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8 - 138화 - 현대(7)
138화 - 현대(7)
한편 강진그룹 회장실.
“으아아악!!”
강지혁이 책상 위에 있는 걸 모조리 엎어 버렸다.
눈에 실핏줄이 터지는 것도 모르고 티비를 노려봤다.
화면에 인쥬얼 크림을 사려고 줄 선 사람들이 보였다.
[일명 젊어지는 크림이라 불리는 인쥬얼 크림. 인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해당 영상이 촬영된 시각은 새벽 3시. 그런데도 줄이 이렇게나···]
“시발! 내가 팔기 싫댔잖아!!”
콰직!
분노를 참지 못한 강지혁이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
그것이 박실장 머리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티비에 부딪친 재떨이가 산산조각이 났다.
“죄, 죄송합니다.”
구원 연금에 양도한 가평군 관리권.
갑각 달팽이가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다.
심지어 공짜로 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돈을 주면서 넘겼다.
그런 차원침식지가 금이 나오는 땅으로 변했다. 보기만 해도 배가 아팠다. 창자가 꼬일 지경이었다.
박실장이 끈질기게 설득하지만 않았아도 안 팔고 버텼을 텐데.
“빌어먹을···! 이놈이나 저놈이나..”
우드득.
강지혁이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고개를 숙이고 멍청히 서 있는 박실장은 보기만 해도 짜증이 치밀었다.
하지만 저런 놈이라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지금 회사엔 그를 끌어내리려는 사람으로 가득했으니까.
“어떻게든 해야 돼···.”
엄지 손톱을 깨물며 다리를 달달 떨었다. 고민하던 그가 눈을 번쩍 떴다.
“그래! 외부의 적.”
“네?”
“나한테서 눈돌릴 만한 외부의 적이 필요해. 우리 회사가 하나 될 그런 적. 그래야 내가 산다.”
“···너무 위험합니다. 안 그래도 약해진 상태인데 적까지 만들면···.”
“하! 누구나 납득할 만한 성과가 한 방에 나와야 시끄러운 주주 놈들이 입 닥칠 거 아니야!”
고개를 숙이던 박실장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럼 적은 누구로..?”
한동안 고민하던 강지혁이 고개를 팍 들었다.
“구원 연금! 놈들이 가져간 건 되찾아 와야지! 급격하게 성장한 만큼 약점이 많을 거다. 우선 최시우··· 그놈부터 처리한다.”
“처리요..? 설마?”
“일단 죽이자. 그래야 빈틈이 생기지. 거기 연금술사는 고용하든 납치하든 해서 기술 빼먹고··· 그럼 어떻게든 되겠지.”
“영상 보셨잖습니까. 갑각 달팽이 수백마리를 단칼에 베어 버렸습니다. 그런 사람을 죽이려면 S급 헌터는 고용해야 할 텐데요..?”
강지혁이 얼굴을 팍 일그러뜨리더니 말했다.
“권왕있잖아. 그놈한테 시켜.”
권왕. 강진 그룹이 심혈을 다해 키운 칼이자 방패였다. 하지만 권왕이 S급이 된 이후론 골치덩이로 변한지 오래였다.
“저.. 부회장님. 권왕은 회장님 부탁도 잘 안 듣습니다.”
“미친···! 그 새끼가 받아 먹은 영약만 얼만데 부탁? 명령이 아니고?”
“···죄송합니다.”
“쓸모없긴! 내가 직접 간다.”
망나니 주제에 행동력은 빨랐다. 앞서 가는 강지혁을 보던 박실장이 구석에서 몰래 메시지를 보냈다.
강지혁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따라가려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거대한 회장실이 보였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탐욕을 참기 힘들었다.
‘저긴 내 거야··· 강진 그룹 절반은 내가 세운 거라고···!’
*
강지혁이 권왕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보다 고릴라 형상에 가까웠다.
뇌까지 근육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팔뚝만 봐도 웬만한 성인 여성보다 두꺼웠다.
키도 2미터를 훌쩍 넘긴 짐승 같은 남자였다.
그런 권왕이 귀를 후비고 있었다. 온갖 지원을 해주며 키워준 주인에게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갑과 을은 바뀐지 오래. S급은 살아 있는 전략 병기였다. 분노를 참고 억지로 웃었다.
꿈틀거리는 근육을 보니 도저히 반말할 수가 없었다.
“최시우라는 놈입니다.”
“하.. 누구라고?”
“구원 연금이란 곳의 사장입니다.”
“이봐 강지.. 뭐였더라. 아무튼 부회장나리. 내가 그깟 놈들하고 푸닥거리를 해야겠나?”
“···먼저 이것부터 보시죠.”
권왕이 혀를 차며 태블릿을 건네받았다.
최근 연쇄 균열브레이크로 난리가 난 가평군. 그곳에서 달팽이 수백마리가 기어 오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끼리릭. 끼리릭.
최시우란 놈이 검을 휘둘렀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였다. 단순한 동작이었으나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수백 마리의 달팽이들이 모조리 썰려 나갔다.
서걱.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들렸다. 확인해보니 태블릿은 음소거 상태였다.
권왕의 눈썹이 꿈틀했다.
