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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235화 (235/241)

Chapter 235 - 235화 - 무협지구(30)

235화 - 무협지구(30)

“꾸, 꿈이었나..?”

남궁무혁이 휘청거렸다. 머리가 욱신거렸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 찡한 두통에 미간을 찡그렸다.

술에 취한 듯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윽!’

반사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렸지만 불가능했다. 찌르르한 통증만 올라올 뿐이었다.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는데 사람들이 가득했다. 거의 백 명에 달하는 무사들이 보였다.

하나 같이 지친 듯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낭인이랑.. 당문인가?’

당문의 암녹색 옷을 보니 조금 안심됐다.

‘어..?’

군중 사이로 유난히 눈에 띄는 여인이 둘 보였다. 연인인 청유화랑 비교해도 모자람 없는 미녀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몸매만 따지면 그녀들이 더 우월했다.

청유화보다 두 배는 큰 가슴을 홀린 듯 바라봤다.

‘허..’

압도적인 살덩이가 부드럽게 출렁였다.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남자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맹랑한 계집애야! 여우짓거리 좀 그만해!”

“여, 여우짓..? 내, 내가 언제!”

“순진한 척 시우나 홀리고.”

“그런 적 없어!”

“하..”

키 큰 여자가 팔짱을 끼자 커다란 가슴이 짓눌렸다. 팔뚝 사이로 삐져나온 살덩이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주춤 뒤로 물러난 흑발 여인이 미간을 팍 찡그렸다.

“윽.. 쓸데없이 가슴만 커져선!”

“뭐, 뭐어!”

새하얀 피부와 터질 듯한 몸매에 빠져들었다.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을 때.

“저기..”

남궁무혁이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턱수염 수북한 낭인이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험험.. 몸은 좀 어떻습니까?”

그러고 보니 아까 일어났을 때 이자가 말을 걸었었다.

“그, 그대는..?”

질문과 동시에 머릿속이 점점 맑아졌다. 이제야 제정신이 들었다.

“아!”

화경의 고수에게 제압당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몸을 움찔 떨었으나 이곳은 지하가 아니었다. 적어도 파란 하늘이 보이는 실외였다.

‘도, 동생들은?’

다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바로 옆에 제갈영을 비롯한 오룡들이 보였다.

몸을 꿈틀거리는 게 곧 일어날 듯했다.

긴장을 살짝 푼 그가 낭인에게 물었다.

“···자네들이 우릴 구한 건가?”

“예! 제 이름은 배용팔입니다! 제가 당신을 여기까지 업고 왔으니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배용팔···? 알겠네. 기억하지. 그나저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자세히 설명 좀 해주게.”

“어.. 그러니까. 저희는 무림맹 토벌대입니다. 조장이신 사일검수를 따라 내문으로 갔었죠. 거기서 기절하신 오룡들을 발견했고···.”

낭인이 그를 구출했던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이 얼마나 용감했는지 한참을 떠들었으나 대충 흘려들었다.

“잠깐. 그러니까 화경의 노괴가 쫓아오고 있다 그 말인가?”

“어.. 아닙니다. 당소저가 말하길 사일검수가 이겼으니 걱정 말랍니다.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서 체력을 보충하라고..”

“허..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화경의 고수가 어떤 존재인데. 사일검수라 해 봐야 이름 좀 날린 낭인에 불과했다.

털북숭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 설마 날 속이려는 것인가?”

“예? 아, 아닙니다! 제가 말한 건 전부 사실입니다!”

어설픈 거짓말에 작게 혀를 찼다.

“분명 족히 한식경은 달려 화경의 노괴와 거리를 벌렸다고 하지 않았나?”

“예, 예! 그랬습니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군. 사일검수가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전음이라도 날렸단 말인가?”

“어.. 아마도요..?”

고개를 끄덕이는 낭인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하여간 낭인들이란.’

혀를 차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오룡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그들도 곧 사정을 알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제갈영이 눈썹 사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어이가 없군.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하게.”

“어.. 그게.. 당소저께서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돌아가면서 운기조식 하라고..”

