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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218화 (218/241)

Chapter 218 - 218화 - 무협지구(13)

218화 - 무협지구(13)

***

요녕 모용세가.

삼장 높이 담벼락 앞에 다섯 인형이 유령처럼 생겨났다.

근육질 거한부터 훤칠한 미청년까지. 모두 20대로 보였는데 경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다섯 모두 초절정 고수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그들은 무림에서 가장 재능있다 소문난, 오룡이라 불리는 후기지수였으니까.

우웅.

무형의 기막이 주변을 감싸고, 훤칠하게 생긴 미청년이 말했다.

“제갈동생. 진법을 파훼할 수 있겠는가?”

부채를 집어 든 남자가 조심스레 담벼락에 손바닥을 댔다. 한참을 곰곰이 고민하던 그가 끄덕였다.

“···예. 생각보다 까다롭긴 한데 가능하겠습니다.”

“좋네. 모용세가 노괴한테 들키기 전에 조용히 처리하지.”

눈빛을 교환한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담벼락에 오른 순간.

돌연 사방에서 안개가 차올랐다. 찰나만에 온 세상이 짙은 안개로 물들었다. 안개로 이루어진 망망대해에 떠도는 기분이었다.

근육질 거한이 얼굴을 꿈틀했다. 소리죽여 뇌까렸다.

“이게 뭐야! 할 수 있다며?”

“시끄럽다 곰탱이. 조용하고 내 뒤만 따라와.”

제갈영이 신중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 순간 안개가 씻은 듯 사라졌다.

“후.. 다행히 성공했습니다.”

쉽지 않았는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뒤에서 졸졸 따라오던 청년들이 흠칫 놀라며 주변을 돌아봤다.

어느새 황량한 뒤뜰에 서 있었다.

“여긴..”

“모용세가 안입니다. 모두 조심하십시오.”

청년 중 한 명이 힐끗 뒤를 돌아봤다.

바로 뒤에 삼장 높이의 담벼락이 보였다. 제법 오래 걸었는데 이제야 담벼락을 넘은 것이다.

남궁무혁이란 이름을 가진 미청년이 입을 달싹였다. 모두에게 동시에 전음을 보냈다.

-모두 조심하게. 계획대로 경비를 납치해 빠져나가세.

그들이 소리 없이 자리를 떴고, 얼마 뒤 외곽을 순찰하는 무사들을 발견했다.

쉬익.

작은 바람 소리와 함께 다섯 명의 경비들이 뻣뻣이 굳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절정 고수였으나 반응도 못 했다.

오룡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거한이 남궁무혁에게 전음을 날렸다.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는 건 어떻습니까. 겨우 외곽을 정찰하는 놈들이라 아는 게 얼마 없을 텐데요.

-···과욕부리지말게. 지지부진한 현 상황에 변화를 주는 것이 더 중요.. 헛?

입을 달싹이던 남궁무혁이 눈을 부릅떴다.

검 자루를 움켜쥔 채 사방을 경계했다.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오룡들이 얼굴을 굳혔다.

-하하하! 쥐 새끼인가 싶었는데 대어가 걸렸군요. 철부지 도련님들이라니.. 오늘 운이 아주 좋습니다.

중성적인 목소리가 사방에서 웅웅 울렸다.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지독한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모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남궁무혁이 소리쳤다.

“당장 후퇴해!”

땅을 박차던 자세 그대로. 오룡들이 뻣뻣이 굳었다. 묵직한 내공이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구구궁!

단순히 내력으로 누르는 것인데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부들거리던 남궁무혁이 소리쳤다.

“큭..! 누구십니까!”

“호오.. 입을 열다니. 검왕이 손자를 제법 잘 교육시켰군요. 허나 의미 없습니다.”

입술을 붉게 칠한 남자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그가 손을 휘적이자 무형의 기세가 몇 배로 늘었다.

콰직!

다섯 명의 초절정 고수가 동시에 무릎 꿇었다.

“컥!”

태산이 누르는 듯한 압력에 바닥이 박살 났다. 단단한 돌바닥이 가뭄이라도 난 것처럼 쩍 갈라졌다.

***

청봉밀사 접객당.

그곳에 두 남자가 자리했다. 구릿빛 피부의 건장한 청년과 혈색 좋은 중년 남자였다.

뜨거운 찻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오.. 좋은 차로구나.”

중년 남자는 느긋한 표정으로 차를 음미했으나, 청년은 그렇지 못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했다.

“명장로님. 그자가 사혈방을 단독으로 멸했다는 소문이 사실일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랑 같은 절정이었지 않습니까.”

차를 홀짝이던 중년인이 멈칫했다.

“글쎄.. 소문이란 게 과장되기 마련이네만. 내가 본 최소협은 재능이 대단한 자였네. 지금쯤 초절정에 올랐어도 이상하지 않네.”

“···그렇다고 해도 초절정 초입이지 않습니까. 사혈방에 초절정 고수만 셋인데. 그 노괴들을 어찌..”

청년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것을 보던 중년인이 말했다.

“어허. 일영아 마음을 다스려라. 세상엔 너보다 강하고 재능 있는 자들이 널리고 널렸다. 그때마다 그렇게 질투할 것이냐.”

“···죄송합니다.”

청년의 이름은 마일영. 그는 점창파의 일대 제자였는데. 예전에 시우와 대련했다가 일합에 패배했던 자였다.

그 패배를 곱씹고, 절치부심 수련한 끝에 절정 끝자락에 올랐다.

