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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47화 (147/241)

Chapter 147 - 147화 - 무협지구(8)

147화 - 무협지구(8)

어느 한 객잔.

남장을 한 서지유가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산길만 달렸더니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했다. 오늘은 여기서 푹 쉬다 갈 생각이었다.

점소이를 부르려는데 술 취한 취객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무영신투 맞다니까!”

“에헤이! 그게 무슨 무영신투야! 절대 아니지!”

‘응?’

자연스럽게 귀가 쫑긋했다. 무영신투라는 단어가 그녀의 신경을 잡아끌었다.

슬금슬금 다가가며 귀를 기울였다.

“자기 입으로 무영신투라고 했다며?”

“내가보기엔 이름값을 높이기 위한 수작같네. 실제로 그는 새로운 별호도 얻었잖은가.”

“그 뭐냐.. 유영신투말인가?”

서지유가 갸웃거렸다.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취객들에게 다가가 탁자를 두드렸다.

“이보게들. 방금 그 이야기 재밌어 보이는데. 제대로 들을 수 있겠나? 술은 내가 사지.”

서로를 바라보던 취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오..! 우리야 좋지!”

점소이를 불러 술과 음식을 주문한 그녀가 물었다.

“유영신투···? 그건 또 누군가?”

“저어기. 호남 낙양에 유영신투가 다녀갔다더군.”

“무영신투가 아니고?”

“그게 문제야. 그자는 자신을 무영신투랬지만 아무리 봐도 아니거든. 그자의 행보를 보고 말이 많네. 무영신투보단··· 유영신투가 어울리지 않냐는 거지.”

‘유영신투···. 그림자가 있는 도둑?’

서지유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천하제일 신투 자리를 노린 경쟁자가 나타난 것 같았다.

“어쨌길래?”

“험..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일단 낙양 모용 상단이 그자에게 털렸네.”

“모용상단? 제법인데..?”

고개를 주억이던 남자가 말을 이었다.

“그렇긴 한데···. 이거참.. 설명하려니 내가 다 황당하군. 차근차근 말해주겠네.”

잠시 머리를 굴리던 남자가 말을 이었다.

“일단 사건이 일어난 시각은 대낮 정오네. 그가 모용상단 대문을 주먹으로 깨부수면서···.”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자, 잠깐! 뭐, 뭐라고..? 뭘 깨부숴?”

“그러니까. 대낮에 유영신투가 주먹 한 방으로 정문을 깨부수고!”

입이 점점 벌어졌다. 따르던 술이 넘쳐흐르는 것도 몰랐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다음 막아서는 무사들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다음···.”

이어진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입이 쩍 벌어졌다. 자연스레 한 사람이 떠올랐다.

현기증이 나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미, 미친놈이..!”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았다. 턱을 타고 흐르는 침을 닦으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이 인간이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뒤늦게 후회했다. 제자를 잘못 받아도 한참 잘못 받은 것 같았다.

***

다시 어느 산골짜기.

시우가 일남일녀를 보며 경지부터 파악했다.

남자는 일류. 여성은 절정 끝자락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초절정 직전의 고수였다.

그녀는 많이 쳐줘도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대단한데?’

순수한 재능으로 이루어진 성취라면 하늘이 내린 천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경지보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녀가 들고 있는 검.

너무나 익숙한 검이지만 이질적이었다. 적어도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검이니까.

‘저게 왜 여깄어?’

SH스미스에서 국밥검이라 불리는 스테디 셀러가 그녀의 허리에 매달려 있었다.

힘들게 짐꾼생활하며 모았던 이천만원.

막 각성했을 당시 거의 전 재산을 들여 샀던 소중한 검이 저기 있었다.

혹시 몰라서 자세히 관찰했다.

‘맞잖아!’

첫 번째 전생체가 죽으며 잃어버렸던 검이 확실했다.

“그 검은···.”

무표정하던 여인이 눈썹을 움찔거렸다.

마치 괴한에게 소중한 아이라도 숨기듯 허리를 틀어 검을 감췄다.

‘설마..?’

여인을 자세히 관찰했다.

허리까지 길게 내려온 흑발은 부드러워 보였고 새하얀 피부가 대조를 이뤄 완벽한 미모를 과시했다.

그녀를 보니 머릿속에서 한 꼬맹이가 떠올랐다.

최초로 무협지구에 입장했을 때. 어린아이의 몸에 빙의했다. 그리고 인신매매범에게서 친구를 지키다 죽었다.

그때 지킨 친구가 바로 소향.

‘소향이는 은발이었는데···?’

하지만 얼굴이 닮았다. 보면 볼수록 익숙했다. 어릴 때 소향이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특히 루비색 눈동자와 오밀조밀 하면서 뚜렷한 이목구비. 마지막으로 언뜻 보면 차가워 보이는 눈매가 어릴 때와 판박이였다.

이제 보니 그녀의 재능도 이해가 갔다.

‘분명 장차 검봉이 될 아이라 했었지.’

뭐라고 말할까 고민하는데. 남자가 포권하며 말했다.

“무영신투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은림의 은자현이라 합니다.”

“그래서?”

그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 방울. 모용상단에서 가져온 게 맞지요? 저희에게 파시지 않겠습니까? 값은 충분히 치르겠습니다.”

“이걸..?”

