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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55화 (155/241)

Chapter 155 - 155화 - 무협지구(16)

155화 - 무협지구(16)

며칠 전 어딘가 야산.

염주를 굴리며 산길을 걷던 승려가 코를 씰룩였다. 비릿한 피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음..?”

서둘러 혈향을 쫓아 땅을 박찼다.

한달음에 달려간 그곳에서 발견한 건 시체무더기였다.

목잘린 시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부서진 마차와 흩뿌려져 있는 물건들로 보아 산적에게 습격당한 상단으로 보였다.

“으음.. 아미타불···.”

막 마지막 사람의 목을 치려던 복면인이 멈칫했다. 생존자를 붙잡아 끌어당기며 말했다.

“늦었군. 소림사 땡중 현종맞나?”

“아미타불. 소승이 현종 맞소만··· 그대는 누구신지?”

마치 인질이라도 잡듯 생존자의 목에 박도를 들이댔다.

“흐.. 그건 알 거 없고. 땡중 손바닥이 조금 맵다던데. 그거 구경 좀 하고 싶은데?”

“그걸 어찌..?”

날카로운 박도에서 빛이 번뜩였다. 인질로 잡힌 남자의 목에서 핏방울이 새어 나왔다.

그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승려에게 말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음..”

승려가 인질로 잡힌 남자를 살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양민으로 보였다.

손에 쥐고 굴리던 염주를 엄지손가락으로 튕겼다.

핏!

섬전처럼 쏘아진 염주알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산적의 대응은 간단했다.

인질을 방패 삼아 들이댔다. 염주는 인질의 어깨에 박혀 들었다.

“끄아악!”

“이런.”

미안한 얼굴로 그것을 보던 승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연스럽게 합장하더니 오른쪽 손바닥을 땅바닥으로 향했다.

그 순간 허공에 황금빛 손바닥이 나타나 떨어져 내렸다.

꽈앙!

협박하던 산적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커억..!”

단단한 흙길에 커다란 손바닥 자국이 파였다.

뒤늦게 풀려난 것을 깨달은 인질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허억..! 가, 감사합니다!”

땅바닥에서 피를 토하던 산적이 소리쳤다.

“···여래신장 확인했다. 쳐라!”

“아미타불. 아무래도 소승을 기다렸나 보오.”

쉬시식!

화살을 비롯한 암기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승려의 대응은 간결했다. 그저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티티팅!

사방에서 날아들던 암기들이 모조리 튕겨 나갔다. 그와 동시에 수십 명의 습격자들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끄으..!”

그들 주변엔 하나같이 거대한 손바닥에 짓눌린 자국이 생겨 있었다.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꿈틀대는 산적 두목에게 다가간 승려가 인상을 썼다.

“소승에게 볼일 있으면 찾아올 것이지 어찌 죄 없는.. 커억?!”

고개를 내렸다. 어느새 심장 부근에 날카로운 검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고개를 돌렸다.

아까 전 인질로 잡혔던 남자가 무표정하게 검을 뽑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의 의식은 끊겼다.

산적 두목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일어났다. 인질로 붙잡혔던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인사 받듯 고개를 까딱인 남자가 말했다.

“처리해라.”

산적 두목 행세 하던 자가 승려에게 어떤 액체를 뿌렸다. 악취와 함께 시체가 녹아내렸다.

승려복까지 태워 없앤 그가 인질로 잡혀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정말 이렇게 대충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사고사로 위장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제 상관없다. 어차피 머지 않았다.”

그가 품안에 있는 쪽지를 꺼내 살폈다.

점창이라고 적힌 종이를 서늘한 눈으로 노려봤다.

***

점창파.

시우 일행은 오장로를 따라 접객당이라 적힌 건물에 들어섰다.

“하하. 몸에 좋은 차니. 편히들 드시게.”

차를 대접받았다. 향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모금 마셔보니 혀가 아릿했다.

‘웩··· 너무 쓴데..?’

사람이 먹는 게 맞나 싶은 쓴맛. 혹시 엿 먹이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 맛없는 차를 음미하는 점창파 장로가 보였다. 차향을 즐기던 그가 시우에게 말했다.

“역시 끝내주는군. 입에는 좀 맞나?”

“아.. 예.”

예의상 대답해준 뒤 차를 내려놨다.

“다행이군. 그나저나 대단하던데. 일영이를 그렇게 일방적으로 이기다니.”

“음.. 사과드려야 됩니까?”

장로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 오히려 고맙네. 일영이가 너무 오만해서 걱정이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망신 당했으니 정신 좀 차렸겠지. 그런데··· 자네 정말 사문이 없나? 일영이가 또래 중에선 제법 강한 편인데 말이야.”

“딱히 사문이랄 곳은 없습니다.”

“허..! 그렇다면 더 대단하군. 혹시 점창파의 속가 제자라도 되는 건 어떤가? 부담스럽다면 객원으로 있어도 되네.”

“사양하겠습니다.”

즉답했다. 억만금을 줘도 이런 남탕에 있고 싶진 않았다.

점창파 장로가 입맛을 다셨다.

“험.. 아쉽구만. 아! 대화가 즐겁다 보니 이야기가 샜군. 그래. 은림에서 어떤 일로 오신 건가?”

소향이가 품에서 낡은 목패를 꺼내 내밀었다. 목패에는 점창이라는 글자가 날카로운 필체로 새겨져 있었다.

마치 검으로 새긴듯 서늘한 기운이 풍겼다. 오장로가 신중한 눈으로 목패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확실히 받았네.”

