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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81화 (181/241)

Chapter 181 - 181화 - 아카데미(20)

181화 - 아카데미(20)

강수호가 빨갛게 부어오른 이마를 문질렀다.

-대상과 격차이가 극심합니다. 엿듣기 간파됩니다.

-실패하였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일상이었지만 오늘따라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싸한데···.’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다리가 달달 떨렸다. 답답했다. 전화 받는 게 너무 느렸다.

딸각.

드디어.

한참을 기다린 끝에 화상 통화가 연결됐다.

‘아!’

목까지 뒤덮은 새하얀 드레스가 아쉬웠다. 속살 하나 보이지 않았다.

성녀답게 단정한 차림이었다. 그래도 입가에 맺혀진 우아한 미소가 보기 좋았다.

-하아.. 여, 여보세요..?

가슴을 만지게 해 달라는 말에 차가워졌던 눈매도 되돌아왔다. 다행히 화가 풀린 것 같았다.

아니면 지금은 기분이 좋던가.

“리디아?! 하아.. 다행이다. 아니었구나.”

-..용사님. 그게 무슨 소리세요?

용사님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듣기 좋았다. 히죽 웃으며 말했다.

“흠흠.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 뭐 해? 혹시 누워 있는 거야?”

-···네. 침대에서 쉬는 중이었어요. 흣..!

화면이 살짝 흔들렸다. 풍만한 가슴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아깝다.’

제대로 못 본 게 아쉬웠다. 저 커다란 가슴을 한 번만 만져 봤으면 소원이 없을 텐데.

스쳐 지나간 장면을 머릿속에서 되새겼다.

-하아.. 그런데.. 왜 전화하신 거예요?

사실. 불길한 상상 때문에 전화했던 거였다.

오늘따라 실패한 엿듣기가 꺼림칙했으니까.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었다. 그건 너무 변태같았으니까.

마침 적당한 용건이 떠올랐다.

“리디아. 내가 알아보니까. 성녀가 허락하면 엘븐하임 신전으로 곧장 텔레포트 할 수 있다던데···. 그거 나한테 허락해주면 안 될까?”

순간.

성녀가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눈썹이 모아지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읏..

도톰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미세하게 찡그려진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꿀꺽.’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한동안 입술을 오물거리던 그녀가 달뜬 숨을 내뱉었다.

-하아..

촉촉한 숨소리가 듣기 좋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숨결이 귀를 간지럽혔다.

성녀가 흐릿하게 눈을 떴다. 살짝 풀린 눈매가 요염했다.

-텔레포트 권한이요? 그건 왜요?

“그, 그냥!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더 좋잖아? 아! 같이 밥도 먹자. 저번에 실수한 거 사과할 겸 내가 살게.”

그녀의 눈동자가 힐끗 움직였다. 카메라 정면이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화면 바깥을 보던 성녀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안 돼요. 이미 개인적인 일로 사용했거든요.

“아..”

-용건은 그게 전부인가요?

“아니야! 그, 그러니까··· 아! 내가 조만간 선물할 사람이 있는데. 여자들은 선물로 뭘 좋아해?”

-흐응.. 글쎄요.. 아! 크, 큰 거요.. 하아.. 여자들은 큰 걸 좋아해요.

“큰 거? 곰 인형 같은 거?”

입술을 살짝 핥은 성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곰 인형. 나쁘지 않네요. 흐읏..!

다시 두 눈을 감은 채 파르르 떠는 그녀에게 말했다.

“···어디 아파?”

-하아.. 괘, 괜찮아요. 혹시 심심하셔서.. 읏. 전화하신 건가요?

“사실 그래.”

-시, 심심.. 하시며언..! 후, 훈련이라도 하시면 될 텐데.. 오, 오늘 훈련은 하셨나요? 하루도 빼먹으면 안 돼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목검을 힐끔 보다가 말했다.

“오늘치는 이미 했지.”

-부, 부족해요.. 더엇! 하셔야 돼요.. 하우..

