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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70화 (170/241)

Chapter 170 - 170화 - 아카데미(9)

170화 - 아카데미(9)

건방지게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에반을 보다가 주먹을 쥐었다.

‘점멸.’

거리가 단번에 좁혀졌다.

녀석이 흠칫했으나 당황하진 않았다.

“···쉴드!”

돔 형태의 마력 장막이 생겨났다. 7성급 마도사가 만들어낸 강철보다 단단한 성벽.

비웃듯 입꼬리를 올린 녀석에게 주먹을 뻗었다.

제 얼굴을 향해 주먹이 다가오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배리어를 단단히 믿는 듯했다.

고개를 치켜들고 오만하게 내려다봤다.

‘정신 빠진 놈.’

정권이 배리어에 닿았다. 마력 장막이 주먹을 막긴 막았다.

아주 잠깐.

콰아앙!

“뭣!”

오만하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배리어가 산산조각 났다. 항마력이 담긴 주먹에 무력하게 꿰뚫렸다.

주먹이 곧장 얼굴로 향했다. 눈을 부릅뜬 녀석이 뒤늦게 무언가 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뻐어억!

“크허어억!”

코뼈가 뭉개진 녀석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허공에서 몇 바퀴나 돌다가 철퍼덕 쓰러졌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녀석이 코를 움켜쥐었다. 주르륵하고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크윽.. 무, 무슨..?”

떨리는 목소리에 당황과 분노가 느껴졌다. 구겨진 얼굴을 보니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주먹을 흔들며 씨익 웃어줬다.

“이제 한 수 끝났다.”

에반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솟았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엘프들의 입이 벌어졌다.

“세상에.. 방금 에반님이 당한 거야?”

“기, 기습이었잖아.”

에반이 엘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일그러진 얼굴이 급속도로 펴졌다.

“아하하.. 바, 방심했군요. 인간 치곤 제법입니다.”

녀석이 지팡이로 땅을 내리찍었다. 바닥에서 푸른 마법진이 피어올라 사방으로 퍼졌다.

공격은 아니었다.

“이제 이곳에서 점멸따위는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3수 동안 방어만 하겠단 말을 지키는 듯했다.

뚝. 뚝.

턱을 타고 흘러내린 빨간 핏방울을 보니 그저 우스울 따름이었다.

“너 코피나는데.”

“억..?!”

녀석이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찌나 이를 악물었는지 턱에 힘줄이 돋았다. 피식 웃다가 땅을 박찼다.

풍신결을 사용해 바람을 갈랐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움찔한 에반이 이를 악물었다.

“일렉트릭 필드!”

파지지직!

놈의 주변에 샛노란 거미줄이 깔렸다. 밟았다간 감전되는 뇌전계 마법.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았다. 전격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허나 별 의미 없었다. 이런 것으로 그를 막을 순 없었다.

‘항마력.’

다른 지구에서 사용하지 못 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사기적인 특성이었다.

몸 안에 들어온 전격이 힘을 잃었다. 마법적 힘을 잃고 단순한 마나로 되돌아갔다.

콰직!

바닥을 박살 내며 달려들었다. 겨우 두 걸음.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였다.

녀석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미친.. 어스 월!”

땅에서 솟아오른 바위마저 타 넘었다.

놈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7성급답게 시선을 놓치진 않았다. 그래 봤자지만.

퍼어억!

“크허억!”

안면이 뭉개진 녀석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도도하게 솟아 있던 코뼈가 뭉개졌다. 코피가 주먹에 흥건하게 묻었다. 이걸로 목표는 달성했다.

“으으..!”

눈에 살기까지 띤 에반이 벌떡 일어났다.

코피를 손가락 끝에 모아 튕겼다.

핏.

배리어에 피가 촥 하고 번졌다. 눈앞에서 터진 핏방울에 녀석이 흠칫했다.

“흐.. 이걸로 3수. 됐나?”

“건방진 인간놈이!!”

에반이 지팡이를 땅에 찍었다. 하늘에 세 개의 마법진이 동시에 생겨났다.

트리플 캐스팅.

한 마법진에서 수십 발의 마탄이 쏟아지고 바닥에선 집채만 한 암석이 솟아올랐다.

가볍게 땅을 박차 암벽 위로 올라섰다.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칼바람이 몰아쳤다. 하늘에 먹구름마저 끼기 시작했다.

“흐..”

순식간에 짙어진 먹구름이 파직거렸다. 우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스파크까지 튀었다.

썬더콜링이라 불리는 7성급 마법이었다.

