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2 - 192화 - 아카데미(31)
192화 - 아카데미(31)
검은 모래 형제단의 2인자인 조일승.
그는 벌려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푸른빛이 번뜩였다 느낀 순간.
“아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동료들의 무릎 아래가 모조리 썰려 나갔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겨우 검 한번 휘둘렀을 뿐이다.
‘거, 검기..?’
반사적으로 몸을 더듬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몸은 멀쩡했다.
검기의 힘이 모자라서? 그건 아니었다. 등 뒤에 있는 동료들도 썰려 나갔으니까.
그저 선택된 것이다. 고문할 사람으로.
‘시발.. 잘못 걸렸다.’
형제단 중 서 있는 사람이라곤 두목을 포함한 다섯이 전부였다.
그들이 하나같이 창백해진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이 새끼가!!”
평소 깡 빼면 시체라던 두목. 주춤거리던 그가 이를 악물었다.
능숙한 동작으로 허리춤에서 무언가 뽑아 들었다.
심플한 검은색 권총.
평범해 보이지만 값비싼 아티팩트였다. 마력 장막을 꿰뚫는데 특화된 마도구. 강자라도 방심했다간 죽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죽어!”
그것으로 검든 사내를 겨눈 순간.
서걱.
손목째로 잘려 나갔다. 방아쇠를 당겨보지도 못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아아아악!”
팔에서 뿜어지는 피 분수가 허공에 가로막혔다. 인지도 못한 사이 마력장막이 생성돼 있었다.
핏방울이 허공에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장막이 눈으로 보이는데도 마력유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사는 것을 포기했다. 검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때부터 알아봤지만 예상보다 더 고수였다.
마력 통제력이 극에 달한 초인.
‘시발. 7성급이었잖아..’
잘려 나간 손목을 붙잡은 두목에게 남자가 말했다.
“이틀 전에 납치했던 20대 초반 남자. 어딨나?”
“크흑.. 그 예쁜이..? 흐흐.. 이미 창관에 팔았는데 어쩌지? 지금쯤 앙앙거리고 있을걸.”
두목 눈엔 독기가 가득했다. 초인에게 저리 대들다니. 존경스러웠다.
‘역시 두목!’
덜덜 떨리는 손을 억지로 꽉 쥐었다. 죽을 땐 죽더라도 저렇게 폼나게 죽고 싶었다.
하지만.
서걱.
한쪽 다리마저 잘린 두목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끄아아아악!”
피를 토하는 모습에 입을 쩍 벌렸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흠..”
남자가 시선을 돌렸다.
검은색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저 새끼.. 인질이고 뭐고 관심 없잖아.’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눈동자에 가득한 감정은 딱 하나였다. 귀찮음.
형제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자존심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을 보니 허탈할 지경이었다.
“쯧.”
작게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두목의 왼쪽어깨가 날아갔다.
“아아악!”
바닥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두목이 보였다. 멀쩡한 어깨가 아려왔다.
“20대 남자. 어디로 갔나.”
똑같은 물음이 돌아왔다.
얼핏 두목에게 말하는듯 했지만 아니었다. 시선은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사지 멀쩡한 네 명.
서걱.
그들이 대답을 망설인 사이. 두목의 남은 팔 하나마저 날아갔다.
남자의 눈빛을 보고 깨달았다. 두목이 죽으면 다음 차례는 그들이었다.
“파, 팔았습니다!”
서열 삼위. 사람 죽이는 것이 취미라던 놈이 벌벌 떨며 소리쳤다.
“흠..”
두목의 남은 다리마저 잘려 나갔다. 이것으로 사지가 모두 잘려 나갔다.
피 웅덩이 속에서 꺽꺽거렸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광경이었다.
동료들이 앞다퉈 소리쳤다.
“흐, 흑마법사! 흑마법사한테 팔았습니다!”
“흑사탑으로 갔을 겁니다! 놈은 거기 소속입니다!”
***
이혜진이 시우를 멍하니 보다가 주변을 살폈다.
40여구의 시체들이 공터에 널려 있었다.
검은모래 형제단은 한날한시에 사이좋게 시체로 변했다.
지금까지 입만 벌리고 있던 남편이 뒤늦게 소리쳤다.
“이, 이 자식아! 다 죽이면 어떡해! 거짓말이면 어쩌려고!”
“놈들이 말한 건 전부 사실입니다. 그 정돈 신체반응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윽..”
강찬성이 입을 다물었다. 7성급 초인의 단언엔 묘한 힘이 있었다.
시우가 추적자를 보며 말했다.
“그쪽은···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바, 박성우입니다!”
군기가 바짝든 신병처럼 소리쳤다.
“놈들이 말한 흑사탑에 대해서 아십니까?”
“그으.. 위치는 아는데 설마 거길 찾아가실 생각입니까.”
아들이 잡혀갔는데 지옥인들 못 갈까.
이혜진이 박성우를 노려보니 그가 변명하듯 말했다.
“거, 거긴 흑마법사 소굴입니다.”
“그래서요?”
침을 꿀꺽 삼킨 박성우가 말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닙니다. 아무리 도시 밖이라지만 인체실험까지 하는 놈들입니다. 그런데도 토벌 당하지 않는 걸 보면.. 분명 뒷배가 있을 겁니다.”
강찬성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눈치 보던 박성우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놈들은 저주나 키메라에 특화된 놈들입니다. 그.. 죄송하지만 거기에 팔렸다면 아드님은.. 이미..”
키메라. 사람과 몬스터를 뒤섞는 끔찍한 생체마법.
머리가 아찔해졌다.
“아.. 안 돼..”
현기증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은근슬쩍 다가와 부축해준 시우가 아니었다면 또 쓰러졌을 것이다.
시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더니 중얼거렸다.