성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혹시 옆에 누구 있어?”

-하우, 사실.. 마력 훈련 중이에요. 조금 힘드네요. 옆에 친절하신 분이, 하으.. 도와주고 계세요.

“그, 그래? 호, 혹시 옆에 분과 인사나눌 수 있을까?”

-곤란해요.. 낯을 많이 가리시거든요.

“혹시.. 남자는 아니지?”

성녀의 눈동자에 묘한 열기가 서렸다.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 미소를 보고 있으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흐응.. 글쎄요.. 그게 왜 궁금하실까..

카메라에 얼굴을 바짝 들이댄 성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비밀이에요. 용사님.

*

눈밑이 거뭇하게 변한 수호가 하품했다.

“으으.. 피곤해.”

성녀님과 화상 통화를 몰래 녹음했다. 가면 갈수록 달콤해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심장을 울리는 뭔가가 있었다.

밤새 그것을 보며 자위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아침 해가 뜬 뒤였다.

“하아암..”

딱딱딱!

노교수가 칠판에 분필을 두드렸다.

“모두 집중하세요!”

밀려오는 하품을 참았다. 지금은 균열학 시간이었다.

“음.. 오늘따라 조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 겁니까. 여러분 이럴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위기입니다! 지난 5년간 균열 발생량은 연평균 10%가 넘게 상승했습니다. 이 기세라면······.”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으으..”

교수님의 거친 어조도 자장가로만 들렸다.

꾸벅.

“헛..”

흘러내린 침방울을 닦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여러분 수련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위기는 언제나 눈앞에 있으니까요.”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거짓말처럼 잠이 확 깼다.

집에 돌아가서 성녀와 화상 통화할 생각에 기운이 샘솟았다.

“수호야 어디가!”

“어..?”

여생도 한 명이 도도도 달려와 미간을 찡그렸다.

“오늘 영화 보기로 했잖아. 설마 또 까먹었어?”

“아.. 제나야 미안. 요즘 정신이 없어서 깜박했네.”

제나. 그녀는 고등학교부터 그를 따라다니던 여생도였다.

“뭐어..? 요즘 도대체 뭘 하길래 그리 바쁜거야?”

“음.. 별거 아니야. 그냥 수련하느라.”

“으..”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망설이던 제나가 물었다.

“서, 설마 오늘도 피곤해···?”

“..제나야 미안. 영화는 다음에 보면 안 될까?”

그녀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는 훌륭했다.

전체적으로 귀염상에 깨끗한 피부가 보기 좋았다.

허나 동하질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뭔가 하나 모자란 기분이었다.

“으.. 그럼 어쩔 수 없지.”

제나의 어깨가 축 처졌다. 일방적으로 약속을 깼음에도 아무런 말도 못했다.

‘역시 너무 쉬워.’

그 모습을 보니 더욱 동하지 않았다. 그의 취향은 어려운 여자였다.

“다음에. 음.. 그래. 이번 주 토요일에 같이 보자. 어때?”

“토요일..? 토요일은···”

무언가 말하려던 제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알았어. 그때 봐.”

제나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 숙였다.

조금 미안했지만 신경껐다. 그는 용사. 흔한 생도인 그녀에게 신경 쓰긴 귀하신 몸이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제나의 뒤태를 살폈다.

‘..이제 보니 꽤 크네?’

전체적으로 슬림한 몸매였지만 골반과 엉덩이가 훌륭했다.

그녀가 복도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가슴도 꽤 크고.. 저 정도면 C인가?’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금발의 폭유 엘프 성녀님이 더 보고 싶었다.

“아야!”

곧장 집에 가려다 발걸음을 멈췄다.

“으..! 넌 또 뭐야!”

여성 특유의 고음. 제나의 목소리였다.

기척을 죽였다. 복도 모퉁이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얼굴이 새빨개진 제나가 한 남성을 쏘아붙였다.

“눈을 도대체 어따 달고 다니는 거야!”

