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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216화 (216/241)

Chapter 216 - 216화 - 무협지구(11)

216화 - 무협지구(11)

소문은 발보다 빠르다던가.

독곡과 멀리 떨어진 어느 한 객잔.

삼류 낭인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술잔을 맞댔다.

“크으..! 술맛 좋구만. 그런데 자네 그거 아나?”

“응? 또 어디서 뭘 주워들은 겐가.”

까슬까슬한 턱수염이 가득한 남자가 흐흐 웃었다.

“독곡에 신성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쫙 퍼졌네.”

“독곡이면··· 설마 사혈방의 적화교? 그 막돼먹은 놈 경지가 또 올랐다고?”

적화교라면 유명한 개자식이었다. 기겁한 거한의 말에 턱수염 남자가 피식 웃었다.

“그럴리가 당연히 아닐세. 적화교는 신성이라 불리긴 모자라지. 신성이라면 적어도 오룡삼봉급은 돼야 하지 않겠는가.”

“하긴. 오룡삼봉들은 이십 대에 초절정에 올랐으니···.”

“게다가 적화교는 이미 죽었네.”

툭 던지듯 하는 말에 거한이 경악했다.

“뭐, 뭐라고? 사혈방 후계자를 누가 감히 죽였단 말인가.”

“하하하. 언제적 사혈방인가 자네 소식이 너무 느리군. 사혈방은 이미 멸문한지 오래네.”

“뭐라고? 멸문?! 도대체 왜?”

경악한 거한을 보던 남자가 씨익 웃더니 말했다.

“당연히 새로 떠오른 신성이지. 최시우라는 자인데 들어 봤나?”

“···최시우? 어디서 들어 본 것.. 아! 설마 사일검수?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진짜였다고?”

“그래.”

“허! 술맛 나는 소식이군.. 응? 잠깐 사일검수 혼자?”

턱수염 남자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단신으로 사혈방에 쳐들어가 싹 쓸어 버렸다는군.”

“말도 안 돼! 사일검수는 이립도 안 된 청년이라 들었는데? 자혈독마는 뭐 하고?”

“자혈독마? 그자는 사일검수에게 단칼에 베였다더군.”

거한이 멈칫했다.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내뱉었다.

“단칼? 자혈독마가 일초지적도 못 됐다고? 에이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어허! 진짜라니까.”

의심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일검법이 그리 대단하다고?”

턱수염 남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본인이 사일검수라도 된 것처럼 거들먹거렸다.

“그래! 초절정 고수를 일초도 아닌 일검에 베어 버렸으니···. 화경의 고수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해.”

“에이! 화경은 정말 아니지. 그게 말이 되나?”

“하긴.. 그래도 약관에 초절정 극에 오른 건 확실하니. 사일검수가 신성이 아니라면 누가 신성이겠는가.”

저도 모르게 감탄하던 거한이 갑자기 혀를 찼다.

“체.. 사일검수면 점창파 출신일 텐데. 어릴 때부터 온갖 영약은 다 받아 먹은 도련님이겠구만.”

“어허!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게. 사실 나도 궁금해서 자세히 알아봤는데. 그자는 점창파 출신이 아닐세. 점창파 무공은 익히지도 않았다더군.”

거한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했다.

“아니 사일검수라며?”

“사일검법을 스스로 깨달았다던데. 자넨 그게 믿겨지나?”

“스스로..? 하하하. 이제 보니 오늘 한 소리가 전부 농이었구만.”

“아니라니까! 자혈독마 옆에 초절정 노괴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자도 일검을 받아 내지 못하고···.”

남자가 침을 튀어가며 설명했다.

제 여자를 건든 것에 분노한 사일검수가 사혈방을 모조리 쓸어 버렸단 이야기였다.

“일검에 삼층짜리 건물이 갈라졌다고..?”

“그래. 사혈방주도 아들과 함께 저승으로 떠났지. 고수 한 명 잘못 건드렸다가 망해 버린 것일세.”

“허어..”

***

청봉현의 수련실.

시우가 인벤토리에서 검은 수정을 빼 들었다. 키메라 구렁이에게 뽑아낸 독낭이었다.

촤악!

수정 옆에 붙어 있는 머리통만 한 살덩이를 단검으로 그었다.

주르륵 흘러내린 검은 액체가 은색 욕조에 담겼다.

옆에 있던 당화린이 코를 감싸 쥐며 말했다.

“이게 그 괴상한 울타리에 있던 운철로 만든 욕조야?”

“응.”

처음엔 운철을 녹여서 검으로 만들려 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이 운철은 기이하게도 독에 강했으니까.

“신기하네. 이런 맹독에 녹지도 않고.”

독곡에서 구한 독들이 워낙 독해, 어지간한 그릇으론 담지도 못했다.

사람이 들어가고도 넉넉한 욕조에 검은 물이 찰랑였다. 조심스레 손끝을 넣어 봤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닿는 것만으로 녹아버릴 맹독. 키메라 구렁이의 독이 피부를 타고 스며들었다.

손끝이 저릿했다.

“그럼 시작할까.”

“···괜찮겠어?”

걱정하는 당화린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입고 있던 정령보의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망설임 없이 욕조에 들어갔다.

맹독에 몸을 넣고 가부좌를 틀었다. 피부를 통해 극독이 스며들자 전신이 간질거렸다.

“음..”

미간을 찌푸렸다.

간질거림으로 시작된 미약한 통증이 점점 커졌다. 작은 벌레들이 온몸을 깨무는 것 같았다.

따끔거림을 넘어 전신이 찢어질 듯 아팠다.

“후우..”

“내가 알려준 대로 운기해.”