“흑마법사라···. 혹시 모르니 저희 방식으로 추적해 보죠. 어머님 잠시 도와주시겠습니까?”
“아..”
손목을 잡혀 이끌렸다. 허름한 오두막으로 함께 들어갔다.
“여기서 다시 추적해 보겠습니다. 아버님은 주변 경계 좀 해주십시오.”
“어어..?”
끼익.. 탁.
낡은 나무 문이 닫혔다. 어두워진 오두막에 정적이 흘렀다. 서로의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
시우가 간이 마법진이 담긴 아티팩트들을 주변에 깔았다.
그것을 보며 이혜진이 속삭였다.
“서, 설마··· 여기서 하자는 거예요? 바로 옆에 남편.. 흡.”
그녀가 무어라 말할 사이도 없이. 혀가 뒤섞였다.
서로 배꼽이 닿을 정도로 꽉 껴안았다. 거침없이 입안에 파고든 혓바닥이 그녀를 희롱했다.
츄릅.. 츄읍..
귓가에 들리는 음란한 소리와 함께 황홀한 감각이 찾아왔다.
‘아, 안 돼..!’
이혜진이 떨리는 손으로 그를 밀어냈다. 바로 옆에 남편이 있는데 이렇게 키스할 순 없었다.
아무리 미워도 남편은 남편이니까.
억지로 밀어냈지만 점점 힘이 풀렸다. 그녀의 미약한 저항은 의미 없었다. 단단한 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으..’
겨우 혀를 뒤섞을 뿐인데 머리가 멍해졌다.
아랫배도 뜨거워지고 욱신거렸다.
“그, 그만.. 아읍.. 츄으읍..”
잠시 입이 떨어진 사이. 말해 보려 했지만 무리였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잡았다. 계속해서 키스했다.
전심전력으로 꽉 끌어안는 손길에 피가 뜨거워진 기분이었다. 멍해진 머리 때문에 생각하기 힘들었다.
‘아으..’
다리에 힘이 풀렸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풀썩 쓰러지려는 그녀를 단단한 손이 지탱했다.
그것을 느끼자 스르륵 눈이 감겼다. 얼굴 표정을 제어할 수 없었다.
‘안 되는데.. 아아..’
소중히 간직해 온 무언가가 흔들리는 기분. 단순히 혀를 뒤섞을 뿐인데 버티기 힘들었다.
몽롱해져가는 의식을 억지로 붙잡았다.
“음.. 됐네요.”
귓가에 들리는 저음에 정신이 들었다.
“읏..”
흐릿해진 초점이 잡히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웅!
[수신감도 : 132%]
어둡던 오두막이 밝아졌다. 마법진에서 뿜어진 푸른빛으로 가득했다.
거울이 있다면 보고 싶었다. 본인이 무슨 표정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보던 남자가 흡족하게 웃었다.
부끄러움에 시선을 피했다. 도저히 마주 볼 수 없었다.
*
바위 위에 올라선 시우가 눈에 내력을 집중했다.
저 멀리 원기둥 형태의 건물이 보였다. 꽤 넓었는데 축구장 정도의 크기였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에 창문하나 없는 특이한 구조였다.
저곳이 바로 흑마법사들의 근거지인 흑사탑이다.
옆에 있던 추적자가 말했다.
“···여기 맞습니다. 저 건물에서 아드님이 느껴집니다.”
시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몰래 침투해 강수호를 데리고 나오는 것이다.
‘그건 힘들겠는데.’
거리가 먼데도 각종 마법진이 느껴졌다. 한둘이 아니었다. 아예 도배된 수준이었다.
괴상하게 생긴 괴물들이 탑 주변을 맴돌았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늑대 머리 인간이 보였다.
‘저게 키메라인가.’
저주와 키메라에 능통한 학파라더니 괴물을 경비로 써먹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 끄덕였다.
딱히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어떤 강자가 있을지 기대되는 마음마저 들었다.
강자와의 싸움은 강해지는 지름길이니까.
“제가 시선을 끌겠습니다. 기회봐서 수호 구출한 다음 도시로 돌아가세요. 전 알아서 복귀하죠.”
“커, 커험.. 고, 고맙네.”
형제단을 통해 실력을 보여서인지 반대는 없었다.
단지. 한 여자가 소매를 붙잡았다.
이혜진과 눈이 마주쳤다.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조심하세요..”
묘한 정적이 흘렀다.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에서 달달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마치 전장에 나가는 남편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걱정 마세요.”
그녀의 눈을 보며 손을 잡았다. 1초가량 체온을 나눈 뒤 부드럽게 떼어냈다.
이혜진의 목덜미가 미미하게 붉어졌다.
강찬성이 인상을 찡그렸지만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분위기가 묘했을 뿐.
“그럼 도시에서 보죠.”
시우가 철가면을 꺼내 쓰며 탑으로 걸어갔다.
-크륵..
탑 주위를 떠돌던 늑대 머리 인간이 다가왔다. 주위를 맴돌더니 간 보듯 킁킁댔다.
무시하고 탑에 접근했다. 곧 거만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감각을 세우자 놈의 위치가 보였다. 탑 안쪽에서 그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무시하고 계속 다가갔다.
강철 대문 코앞까지 접근했을 때.
탑 안쪽에 있던 남자가 손짓 했다. 그러자 키메라들의 눈빛이 일변했다.
-크라아악!
주변을 맴돌던 키메라 세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서걱.
세 개의 늑대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단칼에 잘려 나간 강철 대문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뒤에서 지켜보던 흑의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주춤 뒷걸음질 쳤다.
“누, 누구냐..!”
똑같은 말이었지만 어투가 전혀달랐다. 떨리는 목소리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녀석을 빤히 보다가 말했다.
“나는 무영신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