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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194화 (194/241)

Chapter 194 - 194화 - 아카데미(33)

194화 - 아카데미(33)

“끄르억···!”

건물에서 느껴지던 진동은 고통 섞인 신음 소리에 묻혔다.

콧속에 파고든 지렁이 때문인지 앤이 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르카도가 고개를 돌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앤은 관심도 없었다. 강수호만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짐승형 마수에게 기생하는 최하급 마물이다. 원래 단순한 벌레 취급받는 녀석이지만.. 우리 흑사탑 비전으로 인간의 뇌에 기생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파아!!”

“어허. 조용.”

“끕..!”

르카도의 한마디에 앤의 입이 꽉 다물렸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만 부릅떴다.

“보았느냐? 이렇게 내 말 한마디에 복종하게 만드는 기특한 녀석이지··· 더 훌륭한 점은 저 앤이란 녀석의 의식은 그대로란 것이다.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까딱하지 못한 채 평생을 사는 것이지. 크흐흐..”

강수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물론 뇌에 기생하는 게 쉽지는 않다. 여러 조건들이 있지만··· 네 녀석이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이 필요하단 것이다. 공포와 배신감 따위의 감정들 말이다. 음..?”

부스슥..

천장에서 또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은은한 진동이 커졌다. 탁자 위에 있던 나이프가 흔들릴 정도였다.

인상을 찡그린 르카도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기생촉수가 가장 좋아하는 감정이 바로 절망이다. 인간이 언제 가장 절망하는지 아느냐?”

“···.”

“바로 희망이 무너졌을 때지. 내가 이 앤이란 녀석을 속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결코 내 본의가 아니었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이렇게 친절하게 말해 준 이유는 네 녀석을 제자로 받고 싶어서다. 이 년과 달리 너는 재능이 출중해! 그 나이에 5성이라니··· 내 모든 것을 이을 제자가 될 자격이 있다. 어떠냐! 내 제자가 될 테냐?”

강수호가 머뭇거렸다.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나무토막처럼 뻣뻣히 굳은 앤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좆까!”

하지만 르카도의 눈동자에 담긴 악의를 본 순간 깨달았다. 그를 살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에게 절망을 선사하기 위해 거짓을 속삭인 것이다.

“흐음..”

과연 르카도는 화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구구궁..!

무어라 말하려던 그가 인상을 구겼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진동이 점점 커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걱정하진 않았다. 비상 상황에 대비된 마법진은 잠잠 했으니까.

“어떤 놈이 키메라 통제라도 실패한 건가..? 얼간이 같으니. 쯧.”

르카도가 앤에게 다가갔다.

탁자 위에 놓인 주사기를 들더니 신중한 얼굴로 살폈다.

“후우..”

앤의 미간사이에 바늘이 닿은 순간.

구구궁..!!

건물이 또 흔들렸다. 르카도가 인상을 구겼다. 진동때문에 하마터면 주사를 잘못 놓을 뻔했다.

“개 같은..”

부글거리는 정체불명의 녹색 액체가 그녀의 몸속에 주입됐다.

“끄읍..”

조금 안심한 얼굴로 앤에게 말했다.

“네년. 정신 놓지 말고 잘 버티거라. 살아난다면 강해질 수 있을 거다.”

구궁..!

다시 한번 울린 커다란 진동에 르카도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망할! 여기서 꼼짝말고 기다려. 움직이지 말고!”

끼익.. 탁!

방 밖으로 나가 버리는 르카도를 보고 강수호가 눈을 빛냈다.

탁자 위에 대충 던져진 카드가 보였다.

감옥 열쇠가 바로 저곳에 있었다.

“끄아아아악!!”

앤의 입에서 소름 끼치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꾸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살덩어리가 부풀기 시작했다.

쩌엉!

“아아악!”

강철로 보이는 수갑이 버티지 못했다. 부풀어 오른 살덩이에 찌그러졌다.

그것을 본 강수호가 소리쳤다.

