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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85화 (185/241)

Chapter 185 - 185화 - 아카데미(24)

185화 - 아카데미(24)

도시 밖.

강수호가 매마른 평야에 서서 눈가를 좁혔다.

저 멀리. 혼자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앤 맞네.’

주변을 살폈으나 아무도 없었다. 평야 지대엔 앤 혼자였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당당하게 걸어갔다.

“아! 수호 왔어?”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는 앤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수호야. 그나저나 너무한 거 아니야? 내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어떻게 병문안 한 번 안 와?”

뒷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하.. 어이가 없네. 너 같으면 오겠냐? 정말 낯짝도 두껍네. 나한테 그딴 짓을 하고 또 연락해?”

“어..?”

웃으며 말하던 앤이 당황했다. 그것을 보니 의심이 싹텄다.

“너.. 설마..”

“으응..?”

“됐어. 할 말 있으면 해봐.”

“벼, 별 건 아니고···”

슬쩍 눈치를 살피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 말만 잘 들으면 영상은 봐줄게. 어때?”

“하.. 또 그 소리냐. 정말 지긋지긋하네.”

앤이 당황했다.

“또..? 으음.. 그래도 영상이 있으면 곤란하잖아? 내 부탁만 조금 들어 주면···.”

“하.. 역시.”

아까부터 앤의 태도가 이상했다. 마치 간을 보듯 조심스러운 게 그녀답지 않았다.

“너 기억 안 돌아왔지?”

“무, 무슨 소리야!”

어쩐지 이상했다. 여신께서 도운 건데 기억이 돌아왔을리 없었다.

“어휴. 됐다. 어차피 나도 말로 할 생각 없었어.”

강수호가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그녀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주먹을 쥐고 땅을 박찼다.

“자, 잠깐!”

앤의 주변에 마력장막이 피어올랐다.

쾅.

주먹이 마력장막에 막힌 사이. 앤이 허겁지겁 무언가 꺼내마셨다.

“크으..”

쨍그랑. 내던져진 포션병과 동시에 앤의 기세가 커졌다.

거의 5성급에 가까워진 기세는 확실히 대단했다.

하지만.

강수호. 그는 이미 제대로 된 5성. 저런 도핑 물약따위론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콰앙!

박살 난 배리어 사이로 다시 한번 주먹을 날렸다.

퍼어억!

“악!”

안면에 펀치를 맞은 그녀가 흙바닥을 나뒹굴었다.

커다란 콧구멍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이익..!”

그녀가 무언가 또 꺼내 들었다. 어두운 기운이 물씬 느졌다. 마기가 뒤섞인 도핑제. 저기서 한 걸음만 더 가면 마인이다.

한숨이 튀어나왔다.

“마기? 너 정말 갈 데까지 갔구나.”

“넌..! 내 거야!”

배리어가 다시 생성됐다. 아까보다 색이 짙었다.

앤이 허리춤에서 포승줄을 꺼내 던졌다. 딱 보니까 포박용 아티팩트였다.

“배리어!”

끼기긱.

마력 장막을 조이는 밧줄을 보다가 포션병을 꺼냈다. 집중력을 올려주는 각성제.

도핑은 그녀만 가능한 게 아니다. 게다가 이 포션은 부작용도 거의 없는 최고급이다.

“꿀꺽.”

한 모금 분량의 각성제를 단숨에 들이켰다.

찌잉.

미약한 두통이 스쳐 지나갔다. 정신이 고양되고 감각이 서늘해졌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우우웅!

푸른 아지랑이가 단번에 일어났다.

“거, 검기?! 너, 너..! 언제 5성이..”

“그걸 이제 알았냐.”

문답 무용.

“차앗!”

단숨에 내리꽂힌 검격.

쩌어엉!

포승줄은 물론이고 회색빛 마력장막이 단번에 찢어졌다.

피잇.

검기가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핏방울이 튀었다.

앤은 뒤로 넘어진 덕분에 살가죽만 베였다.

“꺄아아악!”

엉덩방아를 찧은 채 벌벌 떠는 앤을 보니 통쾌했다.

차가운 검 손잡이를 꽉 잡으며 한 걸음 다가갔다.

“사, 살려 줘! 내, 내가 잘못했어!”

쓰러진 앤이 뒤로 기어갔다.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살려달라 빌었다.

