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9 - 229화 - 무협지구(24)
229화 - 무협지구(24)
멍하니 서 있던 당화린의 몸에 내공이 가득 찼다.
바람이 몰아치며 그녀 옷이 거칠게 흔들렸다. 풍만한 곡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손을 휘저어 천막을 꺼냈다. 다른 이들이 보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탈의실처럼 사방을 막아 몸을 가렸다.
천막앞에 자리 잡고 호법을 섰다.
소향이도 옆에 오더니 검 자루를 쥐었다. 바짝 털 오른 고양이처럼 주변을 경계했다.
당화린을 위해 나선 그녀를 보니 흐뭇했다.
‘티격태격하더니 친해졌네.’
그러고 보니 소향이는 전투 중에 초절정에 올랐다.
안전한 곳에 도착할 때까지 환골탈태를 미뤘었다. 그런데 당화린은 순식간에 환골탈태에 들어갔다. 약간 통제를 잃은 느낌이었다.
‘재능차이인가?’
잡생각을 멈추고 감각을 곤두세웠다. 천막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 흐름을 기억해 뒀다. 환골탈태를 인위적으로 재현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천막안에서 요동치던 기운이 가라앉았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환골탈태를 무사히 마친 당화린이 나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맺혀들었다.
“헙..!”
“꿀꺽.”
사방에서 헛바람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원래도 예쁘던 얼굴은 거의 그대로였다. 그런데 피부와 몸매가 미세하게 달라졌다.
“오..”
햇빛이 반사된 피부가 반짝거렸다. 잡티하나 없이 백옥처럼 매끈했다. 새하얀 살결을 보고 있으면 홀릴 것만 같았다.
‘키도 커진 것 같은데..’
대략 2cm 정도 자란 듯했다. 덕분에 팔다리가 길어져 옷이 짧아졌다. 새하얀 손목이 살짝 드러났다.
터질 것 같은 상의에서 눈을 뗄수 없었다. 부풀어 오른 가슴 때문에 팽팽하게 당겨졌다.
‘더 커지다니.’
가슴이라기 보단 폭유.
모유선자랑 비교해도 모자람 없었다. 풍만한 가슴이 숨쉴때마다 위아래로 흔들렸다.
거기까지 관찰했을 때. 그녀가 와락 안겨들었다.
따듯하고 말랑거리는 감촉과 함께. 사방에서 질투에 찬 시선이 쏟아졌다.
신경 끄고 그녀에게 집중했다.
“고마워..”
약간 잠긴 목소리에 말없이 안아줬다. 옆에서 소향이가 입술을 삐쭉거렸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타이트해진 옷 때문에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가만있어도 남자를 유혹하는 못된 몸이었다. 야한 냄새가 폴폴 풍겼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어.”
“으응? 아앗!”
주머니에서 꺼내는척 한치수 큰 무복을 건네줬다.
***
사람들을 이끌고 내문으로 향했다. 바닥의 기운을 따라 걸을수록 머릿속이 간질거렸다.
상단전이 타통되며 발달된 직감이 경고했다.
‘위험한가..?’
뒷덜미가 따끔거렸다. 그런데 느낌이 애매했다. 재촉하는 것 같기도 했다.
곧 내문과 외문을 가로막는 담벼락에 도착했다.
‘어떻게 한다..’
잠시 멈추고 기감에 집중했다.
“저기.. 사일검수님 여기부턴 내문입니다. 아직 본대도 안 왔는데 설마 들어갈 생각입니까?”
따라오던 한 낭인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
거의 성벽처럼 커다란 담벼락을 자세히 살폈다.
높이만 10미터가 훌쩍 넘었다. 두께도 두꺼워 보였다. 내부에 흐르는 기운으로 보아 진법도 설치된 듯했다.
고민 끝에 결정했다. 카르마와 강적. 둘다 이곳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들어간다.”
“···어차피 진법 때문에 못 들어갈.. 헉!”
우우웅!
대기가 진동하고, 주먹에 강렬한 빛이 응집됐다. 허리춤에 매어진 주먹에 온 정신을 쏟았다.
