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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67화 (167/241)

Chapter 167 - 167화 - 아카데미(6)

167화 - 아카데미(6)

교류회 당일.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아멜리아가 눈물을 글썽였다.

“히잉..”

“금방 올게. 일주일만 참아. 응?”

“으으.. 시러어..”

손목을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곤란했다.

엘프의 도시인 엘븐하임. 그곳에 모든 생도가 갈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전대련 랭킹을 기준으로 상위 30명만 갈 수 있었다.

아멜리아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자느라 대련을 안 가다니.’

그녀를 깊게 잠재운 게 그이긴 하지만 울상으로 변한 아멜리아를 보니 왠지 웃음이 났다.

“끝나면 바로올게. 이번만 참아. 응?”

“으.. 가서 다치면 절대 안 돼..! 시우는 내 거니까. 알았지?”

“응. 걱정하지마.”

못내 아쉬워하는 그녀와 키스했다. 끈적하게 혀를 섞어 준 다음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푸딩을 인형처럼 꼭 껴안고 훌쩍이는 그녀를 뒤로하고.

엘븐하임을 향해 출발했다.

*

서른명의 아카데미 생도들이 캐리어를 들고 삼삼오오 모였다.

시우가 회귀자인 헬레나 옆에 서서 그들을 관찰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강수호였다.

한 여자 생도를 몰래 힐끔거리는 녀석이 보였다.

‘설마.. 저 여자도 훔쳐봤나?’

강수호가 가진 특성이나 가호로 짐작되는 정체 모를 힘. 시선이 느껴지는 것을 보아 정찰계 특성으로 추정됐다.

‘변태 같은 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시선을 돌렸다.

또각. 또각.

허리를 꼿꼿이 편 릴리네 교수가 다가왔다. 흐트러짐 없는 정장이 그녀의 성격을 말해줬다.

주름하나 없는 하얀 셔츠에 감싸인 아랫배가 보였다. 지금 그녀의 자궁엔 그의 정액이 가득했다.

‘음.. 또 꼴리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의 눈동자가 흠칫 떨렸다.

귓불이 아주 살짝 붉어진 릴리네 교수가 시선을 피했다.

“···30명 다 왔군. 다들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따라와라.”

“네에!”

생도들의 들뜬 목소리와 함께 그녀를 따라갔다.

출국장.

공항처럼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이곳은 외국과 연결된 텔레포트 지점이었다.

국내 텔레포트 거점과 다르게 보안절차가 몇 개 있었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여성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구슬에 손바닥을 올려주시겠습니까?”

머리통만한 구슬에 손을 올렸다. 미세한 마력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띡.

“최시우 생도님. 마력패턴 확인됐습니다. 엘븐하임으로 이동하기 앞서. 마력 제한 팔찌를 착용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네.”

“엘븐하임 입국 심사대에 도착한 후. 본인확인이 완료되면 팔찌를 풀어 줄 겁니다.”

별 장식 없는 노란색 팔찌를 찼다. 마력 흐름이 점점 느려졌다. 혹시 모르니 마력코어 연결부터 끊었다.

3분 정도가 흘렀다. 몸 안에 있는 모든 마력이 딱딱하게 굳었다.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살짝 당기면서 강도를 확인했다. 상급 육체 강화로 강해진 육체 덕에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생각은 없지만.’

*

보안 절차가 끝났다. 주로 신분 확인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생도들과 릴리네 교수가 텔레포트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직원의 말과 함께 텔레포트 마법진이 발동됐다. 바닥에서부터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번쩍.

약간의 어지러움과 함께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가장 먼저. 주변을 둘러싼 엘프들이 보였다. 활이나 검따위를 찬 채 그들을 경계했다.

하나같이 미남미녀였다. 군살 없는 몸매에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경비원 복장을 한 배우들로 보였다. 미의 종족이라 불리는 엘프다웠다.

“한분씩 이쪽으로 오십시오. 본인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

생도라 그런지 입국심사가 비교적 간단히 끝났다.

한 엘프가 친절한 미소와 함께 다가왔다.

“확인됐습니다. 최시우 생도님.”

마력제한 팔찌를 풀어준 엘프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복도를 따라가시면 다른 생도분들이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럼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복도를 걸으며 헬레나에게 물었다.

“엘프들은 오만하다 들었는데. 꽤 친절하네?”

“인간처럼 엘프들도 각자 성격이 달라요. 모두가 오만한 건 아니에요. 특히 여기는 타종족들이 자주 올 텐데. 그런 엘프가 여기 있으면 안 되죠.”

엘프도 서비스직은 친절한 것인가.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를 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오..”

확실히 외국 냄새가 물씬 풍겼다.

처음 보는 글자가 사방에 가득했다. 동그란 원을 여러 개 겹친 것처럼 보이는 특이한 문자.

‘엘븐하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생소한 글자였지만 읽어졌다. 심지어 뜻까지 알 수 있었다.

바벨탑이 세워지며 아인종들에게 내려진 축복. 상태창 덕분이었다.

