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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208화 (208/241)

Chapter 208 - 208화 - 무협지구(3)

208화 - 무협지구(3)

잿빛 안개가 가득한 협곡으로 들어갔다.

“흠..”

깊숙이 들어갈수록 안개가 짙어졌다. 얼마 걷지 않아 시야가 좁아졌다. 10미터 바깥도 잘 안 보였다.

프스슥..

차고 있던 팔찌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제독 효과가 있는 아티팩트였는데. 10분도 버티지 못했다.

다른 아티팩트를 꺼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얼마 안 돼서 고장 났다.

아티팩트마저 고장내다니 기이한 안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이 쭉 빠졌다.

단전에 가득하던 내공이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한 산공독이 아닌 거 같은데···.’

마력 제한 팔찌와 결이 달랐다. 흐름이 굳는 게 아니라 몸에 구멍 난 것처럼 내공이 빠져나갔다.

쓰고 있던 방독면을 던져 버렸다. 혹시나 하고 써봤던 건데 의미 없었다.

쐐액!

나무 위에 있던 뱀 한 마리가 섬전처럼 달려들었다. 머리가 세모꼴인 것이 딱 봐도 독사였다. 날카로운 이빨에서 독액이 번들거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독니를 피했다.

서걱.

검을 휘둘러 썰어 버렸다.

두 동강난 뱀을 내려다보다 눈가를 좁혔다. 독곡 생명체들은 태생적으로 기척이 옅었다.

평소와 감각이 달랐다. 내공이 사라지자 기감 역시 약해졌다. 장님이 된 것처럼 답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독사따위한테 기습당하다니.’

주먹을 쥐었다 피면서 신체를 점검했다. 육체 강화는 멀쩡히 작동했다. 눈을 감고 감각을 세웠다.

오랜만에 기감이 아닌 순수한 오감에 집중했다.

희미하게 들리는 바람 소리에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날아든 독충 한 마리가 절반으로 쪼개졌다.

“음..”

검날에 묻은 체액을 털어내고 발걸음을 옮겼다.

산황초는 독곡 전역에서 자라난다. 하지만 입구 근처엔 노란 풀이 하나도 없었다.

채집꾼들이 싹 털어간 뒤였다. 역시나 대량으로 얻으려면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한참을 걷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끼잇!

귀엽게 생긴 조그마한 생명체를 발견했다.

‘다람쥐?’

꼬리에 보라색 줄무늬가 가득했다. 경계하듯 이쪽을 바라보던 다람쥐가 투투둑 달려갔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산딸기 앞에 멈췄다. 검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딸기였다.

멈칫멈칫 이쪽을 경계하던 녀석이 산딸기를 깨물었다.

찹찹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호기심이 들 정도였다.

‘독이 없나?’

깨물린 과육에서 투명한 수액이 뚝뚝 흘러내렸다. 나뭇가지를 타고 주르륵 떨어진 그것이 바닥에 닿는 순간.

치이익..!

흙이 지글거리며 독한 연기가 뿜어졌다.

그런데도 다람쥐는 멀쩡했다. 얼핏 보이는 앞니가 검은색이었다.

“허..”

독곡답게 저런 작은 짐승마저 독을 가진 것이다.

*

피부에서 느껴지는 바람이 습했다.

추위와 더위를 느끼지 않는, 한서불침의 경지에 오른지 오래였지만. 육체를 휘돌던 내공이 사라지자 별수 없었다.

‘더럽게 덥네.’

한 여름에 밀림을 걷는 기분이었다. 우거진 수풀에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날씨만 문제가 아니었다.

-위이이잉!

백마리가 넘는 벌떼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쉬이익! 쉐엑!

검을 휘두르다 인상을 찡그렸다. 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대로 두면 피부를 타고 기어 다닐 것이다.

“쯧.”

육체 강화로 단단해진 피부를 뚫을 순 없겠지만. 불쾌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우웅!

검 끝에 맺힌 아지랑이가 다양한 곡선을 그렸다. 채찍처럼 길어진 검기가 사방을 휩쓸었다.

촤자자작!

백마리가 넘던 벌떼가 모조리 토막 났다.

아껴놨던 마력코어를 연결한 것이다. 마력코어에 가득하던 내공이 빠르게 유실되기 시작했다.

연결과 동시에 기이한 안개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기괴한 독물들이 튀어나왔다. 웬만하면 맨몸으로 때웠지만 가끔씩 마력 코어를 사용했다.

푸른 형광 가루를 뿌려대는 나비떼를 만났을 때. 결국 마력코어가 바닥을 보였다.

“허참..”

약간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여기서 버티는 거지?’

독곡 초입에서 활동하는 채집꾼들이 제법 있다 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바닥난 마력코어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주변에 마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독곡 내부에서는 마력코어가 회복되질 않았다. 아무래도 기이한 안개 때문인 것 같았다.

*

번쩍.

주변 풍경이 한순간에 변했다.

후덥지근한 밀림에서 쾌적한 현대식 침실로.

“하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니 살 것 같았다.

마력 코어를 충전할 겸. 아카데미 기숙사로 잠시 피신했다.

코어는 모든 전생체에서 사용 가능하다. 여러 지구에서 하나의 코어를 공용으로 사용하는 형태였다.

헌터 지구에서 흡수한 각성 능력을 다른 지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유였다.

‘항마력도 가능하면 좋을 텐데.’

