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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211화 (211/241)

Chapter 211 - 211화 - 무협지구(6)

211화 - 무협지구(6)

추산저를 해치운 뒤론 거칠 것이 없었다.

시우가 황금빛이 반짝이는 약초를 뜯었다. 약성이 절정이 이른 산황초였다.

확실히 실력 있는 길잡이는 달랐다. 하루 만에 열 포기에 달하는 산황초를 채집했다.

갈천이 지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우.. 독곡 초입에서 제가 봐뒀던 산황초는 이게 전부입니다. 이제 일일이 뒤져야 하는데. 하루에 하나 캐기도 힘들 겁니다.”

“그럼 이제 중심부로 가지. 거기 가면 많다고 하지 않았나?”

눈치 보던 갈천이 말했다.

“사실···. 대협이 추산저를 처리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릴 생각이었습니다. 괜히 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 같아 찝찝했으니까요.”

“괜찮으니 신경 쓰지말게.”

“예. 독곡 중심부로 안내하겠습니다.”

*

잿빛 안개가 조금씩 짙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갈천이 발걸음을 멈췄다. 신중한 표정으로 전방을 살피더니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저기 앞에 보이는 늪지부터 중심부입니다.”

안개 사이로 암녹색 늪지가 보였다.

표면에서 기포가 부글거렸다. 공깃방울이 툭 터질 때마다 희미한 잿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 늪지가 독곡 초입과 중심부를 가르는 경계선이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중심부는 초입과 다르게 공기 중에도 독이 있습니다. 숨만 쉬어도 중독되는 위험한 곳입니다.”

“흠..”

가까이 다가가 숨을 들이켰다. 고추냉이를 먹은 것처럼 코끝이 얼얼했다.

조금 고민하다가 손가락 끝을 늪지에 넣어 봤다. 독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들어가야 했다.

“···제법 따끔한데?”

“따, 따끔..?!”

기겁하는 갈천에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여길 넘어가면 산황초가 지천에 널린 거 확실한가?”

“···예. 채집꾼들은 절대 이 너머로 가질 않으니 산황초가 널려 있을 겁니다.”

늪지를 조금 더 자세히 살폈다. 바위나 흙더미가 징검다리처럼 듬성듬성 이어져 있었다.

저곳을 밟아가며 건너가면 될 것 같았다.

“길 안내하느라 수고했네. 이건 보수일세.”

갈천에게 주먹만 한 금덩이를 던져 준 뒤 발걸음을 옮겼다.

뒤늦게 당황한 소리가 들렸다.

“어어..? 대, 대협! 이건 너무 많습니다!”

대충 손을 흔들어 주고 늪지를 건넜다. 공깃방울이 터질 때마다 올라오는 연기에 미약한 두통이 일었다.

하지만 강인한 육체덕에 금세 익숙해졌다. 퀴퀴한 냄새에 불쾌한 정도가 끝이었다.

‘벌써 항체가 생겼다고?’

육체 강화는 신체의 모든 능력을 강화한다. 덕분에 내성마저 빠르게 생겨났다.

좋은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곤란했다.

‘설마 구렁이 독낭으로 모자라진 않겠지..?’

독으로 몸을 파괴해야 단련이 되는데. 제대로 단련되기 전부터 항체가 생겨 버리면 곤란했다.

‘다른 독도 구해가야 하나.’

흙더미를 밟아가며 늪지를 건너다 멈칫했다. 한줄기 박하 향이 코끝에 맴돌았다.

‘이 냄새는···.’

후각에 집중하며 주변을 살폈다. 짙은 안개 너머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그 아래 보이는 흙더미를 향해 뛰었다.

파앗.

10미터 넘게 뛰어 널찍한 흙섬에 도착했다. 나무를 중심으로 모인 흙더미가 마치 바다에 떠오른 섬 같았다.

“오!”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바닥을 보고 화색이 돌았다.

산황초 무더기가 보였다. 한눈에 봐도 십여 포기가 넘었다. 길잡이 말대로 사방에 널려 있는 수준이었다.

촤악!

손에 잡히는 대로 뽑았다. 인벤토리에 쓸어 담았다. 다른 사람들은 산황초를 5일 안에 사용해야 하겠지만 그에겐 해당 사항 없었다.

인벤토리에 넣어 두면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

타앗!

거침없이 섬을 이동했다. 산황초 뿐만 아니라 다른 약초도 발견했다.

푸른 형광빛을 내뿜는 버섯부터, 줄무늬가 새겨진 회색 뿌리까지. 대부분 독이겠지만 상관없었다.

독도 잘 쓰면 영약이나 다름없었다.

‘화린이랑 소향이도 줘야겠다.’

1시간도 흐르지 않았는데 산황초만 거의 백 포기 넘게 캤다. 여기까지 고생해서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음?”

신나게 산황초를 캐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돌렸다.

스스슥.

어느새 도마뱀 한 마리가 바로 옆까지 기어 왔다. 손바닥 크기의 조그마한 녀석이었는데. 암회색 피부에 노란 눈이 번득였다.

‘무슨 다리가 이렇게 많아?’

도마뱀 주제에 다리가 8개나 됐다.

-키이익!

들킨 것을 알았는지 녀석의 동작이 기민해졌다. 8개의 다리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발목을 깨물려는 듯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작은 짐승.

검집째로 툭 내리눌렀다.

-끼에에엑! 키에엑!

여덟 개의 다리를 흔들어대며 발버둥 쳤다.

제압당했음에도 사나운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거칠게 울부짖으며 이빨을 딱딱거렸다.

엄청나게 공격적인 녀석이었다.