전신을 휘돈 혼원기가 근육에 깃들었다. 증폭된 힘의 흐름을 정권으로 인도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이 일어난 순간. 찰나만에 이루어졌다.
한계까지 당겨진 활시위를 놓듯. 진각을 밟으며 주먹을 뻗었다.
순간이동하듯 날아간 권강이 담벼락에 닿았고.
까드득!
벽이 종이라도 된 것처럼 구겨졌다. 허공이 일그러지듯 압축된 순간.
콰아아앙!!
강렬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성벽처럼 두꺼운 벽이 가루로 변했다. 파고든 혼원기가 진법 문양을 조각냈다.
훤히 뚫린 벽을 넘으며 힐끗 돌아봤다. 입을 쩍 벌리고 서 있는 낭인들에게 말했다.
“위험할 테니 남을 사람은 남아도 좋다.”
억지로 끌고 가봐야 의미 없었다. 전투 중에 도망가면 사기만 떨어뜨릴 뿐이었다.
당화린과 소향이와 함께 내문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당문이 따랐고, 머뭇거리던 낭인들도 하나둘 따라왔다.
위험한 건 알지만 내문이야말로 오룡이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모두 긴장된 얼굴로 뒤를 따라왔다.
“네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약 서른 명. 우르르 쏟아져 나온 모용세가 무사들과 격돌했다.
10분 가량 격렬히 저항하던 그들이 하나둘 시체로 변했다.
“생각보다 약한데..?”
한 낭인이 하는 말에 누군가 대답했다.
“본대가 시선을 제대로 끌었나? 이거 거저먹겠군.”
“모두 조용. 할 말 있으면 전음으로 해라.”
잡담하던 낭인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마주친 무리들을 죽이며 중심지로 파고들던 중.
들것에 실려 옮겨지는 남자들을 발견했다. 그 수가 총 다섯.
근육질 거한부터 잘생긴 청년까지. 인상착의가 듣던 것과 유사했다.
-조장님! 오룡입니다!
얼굴을 알아본 한 낭인이 전음을 날렸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월영신으로 기척을 죽이고 그들에게 접근했다.
촤악!
“꺽..!”
단숨에 일어난 검기가 사방을 훑고 지나갔다. 오룡을 옮기던 무사들이 모두 싸늘한 시체로 변했다.
‘이렇게 쉽다고?’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호위가 너무 부실했다. 오룡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손목을 짚고 기운을 살폈다. 내공이 금제된 듯 했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음···.’
단지 너무나 쉽게 구했기에 꺼림칙할 뿐.
혼원기를 이용해 그들을 깨우려다 멈칫했다. 허공을 노려보며 조용히 검 자루를 쥐었다.
“허참.. 다들 뭐가 그리 급한지.. 겁 없는 쥐 새끼가 또 찾아왔군요.”
하늘을 밟고 나타난 남자가 혀를 찼다.
내공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그와 동시에 이유 모를 흥분이 맴돌았다. 심장 소리가 커진 느낌이었다.
“하하.. 드디어 찾았다.”
모두가 뻣뻣하게 굳은 와중에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입가에 맺어진 미소를 제어할 수 없었다.
“찾아?”
남자가 눈썹을 오므릴 때.
스릉.
천천히 검을 뽑으며 그녀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먼저 빠져나가. 뒤따라갈 테니까.
-···조심해.
머뭇거리던 그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공을 밟고 서 있는 남자가 얼마나 강한지 대충 눈치챈 것이다.
도움이 되기보단 짐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녀들이 손짓하자 이제야 정신 차린 이들이 주춤 뒷걸음질 쳤다.
몇몇 이들이 은근슬쩍 오룡을 챙겼다.
“하.. 여기가 마음대로 오고 갈수 있는 곳인지 아십니까.”
그가 양손을 좌우로 펼치자 대기가 진동했다.
구구궁!!
“커헉..!”
낭인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파리 때려잡듯 손을 휘두르려던 남자가 멈칫했다.
“네놈..”
경계어린 얼굴로 홱 이쪽을 노려봤다.
‘육화(肉火).’