그것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첫 살인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억지로 칼을 치켜든 순간.

“나, 나.. 사, 사실 아무 기억도 없어!”

칼이 멈칫했다.

다급해진 앤이 허겁지겁 말했다.

“지, 진짜야! 아무것도 기억 안 나! 그냥 찔러봤던 거야! 미안해!!”

앤이 엉거주춤 엎드렸다. 무릎을 꿇고 빌어댔다.

“엉엉.. 수호야 미안! 이제 이런 짓 안 할게! 흐윽..”

퍼억!

“아악!”

얼굴을 발로 뻥 차버렸다. 한숨과 함께 검을 집어넣었다.

“쳇! 됐어. 운 좋은 줄 알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들고 왔던 마력 계약서.

“여기에 마력 불어넣어.”

“이, 이건..?”

“아카데미 자퇴하고 내 앞에 얼씬도 하지 마. 만약 거부하면··· 나도 더 안 봐줘.”

고등학교까지 같이 지낸 정을 봐서 마지막 기회를 줬다.

“으으.. 너, 너무해..”

앤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우웅..!

계약서가 푸른 가루로 변해 앤에게 스며들었다.

그것을 보니 가슴속까지 시원해졌다. 드디어 앤에게서 해방된 것이다.

‘크..’

이 순간을 즐겼다. 희열을 만끽했다.

훌쩍거리던 앤이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어어..?”

손가락으로 등 뒤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수, 수호야 저거 봐!”

“하.. 또 뭔짓을 하려고.. 응?”

등 뒤가 섬뜩했다.

황급히 돌아보고 기겁했다.

어느새 코앞에 다가온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보였다. 특유의 소음도 없었다.

남은 거리라곤 100미터도 안 됐다. 도망가기엔 이미 늦었다.

“뭐, 뭐야!”

선두의 모히칸 머리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코에 피어싱을 다섯 개나 박은 그가 히죽 웃었다.

“큭큭! 들켰네?”

경박한 목소리가 들린 순간.

부아아아아앙!!

오토바이에서 거친 배기음이 울렸다.

빠라바라 빠라밤!

시끄러운 클락션 소리가 평야 지대에 울려 퍼졌다. 지금까지 조용했던 게 거짓말 같았다.

부우우우웅!

앤과 그를 중심으로 오토바이 수십 대가 빙글빙글 돌았다.

“우효오오옷! 5성급 초미남 노예! 겟또다제!”

“미, 미친..”

말로만 들어 봤던 도시 밖 무법자였다.

다급히 허리춤을 뒤졌다. 비상용 단거리 공간 이동 스크롤. 더럽게 비싼 물건이지만 아낄 때가 아니다.

당장 찢으려던 순간.

탕!

“아악!”

총성과 함께 손등에 구멍이 뚫렸다. 제대로 인지도 못했다. 평범한 총알이 아니다. 마력장막이 단번에 관통당했다.

모히칸 머리 남자가 히죽 웃더니 총구를 후 불었다.

“어이어이.. 예쁜이! 이마에 구멍나기 싫으면 얌전히 있으라고. 크큭!”

***

강수호의 아버지인 강찬성.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수호 이 자식은 왜 연락을 안 받아서.. 어휴.’

불안한 표정의 아내를 달래며 말했다.

“여보. 겨우 다섯 시간이잖아. 잠깐 연락 안 된다고 걱정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수호가 애도 아니고.”

“뭐라구요? 겨우..?”

이혜진의 눈가에 서린 노기에 강찬성이 찔끔했다.

헛기침과 함께 눈을 피했다.

‘갈수록 사나워진다니까···.’

연애 때도 느꼈지만 아내인 이혜진은 기가 너무 셌다. 도도한 모습에 반해 매달려 결혼했지만 가끔은 피곤했다.

노려보는 그녀에게 변명했다.

“험험.. 여보. 우리 수호도 이제 성인이야. 여자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연락을 잊을 수도 있으니까.. 그냥 조금만 더 기다리면..”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떨렸다. 아내의 눈초리가 점점 차가워졌다.

“여자 친구라니요! 우리 수호에겐 한참 일러요! 절대 안 돼요!”

“내 말은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이혜진이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어느 불여시 같은 게 우리 수호를···? 아니야. 그래도 다섯 시간은 말이 안 되잖아.. 하아.. 신고라도 해야 하나.”