아카데미 지구의 특성은 시스템에 속한 힘이었다. 때문에 다른 지구에선 사용할 수 없었다.

‘뭔가 찝찝한데.’

아직도 밀림에 있는 것 같았다. 이 몸은 깨끗했지만 정신적으로 찝찝했다.

온갖 독물들의 체액이 아직도 몸을 뒤덮은 기분이었다.

곧장 샤워실로 향했다. 시원하게 씻은 뒤 침실로 들어갔다.

“아멜리아?”

침대에서 몸을 웅크린 그녀가 보였다.

“흠냐, 흠냐..”

거대한 가슴을 쿠션처럼 끌어안고 자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시우.. 조아아.. 헤헹..”

무슨 꿈을 꾸는지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밀림을 헤맨 피로가 싹 풀렸다.

당연히 옆에 누웠다.

“우웅..?”

눈을 절반쯤 뜬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시우다아..”

당연하다는 듯 품안에 파고들었다. 향긋한 향기와 함께 풍만한 가슴살이 짓눌렸다. 극상의 부드러움이었다.

육체단련을 거의 하지 않은 마법사답게 어딜 만져도 말랑거렸다.

아멜리아가 졸린 듯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안아줘어.. 빨리이.. 응!”

당연히 꽉 끌어안았다. 그래도 모자란지 품안에서 비비적거렸다. 등을 살살 쓰다듬어 주자 조금씩 조용해졌다.

“웅냐아.. 따뜻해서 조아..”

웅얼거리던 그녀의 숨소리가 점차 가늘어졌다. 입가에 맺힌 미소와 함께 잠든 것이다.

손바닥으로 부드러운 살결을 쓰다듬다가 두 눈을 감았다.

독곡을 헤맨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

촤악!

수박만한 크기의 두꺼비가 반으로 갈렸다. 기괴한 생김새였다. 나무 껍질같은 거친 피부에 혀의 길이만 1미터가 넘었다.

‘끝이 없네.’

바닥을 훑었지만 노란 약초는 보이지 않았다. 밀림을 헤맨지 벌써 20시간이 훌쩍 넘었다.

당연히 잠도 못 잤다. 이런 곳에서 잠들었다간 어떤 일을 당할지 뻔했으니까.

피곤할 때마다 마력 코어의 재생력으로 회복했다. 코어가 바닥나면 아카데미나 헌터 지구로 돌아가 마력을 충전했다.

‘마력코어를 계속 충전하기도 좀 그런데···.’

다른 지구로 갔을 때 이곳의 시간이 흐르진 않지만. 체감은 달랐다. 벌써 일주일 넘게 밀림을 헤맨 기분이었다.

“어?”

가파른 절벽 아래 나무로 된 건축물이 보였다.

‘이런 곳에 마을이라고?’

3미터 높이 울타리와 수십채의 목조 건물이 보였다. 독곡에 사람이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가 보자.’

절벽에서 단숨에 뛰어내렸다.

중간중간 튀어나온 부분을 툭툭 밟으며 빠르게 내려왔다. 내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이 정도는 손쉬웠다.

투욱.

순식간에 바닥에 닿았다. 마을 입구로 향했는데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훤하게 뚫린 대문을 통과해 마을로 들어섰다.

-쉬리릿.

독사 한 마리가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길거리에 독사가 나다녔다. 독곡답게 멀쩡한 마을은 아니었다.

무시하고 길을 따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응..?”

구멍 숭숭 뚫린 옷을 입고, 입술이 갈라진 게 지쳐 보였다.

“외지인..?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쪽을 유심히 살피던 그가 입을 쩍 벌렸다.

“허어..!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겨우 검 한 자루 들고 여기까지 왔다고?”

“여긴 뭐 하는 곳이오? 독곡에 마을이라니?”

“흐··· 이곳은 딱히 이름 같은 건 없소. 그냥 나 같은 양민들이 모여 사는 산골 마을이오.”

흐릿하게 웃는 것이 나름 사연이 있어 보였지만 신경 쓰고 싶진 않았다.

“마을에 쉴만한 곳은 없소? 객잔 같은 곳이면 좋겠는데.”

“커험.. 글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씨익 웃더니 입을 딱 다물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주머니를 툭 던졌다. 찰랑이는 물이 가득한 주머니였다.

“깨, 깨끗한 물?”

대충 위장용으로 들고 다니던 물주머니였다.

“꿀꺽.. 꿀꺽..! 크하!”

채워 놓은지 이틀이 지난 물이다. 그런데도 천상의 감로수라도 되는 것처럼 시원하게 들이켰다.

물을 마신 남자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노골적인 탐욕에 혀를 찼다.

길가에 놓인 돌멩이를 툭 차올렸다. 손으로 잡아채 주먹을 쥐었다.

파삭.

순수한 악력에 돌멩이가 산산조각 났다. 돌가루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헙..!”

남자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내공도 사용할 수 없는 이곳에서 저런 힘이라니. 내공이 없으면 근육도 약해지는 게 정상인데. 말도 안 되는 악력이었다.

“아하하···! 외, 외공의 초고수셨군요.”

“흠.”

녀석을 가만히 내려다 봤다.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삐질 흘러내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팍 숙였다.

친절한 안내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을 뻗으며 말했다.

“저 길따라 쭉 가시면 이층짜리 건물이 나올 텐데. 거기가 마을의 유일한 객잔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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