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7 - 197화 - 아카데미(36)
197화 - 아카데미(36)
구렁이와 흑마법사들의 싸움이 계속됐다.
7성 늙은이의 지휘 아래 합동마법을 펼쳤다.
파지지직!
검은 아지랑이가 뭉치더니 커다란 용이 됐다. 강렬한 전격 소리를 내며 구렁이에게 쏘아졌다.
-끼에엑!!
귀 따가운 괴성과 함께 구렁이 동작이 멈췄다. 감전된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한 중년 남자가 눈을 빛냈다. 품에서 지렁이 형태의 촉수를 꺼내 들었다.
‘저건?’
베어낸 약점에서 꾸물거리던 촉수였다. 딱 봐도 저게 구렁이를 통제하는데 중요한 요소였다.
중년인이 구렁이에게 촉수를 던졌다.
촤악!
당연히 검기를 날려 잘라버렸다.
“안 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그를 비웃었다.
‘오..?’
-키에에에엑!!
구렁이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흑마법사들을 노려보더니 화염을 내뱉었다.
독연기에 불이 붙더니 화염폭풍이 몰아쳤다. 떨어져 있음에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아아악!”
버티지 못한 흑마법사들이 하나둘씩 바닥에 허물어졌다. 마력탈진이었다.
7성 늙은이가 발악하듯 지팡이를 휘두르고 전투가 치열해졌다.
-크르아악..
시간이 지나고, 거대 구렁이의 힘이 빠졌다. 재생이 느려지고 연신 뿜어지던 독액의 기세도 약해졌다.
흑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파리해진 얼굴로 피를 토하고 비틀거렸다.
“흠..”
슬슬 때가 됐다. 양쪽 모두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위치를 옮겼다. 구렁이와 흑마법사들을 일직선으로 맞췄다.
검을 쥐고 집중했다. 영약을 씹으며 푹 쉬었기에 내력은 충분했다.
‘사일(射日).’
구구궁!
찬란한 검강에 무언가 추가됐다. 검을 겨누자 심상치 않은 마력이 휘몰아쳤다.
반쯤 무너진 흑사탑이 부르르 떨렸다.
눈을 부릅뜬 늙은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나, 나를 죽이면 네놈은···!”
쓸데없는 말은 한 귀로 흘렸다. 사일에만 집중했다.
까드득.
급격히 늘어난 검 무게에 어깨가 뻐근해졌다. 검 자루를 꽉 움켜쥐며 정신을 고양시켰다.
구렁이와 흑마법사들이 한눈에 담긴 순간. 전신 내력을 쥐어짰다. 날카로운 창을 상상하며 검강에 담았다.
콰직!
진각을 밟으며 검을 뻗었다.
사일검강(射日劍罡) : 관천(貫天).
쩌어엉!
강렬한 섬광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구렁이와 흑마법사들을 단번에 꿰뚫었다.
두꺼운 살더미는 물론이고 배리어까지 관통됐다.
-끼에에에엑!
쿠웅!
구렁이가 단말마를 내뱉으며 쓰러졌다. 커다란 몸집이 땅바닥에 닿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사아아..
사일로 인한 구멍이 급격하게 커졌다. 주먹만 한 크기에서 시작된 열기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빌딩 크기의 구렁이가 타들어 갔다. 재가 되어 흩날렸다.
“후우..”
전신이 물먹은 것처럼 축 처졌다. 억지로 내력을 끌어올려 탈력감을 지웠다.
긴장을 풀지 않고 감각을 세웠다. 구렁이 뒤에 있던 흑마법사들을 자세히 살폈다.
그들은 구렁이와 다르게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이미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딱 한 명을 제외하고.
“쿨럭.. 크으..”
7성급 늙은이. 마도사답게 아직도 살아 움직였다. 물론 멀쩡하진 않았다.
사지는 없고 머리와 상체 일부만 남았다. 말 그대로 목숨만 부지한 것이다.
가만 놔둬도 곧 죽을 치명상이었다.
“사, 살려주게.. 커흑..!”
놈을 가만히 내려보다가 물었다.
“네놈이 흑사탑 부탑주라고?”
“포, 포션..”
당장 숨넘어갈 것 같았다. 싸구려 포션을 대충 뿌려 줬다. 그것만으로 안색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이 늙은이. 네놈이 부탑주면 탑주는 누구냐?”
7성급 마도사가 부탑주라고 불릴 때부터 들었던 의문이었다.
늙은이의 입이 꾹 다물렸다. 거칠게 떨리는 눈동자에서 얼핏 두려움이 엿보였다.
“나, 나도 모르네.”
“하.. 누군지도 모르는 놈을 탑주로 모신다고? 말하기 싫으면 그냥 가라.”
검을 겨누자 황급히 소리쳤다.
“지, 진짜 모르오! 가끔 와서 제물로 쓸 키메라나 인간들을 데려갈 뿐이오!”
눈가를 찌푸리자 녀석이 허겁지겁 말했다.
“무, 물론 대가가 없는 건 아니오. 본래 6성이던 나를 7성으로 만들어 주셨으니. 그것만으로도 충성할 가치가 있다고··· 쿨럭..!”
늙은이가 피를 토했다. 하얗던 수염이 빨갛게 젖었다. 얼마 남지도 않은 마력이 급속도로 사그라졌다.
“사, 살려주게.. 아니, 살려주십시오. 커흑.. 노, 노예가 돼서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삶에 대한 갈망이 대단했다. 죽어라 싸우던 상대에게 목숨을 구걸하다니.
