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6 - 196화 - 아카데미(35)
196화 - 아카데미(35)
“막아!”
늙은이의 고함과 함께 사방에서 마법들이 쏟아졌다.
검은 화살부터 안개 형태의 저주까지.
백 개가 넘는 공격을 그대로 맞았다간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다. 항마력도 한계가 있었다.
‘점멸.’
팟!
찰나만에 위치가 바뀌었다. 온갖 마법들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점멸! 전이방지마법진을 작동시켜라!”
“예!”
중년 마법사가 허겁지겁 무언가 하려 했다. 곧장 달려들자 놈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본월!”
7성급 늙은이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쿠쿠쿵!
뼈로 된 담벼락이 솟아오르고, 수십 발의 검은 화살이 내리꽂혔다. 단단한 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슬로우! 슬로우!”
몇몇 마법사들이 합창하듯 저주를 퍼부었다.
모래주머니라도 찬 것처럼 전신이 무거워졌다. 중년마법사가 안심한 얼굴로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우우웅!
거미줄처럼 얇은 선이 사방에 깔린 느낌이었다.
예전 엘프 왕자도 사용했던 전이방지마법진. 점멸같은 공간 이동 마법을 막는데 특효였다.
“됐다! 천천히 포위해서 제압해!”
7성급 마도사가 복잡한 수인을 맺었다. 제대로 된 방비도 없는 것을 보고 눈을 빛냈다.
월광형(月光炯).
찰나만에 마도사에게 접근했다. 경악한 늙은이가 눈을 부릅떴다.
전이 방지 마법진을 단단히 믿은 것인지 대응이 한 박자 느렸다.
반사적으로 배리어를 펼쳤지만 부실했다.
콰아앙!
푸른빛이 내리꽂혔다. 광채를 머금은 검강에 장막이 박살 났다. 정수리를 단번에 베어버릴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크루악!”
괴상한 소리와 함께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반쯤 잘려 나간 정수리 대신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제물..?’
오른팔을 바치고 목숨을 부지한 늙은이가 이쪽을 노려봤다.
“개 같은 놈이!!”
살짝 아쉬웠다. 7성급 마도사의 목을 따버릴 기회였는데 아쉽게도 실패했다.
거리를 벌리더니 지팡이를 휘둘렀다. 아까와 다르게 두터운 배리어가 그를 감쌌다.
잠시 소강상태가 된 사이. 몸을 살폈다.
‘다친 곳은 딱히 없고, 내력은 절반 정도 남았나.’
발바닥을 통해 스며드는 저주를 흩어 버렸다. 가만히 있기만해도 저주가 몸을 침식했다.
흑사탑에서 발동된 마법진 중 하나였다.
‘음..’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남은 적은 7성급 마도사 한 명, 그리고 스무 명이 넘는 흑마법사들이 보였다.
대부분 5, 6성이었다. 4성 이하는 이미 모조리 죽었다.
늙은이가 이를 갈더니 소리쳤다.
“어디서 온 놈이냐!”
“무영신투문.”
“무영신투문..? 중국이면.. 설마 당에서 온 것이냐?”
“글쎄···.”
대충 대답하며 빈틈을 살폈다. 남은 녀석들은 이미 마도사를 중심으로 모였다.
그들을 감싼 배리어의 마기가 농밀했다. 적어도 단시간에 깨부수긴 힘들어 보였다.
‘슬슬 무린가.’
어차피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이제 빠져나가도 상관 없었다.
남은 내력을 계산하고 있을 때. 얼굴을 굳힌 늙은이가 말했다.
“여기까지 하고 물러나면 얌전히 풀어 주마.”
“이대로 풀어 준다고?”
“그래. 더 싸워 봐야 서로에게 손해 아니겠느냐.”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놈을 비웃었다.
은밀하게 조여드는 마력이 느껴졌다. 딱 봐도 시간 끌려는 수작이었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데. 낌새를 눈치챈 듯 늙은이가 이를 악물었다.
“어딜!”
갑자기 검은 수정을 집어 던졌다. 일그러진 얼굴에 아깝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모두 결계에 집중해라!”
구구궁!
건물 잔해에 파묻혀 있던 마법진이 동시에 빛났다. 급격히 폭증한 마기에 어깨가 짓눌렸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이기 힘들었다.
콰직!
발 디딘 바닥이 움푹 파였다. 실제로 무게가 늘어난 것이다.
사방에 널려 있던 시체들이 검은수정에 모여 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막을 새도 없었다.
항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무형의 구속을 풀어내고 검을 휘둘렀다.
촤악!
검기를 날렸으나 살더미에 파묻혀 사라졌다.
시체가 끊도 없이 모여 들었다. 그가 죽인 흑마법사 뿐만 아니었다. 땅속 깊숙이 묻혀 있던 백골들도 허공에 떠올랐다.
검은 수정을 중심으로 살덩이가 모였다. 커다란 구체가 만들어졌다.
-아아악!
시체가 입을 벌리고 비명을 질렀다.
부룩!
역겨운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부풀었다. 자가증식 하듯 쭈욱 늘어났다.
-크라아악!
‘뱀?’
순식간에 자라나더니 구렁이 형태로 변했다. 자세히 보면 온갖 시체로 이루어진 끔찍한 생김새였다.
-아아악! 아파아!
-죽어어!
이미 죽은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인상을 찡그렸다. 빈말로도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콰아아악!
구렁이의 목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부풀었다. 치솟는 마기가 심상치 않았다.
‘육화(肉火).’
감각을 끌어올린 순간.
“놈을 죽여!”
늙은이의 명령과 동시에 입이 쩍 벌어졌다.
푸슈우웃!
검은물이 직선으로 쏘아졌다.