“허참. 지금은 휴식 취할 때가 아닐세. 한시라도 빨리 본대와 합류해야 하네!”

명령하듯 말했으나 낭인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제갈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니. 자네들은 도대체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왜 믿은 것인가? 사일검수가 화경의 노괴를 이겼다니?”

“그야.. 봤으니까요.”

“뭘 봤단말인가.”

“사일검수의 검을 봤으니 믿을 수밖에.”

누군가의 말에 미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낭인들이 본 것은 최초의 격돌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단 일 검에 수십채의 전각이 박살 났었으니까.

“허..”

오룡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단체로 최면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됐으니 지금 당장 출발하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그 노괴를 이길 순 없을 걸세.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기적이야.”

머뭇거리던 낭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당소저한테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소향이와 투닥거리던 당화린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요.”

단정한 무복이었지만 그녀의 몸매를 숨길 순 없었다. 오룡들의 표정이 하나 같이 똑같이 변했다.

멍하니 입을 벌리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당화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선가 장포를 꺼내 몸을 덮었다.

뜨끔한 제갈영이 헛기침 하며 말했다.

“..당소저 맞지요?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여기서 기다리는 건 현명치 않은 판단입니다.”

“섣불리 움직이다 기관이나 진법에 빠지는 것보다 시우를 기다리는 게 낫잖아요.”

“애초에 그자는 이미 죽.. 흠흠. 화경의 고수를 어찌 이겼단 말입니까.”

한참 말했지만 결론나지 않았다. 서로의 말을 믿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뒤에서 뚱한 표정을 짓던 소향이가 말했다.

“됐어요. 말릴 생각 없으니까 떠날 사람은 떠나요.”

“아니 무슨 말을 그리하십.. 헉!”

어디선가 강대한 기파가 다가왔다. 빠른 속도에 모두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버, 벌써..!”

아무리 봐도 초절정 수준이 아니었다.

오룡들의 얼굴에 절망이 찾아왔고, 그와 반대로 당화린과 소향이의 얼굴은 활짝 펴졌다.

“시우!”

익숙한 기운이니 당연했다.

압도적인 기운에 절망하던 남궁무혁이 멈칫햇다.

그녀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하늘을 보며 커다란 두 눈동자를 반짝였다. 마치 기다렸던 님이라도 온 것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설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입을 쩍 벌렸다. 저 멀리 허공의 점 하나가 빠르게 커졌다.

순식간에 가까워져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가녀린 여인을 품에 안은 젊은 남자였다.

노괴가 아니라는 안도감도 잠깐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선명해진 순간. 뒤통수가 뻐끈했다. 누군가 망치로 후려친 듯 얼얼했다.

‘청매..?’

청유화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얌전히 안겨 있었다. 옷자락을 꽉 쥔 그녀의 손모양이 콱 박혀 들었다.

“사일검수다!”

누군가의 외침에 사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여전했다.

두 눈으로 보이는 장면이 도저히 해석되지 않았다.

제대로 정신 차리기도 전에. 그가 하늘에서 가볍게 내려섰다.

사일검수가 웃으며 말했다.

“유화 소저. 이제 그만 놔도 되지 않겠소? 이미 도착했소.”

‘유화..?’

자상한 어투에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아.. 죄, 죄송해요.”

그제야 청유화가 꽉 쥐고 있던 옷자락을 놓았고, 남자가 부드럽게 땅에 내려놓았다.

그 장면을 노려보다가 머리를 휘저어 정신 차렸다.

‘아니다.’

무언가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녀를 믿고 서둘러 달려갔다.

"청..! 소저..”

당장에라도 끌어안고 싶었지만 참았다. 주변에 시선이 너무 많았다.

치미는 충동을 억눌렀다. 청유화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으로 만족했다.

“···무사해서 다행이오. 다친 덴 없소?”

그녀도 주변을 살피더니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남궁무혁 당신은요?”

“내공이 제압 된 것만 빼면 멀쩡.. 응?”

쪽!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니 당소저와 입 맞추는 사일검수가 보였다.

주변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꽉 포옹 한 채. 코를 부비고 얼굴 이곳저곳에 입을 맞췄다. 남사스럽기 짝이 없었다.

