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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214화 (214/241)

Chapter 214 - 214화 - 무협지구(9)

214화 - 무협지구(9)

당화린과 소향이를 막아선 늙은이가 비릿하게 웃었다.

“참한 여인들이군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담담한 어조였지만 눈빛에 색욕이 가득했다.

적화교가 대놓고 히죽거렸다. 겉으로나마 차리던 예의는 이미 집어치웠다.

“하하! 그러니 제가 장로님을 부른 거 아니겠습니까. 저한테 고마워 하셔야 합니다.”

입맛을 다신 늙은이가 적화교에게 전음을 날렸다.

-이런 최상급 미녀라니 횡재했습니다. 그런데 둘 다 젊은 나이에 절정이라니. 신분이 어떻게 됩니까?

-아직 제대로 캐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딱 봐도 곱게 자란 티가 나는 것이 정파년들인 게 들림 없습니다.

-정파! 좋습니다. 다른 때라면 놔줬겠지만 모용세가 때문에 시끄러운 지금이라면··· 클클클!

두 사내가 전음을 날리며 조용해진 사이. 분위기가 점점 딱딱해졌다.

조용히 빠져나가려는 두 여자의 앞길을 늙은이가 막아섰다.

“어허! 노부가 왔는데 어딜 그리 급하게 가려는 게냐.”

“···.”

뭐가 그리 좋은지 히죽거리던 적화교가 거만하게 말했다.

“아! 혹시나 하고 말씀 드리는데 저희 장로님 별호가 바로 자혈독마십니다.”

“자혈독마..?”

그녀들의 표정에 긴장이 차올랐다.

자혈독마라면 사파에서 이름날린 고수였다. 20년도 전에 초절정에 오른 노괴였다.

“클클클.. 알아들었으면 얌전히 옆에 앉아서 술이나 따르거라. 그 고운 피부가 상할까 두렵구나.”

당화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술이나 따르라니요. 저는 임자 있는 몸이라 안 되겠습니다.”

“임자가 있다고?”

그녀 손에 끼워진 반지를 발견했는지 노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처녀가 아니라니 아쉽구나. 허나 이미 사내맛을 아는 년도 나쁘지 않지. 아프다고 찡찡거리는 것도 귀찮으니 말이다.”

“···사혈방 장로씩이나 되시는 분이 왜 이러십니까. 남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크하하! 내가 그딴 걸 신경 쓸것 같으냐! 잔말 말고 이리 오거라! 앞으론 본좌가 네년의 지아비니라!”

소향이에게 눈짓한 당화린이 소매를 털었다. 그 가벼운 동작에 무언가 희끗하고 날아갔다.

쉬이익!

킥킥거리던 적화교가 기겁했다. 어느새 세자루의 비도가 빛살처럼 쏘아졌다.

미간과 심장 그리고 아랫배에 있는 단전.

“헙!”

다짜고짜 선공을 날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눈을 부릅뜨고 손을 휘저었다.

티팅! 퍼억!

적화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도가 단전을 꿰뚫었다. 두 개의 비도는 튕겨 냈으나 하나는 놓친 것이다.

박살 난 단전에서 내공이 급속도로 빠져나왔다.

“소주님!!”

당황한 호위들이 달려들고 포위망이 흐트러졌다. 당화린과 소향이가 땅을 박차려는 찰나.

“감히!”

노호성과 함께 반투명한 손바닥 형상이 날아들었다.

콰콰쾅!

“윽..”

쏟아진 장풍이 앞길을 막아섰다. 빠져나가려던 그녀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어느새 노인의 두 손에 짙은 보라색 기운이 아른 거렸다.

“···자색혈수마공.”

“어린 계집년이 보는 눈은 있구나.”

당화린이 비도를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포위망이 흐트러진 지금 달아나야 했다.

“갈! 어딜 빠져나가려고!”

우웅!

또다시 보라색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앞으로 튀어나온 소향이가 검을 휘둘렀다.

푸른 검기와 장풍이 만났다.

따앙!

쇳소리와 함께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장풍에 담긴 내력이 검을 타고 스며들었다.

“읏..”

저릿한 느낌과 함께 팔에 힘이 쭉 빠졌다. 어느새 중독된 것이다.

비틀거리는 그녀에게 당화린이 달려가 팔찌를 채웠다. 시우가 남겨둔 제독 아티팩트였다.

“괜찮아?”

“아.. 고마워요.“

팔찌가 웅웅 진동하더니, 소향이의 안색이 빠르게 회복됐다.

“내 독공을 맞고도 멀쩡하다고..?”

눈썹 끝을 치켜올린 늙은이가 돌연 고함쳤다.

“모두 정신 차리고 포위망을 유지해라. 이년들을 놓치는 날이 네놈들의 제삿날이 될 것이야!”