저게 뭐든 간에 맞아서 좋을 일은 없었다.
월광형(月光炯).
땅을 박차 검은 물을 피했다.
치이이익!
어찌나 빠른지 수압만으로 바위가 잘려 나갔다. 뒤이어 바닥이 녹아내렸다. 용암처럼 지글거리더니 짙은 연기가 뿜어졌다.
‘윽.’
코를 찌르는 썩은 내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강력한 극독이었다.
구렁이가 사람 팔로 이루어진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취리이익!
괴상한 소리와 동시에 바람이 몰아쳤다.
휘이잉!
소용돌이가 생기더니 독 연기가 사방에 흩어졌다.
“크하하! 천완사의 독은 항마력으로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광소를 내뱉는 늙은이의 목소리가 거슬렸다. 싸가지없는 얼굴에 남아 있는 왼팔마저 썰어 주고 싶었다.
‘후..’
일단 빠져나갈 구멍부터 살폈으나 여의치 않았다. 반구 형태의 결계에 사방이 막혀 있었다.
끊임없이 뿜어진 독연기에 내력이 빠르게 줄었다.
‘음..’
시간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독액을 피해 구렁이에게 달려들었다.
촤아악!
검강으로 몸뚱이를 베어냈다. 상처에서 검은 피가 쏟아졌다. 반사적으로 숨을 멈췄다. 피마저 독이었다.
게다가 베어낸 부분에서 살더미가 빠르게 차올랐다.
재생력마저 갖춘 괴물이었다.
‘생각보다 까다로운데.’
어느새 길이만 30미터가 넘게 자라났다.
콰앙!
구렁이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감각을 끌어올리고 쏟아지는 공격을 피했다.
콰앙! 콰앙!
흑마법사들이라고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마력이 가장 약한 5성급들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들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갰다. 결계를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사일을··· 아니다.’
그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사용하고 난 뒤 탈력감이 문제였다.
구렁이의 공격을 피하며 살점을 잘라 냈으나 곧 재생됐다.
미세하게 들이마신 독연기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재생보다 그 속에 흐르는 피가 문제였다.
어찌 상대할까 고민하다 무언가 떠올랐다. 성감대를 파악할 때나 사용했던 스킬.
‘약점파악.’
구렁이 몸 곳곳에 빨간 점이 생겼다.
그런데 급소 위치가 이상했다. 머리나 내장같은 곳이 아닌 몸뚱이 한복판에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저기가 약점이라고?’
의문을 접어두고 몸을 날렸다. 어차피 살덩어리가 모인 괴물이니 어디가 약점이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촤아악!
검강의 위력은 명불허전이었다. 커다란 살점이 단칼에 떨어져 나갔다.
“아악!”
한 흑마법사가 피를 토했다. 잘린 살점 사이로 지렁이처럼 생긴 촉수가 꾸물거렸다.
“안 돼! 막아!”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약점이 맞았다.
풍신결로 몸을 가볍게 하고 속도를 높였다.
촤악! 촤악!
약점으로 보이는 붉은점은 약 10개.
그중 네다섯 개를 단번에 베어 버렸다.
“아아악!”
흑마법사들의 비명과 동시에 구렁이가 멈칫했다.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괴상한 행동을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약점만 골라 베자 마도사가 다급해졌다. 무언가 하려했지만 그가 더 빨랐다.
촤악!
마지막 약점마저 썰어 버린 순간.
-끼에에엑!
구렁이가 미쳐 날뛰었다. 결계를 향해 몸을 부딪치고 독액을 사방에 뿜어댔다.
콰아앙!
결국 결계가 산산조각 났다. 거대한 몸뚱이가 끊임없이 부딪친 결과였다.
풀려난 구렁이가 살기 어린눈으로 인간들을 노려봤다.
딱 봐도 통제를 잃은 모습이었다.
지친 숨을 고르고 내력을 다스렸다.
‘월영신(月影神).’
은신술을 사용해 기척을 죽였다.
이제 구렁이의 시선은 오로지 흑마법사들을 향했다.
-크아아악!
증오에 찬 눈으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앙!
거대한 꼬리가 벼락 같이 내리꽂혔다. 배리어가 거칠게 흔들리고, 흑마법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콰앙! 콰앙!
계속되는 공격에 한 흑마법사가 버티지 못했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더니 땅을 박찼다.
“안 돼! 자리를 지켜!”
늙은이의 말도 무시하고 날아올랐다. 장막에서 튀어나와 도망치려던 순간.
손가락을 내질렀다.
“커억..!”
항마력을 담은 지풍이 쏘아졌다. 배리어에 구멍이 뚫려 주변에 가득하던 독기가 빨려 들어갔다.
“아아악!”
흑의인의 몸이 단번에 녹아내렸다.
그 광경을 보며 눈을 빛냈다. 놈들을 몰살시킬 기회가 생겼다.
기척을 죽이고 주변을 맴돌았다.
흑마법사들이 유리해지면 놈들에게 지풍을 날렸다.
“아아악!”
반대로 구렁이가 유리하면 은근슬쩍 도움을 줬다.
“개잡놈이..! 놔줄 테니 당장 꺼져라!”
이쪽을 노려보는 부탑주를 비웃었다.
“늙은이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군.”
놈에게 지풍을 갈겼다. 배리어가 거칠게 진동했다. 구멍이라도 뚫렸다간 사방에 가득한 독기가 몰아칠 것이다.
“큭!”
“처신 잘하라고.”
“제기랄!”
검지 손가락을 까딱이자 늙은이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인벤토리에서 인삼 뿌리 형태의 영약을 꺼냈다. 팝콘먹듯 우물거리며 놈들을 구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