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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68화 (168/241)

Chapter 168 - 168화 - 아카데미(7)

168화 - 아카데미(7)

성녀가 올라탄 보트가 엘븐하임을 향해 출발했다.

릴리네 교수가 말했다.

“리디아 성녀님? 에반이란 자가 나올 것이라 들었는데 아닙니까?”

“아, 죄송합니다. 에반님은 일이 생겨서 늦을 거라더군요. 제가 대신 숙소까지 안내 드리겠습니다.”

시우가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하는 성녀를 살폈다.

‘프레이야교?’

전생체 기억을 뒤졌다. 다행히 머릿속에 있었다.

사랑과 풍요의 여신 프레이야. 그녀를 믿는 종교였다. 실제 치유력을 발휘하는 신성력은 물론이고 성녀마저 있는 종교.

성녀라면 심장이 으깨져도 살릴 수 있다는 존재였다.

‘과연.’

출렁출렁. 압도적인 신성력 주머니를 보니 납득갔다. 산봉우리처럼 도드라진 두 개의 살덩이.

얇은 허리에서 이어지는 육덕진 굴곡이 보기 좋았다.

‘가슴도 크고··· 마음에 드네.’

텔레포트 시설에서 본 엘프 경비들도 미녀들이었지만···. 이 성녀는 한차원 높은 미모를 과시했다.

보트의 진동에 머리보다 커다란 가슴이 출렁였다. 그 기분 좋은 흔들림을 구경하다 보니 엘븐하임에 도착했다.

이색적인 풍경이 보였다. 가장 먼저 건물부터 달랐다.

‘나무로 된 건물이라···.’

창문 달린 거대한 나무들이 보였다. 문도 있는 게 건물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모든 건물이 나무인 건 아니었다. 절반은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마치 숲속에 박혀 있는 현대 도시를 보는 기분이었다.

‘신기하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엘프들 대부분 미남 미녀였다. 미의 종족이라 불리는 엘프다운 미모들.

영화배우처럼 생긴 여인이 그물을 짜는 모습도 보였다.

엘븐하임을 구경하다 보니 곧 숙소에 도착했다. 인간임을 배려한 것인지 현대식 방을 배정받았다.

리디아가 드레스자락을 올리며 고개 숙였다.

“친선 대련은 내일이니 오늘은 푹 쉬시지요.”

성녀가 자리를 뜨려던 순간.

뒤늦게 엘프 왕자라 불리는 에반이 나타났다.

“오.. 리디아. 미안합니다. 내가 늦었습니다.”

그를 발견한 리디아가 멈칫했다. 입꼬리가 살짝 내려갔다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자연스레 다가온 에반이 리디아에게 팔을 벌리며 다가갔다. 마치 포옹이라도 할 기세였다.

미간을 찡그린 리디아가 몇 발자국이나 물러났다.

“무례하시군요. 뭐 하시는 겁니까.”

졸지에 손이 민망해진 에반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리디아. 어차피 결혼할 사인데 겨우 포옹도 안 된단말입니까?”

“···네. 아무리 약혼자여도 안 됩니다. 게다가 저는 성녀로서 평생 살 것이니 결혼은···.”

무언가 말하려던 성녀가 입을 닫았다. 확실히 이곳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에반이 작게 혀를 차며 말했다.

“또 그 소립니까. 성녀라고 결혼하지 말란 법은 없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적어도 식을 올리기 전까진 순결한 몸을 유지할 것입니다.”

입가를 씰룩인 에반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뭐 그러지요. 결국 결혼하게 될 테니 기다리겠습니다.”

에반의 시선이 서울 지부 생도들을 향했다.

순간 그의 눈동자에 경멸이 서렸다. 마치 벌레 보듯 하던 눈빛은 찰나만에 사라졌다.

빙그레 웃은 그가 말했다.

“하하. 인간족 여러분. 엘븐하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엘프들에겐 좋은 문화가 많으니 잘 배워가시길 바랍니다.”

***

시우가 배정받은 숙소에서 성녀를 떠올렸다.

‘약혼자라..’

에반의 재수 없는 얼굴과 성녀의 신성력 주머니를 떠올렸다. 왠지 모르게 입맛이 돌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다.

‘태중 혼약?’