“존명!”

장로의 말 한마디에 어수선하던 진형이 제자리를 찾았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검을 겨눴다.

“소주는 당장 의원에게 데려가라!”

“예!”

고통에 기절한 적화교가 실려 나갔다. 하지만 포위망은 여전히 굳건했다.

자혈독마가 이를 빠득 악물며 말했다.

“건방진년들. 감히 소주에게 손을 대다니. 발가벗겨서 소주 앞에 무릎 꿇게 만들어 주마.”

우웅!

강대한 기파가 넘실거렸다. 묵직한 존재감에 공기마저 무거워진 듯했다.

늙은이의 양손에 보랏빛 수강이 맺혔다. 수공의 고수답게 맨손으로 강기를 피워올렸다.

“차핫!”

자혈독마가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쩌엉!

맨손과 쇠가 만났다. 허나 잘려 나간 것은 검이었다.

검날에 생긴 미세한 균열에 소향이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읏!”

황급히 손을 털어냈다.

멈칫한 늙은이가 한 걸음 물러났다. 겨우 검기가 약간이지만 강기에 저항했다.

두 눈에 탐욕이 서렸다.

“허.. 보검이로군. 쓸데없이 반항하면 그 아까운 검만 잘려 나갈 것이야. 목숨은 살려줄 테니 얌전히 포기하거라.”

늙은이가 무어라 주절거렸지만 소향이는 듣지 않았다.

눈살을 찌푸린 채 검만 빤히 바라봤다. 가족처럼 소중히 여기던 검에 실금이 생겼다.

스스로 복구되는 이 보검이라면 아직은 괜찮았다. 하지만 강기와 수시로 부딪쳤다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잘려 나갈게 뻔했다.

-소향아 검에 대한 집착이 너무 과하구나. 천하의 명검이라도 검은 검일 뿐이다. 그것을 명심하거라.

문득 스승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흔들리던 그녀의 눈동자가 멈췄다.

멍하니 제 검을 보고 있는 소향이를 보던 노인이 흠칫 놀랐다.

“갈!”

크게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전투 중에 깨달음에 잠기다니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

당장 단전을 으깨버리려 했다.

“헛?”

돌연 쇠침 하나가 소리 없이 날아들었다. 어느새 수하들을 모두 처리한 다른 계집년이 암기를 날린 것이다.

풍차처럼 손을 휘돌렸다.

가느다란 은침을 튕겨 낸 순간.

따앙!

순간 균형을 잃었다.

“큭?!”

평범한 은침이었는데 천근 무게가 담겨 있었다. 이어서 대여섯 개의 표창이 곡선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미간과 심장. 그리고 각종 급소를 노린 궤적이었다.

“제법이로구나!”

미간을 향해 날아든 표창을 튕겨 버리고 검든 계집년을 제압하려던 순간.

“큭!?”

전신에서 서늘한 고통이 느껴졌다. 팔뚝과 옆구리, 목덜미에서 주르륵 피가 흘러나왔다.

자색혈수마공을 익혀 강철보다 단단해진 피부에 상처가 나다니.

“이건..”

전신에 얽힌 미세한 은사가 보였다. 손에 강기를 두르고 칭칭 감긴 날카로운 실을 뜯어 버렸다.

자세히 살피니 거미줄보다 가느다란 은사가 표창에 연결돼 있었다.

“네년. 당문 출신이었구나. 암기술을 아주 제대로 익혔어. 노부가 방심했다.”

그가 당화린에게 집중한 사이. 멍하니 서 있던 소향이가 검을 내질렀다.

피잉!

단순한 찌르기였으나 검 끝이 분열하듯 흔들렸다.

“환검!”

쉬쉬식!

대여섯 개의 검기가 동시에 날아들었다. 자색 강기가 휘감긴 손날로 모조리 쳐 냈다.

강기에 부딪친 검이 어찌될진 눈에 뻔한 일.

채채채챙!

강렬한 불꽃이 사방에 튀었으나 검은 멀쩡했다.

늙은이가 눈을 부릅떴다.

“검강!? 건방진년이!”

검붉은 검신에 은은한 광채가 아른 거렸다. 미약하지만 분명 검강이었다.

그를 상대하면서 초절정으로 진입한 것이다.

“네년이 감히!”

쒜에엑!

자혈독마의 양손이 기괴한 각도를 그렸다.

초절정이라 해 봐야 겨우 초입. 완숙한 경지에 오른 노인에 비하면 부족했다.

채앵!

힘에 밀린 검이 튕겨 오른 순간.

“흐!”

비릿한 미소를 지은 늙은이가 빈틈을 향해 손을 찔러넣었다.

촤악!

그녀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크하하! 으음..?”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도가 날아와 마무리를 방해했다.

게다가 상처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검을 휘둘렀다.