방울을 만지작거렸다. 딱히 쓸모는 없었지만 팔 이유도 없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울을 팔지 말지는 저 여인과 단둘이 말해 보고 결정하겠소.”

움찔한 은자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죄송하지만 그녀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제가···.”

소향이로 추청되는 여인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됐어. 내가 할 테니 자리 좀 비켜줘.”

“예..?”

남자가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망설이던 그는 결국 자리를 비켰다.

단둘이 남게 되자 일단 기막부터 쳤다.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사무적인 얼굴의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소향이?”

순간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한걸음 물러나며 이쪽을 노려봤다.

“···제 이름을 어떻게?”

“진짜로 소향이 맞아? 그 울보 꼬맹이?”

“무슨..!”

정말로 그녀가 맞았다.

반가움에 얼굴이 절로 밝아졌다. 정신 보호를 얻기 전에 빙의해서 그런지 아직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소향이의 눈빛엔 경계심이 가득했다. 마치 털이 바짝 솟은 고양이 같았다.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지기 전에 머리를 굴렸다.

‘뭐라고 해야 하려나.’

전생체의 기억을 뒤졌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안 났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그의 이름.

일단 철가면부터 벗었다. 신분이 밝혀져도 상관없었다. 정말 정체를 숨겨야 했다면 대낮에 정문을 깨부수진 않았을 것이다.

“나 덕구인데. 기억나?”

소향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예 적이라도 대하듯 검까지 붙잡았다.

당장 검이라도 뽑아 들 것처럼 그녀의 분위기가 사나워졌다.

“그 이름··· 어디서 들었지?”

“내가 덕구라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는···”

“죽었지.”

그 순간 소향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직도 덕구를 기억하는 것 같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눈동자가 거칠게 떨리는 그녀에게 말했다.

“쉽게 말하면 내 전생이 덕구야.”

“뭐라구요..?”

“어느 날 전생 기억이 떠올랐다 해야 되나? 아니다. 덕구 기억을 가진 내가 이 몸에서 눈을 떴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하.”

그녀의 반듯한 미간이 한껏 모아졌다.

전혀 믿는 태도가 아니었다. 자신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거 보면 좀 믿으려나?”

인벤토리에서 노란 꽃송이가 달린 머리끈을 꺼내 들었다. 허공에서 튀어나온 물건을 본 그녀가 흠칫했다.

“무영신투답게 손재주가 대단··· 어..?”

“자. 가지고 싶던 거 맞지?”

머리끈을 건네줬다. 다행히 기억에 있는지 그녀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먼 옛날 그녀와 덕구만이 알고 있을 일.

소향이가 어릴 적 가지고 싶어 했던. 동경의 눈으로 바라봤던 머리끈. 덕구란 아이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이래도 안 믿어..?’

흔들리던 그녀의 눈빛이 단호하게 변했다. 혼란스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옛날일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장난 그만하시지요. 그 방울은 가지고 있어 봐야 좋을 것 없습니다. 저희에게 파시지요."

단호한 표정의 그녀는 얼음장처럼 차가워 보였다. 그 옛날 순수하고 착하던 아이가 이렇게 변하다니.

‘하긴. 쉽게 믿긴 힘들겠지.’

경계심부터 낮출 필요가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방울 이야기부터 하기로 했다.

“음··· 이 방울은 왜? 어디다 쓰려고?”

입술을 오물거리며 대답하지 않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 정돈 말해줘야 내가 팔지말지 고민이라도 해보지 않겠어?”

“···모용 세가를 무림 공적으로 지정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 지하실을 보셨으니 아실 테지만. 그들은 인간 말종입니다.”

“걔네는 이미 무림 공적으로 지정되지 않았을까? 내가 난장판을 쳐놨는데.”

“···그건 제가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지시받는 입장인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주지 뭐. 자.”

그녀에게 방울을 건넸다.

“네..?”

조심스레 다가온 소향이 바짝 긴장한 채로 방울을 가져갔다. 경계심 많은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기분이었다.

“어..”

그녀는 제손에 들린 방울을 보며 당황하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소향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대가는요..?"

"됐어. 대가는 무슨."

딱히 필요도 없는 거. 반가운 친구에게 선물 하나 못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상이 팍 찡그려진 것을 보고 쓴웃음이 지어졌다.

눈동자에 의심이 가득했다. 착하고 순진하던 소녀가 이리 변하다니.

"왜? 공짜는 싫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대가를 말하시지요."

"그럼··· 이거면 돼."

작달막한 머리에 손을 뻗었다.

부드러운 머릿결을 연신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소향이 잘 컸네.”

“아..?”

한 3초가량. 고장 난 것처럼 멈춰버린 그녀를 계속 쓰다듬었다.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은 만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뻣뻣하게 굳은 소향이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채앵!

어느새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물든 그녀가 검을 뽑아 들었다.

*

은자현이 기막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황급히 달려갔다.

“괜찮으십니까!!”

기막 안에 들어온 그가 멈칫했다.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가장 먼저 새빨갛게 달아오른 소향 사저가 보였다. 한 남자를 노려보며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가 항복하듯 양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소향아 진정해! 오라버니한테 칼을 들이대면 어떡해!”

“누가 오라버니얏!!”

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처음이었다. 붉어진 얼굴로 격렬한 감정을 토해내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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