리디아와 엘프 왕자 에반. 태어나면서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그러나 그녀가 성녀로 선택받으면서 관계가 달라졌다. 결혼을 무기한 미루고 파혼에 대한 이야기마저 나왔다.

방금 전에 봤던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성녀는 파혼하고 싶어 하던 거 같은데.. 독신 주의자인가?’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성녀를 떠올렸다.

어떻게든 꼬셔보고 싶지만 쉽지 않았다. 섣불리 접근해 봐야 경계만 살게 뻔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엘븐하임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겨우 일주일.’

머리를 열심히 굴리다가 생각을 접었다.

숙소를 나왔다. 헬레나와 만나기로 약속한 카페로 향했다.

‘여긴가?’

20미터 높이를 가진 나무에 다가갔다. 거대한 나무 기둥에 유리창과 문따위가 박혀 있었다.

엘븐하임 방식으로 지어진 카페였다.

“오..?”

가까이서 보니 살아 있는 나무였다. 문도 따로 단 것이 아니었다. 문 형태로 변형된 나무 껍질이 보였다.

카페 내부로 들어갔다.

나무 속인데 꽤 밝았다. 벽에 달린 꽃송이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마치 전등처럼.

‘신기하네.’

주변을 둘러봤다. 창밖을 보고 있는 헬레나에게 다가갔다.

“아..! 시우님 오셨어요? 주문은 제가 했으니 그냥 앉으셔도 돼요.”

“그래?”

그녀 옆자리에 앉았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인공섬이라는 게 다시 한번 체감됐다.

“신기하네. 여기가 원래 섬은 아니지?”

“네. 있었어도 조그마한 무인도였을 거예요.”

엘븐하임은 제주도보다 세 배 이상 넓다고 들었다.

“이 많은 흙들이 어디서 난 거래? 엘프들은 바다 한가운데 도시도 세울 수 있는 거야?”

“바다 밑바닥에 있는 흙을 끌어 올린 거예요.”

“바다 밑?”

“네. 정령의 힘으로 끌어올려서 정화하고··· 세계수 힘으로 했다는데. 대단하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그녀가 주문한 생과일 주스가 나왔다.

노란색 주스를 빨대로 휘적이다가 한 모금 마셨다.

“어?”

눈이 번쩍 뜨였다. 별생각 없이 마셨다가 놀랐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주스가 마치 생명수같았다.

“어떠세요? 입에 맞으신가요?”

“당연히.. 맞지. 이건 사람이면 안 맞을 수가 없겠는데?”

머리가 상쾌했다. 주변 공기마저 맑아진 기분이었다. 은은한 단맛과 상큼한 과육향이 입안을 멤돌았다.

‘기분이 아닌가..?’

눈을 감고 감각을 집중했다. 미세하게 내공이 늘었다. 생과일 주스 한 모금 마셨다고.

‘허..’

몸에 활력이 돋았다. 피로마저 사라진 느낌.

빨대로 주스를 휘저으며 물었다.

“이건 무슨 주스야?”

헬레나가 웃으며 대답했다.

“과일도 엘프가 키운 거라 맛있겠지만. 더 특별한 게 들어갔어요. 세계수 수액이요.”

“세계수 수액?”

“네. 나쁘지 않죠?”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쌓아 놓고 먹고 싶은데?”

그녀가 설명을 이었다.

“이 주스에 들어간 세계수 수액이라고 해 봐야 한 방울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런데 이런 효과예요. 대단하죠?”

“겨우 한 방울?”

한 방울에 이런 효과라니. 세계수 수액을 마음껏 마시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헬레나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시우님. 저희 같이 세계수 수액이나 털어보실래요?”

장난치듯 눈을 반짝이는 그녀에게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무영신투가 출동할 시간인 것 같았다.

“좋지. 어딜 털면 되는데?”

“아하하..? 반쯤 장난이었는데요.”

약간 당황하던 헬레나가 설명을 이었다.

“먼저 하이 엘프의 피가 필요해요. 그래서 저번에 에반의 피를 얻어달라 했던 거예요.”

“아, 에반..?”

첫계획부터 아주 마음에 들었다. 녀석의 피가 필요하다니.

“네. 인간 혐오자 에반.”