“흐음···.”
“저를 거두시면 쓸모가 많을.. 컥!”
서걱!
고민하는 척 하다가 단칼에 베어 버렸다. 저주를 갈고 닦은 음흉한 마도사를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었다.
어찌나 원통한지 눈을 부릅뜬 채로 죽었다. 시체를 보다가 손에 화기(火氣)를 모았다.
손가락을 튕기자 작은 불똥이 날아갔다. 혹시나 해 항마력까지 듬뿍 먹인 불꽃으로 시체를 재로 만들었다.
‘이놈은 됐고.’
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없는 구렁이 시체를 살폈다.
어찌나 덩치가 큰지 아직도 절반 넘게 남아 있었다. 재로 변하는 속도를 보아 1~2분 정도 더 걸릴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이건..’
구렁이 목 부분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아직도 살아 있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검은 수정?’
구렁이를 소환할 때 던졌던 것. 살더미 사이에 파묻힌 검은색 보석이 보였다.
아까워하던 늙은이의 표정을 보아 귀한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놔두면 사일에 휘말려 재가 될 것이다. 검을 휘둘러 살을 파헤쳤다.
검은 수정만 뽑아내려다 멈칫했다. 수정에 달라붙은 큼직한 살덩이가 보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허공섭물로 들어 올렸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확 풍겼다. 머리가 아찔했다.
툭툭.
적당한 막대기를 집어 들고 조심히 찔러봤다.
탄력적인 게 물풍선같은 느낌이었다. 살덩어리 안에 액체가 가득했다. 딱 봐도 독액이었다.
‘독 주머니인가?’
끊임없이 튀어나오던 독액의 근원같았다. 당연히 인벤토리에 챙겼다.
주변을 둘러보니 독기에 절여진 건물 잔해만 가득했다. 구렁이는 이미 재가 됐고, 살아 움직이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황량한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부탑주라는 자가 7성급 마도사였다. 탑주는 당연히 그보다 경지가 높을 것이다.
‘8성인가.’
탑이 무너졌는데도 오지 않았다. 당장 오기 곤란한 상황이거나 흑사탑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다행이면서 한편으론 아쉬웠다. 강자와의 싸움은 강해지는 지름길이니까.
‘이길 수 있나?’
8성급과 붙어본 적이 없으니 추측하기 힘들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에이 됐다.’
탑주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아무리 8성이라도 흑마법사가 도시에서 소란피우긴 힘들다.
앞으로 도시밖에 나갈 때 조심하면 그만이었다.
이대로 복귀할까 하다가 주변을 살폈다. 이왕 녀석들을 몰살 시켰으니 창고라도 털어갈 생각이었다.
20분 정도 잔해를 뒤적거렸다.
‘오?’
땅에 파묻힌 금고를 발견했다. 한쪽 길이만 10미터가 넘는 커다란 금고였다. 제법 단단했다. 건물이 무너져 내렸는데도 멀쩡했다.
어떻게 열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서걱.
검강을 피워올려 자물쇠 부분을 썰어 버렸다.
-웨에에엥! 에에엥!
시끄러운 경보가 울렸으나 금고 주인은 시체가 된 지 오래였다. 마력흐름을 흩트리자 곧 조용해졌다.
철컥.
‘이게 뭐야.’
기대감을 담아 열었다가 실망했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지팡이부터 마도서까지. 딱 봐도 귀한 물건들이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 마기에 절여져 그가 사용하긴 곤란했다.
작게 혀를 차곤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녹여서 재료로 써도 유용한 것들이었다.
‘어?’
낡아빠진 책을 집었다가 멈칫했다.
표지에 있는 글자를 읽을 수 없었다. 모르는 글자가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이곳은 시스템이 있는 지구.
어지간한 글자는 모두 해석되는 게 정상이었다.
‘균열에서 넘어온 건가.’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다행히 흑마법사들의 해석본이 있었다.
‘염화비술(念化秘術)?’
내용을 빠르게 훑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정신력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술법이었다.
마력 없이 의식의 힘만으로 상대를 타격하고 제압하는 비술.
‘으음..?’
생각보다 쓸 만해 보였다. 자세를 바로 하고 자세히 살폈다. 한참 읽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입문하려면 모든 마력을 버려야 한다고?’
시작부터 조건이 까다로웠다. 몸에 쌓인 마력이 없어야 입문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비 각성자가 익힐 순 없었다. 최소 검기를 사용할 만한 정신력도 필요했으니까.
검증도 안 된 기술에 마력을 포기할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창고에 처박혀 있는 이유가 있었다.
곰곰이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에겐 유용했다.
다른 전생체에 넘어갈 때 마력이 없을 수도 있으니 그때를 기약했다.
그 뒤로도 잔해를 뒤적이며 다양한 보물들을 찾았다.
방하나를 가득채울 정도의 마정석들과 정체 모를 아티팩트들을 얻었다.
‘이 정도면 됐다.’
파묻힌 것들이 남았을 테지만 더 뒤지긴 귀찮았다.
항마력을 담은 검기를 사방에 흩뿌렸다. 다양한 특성과 가호가 있는 세상이니 대비한 것이다.
서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풍신결로 몸을 가볍게 하고 뛰듯이 걸었다.
지금 당장 보고 싶은 얼굴이 있었다. 그녀의 풍만한 몸매를 생각하니 입안에 침이 고였다.
이혜진.
강수호 엄마에게 보상을 받아 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