 발생한다. 그러다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 더 이상 균열을 처리할 수 없다.
그게 바로 아카데미 지구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균열 사태다. 임계점을 넘어 차원침식이 압도적으로 늘어나는 것.
그때가 되면 인류는 생존을 위해 몬스터와 싸워야 했다.
어쩌면 헌터 지구도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일단 쇼핑부터 하자.’
구궁.
수련실이 확장되며 무한한 우주로 바뀌었다. 언제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멋진 풍경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을 가득채운 별. 빛나는 물건들은 보기만 해도 감탄이 흘러나왔다.
[특가 상품이 초기화 되었습니다.]
- 해당 상품의 할인률은 최소 10%에서 최대 95%입니다.
기대감에 손바닥을 비볐다.
저번에 샀던 약점파악 스킬이 제법 쏠쏠했다. 특히 여자와 관계할 때 정답지 보듯 성감대를 알 수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특가상품 리스트]
- TS 물약 : 10,000 카르마
- 스킬 [동정지체] : 10,000 카르마
몸이 흠칫 떨렸다. 둘 다 이름만 봐도 심상치 않았다.
TS 물약은 성별 전환 물약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놈에게 썼을 때 어떻게 될지 궁금하긴 했으나 1만 카르마에 사고 싶진 않았다.
[동정지체] : [특별가격]10,000 카르마
- 정액을 사정하지 않은 시간에 비례해 모든 신체 능력이 상승합니다.
- 상승량은 최대 2배까지 적용 됩니다.
- 모든 전생체에서 사용 가능합니다.
“미친..”
절로 욕설이 튀어나올 만한 스킬이었다.
평범한 무공보다 강하다는 동자공의 스킬버전이었다.
보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절대 안 사.’
천하제일이 된다고 해도 여자와 즐길 수 없다면 그것은 지옥이었다. 게다가 혼원기공은 색공이었다.
살만한 다른 상품을 뒤져 봤다.
[혼원일기공(混元一氣功)] : 7,000(-3,000) 카르마
- 원형이 되는 하위 무공을 익혔습니다. 일부 금액이 할인됩니다.
- 혼원기공의 위력이 약하다는 단점을 개선한 무공이다.
[상급 육체 강화] : 10,000 카르마
- 육체의 모든 능력을 상당히 강화한다. 모든 전생체에 적용된다.
둘 중 뭘 살지 고민했다. 1만카르마에서 조금 모자라긴했지만 300 카르마 정도야 며칠이면 모은다.
‘흠···. 고민이군.’
혼원기공의 위력이 약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지만 그동안 위력의 부족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아니, 한번 있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뱀파이어가 휘둘렀던 검은 칼날이 떠올랐다.
‘검강이었나?’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검기가 두부처럼 잘려 나갔었다.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정했다.
‘혼원일기공 구입.’
혼원일기공(混元一氣功)은 무공이었다. 원리에 대해 몰라도 사용할 수 있는 스킬과는 달랐다.
말 그대로 지식을 사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스며드는 구결들을 음미하다가 눈을 떴다.
‘나쁘지 않은데···.’
혼원기공의 상위무공답게 자잘한 차이점들이 많았다.
먼저 전체적인 내공효율이 상승했다.
‘쾌(快).’
훈련실을 빠르게 뛰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살폈다. 평소보다 확실히 더 빨랐다.
팡! 팡!
가볍게 뿌린 주먹에 공기가 터져 나가는 것을 보다가 턱을 쓰다듬었다.
커다란 차이점은 뭐가 있을지 고민해봤다. 구결을 알았다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순 없었다.
음미하듯 구결을 되새겼다. 유독 머릿속에 박혀 드는 구결이 하나 있었다.
-순일(純一)이 만변(萬變)을 이긴다.
훈련실에 있는 허수아비를 쳐다봤다.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진 허수아비.
마력 반발력이 뛰어나서 검기에도 저항하는 녀석이었다.
‘섬(剡), 예(銳).’
먼저 혼원기공을 이용해 검기를 피워올렸다. 날카로울 섬. 한없이 예리해진 칼날을 상상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그극.
갈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절반쯤 잘려 나간 허수아비가 다시 재생됐다.
다음은 혼원일기공의 구결대로 검기를 피워올렸다.
‘극섬(極剡).’
신기한 감각이었다. 모든 기운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정렬 되는 느낌이었다.
아지랑이를 넘어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는 검 끝을 보다가 휘둘렀다.
서걱.
검기가 허수아비를 스쳐 지나갔으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조용히 다가가 손가락으로 툭 쳤다.
쿵!
그제서야 스르륵 미끄러진 반 토막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어찌나 예리한지 베인 단면에 얼굴이 비쳤다.
“합..!”
방해하지 않기 위해 구석에서 기다리던 이연희가 귀여운 소리를 내뱉었다.
동그란 두 눈을 토끼처럼 뜬 채 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