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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46화 (146/241)

Chapter 146 - 146화 - 무협지구(7)

146화 - 무협지구(7)

심무길 장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제기랄.”

입가에 흐른 피를 닦은 심장로가 정신 차렸다.

가장 급한 건 두 가지였다. 이곳을 수습하는 것과 도둑놈을 쫓는 것.

고민은 짧았다. 부하에게 빠르게 말했다.

“일단 지하실부터 가려라. 그리고 여긴 어떻게든 수습해. 나는 저 도둑놈을 죽이고 돌아오마. 그때까지만 버텨.”

“···예!”

살기 어린 얼굴의 심장로가 땅을 박찼다.

마치 도발이라도 하듯 기운을 줄기줄기 흘리고 있는 도둑놈을 쫓았다.

*

*

*

조금 전.

신비문파 은림(隱林)의 제자 두 명이 낙양을 걸었다.

‘후..’

은자현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가 소향 사저를 훔쳐봤다.

어머니가 어릴 때 데려온 소녀. 어느새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랐다.

첫눈에 반했다. 덕분에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팔자에도 없던 무공을 익혔다.

덕분에 은림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지만. 그녀와 함께할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걷는 소향 사저를 보니 애가 탔다.

‘꿀꺽.’

천하제일미(天下第一美).

은림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문이 덜했지만 확신했다. 세상은 그녀를 천하제일미라 부르리라.

사저가 발걸음을 멈췄다. 어느새 목적지인 모용상단에 도착했다.

‘이크.’

표정을 관리하며 고개를 숙였다. 치미는 탐욕을 숨겼다.

은림에서 절벽 위 꽃 취급받던 그녀를 가지고 싶었다. 수많은 이들이 탐냈지만 감히 누구도 취하지 못했던 꽃.

하지만 자신에겐 방법이 있었다.

‘이번 임무만 끝나면···. 어머니한테 혼인시켜달라 해야겠다.’

어머니도 그녀를 딸처럼 아끼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소향 사저는 어머니 말이라면 다 들어 주니까.’

히죽 웃었다.

사저는 미간을 좁히며 모용상단을 관찰하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표정.

냉기어린 저 표정이 침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기대됐다.

‘후우..’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을 가렸다. 저도 모르게 올라간 입꼬리를 제어하기 힘들었다.

뛰는 가슴을 가라앉히기 위해 숨을 고르다 말했다.

“사저. 모용 세가가 진짜 혈교랑 연관돼 있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정파인데 믿기지 않습니다.”

그를 힐끗 본 사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무시당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성격이 원래 저렇다.

모용상단을 유심히 보던 소향 사저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확실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품에서 노란 구슬을 꺼내 내공을 집어넣었다.

‘어..?’

뭔가 이상했다.

“구슬에서 혈마령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

소향 사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설명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방금 전만 해도 모용 상단 안에서 느껴졌는데···.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잠입이라도 해볼까요?”

사제의 말에 소향이 고민했다.

모용상단에 혈마령이 있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아까부터 강력한 기파 둘이 격돌하고 있었다.

콰아앙!

차 한잔 마실 시간도 흐르지 않았는데 충돌음은 점차 거세졌다.

폭음이 계속된 가운데. 모용상단에서 누군가 빠져나왔다.

외팔이인 그는 은밀히 벽을 타넘더니 골목으로 사라졌다.

“설마 저놈이 혈마령을···? 쫓을까요?”

“잠깐만.”

아까부터 이어지던 충돌. 그것이 멈췄다.

습관처럼 검 손잡이를 쓰다듬던 소향이 멈칫했다.

어느새 담벼락에 서 있는 정체불명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철가면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술렁거렸다.

그가 담벼락을 박차더니 하늘로 뛰어올랐다. 한 손에 들고 있던 금덩이를 허공에 휘둘렀다.

그리고.

하늘에서 눈부신 무언가가 비처럼 쏟아졌다.

투두둑.

“금..?”

수백 개의 자잘한 금조각들이었다. 하늘을 날듯 달려간 남자가 낙양 전체에 금을 뿌리고 있었다.

-무영신투 다녀간다. 하하하하하!

어찌나 빠른지 그 말이 끝났을 땐 이미 시야 밖으로 사라진 뒤였다.

멍하니 하늘을 보던 사람들이 떨어지는 금을 미친 듯이 주워댔다.

뒤늦게 담벼락에 올라선 까만 수염의 노인이 얼굴을 구겼다.

그는 옆에 있던 무사에게 무어라 말한 뒤 빠르게 달렸다. 남자를 뒤쫓는 것 같았다.

옆에서 멍하니 서 있던 은자현이 말했다.

“바, 방금 모용 세가의 심무길 장로 맞죠? 초절정 고수를 도대체 누가 저꼴로···.”

***

나무가 끝없이 펼쳐진 산길을 달리던 시우가 공터에 멈춰 섰다.

깊은 산골이었다.

주변에 느껴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뒤돌아 입을 열었다.

“영감 안 힘들어? 허리는 좀 괜찮고?”

“크흐흐..! 정신 나간 놈.”

여기까지 뒤따라온 노인이 주변을 둘러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아무도 없구나.”

그야 그렇다. 그걸 위해서 여기까지 유인했으니까.

무어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노인의 기운이 급격하게 강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피 냄새가 자욱하게 풍겼다.

노인의 눈동자에 광기가 서렸다.

“크으···! 이 힘..! 짜릿하구나! 네놈! 잠혈대법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구구궁.

노인의 몸에서 강대한 기파가 쏟아졌다. 주변 나뭇가지들이 부러질듯 흔들리고 강렬한 바람이 몰아쳤다.

