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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43화 (143/241)

Chapter 143 - 143화 - 무협지구(4)

143화 - 무협지구(4)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시냇물.

한 여인이 그곳에 앉아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손가락 사이로 스스륵 흘러내리는 머리결은 보기만 해도 부드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여인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어느새 은색으로 물든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물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와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누구나 탐낼 만큼 아름다운 용모였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외모를 탐낸 무리들 때문에 소중했던 친구가 죽었다.

스르릉.

그가 남긴 검을 쓰다듬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검. 이제는 단순한 병기가 아니라 가족처럼 느껴졌다.

날을 갈지 않아도 스스로 날카로움을 유지하는 신비한 보검.

손잡이에 기이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동쪽 나라의 글자가 섞였다는 것까진 알아냈지만 무슨 뜻인진 알 수 없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힘없는 꼬마였던 친구. 그가 어떻게 이런 검을 허공에서 만들어 냈는지 아직도 의문이었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죽은 친구를 생각해 봐야 가슴만 아플 뿐이다.

스르릉.

납도하고 머리카락을 살폈다. 신경 쓰지 못한 사이에 또 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선천적인 음기를 통제하기 점점 힘들어졌다.

눈을 감고 열양지공을 운기했다. 피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기운으로 인해 새하얀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아파..’

그녀의 새하얀 피부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읏..”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얼굴빛에 새어 나오는 고통을 완벽하게 숨길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머리카락 끝에 차오르던 은빛이 점차 사라졌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결만 남았다.

“하아···”

내뱉은 숨결이 냇가에 닿았다.

쩌쩌적.

그것만으로 흐르던 물이 얼어붙었다.

그녀는 몸에 달라붙은 옷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었다.

찰팍.

살얼음을 깨고 차가워진 물속으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피부에 맺힌 땀방울을 냇가에 흘려보내며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따라 10년 전 일이 자꾸만 떠올랐다.

인신매매범에게서 그녀를 지키다 죽은 소중한 친구.

검 손잡이에 적힌 뜻모를 글자를 쓰다듬으며 물밖으로 나갔다.

후우웅!

바람이 그녀의 몸을 휘감으며 물기를 모았다. 손가락 끝에 응축된 물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어느새 단정해진 옷차림으로 수풀을 헤쳤다. 야영지로 향했다.

모닥불에 앉아 기다리던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실실 웃으며 말했다.

“소향 사저. 고생 많습니다.”

“···.”

“하하.. 체질에도 안 맞는 열양지공이라니. 차라리 제가 어머니. 아니, 스승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양기 가득한 영약이라도 먹으면 낫지 않겠습니까?”

“됐어.”

소향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사제의 제안도 마찬가지였다.

영약을 받으면 분명 그걸 구실삼아 원하는 바를 말할 것이다.

“흠..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대답하지 않았으나 남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출발하죠. 낙양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다시 객잔.

시우가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뭔 소문인데?”

입을 벌리고 있던 남자가 표정을 관리했다.

“흠흠.. 이번에 모용 세가에서 큰일이 있었잖은가?”

“큰일?”

모용 세가라면 악연이 있었다. 무영신투의 창고에서 죽였던 모용철의 가문이었다.

남자가 입을 꾹 다물고 씨익 웃었다. 그걸 보고 점소이를 불렀다.

“적당한 안주랑 술. 빨리 되는 거로.”

“예! 금방 내오겠습니다.”

고기와 야채를 볶은 음식이 빠르게 나왔다. 센불에 볶았는지 불향이 가득했다.

“험험..”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남자에게 그릇을 살짝 밀었다.

“모용 세가가 어쨌다고?”

“음..! 끝내주는군. 아아.. 잠시 목 좀 축이고. 크흐! 좋다.”

술까지 시원하게 들이킨 남자가 말을 이었다.

“한 달쯤 전에 무영신투의 보고가 나타났다고 떠들썩 했잖은가? 텅 비어 있었다지만.”

“그랬지.”

“거기서 나타난 사일검수가 모용철을 단칼에 베어 버렸는데···.”

“잠깐. 사일검수?”

빠르게 고기를 집어먹던 남자가 젓가락을 멈췄다.

“응? 이것도 몰라? 자네 어디 산속에 있다 왔나?”

“최근 산에서 수련 좀 했네. 아무튼 사일검수가 뭔데?”

“음.. 모용철이 무슨 사술을 부렸는지 괴이한 요괴를 불러냈다더군. 이건 아나?”

“그건 들어 봤어. 그런데?”

“요괴 크기만 10척이 넘었다던데··· 아, 이건 사람마다 말이 달라. 누구는 100척이 넘었다고도 하니. 확실한 건 아닐세. 아무튼 커다란 요괴가 나타났는데.”

숨이 차는지 술한잔 마신 남자가 말을 이었다.

“한 남자가 그 괴물을 단칼에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더군. 그자를 사람들이 사일검수라고 부르고 있네. 무슨 해를 찔렀다나? 하여간··· 무림인들은 내가 봐도 허풍이 심하다니까.”

“사일검수라···.”

