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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224화 (224/241)

Chapter 224 - 224화 - 무협지구(19)

224화 - 무협지구(19)

“과연. 한시도 쉬지 않고 수련에 매진하다니. 젊은 나이에 경지에 오른 이유를 알겠습니다.”

길쭉한 수염을 가진 중년인이 손을 휘휘 젓더니 말했다.

“다들 그만. 시간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네. 최소협. 이 진법을 독곡에서 발견한 게 그대 맞나?”

중년인 옷에 그려진 문양을 보아하니 제갈세가였다.

‘무림맹 군사인가.’

그가 가리킨 진법 도안을 살폈다. 제갈미령에게 건네준 것이 맞았다.

“예.”

“정확히 어디에서 발견한 건가? 정말 독곡 중심부 맞나?”

딱히 숨길 일도 아니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렇습니다만?”

근육질 거한이 인상을 찌푸렸다.

“허참..”

독곡은 내공의 깊고 낮음보다 외공의 성취가 중요한 곳이다.

최시우란 자의 몸은 탄탄하긴 했지만 외공의 고수같아 보이진 않았다.

거한에게 진정하라는 듯 손짓한 군사가 말을 이었다.

“···최소협. 사안이 중해서 그러니 확인해 봐도 되겠나?”

의심하듯 바라보는 그들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애초에 진법 도안은 선의로 가져온 것인데. 독곡 중심부까지 안내라도 하란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 이 일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려면 많은 인력이 소모될 걸세. 그러니 자네 말이 사실이란 최소한의 확인 절차는···.”

근육질 거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답답해 죽겠군. 이보게 최소협. 솔직히 말해서 나는 못 믿겠네. 겨우 그런 근육으로 독곡 중심부라니?”

거한이 힘을 주자 갑옷 같은 근육이 꿈틀거렸다.

”독 안개야 어찌저찌 해결한다 해도 중심부엔 꽤 흉폭한 요수들이 살지 않나. 적어도 내 수준의 외공은 되어야 그곳에서 살아 나올 수 있을 텐데?”

노골적인 의심에 피식 웃었다.

“결국 제 외공 수준이 궁금하다 이거였습니까?”

거한이 미간을 꿈틀했다.

“···그렇다네. 확인해 봐도 되겠는가?”

“뭐, 좋습니다. 저도 황보세가 무공이 궁금하긴 했습니다.”

지금까지 노려본 이유도 대충 예상갔다. 오대세가 중 외공으로 가장 뛰어나다는 황보세가의 자부심이었다.

뿌득.

그가 주먹을 쥐었다. 강철 같은 근육이 부풀었다. 힘을 준 것만으로 덩치가 반배 가까이 커졌다.

군사가 손을 휘저었다.

“그만. 적들이 코앞인데 쓸데없는 충돌은 피하시게. 여봐라 흑산정금을 가져와라.”

곧 네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천막으로 들어왔다. 땀을 뻘뻘 흘리며 2미터 길이의 흑색 봉을 날랐다.

쿠웅!

봉을 땅에 내려놓자 묵직한 소리와 함께 천막이 흔들렸다.

“이걸 내공 없이 들 수 있다면 자네가 독곡 중심부에 갔다는 것을 믿겠네. 집채만큼 쌓으면 산보다 무겁다는 흑산정금일세.”

“허참.. 어려운 것도 아니니 알겠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발로 툭툭 쳐봤다.

‘음..?’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묵직했다.

가볍게 스트레칭 하며 근육을 풀었다. 이어 망설임 없이 발을 굴렸다.

두웅!

가벼운 물건을 차올리듯 흑봉을 발로 띄웠다.

공중에 떠오른 흑봉을 잡아채 어깨에 걸쳤다. 단순한 동작이었으나 강인해진 육신이 뻐근했다.

“헛!”

누군가 헛숨을 터뜨렸다.

그들이 예상한 최대치는 겨우겨우 흑봉을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저렇게 장난치듯 발로 차올리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군사가 말했다.

“···젊은 나이에 외공 성취가 대단하오. 그대 말을 믿지.”