먼 옛날 점창파가 은림에 은혜를 입고 넘겨줬던 목패. 이걸 받은 이상 어지간한 부탁은 들어 줘야 했다.

“이 패를 대가로 사일 검법에 대해 배우고 싶습니다.”

사람 좋게 웃던 오장로가 멈칫했다.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일 검법..? 그 옛날 무공을 말인가?”

“예.”

잠시 고민하던 오장로가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옛 무공이라고 다 뛰어난 게 아니네. 오히려 불친절하고 뜬구름 잡는 구결이 많아 익히기 까다롭지. 그렇다고 위력이 강한 것도 아니고···.”

“괜찮습니다. 익혀보고 판단하겠습니다.”

손에 들린 목패를 만지작거리던 오장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하아. 말하기 창피한 말이오만.. 점창파에서도 사일 검법은 실전 된 지 오래네. 그나마 내 사제가 검법을 복원하려 한평생을 바쳤으나···. 아까운 재능과 시간만 허비했지. 자네도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길 바라네.”

***

일행은 점창파의 명진옥 장로에게 안내받았다.

현 점창파에서 사일 검법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

명장로는 젊은 시절부터 특출난 재능을 자랑했다. 약관, 스무 살의 나이에 절정지경 끝자락에 올랐으니 그 재능은 알만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목표를 세웠다. 초대 장문인의 사일 검법을 재현하겠다. 모두가 말렸으나 소용없었다.

남겨진 기록을 쫓아 실전된 무공을 되살리는데 평생을 바쳤다.

벌써 40년이나 지난 과거였다.

*

명진옥 장로의 거처는 외진곳이었다.

거의 산봉우리 하나를 넘고서야 도착했다.

길 안내하던 곽해산이 외쳤다.

“명장로님! 손님 오셨습니다.”

잠시 후 거처에서 노인이 나왔다.

시우가 명장로를 본 첫 감상은 말랐다는 것이다.

‘해골이네.’

뼈밖에 없었다. 60세라고 들었는데 겉보기엔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노인이었다.

무림인이라면 한창때 나이인데도 그랬다.

느껴지는 내공이 많지 않았다. 마치 어느 순간부터 내공 수련을 그만둔 사람 같았다.

점창파 장로라기엔 무공 수위도 낮았다. 겨우 절정.

오장로에게 듣기로 스무 살에 절정지경에 올랐다고 들었는데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의 꾹 다물린 입매에서 고집이 느껴졌다.

“본인이 명진옥이오만.”

간단한 통성명과 함께 용건을 말했다.

사일 검법을 배우러 왔다는 말에 명장로가 소향이에게 물었다.

“소저. 사일 검법이 신살무공인 건 알고 배우려는 건가?”

“예. 그래서 배우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살무공의 저주도 알고 있나?”

“저주요?”

“역시 자세히는 모르나 보군. 신살무공이란 고금제일인이라 불렸던 초대 혈마. 그를 죽인 이들의 무공을 존경의 의미로 부른 것일세.”

은자현이 인상을 찡그리다 말했다.

“신선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무공이라 들었는데요.”

“그건 와전된 말일세. 먼 옛날 무공이 하늘에 닿은 혈마가 온갖 패악질을 부렸고. 보다 못한 하늘에서 그를 벌하러 신선이 강림했다 하네.”

“음..”

“허나 혈마의 무공이 파천의 경지에 닿아 신선도 쉽게 결판 내지 못했다더군. 그때 신선을 도와 혈마에게 대항한 이들이 바로 신살무공의 주인들일세.”

그런 무공을 익히는 게 무슨 문제인가 싶었는데. 명장로가 안색을 굳히더니 말했다.

“문제는.. 신살무공 전승자 대부분이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는 것이네. 오늘날까지 온전히 전해진 것은 몇 없네. 소림의 여래신장이나 마교의 천마신공 정도나 될까···.”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소향이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랬지만 호기심에 말을 꺼냈다.

“젊은 나이에 요절. 그게 신살무공의 저주 입니까?”

“글쎄.. 초대 혈마의 저주 때문이란 말도 있네만···. 그것 보단 합리적인 이유가 있네.”

노인이 한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체계가 잡히지 않은 옛 무공 특성상 비급만으로 익히긴 힘들지. 결국 입으로 전달해야 하는데. 그런 무공이 얼마나 오래가겠는가. 결국 조금씩 유실됐고 불완전한 무공을 익혔으니 주화입마를 달고 살 수밖에.”

한동안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소향이 말했다.

“그럼.. 장로님도 사일 검법을 익혀내지 못하신 겁니까?”

“그러네. 40년을 바쳤으나 실패했지. 그래도 원한다면 초대 장문께서 남긴 기록을 알려주겠네.”

“..말씀해주십시오.”

기억을 떠올리듯 허공을 보던 명장로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나는 내공 한 줌 없는 노인의 검에서 태양을 보았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말을 이었다.

“이것이 초대 장문께서 남긴 첫 번째 기록일세.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더군. 내공 한 줌 없는 노인이라··· 단전이라도 깨뜨려야 한단 말인가.”

미간을 한껏 오므린 은자현이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그럼 사일검수는요? 점창파 사람이 아닌겁니까?”

“사일검수..? 나만큼 그를 만나고 싶은 사람이 또 있을까. 혹시나 하고 밖으로 나간 제자들을 일일이 확인했으나. 아니란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네.”

약간 침울해진 분위기에서 시우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사일검수? 그거 난데?”

“네..?”

“내가 사일검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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