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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231화 (231/241)

Chapter 231 - 231화 - 무협지구(26)

231화 - 무협지구(26)

허공에서 튀어나온 보랏빛 단약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단약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나라는 세상이 한순간 확장됐다. 내가 달라지자 세상도 달라졌다.

‘아..’

입을 열었으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사일을 통해 영혼이 단련된 것과 격이 달랐다. 찰나의 순간에 강제로 몇 계단을 뛰어 넘었다.

마치 전능. 세상을 보는 시야 자체가 달라졌다.

선명해진 풍경을 느긋하게 둘러봤다. 아니 인지했다.

“뭐어어어··· 냐아아아···!”

기겁한 얼굴로 물러나는 묘일해가 느릿하게 재생됐다.

방금 전까지 강해 보였던 적이 버러지처럼 느껴졌다.

‘아니.’

흐려진 이성을 다잡았다. 실질적으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자신은 아직 약자였다.

그 증거로 느려진 세상 속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느리게나마 뒤로 물러나는 묘일해와는 대조됐다.

흥분됐던 감정이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 깨달았다.

지금 이 변화는 일시적이라는 것. 전투로 고양된 정신에 영혼이 급성장하며 일어난 우연이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일어난 현상. 다시 혼령정련단을 먹어도 이 상태에 돌입하진 못할 것이다.

10초. 아니, 몇 초만 지나도 사라질 기연이었다. 초월적인 인지력이 그것을 알려 줬다.

‘아쉬운데..’

느려진 세상 속에서 문득 무영신투의 신법이 떠올랐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답답했다.

-숨을 죽이면 보이지 않고. 기를 죽이면 느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죽이면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리라.

이상하게도 은신술인 월영신의 구결이 머릿속에 아른 거렸다.

떠오른 구결을 음미하다 느릿하게 숨결을 내뱉었다.

‘가장 먼저 숨을 죽이고.’

식살(息殺)에 이어 기를 죽였다. 어차피 바닥나기 직전인 내공을 모두 놓아버렸다.

홀가분해진 몸으로 하늘을 올려다 봤다.

몸을 짓누르는 묘일해의 기운 너머. 청명한 하늘에 선이 가득했다.

새하얀 구름과 단단한 땅. 흩날리는 먼지와 흐르는 땀방울. 손에 들린 차가운 쇳덩이와 자신까지.

모든 것이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흐릿하던 선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것을 인지하니 참을 수 없이 답답했다. 온몸에 쇠사슬을 칭칭 감고 있는 기분이었다.

전신에 휘감긴 수천수만 가닥의 선을 노려봤다.

당장 찢어 버리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으니까.

어느새 세상은 더 느려져 묘일해마저 멈춰버렸다.

한참을 발버둥 쳤다. 하지만 강인해진 육체로도 선을 어쩔 순 없었다.

‘하..’

멍하니 서 있다 허공을 바라봤다.

선과 선 사이. 대기 중에 떠도는 자연지기가 보였다. 당장에라도 손에 닿을 것만 같았다.

우웅.

의지를 발하자 자연지기가 꿈틀거렸다. 미약하지만 분명 호응했다. 찰나지만 화경에 닿은 것이다.

피로해진 정신을 끌어모았다. 머리가 뻐근해질 정도로 집중한 순간.

퍽!

무언가 뚫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상속 그를 가로막던 벽에 바늘보다 작은 구멍이 생겼다.

‘아..!’

후두둑!

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콩알보다 작던 점이 급속도로 커졌다.

어느새 사람보다 커졌다. 충분히 드나들 수 있을 만큼. 구멍을 통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짜릿한 희열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지금이라면.’

손끝에 기이한 감각이 아른거렸다. 왠지 자연지기를 다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느낌은 거짓이 아니었다.

우웅!

단 하나에 온 정신을 쏟았다. 몸에 휘감긴 답답한 선을 잘라버릴 검을.

허공에 손톱만 한 검기가 형성됐다.

오직 자연지기로만 만들어 낸 조그마한 칼날.

느릿하게 날아간 검날이 선에 닿았고.

투두둑.

손가락보다 작은 참격에. 십여 가닥의 선이 잘려 나갔다.

그리고.

속박하던 무언가에서 풀려났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일순 가벼워진 몸에 홀가분한 기분마저 들었다. 극한의 자유가 느껴졌다.

피로 했던 근육에 활력이 돌았다. 꼼짝도 하지 않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웅!

겨우 한 걸음. 발을 들었다 내렸을 뿐인데 하늘이 뒤흔들렸다.

전신이 붉게 달아올랐다. 피부에서 강렬한 열기가 느껴졌다. 묘일해의 압박과는 비교할 수 없이 무거운 어떤 것이 육체를 속박했다.

‘아직이다.’

이어 한 걸음. 으득 이를 악물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쿠웅! 쿠웅!

아직도 멈춰있는 묘일해에게 한 발 한 발 다가 갔다.

그리고 놈과 마주선 순간.

검을 들어 심장을 겨눴다.

푸우욱!