“앤! 저 카드! 저 카드 좀 나한테 던져 줘! 같이 탈출하자!”

앤의 목이 목각인형처럼 돌아갔다. 탁자 위에 놓인 카드를 보더니 손을 뻗었다.

그녀가 오른손으로 카드를 움켜쥔 순간. 강수호가 헤벌쭉 웃었다.

“좋아! 나한테 던지면..? 아악 뭐야!”

앤의 살이 계속해서 부풀었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카드가 살더미에 파묻혔다.

“크하아!”

짐승 우는 소리가 들렸다. 벌려진 입안엔 송곳니가 가득했다. 르카도가 주입한 녹색액체로 인한 변화가 분명했다.

“미친..!”

콰앙!

다리까지 풀려난 앤이 희번뜩한 눈으로 노려봤다. 세로로 좁아진 눈동자가 보였다. 사람이 아닌 짐승의 눈이었다.

키가 순식간에 3미터가 넘었다. 통나무처럼 굵어진 팔다리는 오우거 같았다.

“수..호! 넌.. 내.. 거!”

쾅쾅쾅!

앤이 달려들었다. 걸음마다 바닥이 갈라지는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앤이 쇠창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아앙!

“악!”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기다렸던 충격은 없었다.

실눈을 뜨자마자 기겁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앤이 발광하고 있었다.

비대해진 몸뚱이가 쇠창살 사이에 낀 것이다.

“크아악!”

쩍 벌어진 입에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했다. 딱딱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를 씹어먹으려 발버둥 쳤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으나, 뒤에는 단단한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윽..”

끼기긱.

쇠창살이 삐그덕거리는 소리에 퍼뜩 정신 차렸다. 이대로 있다간 개죽음이었다.

‘타, 탈출해야 돼!’

가장 급선무는 마력을 되찾는 것.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끊어야 했다.

“키아악!”

쉴 새 없이 열고 닫히는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저기에 팔찌를 걸면 끊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까각!

부러질 것처럼 흔들리는 쇠창살에 소름이 돋았다. 손을 뻗었을 때 앤이 조금이라도 더 들어왔다간 손이 잘려 나갈 것이다.

“익..!”

억지로 공포를 삼키고 결심했다. 기다렸다간 르카도가 돌아와 키메라가 되거나 죽을 뿐이다.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딱딱거리는 날카로운 송곳니에 팔찌를 집어넣었다.

콰직!

“돼, 됐다!”

어찌나 날카로운지 마력제한 팔찌가 단번에 두 동강났다.

기쁨도 잠시. 쇠창살이 구겨지며 앤이 감옥안으로 들어왔다.

커다란 입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악!”

땅바닥을 나뒹굴어 겨우 피했다.

콰앙!

그가 있던 벽에 집채만큼 커진 앤이 처박혔다.

정신없는 와중에 앤 다리 사이를 데굴데굴 굴렀다. 넓어진 쇠창살 사이로 몸을 날렸다.

“내.. 거어!!”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앤을 뒤로하고 문으로 달려갔다.

철컹!

“뭐야!”

어느새 문이 잠겨 있었다.

‘여, 열쇠.. 아! 카드!’

반사적으로 앤의 오른손을 살폈다. 손바닥에 파묻힌 카드가 얼핏 보였다.

이곳을 나가려면 저게 필요했다.

“윽..”

망설임은 잠깐이었다. 탁자에 놓인 나이프 중 가장 긴 것을 집어 들었다. 수술용 나이프 처럼 생겼는데 신기하게도 날이 컸다.

손바닥만 한 단검이라 해도 무방했다. 그것을 겨누고 검기를 피웠다.

‘이거면..!’

이제 막 쇠창살에서 빠져나온 앤에게 달려들었다. 잽싸게 오른팔을 잘라 카드를 빼낼 생각이었다.

그녀의 오른손에 검을 휘두른 순간.

뻐억!

몸이 부웅 떠올랐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땅바닥이 느껴졌다.