“다친 데 없지?”

“응.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녀가 아쉬운 얼굴로 한 걸음 물러났고.

“소향이 너도 이리 와.”

“···네.”

머뭇거리던 흑발 여인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더니 와락! 껴안았다.

서로 배꼽이 닿을 정도로 밀착한 채 떨어지질 않았다. 신기하게도 흑발 여인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곧 쪽쪽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남궁무혁이 입을 쩍 벌렸다.

“저저저..”

채신머리없는 행동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부러웠다.

청유화를 살피니 그녀도 멍하니 저들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표정이 뭔가.. 뭔가 묘했다.

이질감에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 갔다.

“청소저..?”

정신없는 상황에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 옷차림이 이상했다. 찢어진 바지 사이로 매끈한 허벅지가 얼핏 보였다.

게다가 남자나 입을 법한 장포라니. 장포 주인이 누구인지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불쑥 드는 이상한 생각을 치워 버리고 다급히 말했다.

"오, 옷이 왜..? 서, 설마 어디 다쳤소?!"

아직도 멍하니 사일검수를 보고 있던 청유화가 흠칫했다.

정말 아주 잠깐. 눈을 마주치지 못 하고 시선을 피했다.

머뭇거리던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별일 아니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설명하자면 조금 길어요.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다친 곳도 없어요. 사일검수께서 치료해주셨거든요."

"치료.. 해줬다고..?"

불쾌한 무언가가 피부를 스멀스멀 기어가는 느낌. 잊혀져 가던 꿈속 기억이 되살아났다.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 갔다. 당장에라도 붙잡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사일검수가 그녀 사이를 가로막았다.

"흠.."

그를 빤히 쳐다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왜 이러십니까."

입가를 씰룩이다 정중히 물었다. 이유 모를 짜증이 치밀었지만 참았다.

“네놈이 오룡이라고?”

“큭..”

시선이 마주친 순간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모든 것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검왕이신 할아버님 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을 깨닫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화경이라고..? 말도 안 된다!'

묵직한 압력이 어깨를 짓눌렀다. 억지로 눈에 힘을 줬다. 지금 물러났다간 심마에 들 것 같았다.

“다시 묻지. 네놈들이 오룡이라고?”

턱에 힘줄이 생길 정도로 이를 악물다 겨우 말했다.

“···초면에 너무 무례하신 듯합니다.”

분위기가 점점 무거워질 때.

청유화가 시우의 옷깃을 잡고 끌어당겼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무겁던 분위기가 갑작스레 풀렸다. 확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

“싸우려는 게 아니니 진정하시오. 그저···.”

오룡을 힐끗 보며 말했다.

“이자들 심장에서 피 냄새가 나기에 그랬소.”

“피 냄새..?”

이상한 말에 모두가 당혹했다.

한동안 무언가 고민하던 시우가 피식 웃었다.

"됐다.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모두 출발한다."

발걸음을 옮기자 모든 낭인이 우르르 뒤따랐다.

"예!"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것이 낭인답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에는 하나 같이 경외가 가득했다. 사일검수의 검을 봤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가지요."

아무말도 못 하던 오룡들이 뒤늦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청유화에게 전음이 날아왔다.

-내 말 허투루 듣지 마시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오고. 그대라면 언제나 환영이니.

시우와 눈이 마주친 청유화가 흠칫했다. 의미심장한 표정에 도저히 흘려들을 수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남궁무혁에게 말했다.

“혹시 심장에 문제라도 생기셨나요?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순간 남궁무혁의 표정이 굳었다.

“···아무 이상없으니 걱정 마시오.”

저 앞에서 걷는 사일검수를 힐끗 쳐다봤다. 양옆에 미녀를 낀 모습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낭인들의 말은 믿을 게 못 되니 신경 쓰지 마시오.”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일개 낭인이라기엔···. 그는 정말 대단한 무인이에요. 그러지 말고 자세히 검사해 봐요. 네?”

청유화의 간절한 얼굴에. 남궁무혁이 입가를 씰룩였다.

이해할 수 없는 패배감에 표정을 관리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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