“개 같은 인간 놈! 죽어라!”

사방에서 쏟아지던 칼바람과 마탄이 물로 변했다.

밧줄 형태로 변한 물이 그물처럼 조여들었다. 질척하게 달라붙어 성가셨다.

“내리쳐라!”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호신강기에 흐르는 강렬한 전격들. 쩌적거리는 매서운 소리와 함께 육체를 태우려들었다.

화려한 공격이었지만 대응은 간단했다.

우웅!

항마력을 머금은 내공이 번개를 잡아먹었다. 놈이 사용한 마력의 절반도 안 되는 양에 모든 전격이 상쇄됐다. 압도적인 효율이었다.

에반이 눈을 번쩍 뜨더니 소리쳤다.

“네놈. 항마였구나!”

녀석이 손가락을 복잡하게 꼬았다. 마법 수인. 날카로운 암석이 사방에서 솟아올랐다.

이런 물리적인 공격은 항마력으로 막기 곤란했다.

숨을 내뱉으며 탈력시켰다. 피부를 통해 바람을 느꼈다.

전신이 가벼워진 순간.

공기를 가르고 땅을 박찼다.

암석 꼬챙이가 그가 있던 자리를 덮쳤다. 뒤늦게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저, 점멸..?!”

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녀석이 마법진을 흩뿌리며 외쳤던 말이 떠올랐다.

‘점멸은 쓰지 못할 거랬던가.’

월광형(月光形)은 점멸따위가 아닌 그저 빠른 달리기였다.

찰나만에 등 뒤로 이동했다. 주먹을 쥐고 진각을 밟았다.

에반이 채 돌아보기도 전.

빠악!

귓방망이를 라이트 훅으로 후려쳤다.

“끄웩!”

바닥에 쓰러지려는 놈을 어퍼컷으로 올려 쳤다. 깔끔하게 드러난 안면에 붕권까지 먹여줬다.

콰아앙!

에반이 바닥에 처박히며 대리석이 박살 났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수십조각 난 돌덩이에 파묻혔다.

관전하던 엘프 한 명이 주춤 물러났다.

“세, 세상에! 바, 방금 귀를 때린 거야? 인간놈.. 엄청 악독하잖아.”

“정말 끔찍하군.. 에반님! 괜찮으십니까?”

시우가 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움찔한 엘프들이 눈길을 피했다. 침을 꿀꺽 삼키며 귀를 가리는 게 겁먹은 것 같았다.

‘엘프 귀는 엄청 민감하다던데···. 설마 불알이라도 맞은 느낌인가.’

시선을 내렸다. 대리석에 파묻힌 에반은 움찔거리지도 못했다.

마른 오징어처럼 축 늘어진 녀석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촤아악.

‘음?’

시체처럼 가만있던 녀석이 물로 변해 바닥에 쏟아졌다.

“크흑..”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에반 놈이 환상처럼 허공에서 나타났다.

“오..?”

안색이 창백해진 녀석이 비틀거렸다. 신기하게도 뭉개졌던 안면이 되돌아왔다.

힐끗 주먹을 살폈다. 주먹에 묻은 피는 그대로였다.

‘특성인가?’

7성급 마도사. 생각보다 재밌었다. 주먹을 뚜둑거리며 놈을 쳐다봤다.

땅을 박차 돌진 하려다 멈췄다.

“그만 해요!”

성녀가 다급하게 달려오며 소리쳤다. 하얀 드레스를 휘날리며 사이에 끼어들었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에반! 이게 무슨 짓이에요! 친선대련은 오후에 모여서 하기로 했는데!”

“윽..”

지팡이를 움켜쥔 에반이 부들부들 떨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다가 약혼자에게 혼나기까지 하다니.

터질 것처럼 새빨개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찌나 억울했는지 꽉 깨문 입술에서 핏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와장창!

“아아악!!”

에반이 책상에 있던 것들을 모조리 쓸어 버렸다. 한참을 씩씩거렸다.

인간 따위에게 주먹으로 맞았단 것이 믿기지 않았다.

“벌레 같은 놈이 감히..!”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다 고개를 돌렸다.

충혈된 눈으로 창문을 노려봤다.

“누구냐!”

“반갑습니다. 왕자님.”

창문에서 검은 연기가 스며들더니 사람 형상으로 변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후드를 눌러썼는데 그림자가 유독 짙었다. 턱선만 겨우 보였다.

“네놈.. 누구냐고 물었다.”

“음.. 그저 왕자님의 팬입니다. 운명에 따라 그대에게 왔다고 할까요.”

