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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234화 (234/241)

Chapter 234 - 234화 - 무협지구(29)

234화 -무협지구(29)

***

얼마 전 모용세가 정문.

본대가 모용세가를 상대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와아아!”

모용세가 제자들은 끝도 없이 밀려났다. 정문 방어선은 돌파한지 오래였다.

하지만 검왕과 걸왕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저 멀리 어디선가. 또 다른 화경의 고수가 나타났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구궁!

충돌하는 강대한 두 기파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화경과 초절정 끝자락. 두 명의 무인이 맞붙고 있었다.

“망할..”

적으로 추정되는 자의 기운이 훨씬 강했다. 그를 상대하는 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기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적이 합류하기 전에 싸움을 끝내야 했다.

걸왕이 다급히 손을 휘두르자 두 손에서 강기가 뻗어 나갔다.

콰앙! 콰앙!

“하하하! 늙은이 손맛이 제법 맵습니다!”

모용가주 모용휘가 연신 뒤로 물러났다.

열 받은 걸왕이 고함쳤다.

“썩을놈이 도망만 치다니! 모용휘 네놈은 자존심도 없느냐!”

“하하. 곧 죽을 늙은이랑 겨뤄서 뭐 하겠습니까. 제 동료가 오면 싫다 해도 맞붙어 드리겠습니다.”

화경의 고수가 작정하고 몸 사리니 결판나질 않았다.

콰앙!

모용휘가 튕긴 강기가 전각을 박살 냈다. 제 가문이 박살 나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시간만 끌었다.

걸왕이 얼굴을 구겼다. 걸쭉한 침을 퉤 뱉으며 고민했다.

“어쩐다..”

후퇴를 고민하고 있을 때.

돌연 멀리서 느껴지던 기파가 씻은 듯 사라졌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강대한 기운이 소리 없이 소멸됐다.

“음?”

“뭐..?”

그것을 느낀 화경의 고수들이 동시에 멈칫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기감을 끌어올렸다.

“어찌..?”

너무 갑작스럽게 모든 기운이 사라졌다. 마치 죽은 것처럼.

모용휘가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묘일해가 죽었다고..?”

초절정이 화경의 고수를 죽인 것이다. 이제 상황이 단번에 역전됐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끝내주는구나! 이제 어쩔 것이냐! 이 개잡놈아! 크하하하!”

광소를 내뱉은 걸왕이 손바닥을 휘둘렀다.

콰앙!

이를 악물던 모용휘가 돌연 소리쳤다.

“모두 승천단을 먹어라!”

내공을 담은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예!”

모용세가 제자들이 환약을 집어먹었다. 머뭇거리던 이들도 결국 하나둘 삼켰다.

눈가를 좁힌 검왕이 소리쳤다.

“승천단! 모두 후퇴한다. 어차피 죽을 놈들이니 상대할 필요 없다!”

“예!”

토벌대가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모용세가 제자들이 더 빨랐다. 무림맹 무사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크아악! 죽어라!”

“쯧.”

침착하게 물러나던 무사가 검을 겨눴다. 날카로운 검 끝이 단전을 향했다. 이대로 들어오면 단전이 깨질 것이다.

그런데.

푸욱!

복부에 파고든 검이 단전을 으깼다. 그런데도 모용세가 제자는 멈추지 않았다.

“어엇?”

망설임 없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고, 기겁한 무사의 목이 잘려 나갔다.

승천단을 먹은 이상 늦든 빠르든 곧 죽는다. 몸사릴 이유가 없었다.

배에 검을 꽂은 채 다음 사냥감을 노려봤다.

“너도 죽어라!”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급속도로 늙어가는 눈에 광기가 어렸다.

해쓱해진 무림맹 무사가 공포에 질렸을 때.

“어딜!”

콰앙!

거대한 손바닥이 내리꽂혔다. 걸왕의 손바닥에서 퍼져나간 강기 덩어리였다.

“모두 물러나라!”

검왕과 걸왕이 사방에 강기 다발을 뿌려댔다. 모용세가 제자들이 쫓아오지 못하게 막아섰다.

콰아앙! 콰앙!

수많은 이들이 강기 폭풍에 휩쓸려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모용가주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물러난다.”