불안한 표정으로 거실을 서성였다.

그것을 보던 강찬성이 고개를 저었다. 자식 보호가 과해도 너무 과했다.

“아휴..”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튀어나온 한숨 소리가 너무 컸다. 절로 어깨가 움츠러든 순간.

띠리릭.

현관문이 열렸다. 온 좋게도 구원자가 나타났다.

“혀, 현아 왔나 보네!”

째려보는 아내를 뒤로하고 서둘러 현관으로 달려갔다.

*

현관문 앞.

시우가 강현아에게 말했다.

“이왕 왔는데 장모님한테 인사라도 하면 좋잖아?”

“버, 벌써..? 으으..”

망설이던 그녀가 문을 열었다.

띠리릭.

한 남자가 해맑게 웃으며 달려왔다.

“현아왔니?”

강수호를 빼닮았다. 훤칠하게 생긴 남자에게 강현아가 말했다.

“아빠도 있었네? 휴가 나온 거야?”

“그럼! 엄마도 왔는데 아빠도 며칠 쉬어야지. 그런데···.”

시선이 마주쳤다.

“자네는 누군가?”

시우가 앞으로 나서며 고개 숙였다. 장인어른과 첫 만남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장..”

“자, 잠깐만!”

강현아가 옷깃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귓가에 속삭였다.

“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가족이니 존중해 줄 생각이었다.

“아빠. 애는.. 치, 친구야 친구.”

“예. 현아 친구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버님.”

“아버님..?”

장인어른의 눈가가 점점 좁아졌다. 마치 간을 보듯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런다고 그의 경지를 알 수 있을 리 만무.

무영신투의 무공인 월영신법을 익혔다. 일부러 티 내지 않는 이상 경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으음..”

강현아 아버지의 입꼬리가 쭈욱 내려갔다.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자네가 우리 현아 친구라고···? 그래. 부모님은 뭐 하시나?”

“두 분다 안 계십니다.”

“허..”

태도가 변했다. 눈동자에 남아 있던 온기가 싹 사라졌다.

“···그런가? 그나저나 이렇게 찾아와 줬는데 미안하지만···. 지금 집안에 일이 생겼거든. 이만 가줄 수 있겠나?”

“아빠!”

“아니. 왜..”

거실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왔으면 빨리 들어오지. 현관에서 뭐 하는 거예요.”

단아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멈칫했다.

기다렸던 장모님의 등장이었다.

‘오..’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강현아의 엄마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언니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새하얀 피부와 모델 같은 몸매가 보기 좋았다.

‘현아랑 똑 닮았네.’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인.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안색이 어두웠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당장이라도 보듬어 주고 싶었다.

눈이 마주친 그녀가 물었다.

“그쪽은 누구..?”

“저는..”

지이잉.

“아! 잠시만요.”

스마트폰 진동에 그녀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수호 문자예요!”

문자를 읽는 듯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다가 모든 동작이 멈췄다.

옆에 있던 강수호 닮은 남자가 말했다.

“거 봐. 괜찮지?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여보는 걱정이 너무···”

툭.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힐끗 살피니 문자메시지가 보였다.

[엄마. 만약에 이 문자가 갈 때까지 나랑 연락 안 되면 나 좀 찾아줘! 이 문자는 예약 문자야! 나는 지금 앤이라는 애를 만나러 도시 밖으로······.]

그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 안 돼..”

“여보!”

현기증이 났는지 비틀거렸다. 힘없이 주저앉으려는 순간.

시우가 땅을 박찼다. 쓰러지는 그녀를 부축했다. 은근슬쩍 군살하나 없는 허리춤을 껴안았다.

손바닥을 통해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으으.. 고맙..”

외간 남자에게 안겨 있던 그녀가 눈을 떴다.

시선이 마주쳤다. 커다란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놔, 놔요..!”

흠칫한 그녀가 가슴팍을 밀어냈다.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렸다.

당연히 풀어 주지 않았다. 공주님 대하듯 두 손으로 안아 들고 당당히 걸었다.

“잠시만 비켜 주시죠.”

“어어..”

멍하니 보고 있는 한 남자를 지났다. 푹신한 소파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얼굴을 찡그린 채 노려보는 그녀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아 친구 최시우라고 합니다.”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 결정했다.

장모님으로 남기엔 아깝다고. 아무래도 조만간 새아들이 생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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