눈으로 실력을 확인하자 단번에 말투마저 바뀌었다.

후웅! 후우웅!

장난치듯 봉을 휘휘 돌리자 묵직한 파공음이 천막을 가득 채웠다.

“산 정돈 아니지만 제법 묵직하긴 합니다.”

“허어..!”

막대기 끝을 잡고 들어 올렸다. 급격히 쏠린 무게에 팔뚝이 뻐근해졌다.

근육질 거한에게 쭉 내밀며 말했다.

“어디 가짜인지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안색이 변한 그가 고민 끝에 흑산정금에 손을 내밀었다.

“···좋다.”

거한이 반대쪽 봉끝을 받아들었고 손을 놓았다.

“큭..!?”

눈을 부릅뜬 거한이 휘청거렸다. 통나무처럼 두꺼운 팔뚝이 팍 부풀었다.

봉 끝에 쏠린 압도적인 무게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우웅!

결국 내공을 사용하고서야 균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얼굴이 시뻘개진 거한이 봉을 내려놨다.

쿠웅!

한동안 침묵하던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참.. 젊은이에게 외공으로 질 줄은 상상도 못 했군. 의심해서 미안하오.”

생각보다 털털한 태도였다.

“음. 별말씀을.”

마주 포권하니 분위기가 풀렸다.

조용히 앉아 있던 검왕이 말했다.

“이제 이 진법이 사실이라 가정하고 이야기하지. 진법대사 말대로라면 상당히 위험한 것 아닌가?”

“···예. 만약 중원 전체에 진이 설치 됐다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혈원이 모였을지 상상이 안 됩니다.”

“일부 맹원들을 파견해 진법을 찾아 파괴하고, 하루빨리 토벌을 끝내지.”

머뭇거리던 군사가 탄식을 내뱉었다.

“예. 더 늦었다간 돌이킬 수 없겠군요.”

이후 회의는 급물살을 탔다.

“먼저 모용세가에서 화경의 고수는 태상장로 한 명이니 검왕께서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그는 걱정 말게.”

검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군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최소협과 명진옥 장로께서 암살자 무리에게 빼앗은 승천단이란 것인데. 한순간에 경지를···.”

***

시간이 흐르고 토벌날이 밝았다.

토벌대는 크게 네 무리로 나뉘었다.

검왕이 속한 본대가 하나. 거대 문파나 낭인들로 구성된 타격대가 셋이었다.

본대가 정면에서 시선을 끌고, 다른 세 타격대가 사방에서 모용세가를 일망타진 하기로 결정됐다.

*

모용세가 북쪽.

이백 명이 넘는 무사들이 모였다. 온갖 복장을 한 것이 대부분 낭인으로 보였다.

본대를 제외한 세 개의 토벌대 중 하나인 북문대였다.

몇몇 낭인들이 속삭였다.

“드디어 시작이군.”

“이번에 공을 세우면 무림맹 상급 무사가 될 수 있다던데 정말일까?”

“정식으로 공표했으니 사실이겠지. 드디어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힐 기회가 생긴 것일세.”

갈증 나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각자 병기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빛냈다.

하나같이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겉으로 드러난 전력 차만 거의 3~4배에 달했으니 두려울 이유가 없었다.

그런 북문대에 속한 시우가 당화린에게 다가갔다. 몽롱한 얼굴로 서 있는 모습이 걱정됐다.

“화린아 괜찮아?”

“아.. 으응..”

잘록한 허리를 껴안자 본능적으로 기대왔다. 그런데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흐물흐물 녹아내린 느낌이었다.

‘어제 너무 많이 했나.’

당화린의 경지는 절정 최상급. 토벌이 시작되기 전에 초절정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영약을 먹이고 밤새도록 끈적한 특별수련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초절정엔 도달하지 못했다.

“좀 지쳐 보이는데?”

가슴팍에 안겨 있던 그녀가 빙긋 웃었다.

“정말 괜찮아. 왠지 벽 같은 게 느껴져서 그랬어. 시우 덕분에 곧 초절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말 그대로 작은 계기만 주어져도 경지가 오를듯했다.