느릿하게 전진한 검 끝이 살을 갈랐다. 심장까지 파고들어 꿰뚫었다. 그 모든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끅..!?”

고통에 일그러진 묘일해가 피를 토했고, 그제야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전신 경맥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게 천살(天殺)이었군.”

방금 전에 느꼈던 모든 감각이 환상처럼 사라졌다. 초월적인 인지력도 마찬가지였다.

남은 것이라곤 당혹에 물든 묘일해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마지막 남은 혼원기로 심장을 부숴 버렸다. 가루가 되어 조각났다.

“커헉..!”

주륵 입가에서 피를 흘린 묘일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많은 것이 담긴 질문이었지만 대답할 생각은 없었다.

“지옥에서 고민해 봐라.”

“크흐.. 빌어먹을..”

힘없이 쓰러지려던 묘일해가 이를 빠득 깨물었다.

“크아아악!”

사방에 흩어졌던 핏물이 허공에 떠올랐다. 묘일해 앞에서 휘감기더니 한 자루 검으로 변했다.

“같이 가자!”

핏빛 참격이 날아들었다. 인지했다 싶은 순간. 이미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죽기 직전 온 힘을 쥐어 짜낸 최후의 일격.

묵직한 기운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우스웠다. 조금 전에 느꼈던 하늘의 무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볍게 흩어 버리고 한 걸음 옆으로 걸었다.

촤아악!

그것으로 핏빛 칼날은 허공을 가르고 사라졌다.

입을 벌린 묘일해가 허탈하게 말했다.

“진짜로.. 화경에 오르다니..”

털썩.

무릎 꿇은 묘일해가 고개를 툭 떨궜다. 그 말을 끝으로 절명한 것이다.

말없이 놈을 내려다보다가 손끝을 튕겼다. 작은 불꽃이 시체를 재로 만들었다.

혈교답게 마지막까지 지독한 놈이었다.

“후우..”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했다. 의지만으로 천지 기운이 호응했다. 숨쉴 때마다 자연지기가 스며들었다.

단전이 빠르게 차올랐다. 평소와 비교해서 대여섯배는 더 빠른 속도였다.

겨우 1분. 가만히 호흡한 것만으로 꽤 많은 내공이 차올랐다.

‘드디어..!’

화경에 진입했다. 문턱을 밟은 느낌. 확실히 초절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남은 것은 수련으로 경지를 안정시키는 것뿐이었다.

휘이잉!

마음이 일자 손가락 사이에 바람이 휘감겼다. 생각만으로 자연지기가 호응했다. 허공에 맺힌 검기가 참격을 날리며 사라졌다.

‘좋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마저 기꺼웠다.

흡족하게 웃으며 바닥난 마력코어를 채웠다. 재생의 힘을 전신에 휘돌렸다.

상처 곳곳에 마력이 스며들었다. 갈라졌던 옆구리가 눈에 보이는 속도로 아물었다.

1분가량 집중한 것만으로 빠르게 회복됐다.

‘재생력도 강해진 것 같은데.’

화경에 입문하니 마력 효율 자체가 증가했다. 좋은 일투성이었다.

‘이 정도면 됐다.’

눈에 보이는 상처를 회복한 뒤. 적당한 무복을 꺼내 입었다.

이어 반지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당화린과 소향이의 위치가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북서쪽인가.’

다행히 그녀들의 위치가 동일했다. 함께 다니고 있다면 별일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반지를 이용해 텔레파시를 보냈다.

-둘 다 괜찮아?

-···아! 시우?! 괘, 괜찮아? 지금 안전한 거 맞아?

-안전하니까 걱정 마. 놈은 이미 죽었어.

-죽어···? 이, 이겼다고? 화경의 고수를?

-응. 그쪽은 별일 없어?

-어어.. 괘, 괜찮아.

-다행이네. 소향이는 어때? 다친 데 없지?

대답이 없었다. 5초가량이 흐른 뒤 소향이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 히잉.. 이거 왜 이래. 안 되잖아...

-안 돼? 난 잘되는데. 시우가 너한텐 고장 난 거 줬나 봐.

-아니야! 고장 안 났어!

뭘 어떻게 조작한 건지 그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봐 봐. ···작동 중인 거 같은데?

소향이는 아티팩트 조작에 서툴렀다.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소향아 네 말 다 들려.

-히약!?

뚝. 내공을 끊었는지 그녀 목소리가 끊겨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향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괜찮은 거 맞죠? 다친 데 없죠?

-그렇다니까.

이미 회복된 지 오래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전신이 걸레짝이 됐었단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기다려.

-응. 빨리 와.

-···네.

허공을 밟으며 그녀들을 향해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크하하하하! 이 개 같은 년! 드디어 걸렸구나!!”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인상을 찡그렸다. 걸걸한 목소리에 환희가 가득했다.

‘이 기운은.. 낭왕?’

익숙한 목소리에 잠깐 고민하다 방향을 살짝 틀었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 확인해 볼 작정이었다.

게다가 낭왕은 혼자가 아니었다. 화산제일미 청유화의 기운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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