“일영이 너도 나이에 비하면 충분히 뛰어난 편이다. 그러니 너무 낙심말거라.”

“···예. 그래도 제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쯧쯧.. 음?”

무언가 느낀 명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문이 열렸고 젊은 청년이 나타났다.

“최소협 오랜만일세.”

시우가 반가운 얼굴로 포권하며 말했다.

“명장로님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하하. 이게 다 자네 덕분 아니겠는가.”

명진옥. 그는 40년간 사일검법을 연구한 점창파의 장로였다.

처음 봤을 땐 깡마른 노인이었는데 어느새 혈기 왕성한 중년으로 변했다. 사일검법을 깨달은 덕분이었다.

감탄한 기색이 역력한 명장로가 말했다.

“자네 정말로 초절정에 올랐군.”

딱히 숨길 일도 아니라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얼마 안 됐습니다.”

“허허.. 아무리 봐도 내 밑이 아니군. 정말 하늘이 내린 재능일세.”

적당히 안부를 주고받다 고개를 돌렸다.

뭘보고 그리 놀랐는지 입을 쩍 벌린 구릿빛 남자가 보였다.

“그쪽은..?”

그가 입을 다물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허리를 숙이며 포권했다.

“최소협 오랜만입니다.”

눈가를 좁히고 자세히 살폈다. 구릿빛 피부에 건장한 체격. 언젠가 봤던 것도 같았다.

“누구신지?”

“···마일영입니다. 점창파에서 대련까지 했는데 기억 안 나십니까?”

한참을 고민하다 문득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아! 내 여자한테 치근덕거리다 뺨 맞았던 놈?”

마일영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크흠.. 맞습니다. 그땐 제가 무례했습니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음.. 사과는 받아들이지. 그런데 여긴 왜 온 거냐? 복수라도 하려고?”

“그럴 리가요. ···사실 검이라도 나눠보려 온 것인데. 의미 없을 듯 하군요. 어떻게 해도 질 것 같은 느낌만 듭니다.”

점창파에선 낭인이라 무시하던 녀석이 아주 공손해졌다. 확실히 실력은 있고 볼 일이었다.

어깨를 으쓱하고 시선을 뗐다. 명장로를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장로님은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이 녀석 데려다주러 오신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허허. 사실 요녕으로 가는 길에 얼굴이나 볼 겸 들린 것일세.”

“요녕이요?”

요녕이라면 중원 끝자락에 있는 먼 곳이었다. 모용세가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토벌대가 구성됐다고 했는데. 모용세가는 어떻게 됐습니까?”

“선발대로 모인 토벌대가 천라지망을 펼치는 중일세. 후발대가 속속들이 모이는 중이니. 아마 내가 도착할 때쯤 공격하지 않을까 싶네.”

듣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모용세가가 무림 공적으로 지정된 지 거의 한 달쯤 되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토벌대가 모이는 중이라고요?”

“음.. 당초 선발대만으로 해결하려 했는데 계획이 바뀌었어. 압도적인 전력으로 한 번에 밀어 버리기로 결정했네.”

잠깐 고민하던 명장로가 말을 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도련 때문일세. 녀석들이 이번 기회를 틈타 온갖 도발을 해대서 쉽지가 않아. 모용세가를 토벌해선 안 된다는 말까지 나오는 중일세.”

“아아..”

“그래도 자네가 사혈방을 멸한 덕에 한결 여유가 생겼을 걸세. 맹주께서 자네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이 있던데. 생각 있나?”

맹주라면 꼰대라 소문난 할아버지였다. 딱히 보고 싶지 않았다.

“관심 없습니다.”

“음. 하여간 사도련주가 자네한테 이를 갈고 있을 테니 조심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신 명장로가 말을 이었다.

“아, 혹시 아직도 점창파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예. 언젠가 직접 문파를 세울 생각이어서요.”

점창파는 남자만 가득한 군대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당화린과 같이 사천당가를 세우기로 약속했으니 점창파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허어! 개파조사가 되겠다는 것인가..”

고개를 주억거린 명장로가 말을 이었다.

“하긴. 자네 무공이라면 안 될 것도 없지. 음.. 그러면 같이 요녕에 가는 건 어떤가?”

“토벌대에 합류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러네. 개파하려면 명성은 높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번에 무림맹에 빚을 지워두면 개파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걸세.”

“음..”

고민하다 문득 확인할 게 떠올랐다.

- 보유 카르마 : 92,021

10만까지 머지않았다. 사혈방을 멸문시키며 또 카르마를 얻었다. 어느새 9만 2천 카르마가 쌓여 있었다.

혼령정련단을 먹는다고 바로 화경의 벽을 넘을 순 없겠지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임은 명확했다.

‘여기서 화경에 도달하면 다른 지구에서도 도움 되겠지.’

초절정 경지때도 그랬다.

벽을 넘은 경험덕에 수월하게 7성에 달했고, 절정의 경지로 강기를 다루기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하다 다시 카르마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왔다.

‘모용세가면 혈교 놈들이잖아.’

혈교라면 균열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이었다.

토벌대에 합류해 놈들을 처리하다 보면 10만 카르마가 모일 듯했다. 게다가 명장로 말대로 명성도 쌓이니 일석이조였다.

“자네 같은 고수가 끼는데 섭섭하게 대우하진 않을 걸세. 당연히 보상도 두둑할걸세. 어떤가?”

“좋습니다.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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