천천히 뒤돌아 떠났다. 그 뒤를 모용세가 핵심 제자들이 뒤따랐다.

“쳇.”

걸왕이 걸쭉한 침을 뱉으며 그들을 내버려 뒀다.

승천단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미쳐 날뛰는 적들을 막는 데 집중했다.

***

다시 모용세가 북쪽.

검룡 남궁무혁. 멍하니 서 있던 그가 주위를 둘러봤다.

어두컴컴한 공간만 가득했다. 주변엔 불빛 하나 없었다. 보이는 것은 없었고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긴..?’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눈앞에 환영들이 떠올랐다.

10살도 안 된 어린아이. 잘생긴 꼬마가 목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나잖아..’

낯익은 외형이었다.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었다.

어린 남궁무혁이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 앞에서 목검을 치켜들었다.

“잘 봐. 이렇게 내력을 집어넣고 집중하면..”

우웅!

목검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내공심법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꼬마가 검기를 사용한 것이다.

“우와!”

“어, 어떻게 한 거야?”

어린 남궁무혁이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뭐야 이것도 못 해? 너희 전부 바보야?”

인상을 찡그린 한 아이가 투덜거렸다.

“넌 할아버지가 검왕이잖아! 그러니까 영약도 많이 먹었겠지! 그래서···.”

어렸던 그가 키득거렸다.

“아닌데? 이건 내공이랑 상관없어. 그냥 집중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바보만 아니라면.”

“이익!”

열 받은 꼬맹이가 달려들었고. 두 꼬마가 서로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당연하게도 남궁무혁 그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

처음으로 회초리 맞은 날의 기억이었다.

‘내가 이랬던가..’

잊었던 기억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조금 미안했다.

‘음..?’

제대로 생각할 새도 없이 장면이 빠르게 흘러 갔다.

어째서 과거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 집중했다.

“과연.. 엄청난 재능이오.”

“큭.. 벌써 초절정이라고? 말도 안 돼!”

“훌륭하다. 너라면 언젠가 천하제일에 오를지도 모르겠구나.”

“무혁아. 너는 남궁의 미래다. 언제나 믿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그를 향해 감탄했다.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습관적으로 표정을 관리했지만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명성.

질투와 찬양어린 말은 언제 들어도 달콤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밝은 보름달 아래. 숲속에서 한 여인을 만났다.

달빛에 비친 머리결이 반짝거렸다. 고고히 서 있던 그녀가 검을 휘둘렀다.

휘익!

검기로 만들어진 꽃잎이 그녀와 함께 흩날렸다. 머릿속이 멈춰버렸다. 멍청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서 바라봤다.

“아..”

청유화.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운명처럼 첫눈에 반했다. 기필코 그녀를 아내로 맞으리라 결심한 순간이기도 했다.

춤 추듯 검을 휘두르던 여인이 고개를 홱 틀었다.

“누구냐!”

“아! 죄송합니다. 저는 남궁무혁이라 합니다. 여긴 우연히 산책하다···.”

청유화와 처음 만났던 날이 스쳐 지나가고.

어느새 어두운 방으로 풍경이 변했다.

온몸에 쇠사슬이 칭칭 감겼다. 손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아, 아파..”

문득 고통 가득한 신음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청매?!”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옆에 피투성이로 쓰러진 청유화가 보였다.

“청매! 유화야! 정신 차려!”

철컹!

당장 그녀를 살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속박돼서 꼼짝할 수도 없었다.

“제기랄..”

절망감이 차오를 때.

“호오.. 제법 예쁘장한 계집이군. 마음에 들었다.”

어둠 속에서 노괴가 나타났다. 모용세가에서 마주친 화경의 고수.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청유화에게 다가갔다. 기겁해서 소리쳤다.

“뭐, 뭐 하는 것이오!”

“크흐흐.. 약해빠진 네놈은 거기서 보고만 있어라. 곧 그녀도 좋아할 것이다.”

발광하듯 몸을 뒤틀었지만 막을 수 없었다. 망할 쇠사슬이 그를 구속했다.

“참한 년이로다.”

노괴의 더러운 손이 그녀에게 닿기 직전.

“윽..”

아무것도 못한 채 눈을 질끈 감아버린 그때.