“인간 혐오자?”

헬레나가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아직 그 성격이 드러나진 않았겠네요. 회귀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이어진 설명을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막을 펼쳤다지만 이런 이야기를 카페에서 하긴 좀 그랬다.

“잠깐만. 더 자세한 건 호텔가서 말하자.”

“느..엣?”

그녀의 팔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엘프의 호텔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호델에 도착하자마자 헬레나의 입을 덮쳤다.

질척하게 혀를 섞었다.

“으응.. 응..”

츄릅. 츄우읍..

그녀의 혓바닥에서 달콤한 주스맛이 났다. 달달한 타액을 마시고 있을 그때.

‘뭐야. 이놈이 또?’

시선이 느껴졌다. 변태 같은 처남이 또 정찰계 특성을 발동했다.

그 시선을 인지하고 의념을 모았다.

딱밤을 때리듯 후려쳤다.

***

길을 걷던 강수호가 멈칫했다.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특수 상황 인정. 엿듣기 자동 발동합니다.

-대상과 격차이가 극심합니다. 엿듣기 간파됩니다.

-실패하였습니다.

따악!

“아악!”

눈앞이 번쩍했다. 이마가 쪼개질 것처럼 아팠다. 망치로 후려 맞은 것 같았다.

“으으.. 뭐야!”

제멋대로 발동된 가호도 억울한데. 이제는 고통까지 느껴졌다. 이마가 욱신거렸다.

‘개 같은..!’

옆에 걷던 제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생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호야 왜 그래?”

제나는 평소 그를 추종하고 따라다니던 여생도였다. 앤의 훼방이 없어지고 요즘 다시 친해졌다.

“하아.. 아무것도 아니야.”

발걸음을 멈췄다. 오늘은 그녀와 함께 엘븐하임을 구경하기로 했는데 피곤했다.

“제나 미안한데. 난 방에 가서 좀 쉴게. 오늘따라 몸 상태가 영 별로네.”

“아.. 그, 그래..?”

제나가 애절한 눈으로 봤지만 신경껐다. 어차피 그녀는 부탁하면 다 들어 주는 쉬운 여자였다.

“미안. 내일 보자.”

그녀와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털썩 누으며 이를 악물었다.

‘망할 가호.’

제멋대로 발동되고 실패하길 반복했다. 아주 엿 같았다. 스트레스에 머리가 아팠다.

이 가호를 얻은 당시를 떠올렸다. 주인님, 주인님 하며 남자에게 아양 떨던 가면 쓴 여자.

결계를 두들기며 보여달라 애원하던 자신의 모습.

‘빌어먹을..’

고개를 내렸다. 뻣뻣하게 솟아오른 하물이 보였다.

“아니야!”

그 상황에 흥분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굴욕감을 담아 주먹으로 후려쳤다.

“악!”

당연히 더럽게 아팠다. 눈앞이 새하얘질 정도였다. 눈물이 찔끔 흘렀다.

도대체 여신은 뭐하고 있단 말인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탈력감에 침대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멍하니 누워 천장만 쳐다봤다.

‘으.. 오줌마려.’

힘없이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바지를 내렸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어째 작아진 거 같은..? 에이 설마.”

물건 크기에 신경 쓸 새도 없었다.

-특수 상황 인정. 엿듣기 자동 발동합니다.

-대상과 격차이가 극심합니다. 엿듣기 간파됩니다.

-실패하였습니다.

-실패하였습니다.

따악!

“끄윽..!”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찔한 통증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 그만해!”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당하고만 살 순 없었다.

마력을 끌어올리고 집중했다. 이렇게 된 거 기필코 엿듣고 말리라.

“내 가호면.. 말 좀 들어! 끄으으..!”

이마에 힘줄이 솟고 코피가 흘러내렸다.

-실패하였습니다.

-실패하였습니다.

“으아아악!”

모든 마력을 쥐어짜 다시 시도해 보려던 그 순간.

콰앙!

거칠게 문이 열렸다.

“뭐, 뭐야..!”

반사적으로 현관을 쳐다보고 흠칫했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생도들을 안내했던 리디아 성녀.

그녀가 땀방울 맺힌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하아.. 아직 안 늦었나..? 강수호님 그만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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