그것을 보다 달려들었다. 길게 끌어서 좋을 것 없었다.

‘파(派).’

스며들어 깨부수는데 특화된 기운. 잽을 치듯 견제용으로 권기를 날렸다.

흩뿌리듯 던졌지만 맞으면 머리가 터져 나갈 위력이 담겼다.

“어림없다!”

노인이 일갈하며 호신강기을 피워냈다. 그의 피부를 타고 유영화된 마력장막이 줄기줄기 피어났다.

유도했던 바였다. 장막에 가로막힌 권기를 보며 눈을 빛냈다.

내상입은 몸으로 호신강기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곧 드러날 빈틈을 노렸다.

‘음?’

호신강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급격히 늘어난 기운의 힘인지 호신강기는 점점 더 짙어졌다. 뿐만 아니었다.

“크하하! 버러지 놈!”

노인이 흩뿌리듯 양손을 휘갈겼다. 마치 산탄총이 발사되듯 수십 개의 권기가 동시에 날아왔다.

모두 눈속임이었다. 화려하게 피어난 검기 사이로 은밀히 숨겨진 권강이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강한 적을 발견하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기쁨이라니.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입가에 맺어진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권기가 전방위를 포위하듯 조여 왔다. 다양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권기다발을 보다가 땅을 박찼다.

월광형(月光形).

이형환위. 단거리 보법의 최상위 절기를 사용했다.

순식간에 등 뒤로 이동해 심장을 노렸다.

노인이 기다렸다는 듯 뒤돌며 주먹을 뻗어왔다.

하늘을 깨부술 기세로 순식간에 생성된 권강.

월광형은 집중이 필요했다. 연속으로 사용하긴 힘든 기술이다.

하지만 아티팩트인 실프의 반지가 남아 있었다.

‘점멸.’

단 한걸음. 그것으로 충분했다. 강렬한 권강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뭣?!”

경악이 담긴 눈동자를 보며 검을 잡았다.

복잡한 것을 모두 잊었다. 단 한 가지에 모든 정신을 쏟았다.

한없이 날카로운 것.

무엇이든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는 일검을.

무의식까지 하나 되어 강렬히 집중했다. 전신 세포 하나하나가 모조리 한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

단전 깊은 곳에서 올라온 기운이 사지말단까지 뿜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반쯤 뽑혀진 검을 느낄 수 있었다.

극섬(極剡).

그리고 사일(射日)까지.

폭발하듯 뽑힌 검이 마치 손처럼 느껴졌다.

발도와 동시에 제 몸처럼 느껴지는 그것을 허공에 휘둘렀다.

촤아악!

푸른빛의 거대한 참격이 노인을 가르고 끝도 없이 뻗어 나갔다.

하늘을 쪼갤 기세로 날아간 검기가 수십 그루의 나무를 잘라 내며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잠시나마 고요한 시간이 흘렀다.

양손을 교차하고 막아 내던 노인의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개 같은 일이 있나.”

유언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호신강기 채로 잘려 나간 상반신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어찌나 억울했는지 눈도 제대로 감지 못했다. 토막난 시체를 보다가 근처 공터로 향했다.

몸속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신의 힘이 쭉 빠지면서 피곤이 급격히 몰려왔다.

‘이건···.’

관자놀이를 툭툭 치며 고민했다.

언젠가 느꼈던 감각이었다.

아카데미 지구에서 사일을 사용했을 때도 급격히 졸음이 몰려왔다.

그리고 깨어나니 마치 경지가 오른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었다.

당장에라도 쓰러져 자고 싶었으나 참았다. 공터에 자리 잡고 가부좌를 틀었다.

몸속에 일어나는 변화에 집중했다.

‘으음···.’

명상하듯 머릿속에 떠오른 상념을 관찰했다. 모든 잡념을 흘려보내며 내뱉는 숨에 집중했다.

어느 순간 정체불명의 감각이 느껴졌다.

분명히 무언가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육체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그럼··· 정신? 아니.’

직감이 번뜩였다. 불현듯 한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혼.”

사일(射日)에 대해 더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참 동안 눈 감고 운기조식에 집중했다.

점차 졸음이 가셨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왠지 모르게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사일 때문인 것 같긴 한데.’

잠시 고민하다가 생각을 접었다.

무작정 길을 걸으며 혈마령을 꺼내 들었다.

자세히 살폈으나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방울이란 것밖에.

짤랑.

가볍게 흔들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뭔가 텅 빈 느낌만 들었다.

생각해 보니 예전 청봉산에서 혈교놈들이 사람을 고문하고 죽였던 것이 떠올랐다.

‘충전이라도 해야 되나.’

짤랑짤랑.

‘음?’

장난치듯 방울을 흔들고 있는데 기척이 느껴졌다. 곧 일남일녀가 수풀을 헤치고 다가왔다.

남자 쪽은 별로 관심 없었다.

여자에 집중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 오밀조밀 모여 있는 수려한 이목구비가 보기 좋았다.

모용 상단 앞에서 눈이 마주쳤던 그 여인이었다.

‘오..?’

미의 축복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특히 붉은빛이 맴도는 눈동자가 매혹적이었다. 루비를 닮은 보석 같은 눈동자였다.

“무영신투를 뵙습니다.”

남자가 말을 걸어왔으나 관심 없었다.

잡티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를 가진 미녀. 그녀에게 집중했다.

보면 볼수록 묘하게 익숙했다. 아니, 반가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아까 모용 상단 앞에서 잠깐 본 것만으론 이 반가움이 설명되지 않았다.

‘어···?’

그녀의 허리춤에 매어진 검을 보고 모든 생각이 멈췄다.

‘저게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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