벽을 타고 오르던 달팽이. 가장 낮은 달팽이와 높이만 10미터 넘게 차이날 텐데 일 검에 모조리 썰렸다.
권왕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도 이런 장면을 만들어 낼 자신은 없었다.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댓글을 살폈다.
- 와.. 이 정도면 S급 아니냐?
“하.. 건방지게. S급이 누구집 애 이름인 줄 아나.”
- 신체 강화 능력자라는데 진짜임?
- 저거 검기 맞지? 와 시발. 그럼 저게 순수한 마력 컨트롤이라고? 각성 능력이 아니고?
찬양과 질투 가득한 댓글을 보니 기분이 점점 더러워졌다.
-권왕도 저건 못할듯.
한 댓글에 손이 멈췄다.
-에이 그래도 권왕인데?
└ 권왕은 그냥 힘이 더럽게 센 거지. 마력 컨트롤은 후달려서 저런 건 못해.
└ 그런가?
꽈직.
태블릿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하하.. 크하하하하!!”
권왕이 웃었다. 마력도 담겨 있지 않은 웃음소리에 건물이 진동했다. 무너질 것처럼 웅웅거렸다.
기겁한 강지혁이 귀를 틀어막으며 소리쳤다.
“윽..! 뭐, 뭐하시는 겁니까!”
권왕은 멈추지 않았다. 1분가량 호탕하게 웃던 그가 갑자기 정색했다.
“크흐.. 최시우라고? 지금 바로 가지.”
“예..?”
권왕이 머리를 좌우로 틀었다. 뚜드득 거리는 뼈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강지혁이 말렸다. 이렇게 무작정 갔다간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회장 자리를 보전하는 것이었다.
“이런.. 제가 무대를 준비할 테니 천천히..!”
권왕은 그를 개무시하고 떠나버렸다.
강지혁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박실장에게 소리쳤다.
“지금 당장 방송국에 연락해! 카메라 최대한 많이 들고 바로 오라 그래!”
***
지이잉.
시우가 문자를 살폈다.
-강지혁이 권왕과 접선중입니다. 당신을 노릴 것 같은데. 조심하십시오.
박실장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그는 가평군 관리권을 판매하는데 도움을 준 이후로 스파이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의 목적은 강진 그룹의 뒤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강씨 일가를 몰락시키는 것까지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권왕하고 접선중이라고?’
권왕이라면 S급 헌터였다. 인터넷에 그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진 최신 전차를 장난치듯 뭉개버리는 영상이 나왔다.
‘오..?’
제법 강해 보였다. 좀 더 자세히 찾아보니 권왕이란 이름에 걸맞은 강자였다.
S급 신체 강화 능력자.
극에 이른 신체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때려 부수는 무식한 놈이었다.
동작을 보면 무공을 익힌 것 같진 않았다. 근육만 극한으로 단련한 것 같았다.
드레이크라 불리는 아룡족을 마력도 담겨 있지 않은 맨주먹으로 패는 영상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하긴 한데···.’
S등급이면 초절정. 그보다 상위 경지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니터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왔네?’
클랜 하우스 밖에서 강력한 기세가 다가왔다. 숨길 생각도 없는지 대놓고 과시하고 있었다.
*
권왕이 최시우란 놈을 살폈다.
그와 다르게 근육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균형 잡힌 몸은 보기만 해도 절로 끄덕여졌다.
“단련이 제법이군.”
“흠..”
건방진 녀석이 그를 관찰하듯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권왕이 건강한 치아를 자랑하며 씨익 웃었다.
“어이 꼬맹아. 한판 붙자.”
“뭐..?”
“자잘한 거 신경 끄고. 누가 더 강한지 겨뤄보자고.”
“하하.. 뭐.. 나쁘지 않네. 그럴까?”
여기까지 뒤따라온 강지혁이 권왕에게 속삭였다. 생각보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대련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선 곤란했다.
“···말했잖습니까! 꼭 죽여야 한다고!”
권왕이 혀를 찼다. 근육도 없는 비실이가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기가 앵앵거리는 것 같았다.
“하..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저리 꺼져.”
별생각 없이 손을 털듯 툭 밀었다.
“끄읍!”
그런데 살짝 밀린 강지혁이 피를 토하며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바닥에 쓰러진 놈이 작살 맞은 물고기처럼 전신을 바들바들 떨었다.
“호오..”
권왕이 그것을 물끄러미 보며 감탄했다.
그가 강지혁을 민 순간. 투명한 기운이 날아왔다.
최시우의 손가락 끝에서 날아온 은밀한 마력이 망나니 놈의 척추를 끊어 놨다.
지금도 척추에 남아 신경을 조각내는 중이었다.
저러면 치료도 힘들었다. 최소 반신불수, 아니면 식물인간행이 확실해 보였다.
“···제법인데.”
“허억! 뭐, 뭐 하시는 겁니까! 부회장님!!”
“응?”
사람들이 기겁하며 권왕에게서 멀어졌다.
따라온 방송국 카메라는 그를 집중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이제야 깨달았다.
그들이 보기엔 권왕이 툭 치니 강지혁이 바닥에 쓰러진 것처럼 보였으리라.
“허허.. 이 자식이?”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최시우가 그를 보며 피식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