에반이 마력을 실처럼 만들어 사방에 흩뿌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적도 아군도.

“진정하시지요. 저는 적이 아닙니다.”

남자가 양손을 들어 올리더니 천천히 걸었다. 난장판이 된 방안을 느긋하게 가로질렀다.

탁자에 물건 하나를 올려놨다.

‘나침반..?’

피처럼 붉은 나침반.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풀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혀끝을 깨물고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짙은 그림자 사이로 희미한 미소가 엿보였다.

“에반님.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

***

시우가 도시를 나와 황야를 걸었다.

에반의 피도 얻었으니 세계수 수액을 얻을 차례였다.

문득 헬레나에게 물어볼 게 떠올랐다. 그녀는 회귀자라 그런지 아는 게 많았다.

“에반이 마지막에 물로 변했던 거. 혹시 무슨 마법인지 알아?”

잠시 고민하던 헬레나가 말했다.

“물 분신은 그의 독문 마법이에요. 벌써 사용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독문 마법?”

“네. 전생에 불사의 마도사라 불렸던 그의 장기죠. 특성과 결합되어 다른 사람은 사용하기 힘들어요.”

귀쟁이 녀석의 칭호가 거창했다. 불사의 마도사라···.

“다 죽어 가던 놈이 멀쩡해지던데.”

“맞아요. 자신이 받은 데미지를 분신에게 떠넘기고 회복하는 마법이에요. 여분의 생명 같은 거죠.”

“허.. 개사기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약점이 명확해요. 분신이 생성됐을 때 소모된 마력을 보면··· 세 번. 무리해도 네 번이 한계일 거예요.”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 패주면 끝이란 소리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촤악!

땅을 파고 숨어 있던 녀석이 튀어나왔다.

-그르륵..

트럭보다 커다란 꽃게였다. 도시 밖답게 몬스터가 나타났다.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2미터가 넘는 거대한 집게발이 내리꽂혔다.

콰아앙!

한 걸음 물러나 피했다.

몬스터의 입가에 보라색 거품이 부글거렸다.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게 딱 봐도 독이었다.

촤아악!

거품이 마력과 뒤섞이더니 물대포 처럼 쏘아졌다.

땅을 박찼다. 게의 머리 위로 올라섰다.

뽑아 든 검에서 검기가 피어올랐다. 단숨에 내리꽂힌 검기가 눈 사이를 관통했다.

쿠웅..!

워낙 거대한 녀석이라 쓰러지는 것만으로 바닥이 진동했다.

그녀를 따라 황야를 걸으며 이런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났다.

얼마나 걸었을까.

발걸음을 멈춘 헬레나가 주변을 둘러봤다.

엘븐하임 쪽 거대한 세계수를 보며 눈가를 좁혔다. 거리를 가늠하는 것 같았다.

“으음··· 여기 근처인데. 잠시만요.”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저기예요!”

가리킨 곳을 살폈다. 말라비틀어진 나무뿌리가 드러나 있었다.

헬레나가 마력을 피워 올렸다.

“디그.”

파악.

‘오..’

마치 포크레인으로 땅을 판 것처럼 구덩이가 생겼다.

“디그. 디그.”

지하를 향한 길이 뻥 뚫렸다. 순식간에 백 미터가 넘는 땅굴이 생겼다. 이런 것을 보면 마법도 궁금하긴 했다.

땅속 깊숙한 곳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오.. 여기야?”

“네. 여기에 세계수 수액이 고여 있을 거예요.”

다가가려다 발걸음을 멈췄다. 문에서 미약한 마력 흐름이 느껴졌다.

“잠시만요. 그냥 열면 안 돼요.”

그녀가 에반의 피가 든 유리병을 꺼내 들고 눈을 감았다.

“전생에 이곳을 발견한 사람이 그냥 열었다가 안에 든 수액을 대부분 잃었거든요.”

우웅!

헬레나 주변에 푸른 마법진이 생겨났다. 세 개의 마법진이 뒤섞이더니 피에 스며들었다.

유리병에서 피가 역류했다. 허공에 떠오른 붉은 핏방울이 문에 스며들었다.

구구궁..!

흙먼지가 일어났다. 진동과 함께 문이 열렸다. 지하 창고처럼 보이는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헬레나가 주먹만 한 빛덩어리를 날렸다. 달려도 될 정도로 널찍한 공간이 드러났다.

“오!”

물웅덩이가 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한 방울만 마셔도 내공이 늘어났던 수액.

그것이 들어가서 수영해도 될 정도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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