그녀의 지시에 따라 기운을 조종했다.

자연지기가 사지 경맥을 따라 휘돌았고, 피부를 통해 맹독이 스며들었다.

원래라면 한곳에 모아 태워 버렸을 극독. 그것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사지말단까지 구석구석 퍼뜨렸다.

쩌적!

근육이 마비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쩌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피부가 갈라졌다.

치밀어 오르는 고통에 손끝이 절로 떨렸다.

“···.”

하지만 이런 고통은 익숙했다. 평소 육화(肉火)를 사용할 때만 해도 피가 끓는 기분이었으니까.

‘아직이다.’

독을 몰아내려는 육체의 본능을 억제했다.

콰콰콰!

마치 협곡에 물이 들어차듯. 독기가 경맥까지 스며들었다. 전신 혈도가 조각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긴장한 눈으로 이쪽을 보던 당화린이 황급히 다가왔다.

“그만! 이제 이거 마셔!”

그녀가 건넨 대접에서 박하향이 났다. 찰랑이는 물이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산황초를 중심으로 다양한 약초를 섞어만든 당문의 비전이었다.

“···.”

대답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팔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단번에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황금빛 액체가 쏟아졌다.

우웅!

뱃속에서부터 시원한 기운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눈을 감고 감각을 집중했다. 육체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세히 관찰했다.

‘과연.’

산황초에서 일어난 기운이 사지백해로 퍼졌다. 육체를 파괴하던 독성과 뒤섞이더니 근육에 스며들었다.

서늘하면서 동시에 뜨거웠다.

반쯤 녹아내렸던 근육이 빠르게 재생됐다. 조각나기 직전인 경맥도 마찬가지였다. 전보다 튼튼하고 질겨졌다.

꾸득.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전신에서 터질 것 같은 힘이 솟구쳤다.

옆에서 걱정스레 바라보던 당화린이 물었다.

“어때..?”

“음.. 아아..”

약간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강해진게 느껴져. 한 번 더 할까?”

“미쳤어! 그건 안 돼! 아무리 너라도 하루는 푹 쉬어야 돼. 육체도 쉴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야.”

*

마음 같아선 매일 독에 몸을 담그고 싶었지만 육체가 회복할 시간도 필요했다.

이틀에 한 번 비전을 이용해 몸을 단련했다.

오늘은 벌써 세 번째로 육체를 단련할 시간. 기대감을 담아 욕조에 몸을 담갔다.

“응?”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피부에서 스며드는 독이 너무 약했다. 아니, 약해진 게 아니라 그의 몸이 강해진 것이다.

‘벌써 내성이 생겼다고?’

키메라 구렁이 독으론 부족했다.

인상을 팍 찡그렸다.

독곡에서 구해 온 독이 많지만 키메라 독보다 강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곤란한데···.’

잠시 고민하다가 바실리스크의 독낭을 꺼냈다. 녀석의 마비독을 욕조에 풀었다.

연노란빛을 띈 독이 검은 물과 섞였다. 마치 투명한 물에 잉크를 탄 것처럼 순식간에 뒤섞였다.

“어?”

노란 마비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키메라 독이 마비독을 잡아먹은 것처럼 보였다.

‘독이 원래 이렇게 잘 섞이나?’

짙어진 검은 독액을 보다가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신경이 저릿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비증세가 추가된 것이다.

‘음..’

잠시 고민하다가 검은 수정을 꺼냈다. 독액에 살짝 담가보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우웅.

미약하게 진동하면서 독액을 빨아들인 것이다.

뒤이어 흑수정 표면이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윽.’

흑수정에 징그러운 살덩어리가 또 자라났다. 새로 생긴 독낭에는 노란 액체가 찰랑거렸다.

‘마비독 같은데..?’

어떻게 되나 가만히 내버려 뒀다.

꾸륵.

겹쳐진 두 개의 주머니가 하나로 합쳐졌다. 합쳐진 독낭에 짙은 검은물이 찰랑거렸다.

‘설마.’

주머니를 째보니 지독한 독기가 느껴졌다. 확연히 강해진 것이 느껴졌다.

검은 수정이 마비독을 흡수한 것이다.

이어서 독곡에서 구해 온 부식독도 흑수정에 뿌려봤다.

우웅!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났다. 수정 독낭이 내뿜는 독 색깔이 확연히 진해졌다.

이제는 아예 칠흑 같이 검었다.

주머니를 째고 찰랑거리는 독액에 손가락을 담갔다.

“윽..!”

강렬해진 독기에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치명적인 맹독이었다.

흑마법사들이 왜 그리 수정을 애지중지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독을 흡수하는 특성을 가진 보석이었다.

‘내성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흑수정에 독을 타면 더 강해진 독을 내뿜는다.

이러면 육체가 단련되는 속도가 빨라지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점점 강해지는 독에 적응하다 보면 만독불침에 도달할지도 몰랐다.

*

보름이란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이틀마다 독으로 육체를 단련했고, 매일 밤 애인들과 뒹굴며 내공을 수련했다.

나날히 강해졌다. 특히 육체는 하루하루 새로운 경지에 접어들었다.

후웅!

주먹을 뻗으니 권풍이 일었다.

콰앙!

10미터 떨어진 바위에 주먹 자국이 생겨났다. 내공도 담기지 않은 주먹이라곤 믿기지 않았다.

“좋다.”

꽉 쥐어진 주먹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심상 속에서 느껴지는 벽이 한 걸음 다가온 기분이었다.

만족스레 끄덕이다 하늘을 살폈다. 푸른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들기 직전이었다.

약간 이르지만 곧 밤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공 수련 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오늘은 소향이가 첫 번째 차례였던가.’

그녀의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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