아무래도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처음으로 생긴 별호가 사일검수라니. 나쁘지 않았다.

“아무튼. 모용철한테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비록 죽었다지만 그 책임이 사라질 건 아니지 않나?”

“뭐 그렇지.”

“당연히 모용 세가를 무림 공적으로 지정해야 정상일 텐데···.”

꿀꺽하고 음식을 삼킨 남자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모용 세가에서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진 모르겠지만 무림맹에서 중재했네. 하긴. 그치들 입장에서 전쟁은 절대 안 되겠지. 아쉽게도 말이야.”

혀를 끌끌 차는 남자에게 말했다.

“아쉬워? 전쟁을 안 하면 좋은 거 아닌가?”

“허참.. 젊은 사람이 꿈이 없구만. 전쟁이 일어나야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릴 것 아닌가. 평화로운 곳에서 영웅이 날 순 없는 법!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삼처사첩은 거느리고 살아야지 않겠나?”

“삼처사첩이라···. 그건 맞지.”

“음..! 뭘 좀 아는구만! 오랜만에 무림 공적 하나 생기나 싶었는데. 아쉽게 됐어. 하여간 무림맹놈들은 평화에 찌들었다니까.”

모용 세가에 대해 생각하니 서지유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도둑질.

이왕 할 거라면 맘에 안 드는 놈들을 터는 게 좋았다.

‘모용 세가라··· 딱 좋네.’

모용철은 이미 죽었지만 놈이 서지유를 때렸던 것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자식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책임은 가문이 져야했다. 그리고 소문이 날만큼 커다란 곳이니 더 좋았다.

“모용 세가 위치가 어디였지?”

“응? 그걸 모르나? 요녕에 있잖은가.”

“요녕···?”

요녕은 너무 멀었다.

거의 중원 끝이었다. 도둑질 하나 하러 거기까지 가긴 귀찮았다.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요녕은 너무 먼데..”

“자네. 모용 세가에 볼일있나?”

“그건 아니고. 그냥 어떤 놈들인지 구경이나 하고 싶어서.”

“허허.. 그럼 모용상단이나 보고 만족하게. 마침 여기 낙양에 있으니 말이야.”

“오··· 그래? 어딘데?”

남자가 고갯짓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길을 따라가면 가장 큰 건물이 모용상단일세. 조심하게. 그놈들한테 밉보여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놈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

시우가 기지개를 켰다.

며칠 동안 잘 먹고 잘 쉬었다.

월영신을 운용하며 객잔을 나섰다.

지금은 해가 가장 높이 떠오른 정오.

‘날 좋네.’

고개를 드니 푸른 하늘이 보였다. 화창한 햇살이 따사로웠다.

도둑질 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인벤토리에서 철가면을 꺼내 얼굴에 썼다. 그 상태로 대로를 걷고 있는데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월영신의 공능이었다. 존재감 자체가 흐릿해졌다.

도둑질을 하려니 왠지 흥분됐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긴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발걸음을 멈췄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모용 상단.

모용 세가에서 지원하고 키운 상단이다. 그들의 지갑이나 다름없었다.

대문만 봐도 재력을 알 수 있었다. 크고 화려했다. 높이만 4미터가 넘고 테두리에 금박이 입혀져 있었다.

‘좋구만.’

마음에 딱 들었다. 털 가치가 충분한 곳이었다. 이런 곳을 털어야 소문도 잘 난다.

두 문지기가 지루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이 하품하며 말했다.

“흐아암.. 본가에 가면 무공이 강해진다던데 정말일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영약도 먹고··· 무공도 배울 테니까.”

“나도 빨리 가고 싶다.”

“난 그냥 근무나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벌써 앵화 품이 그리워.”

하품하던 남자가 멈칫했다.

“앵화? 설마 음식하는 그 하녀?”

“어.”

“허.. 재주도 좋군. 상당히 도도하던데···.”

“흐흐! 그런 년들이 은근히 쉽거든.”

“어, 어떻게 했는데..?”

“킥.. 당연히 공짜론 못 알려주지.”

“에이 그러지 말고. 끝나고 술 한잔 사줄 테니까.”

시우가 혀를 찼다. 눈앞에서 빤히 보고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봐.”

“뭐, 뭐야! 가면..?”

화들짝 놀라 검을 붙잡은 그들에게 말했다.

“근무 태도가 아주 엉망이구만.”

“누, 누구신지..?”

문지기가 주춤거렸다. 당당한 태도에 겁먹은 것 같았다.

“스읍..”

숨을 크게 들이켰다. 복근에 힘을 빵빵하게 주고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도둑이야!!!”

거대한 대문이 들썩거렸다. 내공을 담은 목소리가 천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사람 몸에서 나온 것이라곤 믿기지 않는 커다란 소리.

문지기들이 귀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도, 도둑..? 어디!?”

허둥지둥 주변을 둘러보는 놈들을 보다가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정권 한 방에 대문이 산산조각 났다.

문지기들이 입을 쩍 벌렸다. 멍청한 얼굴로 박살 난 대문을 보고 있었다.

“내가 도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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