“허.. 그쪽이 부딪쳤잖아?”

남자의 얼굴이 익숙했다. 최시우였다.

‘언제 한 번 저놈도 엿먹여야 하는데···’

엘븐하임에서 녀석을 보고 놀랐다. 솔직히 말해서 쫄아버렸다.

에반과 대련하는 놈의 무력은 생도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상관 없었다.

그는 용사니까.

잠재력만 제대로 터지면 저놈 따윈 한 방이다.

‘흥.. 조금만 기다려라.’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눈이 새빨개진 제나가 최시우를 몰아 붙였다.

“뭐어?! 사과는 못할망정!”

최시우가 양손을 든 채 한 걸음 물러났다.

“진정하지?”

“흐윽.. 빨리 사과해! 사과하라구!”

제나가 녀석의 배에 이마를 들이대며 바락바락 대들었다.

‘허.. 제나한테 저런면이 있었나..’

생소한 모습에 눈이 절로 커졌다.

“아니 갑자기 왜 울어?”

“..내가 언제 울었다고! 빨리 사과나 해!”

최시우가 곤란한 표정으로 연신 물러나는 것을 보니 짜릿했다.

‘큭..’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월감이 솟아났다.

저렇게 앙칼진 여자가 자신에겐 순종적이었다니.. 제나의 새로운 면모에 하반신에 반응이 왔다. 살짝 동하는 느낌이었다.

‘음.. 그래도 아직 모자라.’

아직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없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부족했다.

‘흠흠..’

헛기침과 함께 발걸음을 돌렸다.

제나가 화낸 모습을 들켰다는 것을 알면 민망할 테니까.

그는 여성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신사였다.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컴퓨터를 키고 비밀번호를 다다닥 쳤다.

[ 명예의 전당 ]

숨겨 놓은 폴더를 열었다.

“크..”

보기만 해도 배불렀다.

그가 모은 보물들.

[ □□□와 호텔에서1.avi ]

[ □□□와 호텔에서2.avi ]

이 폴더는 그의 심장을 울린 영상만 들어올 수 있는 명예로운 곳이었다.

흐뭇하게 모니터를 보다가 멈칫했다.

문득 아쉬웠다.

예전 호텔 방에서 겪은 지옥이 떠올랐다.

‘그것도 찍어 놨으면.. 헛! 미친.. 말도 안 되는 소리!’

생각해 보니 이것들은 그 망할 자식이 보내준 영상이었다.

삭제버튼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머리를 붕붕 흔들었다.

“에이 됐어. 영상은 죄가 없지.”

게다가 오늘은 영상 하나가 추가되는 경사스런 날이었다.

[ 성녀님과 화상 통화.mp4 ]

“흠흠..”

리디아에게 죄책감이 조금 들었지만 신경 껐다. 그는 용사니까 이 정도는 괜찮았다.

영상들의 썸네일을 보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리디아한테 전화 하기 전에 한 번만 할까..?’

신중한 눈으로 살피고 있을 그때.

-특수 상황 인정. 엿듣기 자동 발동합니다.

“하아.. 또?”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마가 쪼개지는 느낌도 이제 익숙했다.

-엿듣기 성공했습니다.

“어?!”

생각지도 못한 행운. 처음으로 엿듣기에 성공했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발 들키지 않기를 기도했다. 당장 바지를 내리고 귀를 기울였다.

-찔꺼억.

-아읏..! 아, 아파..

-이제 괜찮지?

-응.. 이제 안 아파.. 고마워.

뭔가 이상했다.

“뭐야!”

여자 목소리가 익숙했다. 아까 전까지 그와 대화하던···.

-제나 너 꽤 귀엽네.

-읏.. 하, 하지 마.. 앙♥?!

-오.. 가는 모습도 귀여워. 얼굴 숨기지 마. 여기가 기분 좋아?

입이 쩍 벌어졌다. 손끝이 벌벌 떨렸다.

‘제, 제나?! 도, 도대체 누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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