채채채챙!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수십 합이 이어졌다. 검강과 수강이 만나 수많은 불꽃이 허공에 튀었다.

여유넘치던 노인의 얼굴이 점점 굳었다.

“뭣..”

넘쳐나던 빈틈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대여섯 개던 환검이 하나씩 늘더니 어느새 10개가 넘었다.

싸우는 도중 급격히 성장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재능이었다.

“이런..”

노인의 눈에 다급함이 어렸다.

제압하려는 생각은 접었다. 단숨에 죽여 버리고 싶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쉐에엑!

은밀히 날아든 암기가 급소를 노렸다. 어설프던 상대가 성장할 시간을 벌어 준 게 저 암기였다.

“빌어먹을! 도대체 암기가 얼마나 있는 것이냐!”

튕겨 나간 암기들로 객잔 바닥과 벽이 고슴도치로 변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쏟아졌다. 기겁할 일이었다.

당문이 암기를 숨기는 비전을 가졌다지만 이건 너무 과했다.

“큭..”

암기를 피하던 찰나. 섬뜩한 느낌과 함께 목덜미에서 피가 튀었다. 처음으로 검에 베인 것이다.

“갈!!”

콰아아앙!

노인이 호신강기를 터뜨리며 한 걸음 물러났다. 강렬한 폭발에 순간 전투가 멎었다.

“네년들..”

어금니를 빠득 깨물던 늙은이가 고민했다. 한 명은 초절정에 발을 걸쳤고 다른 한 명도 절정 최상급.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물러나려던 그가 멈칫했다. 돌연 광소를 내뱉으며 고함쳤다.

“크하하하! 마형! 오셨으면 빨리 도와주십시오! 내 크게 사례하겠습니다.”

“흐음..”

소리 없이 나타난 늙은이가 주변을 주욱 둘러봤다.

또다른 초절정의 등장이었다.

“금방 갔다 온다더니 어린아이들과 놀고 계셨습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자세한 설명은 됐습니다. 일단 저년들을 제압하는데 도움을 주십시오. 생각보다 앙칼져서 쉽지 않습니다.”

“흠.. 좋습니다. 대신..”

그가 혀로 입술을 핥자 자혈독마가 혀를 찼다.

“알겠습니다. 마형도 당연히 맛보게 해드려야지요.”

“허허허. 좋습니다. 한 번 놀아볼까요.”

눈치 보던 두 여인이 동시에 땅을 박차 도망가려 했다.

“어딜 내빼려고!”

마형이라는 자가 박도를 휘둘렀다. 강기가 뿜어져 나와 당화린의 앞길을 막았다.

“읏..!”

자혈독마가 양손을 펼치며 소향이에게 달려들었다.

“크하하! 네년은 이리 오너라!!”

자색 강기 맺힌 손이 그녀에게 닿기 직전. 노인이 눈을 부릅 뜨더니 한 걸음 물러났다.

평생 갈고닦은 직감에 따른 것이다.

콰아아앙!!

하지만 한발 늦었다.

“끄아아악!”

돌연 내리꽂힌 빛기둥에 뻗었던 왼손이 가루로 변했다.

천장이 터져나가며 한 남자가 툭 하고 떨어졌다.

시우가 가라앉은 얼굴로 주변을 돌아봤다. 사방에 꽂힌 비도와 창백해진 그녀들이 보였다.

소향이는 어깨에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감히..”

외팔이로 변한 늙은이를 돌아봤다. 그가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이, 이놈! 나는 사혈방- 아악!!“

서걱!

하나 남은 팔이 허공을 날았다. 이어 양다리마저 썰어 버렸다.

“끄아아아악!!”

악명 자자한 자혈독마가 제대로 된 반항도 못했다. 사지가 날아가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몸통만 남아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미친..”

마형이라 불린 늙은이가 겁먹은 얼굴로 주춤 물러났다.

“나, 난 아니오. 난 그저 우연히 찾아왔을 뿐. 이 일과 전혀 무관하오! 내 잠깐 실수했던 건 어떻게든 보상할 테니···”

무어라 떠들어 대든 무시했다. 놈이 하는 말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들에게 물었다.

“저놈은?”

당화린이 두 눈을 깜박이더니 끄덕였다. 무슨 질문인지 깨달은 것이다.

“저 개자식도 한패야!”

“그렇다는군.”

그 대답에 노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망할 계집년이!”

곧장 뒤돌아 도망가려 했다.

뻐억!

자혈독마의 몸통을 발로 차버렸다. 대포알처럼 날아든 몸통이 노인과 충돌했다.

“끄아아악!!”

“커허억! 비, 빌어먹을..!”

고통섞인 비명이 객잔에 울려 퍼졌다. 도망치던 노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스며든 혼원기에 내장이 조각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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