“어윽..”

삐이이 하는 이명과 함께 초점이 잡히질 않았다. 인지도 못한 사이에 땅에 처박힌 것이다.

쿵쿵!

천천히 걸어오는 앤을 피할 수 없었다. 손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쿨럭..”

숨쉬기가 어려웠다. 헛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이 폐도 상한 것 같았다.

바닥에 축 늘어진 그를 앤이 집어 들었다.

“히히.. 내 거!”

맛있는 음식이라도 되는 듯 킁킁거렸다. 입맛을 다시더니 입이 쩍 벌어졌다.

머리보다 커진 목구멍을 보다가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푹!

“칵..?!”

훤히 드러난 입천장에 검기맺힌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최대한 깊게 꽂고 뇌를 헤집었다.

방심한데다 이성도 없는 괴물이라 통한 일격이었다.

‘됐나..?’

당장에라도 그를 씹어먹을 것 같던 앤의 동작이 멈췄다. 선 채로 굳어 버렸다.

아직도 그를 붙잡고 있는 오른손을 보다가 나이프를 휘둘렀다.

퍼억!

어찌나 질긴지 자르기도 힘들었다. 검기 맺힌 나이프로 톱질하듯 오른손을 잘랐다.

쿠웅.

손목이 끊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낙법도 제대로 못했다.

“큭..”

입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전신이 저릿했다. 아무래도 뼈가 박살 난 것 같았다.

“으으..”

잘려 나간 오른손을 파헤쳤다. 흐려져 가는 정신을 다잡고 혼신의 힘을 다 했다.

촤악!

겨우겨우 뽑아낸 카드를 살폈다. 운 좋게도 겉보기엔 멀정했다.

‘제발!’

문을 향해 기듯이 걸었다.

띡.

문에 카드를 들이대자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환희와 함께 문고리를 돌렸다.

철컥!

복도가 보였다. 잠시 망설였으나 용기를 내서 걸었다.

걸을 때마다 눈앞이 새하얘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절뚝절뚝 쉴 새 없이 걸었다.

그렇게 복도 모퉁이를 돈 순간.

“아..?”

-크르륵..

높이만 4미터가 넘는 커다란 도마뱀과 눈이 마주쳤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수십 마리.

농밀한 마기가 훅 풍겼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앤보다 강해 보였다.

-먹이다. 먹어도 되나?

-안 된다. 주인님 장난감이다.

-크륵.. 아쉽다..

말까지 하는 놈들을 보니 세상이 노래진 기분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카드가 놈의 미끼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게 희망 뒤의 절망인가..?’

허탈함에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커다란 도마뱀 한 마리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기다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말했다.

-인간! 팔 하나만 줘라. 맛만 살짝 보고.. 크륵?

구구궁..!

또다시 건물이 흔들렸다.

도마뱀이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스멀스멀 새어 나오던 마기가 폭증했다.

-크륵.. 뭔가 이상..

콰아앙!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빛기둥이 내리꽂혔다.

“윽!”

눈부신 광채가 지나고. 흐려진 시야로 주변을 살폈다. 앞에 있던 도마뱀이 다리만 남은 채 증발했다.

“이게 무슨..”

천장에 난 구멍을 통해 무언가 툭 하고 떨어졌다. 수박 정도 크기의 동그란 물체.

-키리이익!!

그것을 본 키메라들이 기겁했다. 강수호도 마찬가지였다.

“르, 르카도..?”

그를 가지고 놀던 흑마법사 르카도. 녀석의 머리였다. 경악과 공포로 물든 표정 그대로 잘려 있었다.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을 때.

천장에 난 구멍을 통해 누군가 내려왔다.

“여깄었네?”

남자가 철가면을 슬쩍 치우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너, 넌..!”

입이 쩍 벌어졌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장난감이던 존재.

게다가···.

하루 종일 봤기 때문에 보자마자 알아챘다.

환상속에서 지독하게 엄마를 괴롭히던, 바로 그 체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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