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8 - 228화 - 무협지구(23)
228화 - 무협지구(23)
모용세가 내문을 향해 가던 중.
어디선가 ‘아아악!’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왔던 길과 전혀 다른 방향. 아무래도 다른 토벌대 같았다.
멈칫한 시우가 발걸음을 돌렸다.
“가 보자.”
곧 비명 소리가 가까워졌다.
암녹색. 당문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보였다. 열다섯 정도로 보였는데 다급히 도망치는 중이었다.
그녀를 발견한 당화린이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당소월..?”
열 살에 그녀의 경지를 뛰어넘었던 천재였다. 당문의 모든 지원을 한 몸에 받던 아이.
그런 아이 뒤를 모용세가 무사들이 뒤쫓고 있었다.
“큭..!”
꼬맹이가 세 개의 비도를 흩뿌렸다. 뒤쫓던 무사들의 미간을 향해 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티잉!
미간에 명중한 비도가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내공을 머금은 칼날이 맨살을 뚫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당화린에게 물었다.
“아는 애야?”
“아.. 응.”
“일단 구하자.”
꼬맹이를 향해 가까이 갔다. 그녀가 이쪽을 발견하곤 얼굴이 밝아졌다.
“사, 살려주세요!”
땀범벅된 그녀가 다급히 달려왔다. 따라잡히기 직전이었다. 뒤쫓던 무사들이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였다.
“꺄아악!”
다리를 삐끗해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꼬맹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주저앉아 두 눈을 질끈 감은 그때.
촤악!
푸른 기운이 모용세가 무사들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몸을 웅크리고 떨던 꼬맹이가 실눈을 떴다. 툭 떨어진 머리를 보고 경악했다.
“어, 어떻게..?”
뒤쫓던 무사들의 피부는 강철처럼 단단했는데 단칼에 베였다. 기겁할 일이었다.
멍하니 일어난 그녀가 당화린과 눈이 마주쳤다.
“화, 화린언니..? 아! 저, 저희 좀 구해주세요!”
***
모용세가 어딘가.
당문 장로 당곽의. 그의 안색이 뻣뻣하게 굳었다. 어느새 무표정한 괴인들에게 포위당했다.
“큭..”
빠져나갈 구멍을 살폈으나 빈틈이 없었다.
선두에 선 괴인을 노려보다 소매를 털었다.
휙!
희끗 잔상과 함께 비도가 쏘아졌다. 괴인의 미간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쇄애액!
어찌나 빠른지 검은 직선이 허공에 생겨난 듯했다. 당문 암기술 중 가장 빠르다는 탈명일섬이었다.
퍼퍽!
괴인 머리가 뒤로 팍 젖혀졌다. 무언가 박혀 드는 소리가 두 번 울렸다.
미간에 비도가 파고들었고, 비도 그림자에 숨어 있던 은침은 눈동자에 꽂혔다.
통했다는 기쁨도 잠깐이었다.
“허..”
괴인이 눈에 박힌 은침을 뽑아버렸다. 비도도 마찬가지였다.
미간이 뚫리고도 죽지 않았다. 이마에 난 구멍이 눈에 보이는 속도로 아물었다.
‘사람이 어찌..?’
은침에 맹독도 발라놨으나 상대는 멀쩡했다.
“제길..”
당곽의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최후의 일격이 실패하자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주위 제자들도 표정에 절망이 어렸다. 그것을 보니 미안할 따름이었다.
‘여기까진가.’
그나마 당소월을 탈출 시켰으니 다행이었다. 그녀의 재능이라면 언젠가 당문을 오대 세가로 키울 수 있을 터였다. 그녀는 당문의 미래였다.
“하하하! 당문 암기술이 중원 최고라더니 직접 보니 형편없습니다.”
돌연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괴인들이 쩌억 갈라졌다. 붉은 장삼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흐.. 본인 이름은 알 거 없습니다. 그냥 사자라 부르시지요.”
“사자? 혈교였나..”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더니 고개를 까딱였다.
“그나저나 실망이 큽니다. 겨우 그런 암기술로 중원 제일이라 떠든 것입니까.”
당장로가 이를 악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자가 괴인에게 은침을 넘겨 받았다. 은침에서 뚝뚝 떨어지는 연노란빛 액체를 살폈다.
“그리고···.”
입을 쩍 벌리더니 혓바닥을 내밀었다. 은침에 묻은 독액을 날름 핥았다.
망설임 없이 꿀꺽 삼키더니 당장로를 비웃었다.
“독도 형편없군.”
당곽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놈들은 칠보추혼독을 먹고 어찌 그리 멀쩡하지..?”
칠보추혼독은 당문의 비전이었다. 독에 당하면 일곱걸음 걷기 전에 죽는다는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데도 상대는 멀쩡했다.
혈교사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게 칠보추혼독이었습니까? 명성이 아깝군요. 남은 게 있으면 더 해 보시지요.”
오만하게 팔을 벌리는 그의 모습에 당곽의가 소리쳤다.
“쳐라!”
쉬시식!
수백 개의 암기가 괴인들을 향해 쏟아졌다. 혈교 사자가 한 걸음 물러나 괴인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티티팅!
피부에 닿은 암기들이 튕겨 나갔다. 일부는 박혔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무표정한 괴인들의 피부는 강철처럼 단단했다. 전설의 금강불괴라도 되는지 암기가 박혀 들질 않았다. 당연히 독도 통하지 않았다.
당문 제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 장로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기회를 봐서 흩어진다.”