검집을 막대기처럼 사용했다. 툭 쳐서 날려 버리니 다시 달려들었다.

‘약간 악어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이걸 어디서 봤더라?’

염화비술로 감각이 예민해지지 않았다면. 녀석이 발목을 깨물기 전까지 몰랐을 것이다.

‘설마 갈천이 이놈한테 당한 건가?’

잠시 고민하다 신경껐다. 인간을 공격하는 독물을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촤악!

머리부터 꼬리까지 단칼에 베어 버렸다. 유난히 지독한 피 냄새가 확 풍겼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산황초를 채집했다. 십여 포기가 인벤토리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산황초를 향해 손을 뻗던 순간.

뒷덜미가 섬뜩했다. 반사적으로 땅을 박찼다.

콰아앙!

딛고 있던 땅이 터져 나갔다. 한순간만 늦었으면 휩쓸렸을 것이다.

늪지에서 거대한 도마뱀이 솟구쳤다.

몸통 길이만 20미터 가까이 됐고 머리가 두 개였다. 통나무처럼 굵은 다리가 8개나 달려 있었다.

쿠우웅!

솟구쳤던 거대한 몸체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암녹색 늪지가 파도치듯 사방으로 비산했다.

-크라아아악!

악어닮은 기다란 주둥이가 쩌억 벌려졌다. 수십 개가 넘는 뾰족한 이빨은 마치 꼬챙이 같았다.

침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바닥에 닿을 때마다 썩은 내가 풍겼다.

예전에 봤던 몬스터 도감이 퍼뜩 떠올랐다.

‘바실리스크?’

S급 몬스터와 생김새가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머리가 둘이고 이마에 뭉툭한 뿔이 달린 것이다.

파지직.

두 머리에 달린 뿔에서 뇌전이 번뜩였다.

-크르르..!

괴물의 눈동자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조금 전 죽인 도마뱀의 어미인 듯 싶었다.

샛노란 눈을 본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두 쌍의 눈동자를 홀린 듯 쳐다 봤다.

도저히 시선을 뗄수 없었다.

‘마안(魔眼)!’

눈만 마주쳐도 석화된다는 마안이었다.

왜 여기 있는진 모르겠지만 바실리스크가 맞았다. 그것도 변이 된 개체였다.

놈도 마력이 없는지 진짜로 돌로 변하진 않았다. 하지만 마안 본연의 힘은 남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크르윽! 크르륵!

마치 비웃듯 천천히 다가오던 녀석이 멈칫했다. 녀석의 목구멍이 부풀더니 입을 쩍 벌렸다.

촤아악!

검붉은 무언가가 쏘아졌다. 심장을 꿰뚫을 기세로 쏘아진 그것은 바로 혀였다.

서걱!

푸른 참격이 늪지를 가르고 지나갔다. 잘려 나간 혓바닥이 후두둑 떨어졌다.

-크와아아악!

바실리스크가 괴성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거대한 괴물이 발광하자 늪지가 출렁였다.

‘아깝네.’

놈이 방심하고 다가오면 단번에 썰어 버리려 했는데 아쉬웠다.

어느새 연결된 마력코어에서 마력을 퍼올렸다. 뻣뻣하게 굳었던 근육이 단번에 풀리고 힘이 넘쳐흘렀다.

허공을 밟아 놈에게 달려들었다. 벌써 마력코어의 절반이 소모됐다.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거대한 머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강렬한 광채를 머금은 강기가 살덩어리에 닿았다.

촤아악!

S급 몬스터답게 묵직한 저항이 느껴졌다. 근육이 강철보다 질겼다. 하지만 마력도 없이 검강에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커다란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첨벙 하고 늪지에 떨어졌다.

-끼에에에엑!

하나 남은 머리마저 잘라버리려던 그때.

지지직!

뭉툭한 뿔에서 스파크가 번뜩였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전신에 힘을 풀었다.

행운유수(行雲流水).

꽈릉!

눈앞이 번쩍였다. 강렬한 전격이 피부를 태우려 했다. 정신을 집중해 뇌전을 인도했다.

흘려 낸 샛노란 벼락이 사방을 휩쓸었다.

“쯧..”

마력도 없이 이런 전격을 내뿜다니. 변이 개체답게 평범한 S급 몬스터가 아니었다.

저릿한 손끝을 털며 주변을 살폈다. 거대한 체구가 어느새 사라졌다. 늪으로 숨어 버린 것이다.

감각을 세웠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고요해진 늪지를 보고 있으니.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마치 거짓말 같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검을 집어넣었다.

“에이.. 됐다.”

아예 등까지 돌려 자리를 떴다. 바닥에 떨어진 잔해를 밟으며 다른 섬으로 이동했다.

십여 포기의 산황초를 태평하게 채집하던 그때.

촤아악!

소리 없이 다가온 바실리스크가 입을 쩍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에 독액이 번들거렸다.

그 순간. 미간 사이로 반투명한 실을 뽑아냈다. 쏜살같이 날아간 남색 실이 바실리스크의 정수리에 꽂혔다.

거대한 체구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겨우 1~2초. 긴 시간은 아니었다.

서걱.

하지만 목이 잘려 떨어지긴 충분한 시간이었다. 방심한 척 염화비술을 준비해 단칼에 베어 버린 것이다.

마지막 검강을 휘두름과 동시에 마력코어가 바닥났다.

“후우..”

이제야 진짜로 긴장을 풀었다. 한숨을 내뱉다가 피식 웃었다.

바실리스크의 피에 닿은 흙이 녹아내렸다.

시체가 통째로 극독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영약 덩어리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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