상대는 화경의 고수. 망설임 없이 육화까지 사용했다. 평소와 다르게 전력을 다 했다.
단숨에 피가 부글부글 끓고 기운이 폭증했다. 뜨거운 열기에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증폭된 내력을 모조리 검으로 인도했다.
쩌저적!
단숨에 일어난 찬란한 검강이 분열했다. 한 개에서 두 개로. 두 개에서 네 개. 순식간에 생겨난 수백 개의 검강이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흉포한 기운이 검을 둘러싸고 으르렁거렸다.
사일검강(射日劍罡) : 관천(貫天).
찌르고 뚫는다. 하늘마저 베겠단 념을 담아 검을 휘둘렀다.
쩌어엉!
푸른 기운이 허공을 찢으며 달려들었다. 용이 포효하듯 파공성과 함께 찰나만에 놈에게 닿았다.
“큭!?”
얼굴을 일그러뜨린 녀석이 양손을 뻗었고, 거대한 푸른 참격이 놈에게 닿았다.
콰아아앙!!
빛이 번쩍이고 강렬한 폭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쿠구궁!
주변에 자리한 수십채의 건물이 박살 났다. 잔해를 흩뿌리며 가루로 변했다.
태풍이 지난 자리처럼 폐허만이 가득했다.
“도, 도망쳐!”
거친 바람에 낭인들이 비틀거렸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눈치 빠른 몇을 시작으로 허겁지겁 도망갔다.
모두가 떠나고 어느새 고요해진 가운데.
흙먼지가 걷히고 남자가 나타났다. 살기 어린 눈빛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 멀쩡하네?”
장난치듯 말했지만 긴장을 풀진 않았다.
사일검강은 그가 날릴 수 있는 가장 강한 일격이었다. 그걸 정면으로 받고도 상대는 멀쩡했다.
“퉷! 네놈.. 사일검수였구나. 저주받을 무공을 익혔어.”
남자가 씹어먹을 듯 이쪽을 노려봤다. 노한 눈빛과 다르게 달려들진 않았다.
그것을 보고 눈가를 좁혔다.
웅웅!
커다란 반구형 호신강기가 보였다. 반경 30미터짜리 장막이 천천히 돌고 있었다.
회전을 통해 사일의 위력을 흩트린 것이다. 대단한 기예였지만 의문이었다.
‘저걸 굳이 지켰다고?’
상대 등 뒤로 2층짜리 전각이 보였다. 기습적으로 날린 사일에 건물까지 지킨 것이다.
‘내공이 남아돌아서? ..그럴리가.’
자세히 관찰하니 놈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역시.’
화경이라도 사일에 멀쩡할 순 없었다. 놈도 무리했다. 내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멀쩡한 건물을 힐끔 살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호신강기 안과 밖이 선명히 대비됐다. 바닥에 흐르는 끈적한 기운도 저 건물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미간을 찡그리던 녀석이 표정을 풀었다.
“초절정 주제에 동료가 도망갈 동안 시간을 끌겠다? 그 기개 하나 만큼은 마음에 듭니다.”
아예 뒷짐까지 쥔 녀석이 오만하게 말했다.
“상으로 일각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어디 재주껏 도망쳐 보시지요.”
남자의 기운이 치솟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웅혼한 내공이 깃들었다. 대기에 가득한 자연지기가 그의 힘이 되었다. 온 세상이 적이 된듯 어깨를 짓눌렀다.
“도망? 하하하!”
하지만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혼원기가 전신 경맥을 내달렸다. 근육에 스며들어 힘이 되었다.
짓누르는 대기를 밀어냈다. 천천히 걸어가며 양손으로 커다란 원을 그렸다.
너무 느려 실전에서 쓰긴 곤란한 기술. 하지만 위력만은 사일에 버금가는 기술.
일월합벽(日月合闢).
쩌저적!
왼손에 응집된 서늘한 음기에 대기가 얼어붙었다.
내뱉은 숨결마저 얼어붙은 순간. 오른손에서 강렬한 열기를 피워올렸다.
미간을 꿈틀한 녀석에게 말했다.
“도망을 왜 가나. 내가 널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