혈교사자가 오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탈출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암기 따위론 절대 혈강시를 죽일 수 없습니다!”
“강시..?”
당곽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이제 보니 무표정한 괴인들은 전부 시체였다.
강시는 시체지만 생전 무인의 무공을 그대로 사용한다.
게다가 이미 죽은 몸이니 독도 잘 통하지 않았다. 피부까지 단단하니 당문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아셨으면 순순히 투항하시지요. 쓸 만한 병력이 필요하니 박대하진 않겠습니다.”
“헛소리! 차라리 싸우다 죽을 것이다!”
“쯧쯧. 강시가 되면 곱게 죽지도 못할 텐데..”
혈교사자가 소리쳤다.
“반항하는 자들은 모조리 죽여라!”
나무토막처럼 서 있던 강시들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당문 제자들의 표정에 절망이 차오르던 그때.
쉬시시식!
돌연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온 하늘이 암기로 가득 찼다.
은침이 비처럼 쏟아졌다. 수많은 암기의 그림자에 한순간 하늘이 어두워졌다.
당장로가 눈을 부릅떴다. 고개를 홱 돌리며 뒤를 돌아봤다. 수백 개의 암기가 한 여인의 손에서 뻗어 나오고 있었다.
“만천화우(滿天花雨)!”
근 백 년간 아무도 익히지 못했던 암기술의 극의가 세상에 나타났다.
티티팅! 퍼퍽!
은빛 강철비가 혈강시에게 쏟아졌다. 단단한 피부에 튕기기도 했지만 절반 이상이 박혀 들었다.
흠칫하던 혈교사자가 비웃었다.
“겨우 은침 따위··· 어엇?!”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침이 꽂힌 혈강시들의 동작이 급속도로 느려졌다.
“그어..”
괴상한 신음을 내뱉더니 결국 멈춰버렸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부룩!
침 꽂힌 살덩이가 부풀더니 퍼억! 터졌다. 상처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끔찍한 악취에 머리가 저릿거렸다.
“우웨에엑!”
무어라 소리치려던 혈교 사자가 피를 토했다. 공기 중에 떠도는 맹독에 시야가 흐려졌다.
“이, 이게 무슨··· 커억!”
사방에 가득한 연기가 그를 휩쓸었다. 유언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한 줌 혈수로 녹아내렸다.
독연기가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졌다. 기겁한 당문 제자들이 도망치려던 순간.
휘이잉!
하늘에서 내려온 남자가 손을 휘저었다. 회오리바람이 몰아쳤다. 검은 연기가 손바닥 사이로 모여 들었다.
우웅!
검은 구슬로 뭉치더니 화륵! 불꽃이 일어났다. 강렬한 열기와 함께 구슬이 재로 변했다.
“헙..”
경악스런 광경에 당문 제자들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
당화린의 양팔이 잘게 떨렸다.
아공간과 옷 속에 숨겨놨던 모든 암기를 단번에 쏟아 냈다. 단전이 텅 비어 몸이 무거웠다.
“아..”
잘게 떨리는 손바닥을 보다가 시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마워.”
그가 독연기를 처리해주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시우에게 받은 흑수정 독은 감당 못할 정도로 위험했다.
“뭘 이런 거 가지고. 손목이나 줘 봐.”
“응.”
사실 손가락 끝이 약간 따가웠다. 스며든 독에 신경이 저릿거렸다. 시우가 독내성을 길러줬지만 독이 너무 독했다.
우웅.
잡힌 손목을 통해 독기운이 빠져나갔다. 이제야 몸에 힘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났다. 위기에 처한 가문 사람들을 보자 저도 모르게 한계를 넘었다.
비틀거리는 그녀를 시우가 부축했다. 입속에 동그란 단약을 넣어줬다.
“천천히 씹고 삼켜. 내공이 회복될 거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서서 약식으로 운기행공했다. 뱃속에 들어간 단약이 녹더니 기운이 일어났다.
경맥을 따라 한 바퀴 돌리자 단전에 내공이 차올랐다.
“하아..”
탁기를 내뱉으며 눈을 뜨자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화린아..”
머뭇거리던 당문 장로 당곽의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구해 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방금 그 초식은.. 설마 만천화우를 익혀낸 것이냐?”
“음.. 비슷해요. 다만 제 식대로 바꾼거라 당문의 만천화우랑은 많이 다를 거예요.”
애초에 시우가 준 아공간이 아니었다면. 천 개의 암기를 단번에 던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당장로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초식을 마음대로 개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의 표정이 짧은 시간에 몇 번이나 바뀌었다.
놀라움, 탄식, 후회. 그리고 결국 미안함으로.
“···지금 할 말은 아니지만. 이만 가문으로 돌아오지 않겠느냐.”
“가문이요?”
그 말에 당화린의 표정이 멍해졌다.
“아하하..”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녀의 발목을 잡던 무언가가 소리 없이 사라진 기분.
시원하게 웃으며 고개 저었다.
“그건 싫어요. 저는 이 남자한테 시집갈 거예요.”
옆에 있던 시우의 팔짱을 끼고 히 웃었다.
“나 참..”
곤란한 듯 웃는 그를 보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왜? 싫어?”
“그럴 리가.”
마음이 가벼워지자 단전이 빠르게 차올랐다. 갑자기 주변에서 바람이 불어들었다.
“어?”
휘이잉.
사방의 기운이 회오리치며 몰려들었다.
“환골탈태!”
누군가의 경악과 동시에.
주변 기운이 들끓더니 당화린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