‘신기하네.’

초고성능 번역기가 머릿속에 박혀든 느낌이었다.

신기한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 포스터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귀가 긴 미남자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모습.

마치 아이돌 브로마이드 같았다.

고개를 치켜들고 눈을 내리깐 모습이 영 꼴불견이었다.

‘더럽게 잘 생겼네.’

억지로 흠을 찾으려 해도 불가능했다. 외모만 보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미남이었다.

마치 강수호 업그레이드 버전 같았다.

포스터에 적힌 문구를 읽었다.

‘작은 나무라도 함부로 베지 마십시오?’

문구는 여러 개였다. 대부분 엘븐하임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었다.

옆에서 걷던 헬레나가 그 포스터를 보더니 말했다.

“저자는.. 시우님 상대네요.”

“내 상대? 아, 쟤가 엘프 왕자야?”

포스터를 자세히 살폈다. 친선 대련 상대였다. 왕자라고 불리는 하이 엘프가 바로 저놈이었다.

“네. 7성급 강자니까 조심하세요. 네 가지 속성을 주로 다루는 마도사예요. 바람과 대지. 그리고 물과 번개 속성에 능해요.”

주변을 힐끗 살피던 헬레나가 입술을 달싹였다.

전음이 들렸다.

-혹시 가능하다면··· 대련에서 피 한 방울만 얻어 주실수 있을까요. 이유는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고개를 끄덕였다.

헬레나가 그에게 해가 될 일을 하진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

포스터로 가득 찬 기나긴 복도가 끝났다.

드디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바다만 가득했다.

“와···!”

한 생도가 감탄을 토해내다 두 눈을 끔벅거렸다.

“바다..? 교수님. 여기 엘븐하임 아니었어요? 바다밖에 없는데요.”

“여긴 임시 거점이다. 엘븐하임은 배타고 더 가야 한다. 그럼 출발하지.”

릴리네 교수의 인도를 따라 보트에 탑승했다. 꽤 컸다. 30명이 탔는데도 절반 이상 자리가 남았다.

부우웅.

보트가 바다를 달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여니 볼을 스쳐 지나가는 바닷바람이 느껴졌다.

“오..”

시원한 바닷바람도 잠깐이었다.

20분이 넘도록 바다를 달리고 있으니 점점 지루해졌다.

헬레나의 손이나 만지작거릴까 하던 그때.

“오..?”

보트 전방. 수평선 너머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끝없는 바다 한가운데.

구름보다 높게 솟아오른 나무가 보였다. 희미하게 보이던 나무는 가까이 갈수록 급격하게 커졌다.

‘오.. 저게 세계수인가.’

감탄이 절로 흘렀다.

중간 윗부분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다웠다.

수평선 너머 뒤늦게 육지도 보이기 시작했다.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인공섬.

엘븐하임이었다.

*

엘븐하임에 도착하기 직전.

해양 몬스터가 보트 앞을 가로막았다.

얇고 긴 몸을 가진 등푸른 생선이었다. 생긴 것이 마치···.

‘꽁치?’

차이점이라면 크기였다. 눈알이 사람 상체 보다 컸다. 길이만 20미터가 넘는 초대형 꽁치였다.

‘꽁치 주제에 뿔도 있네.’

몬스터가 이쪽을 노려봤다. 회색이던 뿔이 파랗게 빛났다.

우웅!

잔잔하던 바다에 파도가 높아졌다. 사방에서 날카로운 칼바람이 몰아쳤다.

티티팅!

보트에 걸려 있는 마력장막이 거칠게 흔들렸다. 조종석에 앉아 있던 엘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객분들은 가만히 계셔도 됩니다. 제가 처리···.”

엘프가 활을 집어 들던 찰나.

하늘에서 황금빛 망치가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번개처럼 내리꽂힌 망치에 파도가 높게 솟아올랐다. 일격. 거대한 꽁치 머리가 단번에 뭉개졌다.

자연히 시선이 쏠렸다.

새하얀 드레스를 걸친 여인이 보였다. 가느다란 팔로 제 키보다 큰 망치를 든 엘프.

그녀가 들고 있던 황금색 망치가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물에 둥둥 뜬 몬스터 시체를 밟고 올라선 엘프가 보트를 향해 돌아섰다.

역광도 아닌데 후광이 비쳤다.

‘오..?’

피부가 실제로 은은하게 빛났다. 뽀얀 피부에 황금빛 광채가 맴돌았다.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왠지 따뜻하고 포근했다.

“저건···.”

“신성력이네요.”

새하얀 드레스와 면사가 바닷바람에 흩날렸다. 불투명한 천 사이로 턱선이 보였다.

얼핏 보이는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들어 올린 엘프가 느릿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생도 여러분.”

면사포 속 여인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엘븐하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프레이야 여신님의 신실한 종. 리디아 루 에르셀라입니다.”

태양처럼 빛나는 힘. 신성력이라 불리는 그것이 넘실거렸다.

리디아 루 에르셀라.

그녀는 성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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