촤악!

“커헉!”

한 남자가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 단칼에 노괴를 베어 버리더니 청유화를 구해냈다.

“아..! 고마워요.. 이 은혜를 어찌 갚을지..”

“신경 쓰지 마시오. 아름다운 여인을 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오.”

경박한 남자였다.

‘개자식이..’

청유화의 몸을 대놓고 훑어 봤다. 노골적이고 집요한 시선에 열불이 치솟았다.

“이런.. 몸에 상처가 많군. 내가 치료해 드리겠소.”

실실 웃더니 청유화를 품에 안았다.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더니 숨을 들이켰다.

눈을 부릅 뜨고 노려봤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다.

“미, 미친..! 뭐 하는 짓이오! 당장 떨어지시오! 그게 무슨 치료란 말이오!!”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으나 의미 없었다.

남자는 그를 힐끗 보더니 무시해 버렸다. 청유화도 마찬가지였다. 밀어내도 모자랄 판에 얌전히 품에 안겼다.

마치 그가 없는 것처럼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읏.. 아, 아파..”

“허어! 여기도 다쳤군. 조금만 참으시오.”

남자가 청유화의 몸을 더듬었다. 그도 못 만져 본 가슴을 제멋대로 주물렀다.

“아, 안 돼!!”

철그럭!

발악하듯 몸부림 쳤으나 쇠사슬은 단단했다.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청유화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도 아프시오?”

“아, 아니에요.. 이제 안 아파요..”

“다행이군. 긴장 풀고 나한테 전부 맡기시오. 나는 이런 일에 전문가니 아프지 않게 해드리겠소.”

연인끼리 사랑을 속삭이듯 부드러운 어조였다.

“네.. 알았어요. 믿을게요.”

청유화가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새색시처럼 홍조가 가득했다.

“흐읏..”

이미 치료는 끝난 지 오래. 그녀의 피부는 흉터 하나 없이 매끈해졌다. 그런데도 그녀는 남자에게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소곳하게 안긴 채 스르륵 눈을 감았다. 남자의 탄탄한 가슴팍에 얼굴을 기댔다.

“청매!! 뭐 하는 거야! 정신 차려! 당장 도망쳐!!”

다그치고 욕까지 해봤지만 그녀는 반응이 없었다.

“빌어먹을!”

부들거리며 청유화를 보다가 흠칫했다.

“하우.. 흐읏..!”

그녀의 숨소리가 점점 변했다. 촉촉하게 젖은 신음이 마치 교태를 부리는 듯 했다.

“어허. 움직이지 마시오.”

“네, 네에..”

청유화가 무언가 참듯 입을 꾹 다물었다. 멍청히 그 광경을 보다가 눈을 부릅 떴다.

남자가 손을 건네주자 기다렸다는 듯 꼬옥 붙잡았다.

“하우, 우읏.. 하아.. 이, 이거.. 이, 이상해요.. 뭔가..”

“어떻게 이상한데?”

“모르겠.. 머, 머리가.. 하윽?!”

몸을 더듬을 때마다 파르르 떨어댔다. 남자를 기쁘게 하는 음란한 몸짓이었다. 순진했던 그녀가 쾌락에 물드는 걸 멍하니 바라봤다.

경련은 끊임없이 커졌고.

“응..아앗!”

부웅 떠오른 허리가 움찔움찔 떨렸다. 그 몸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리 없었다.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다고 저런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어느새 충혈된 눈이 따가웠다. 놈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어억! 개자식아! 당장 떨어져!!”

발광하듯 몸을 뒤틀던 순간.

“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벌떡 일어났다. 환상처럼 모든 것이 사라졌다.

“허억.. 허억.. 여, 여긴..?”

축축하게 젖은 등이 찝찝했다. 이유 모를 오한과 함께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풍경이 확 달라졌다. 어딘지는 곧 알 수 있었다.

“모, 모용세가? 유, 유화는..?”

방금까지 앞에 있던 청유화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두 눈만 끔벅거리고 있을 때.

턱수염이 수북이 자라난 낭인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어엇? 일어나셨습니까!”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퀴퀴한 땀 냄새가 이곳이 현실임을 알려줬다.

멍하니 앉아 있다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꾸, 꿈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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