“그건 다행이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우웅!

만지작거리던 허리춤을 통해 재생의 힘을 불어넣었다.

“아..!”

당화린이 움찔거렸다. 촉촉하게 젖은 신음이 흘러나오자 누군가의 얼굴이 팍 찡그려졌다.

남몰래 입술을 삐죽이던 소향이였다.

“···곧 토벌인데 적당히 좀 하세요.”

“회복시켜준 거야. 소향이 너도 해 줄까?”

“됐어요. 적들을 앞에 두고 긴장 좀.. 흐약?!”

소향이를 품 안에 쏙 집어넣고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 그만..”

따뜻하고 말랑했다. 어디 도망가지 못하도록 꽉 껴안았다. 바동거리던 그녀가 조금씩 잠잠해졌다.

“으..”

얌전히 안겨 있다가 마지못해 호응했다. 머뭇머뭇 옷자락을 끝을 살짝 쥐는 게 그녀다웠다.

“큭..!”

그 눈꼴시려운 광경에 한 낭인이 이를 악물었다.

녀석을 힐끔 쳐다보니 화들짝 놀랐다.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오자마자 몽산패도란 놈을 교육시킨 효과가 있었다.

놈을 내버려두고 북문대 무사들을 쭈욱 훑어 봤다. 대부분 일류 최상급이었고 절정도 적지 않았다.

몇 안 되는 초절정 고수들만 신경 써서 살폈다.

‘저자가 낭왕인가.’

2미터쯤 되는 근육질 거한이 보였다. 제 키만 한 박도를 등에 매단 채 껄렁한 자세로 서 있었다.

‘검왕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군.’

같은 왕인데도 불구하고 낭왕의 무위는 초절정. 사실 왕이라 불리기도 민망한 경지였다. 보통 왕이라 하면 화경의 고수인 게 당연했으니까.

그가 낭왕이라 불리는 이유는 삼류 낭인부터 시작해, 스스로의 힘만으로 초절정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낭왕의 또 다른 별호는 위왕(僞王). 가짜 왕이라고도 불렸다.

“음?”

시선을 느꼈는지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낭왕의 미간이 아주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런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호의어린 미소로 변했다. 씨익 웃더니 고개를 까딱였다.

감각이 예민하지 않았다면 느끼기도 힘들 만큼 찰나였다.

‘앞뒤가 다른 놈이군.’

시선을 뗐다. 다른 이들을 천천히 관찰하고 있을 때.

저벅 저벅.

일정한 발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무림인이 등장했다. 모두 허리에 검을 찬 것이 검객으로 보였다.

새하얀 무복으로 통일해 정갈한 느낌이 들었다.

“화산파!”

누군가의 외침에 시선이 확 쏠렸다.

선두에 위치한 여인이 유독 눈에 띄었다.

화산제일미 청유화.

검봉이라 불리는 여인의 자태에 수많은 낭인들이 침을 삼켰다.

“오..”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화산제일미라 해서 막연히 하얀 피부의 냉미녀를 상상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조금 달랐다.

‘예쁘긴 하네.’

구릿빛 피부가 햇빛에 반사 돼 반짝였다. 길쭉길쭉한 팔다리는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C컵인가.’

전체적으로 슬림한 몸매였으나 하체가 도드라졌다. 걸을 때마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탄력적으로 흔들렸다.

청순한 얼굴과 늘씬한 몸매가 묘하게 조화로웠다. 전체적으로 건강미 넘치는 미녀였다.

그녀가 앞으로 나서 포권했다.

“제가 북문대 지휘를 맡기로 한 청유화입니다.”

따스해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냉막한 목소리가 이질적이었다.

옆에 있던 소향이가 까치발을 들었다.

“웅..”

고개를 빼꼼 내밀고 기웃거렸다. 또래 여검객이라 호기심이 생긴듯했다.

‘그러고 보니..’

먼 옛날. 소향이는 검봉이 될 운명이라 했다.

당대 검봉인 청유화의 나이가 서른이었다. 슬슬 다음 세대에게 별호를 넘길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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