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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236화 (236/241)

Chapter 236 - 236화 - 무협지구(31)

236화 - 무협지구(31)

***

모용세가 토벌이 끝났다.

가주인 모용휘를 비롯해 몇몇 핵심 제자들이 도망갔으나 그뿐이었다.

오대세가라 불리던 거대 가문이 하루아침에 몰락한 것이다.

딱.

“그래도 피해가 너무 컸네.”

검왕이 바둑판에 백돌을 놓으며 말하자, 거지 노인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에잉!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거냐. 사도련 놈들이 움직이기 전에 끝냈으니 잘 된 거지.”

검왕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결국 정파의 기둥 하나가 사라진 것인데. 잘 됐다라..”

한쪽 눈썹을 치켜든 걸왕이 소리쳤다.

“그 밥맛 떨어지는 표정 좀 집어치워라. 하여간 남궁놈들은···. 이번에 어린 녀석들이 제법 잘 컸던데 좋게 좋게 생각하면 그만 아니냐!”

검왕의 표정도 한결 풀어졌다.

“···그건 나도 다행이라 생각하네. 이번에 이름 날린 아이들을 보니 대견하더군. 정파의 미래가 밝아.”

“은림 꼬맹이가 검이 제법이라던데. 봤나?”

“멀리서 잠깐 봤네. 훌륭하더군. 아마도 다음대 검봉은 그 아이가 될 듯 하네.”

딱. 딱.

“점창파에도 쓸 만한 놈이 있던데······.”

바둑판이 점점 가득 찼다. 그와 동시에 거지 노인의 표정이 점점 구겨졌다.

바둑알을 쥐고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

“그 뭐냐. 만.. 만.. 오래된 절기도 나타났다 들었는데?”

구석에서 조용히 눈치 보던 남궁무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화린이란 여인이 만천화우를 되살렸다고 합니다. 암화(暗花)란 별호도 얻었고요.”

“그래 만천화우! 고것 참 신기하단 말이야. 그 조그마한 몸으로 어떻게 암기를 천개나 숨긴 거지? 이렇게 하는 건가?”

거지 노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내공을 머금은 바둑알이 섬전처럼 날아갔다. 복잡한 형세를 띄던 바둑판 정중앙을 향해서.

탁.

검왕이 손을 휘둘렀다. 암기처럼 날아든 바둑알을 손쉽게 잡아챘다.

“헛짓거리 마시게. 내가 이겼네.”

“에잉 쯧. 안 할란다. 바둑은 너나 해라.”

미간을 팍 찡그린 노인이 시선을 돌렸다.

“이 망할 놈아! 그 아이들이 그렇게 활약할 때 네놈은 어디서 뭘 한 거냐! 어엉?!”

무릎 꿇고 앉아 있던 남궁무혁이 움찔했다.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윽.. 죄송합니다!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질이 되어 큰 폐를 끼쳤습니다!”

힐끗 손자를 보던 검왕이 말했다.

“가문에 돌아가면 3년간 면벽수련 하거라.”

“···예! 정말 죄송합니다.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거지 노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하여간.. 빌어먹을 놈. 어릴 때부터 운 하나는 기 막히게 좋구나. 혈교한테 잡혔다가 살아돌아오다니. 하늘이 도운 줄이나 알 거라!“

남궁무혁이 침울해진 얼굴로 고개 숙였다.

“예.. 정말 죄송합니다.”

“어린 놈들은 혈기가 넘쳐서 탈이란 말이야. 나는 네놈 나이 때···.”

뜨거운 차가 식었음에도 잔소리는 끝나지 않았다.

검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히 하게. 우리도 모용휘 그자를 놓쳤으니 무어라 할 입장은 아니지 않나.”

화들짝 놀란 남궁무혁이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모용휘 그자는 비열하게 식솔들을 제물로 바쳐 달아난 것 아닙니까.”

“놈들이 승천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모두 우리 잘못이다.”

검왕의 자책에 거지 노인이 소리쳤다.

“에잉! 그놈들이 승천단을 그리 많이 가지고 있을지 누가 알았나? 단체로 승천단 처먹고 자살공격을 해대는데 우리보고 어쩌라고? 토벌대를 멀쩡히 살린 것만 해도 다행이지.”

걸왕이 침 튀기며 고함치자 남궁무혁이 당황했다. 자신 때문에 두 분이서 싸우게 되면 큰 낭패였다.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마침 고민하던 것도 있었다.

“어, 어르신! 혹시 제 심장에 문제가 있는지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심장에 문제가 있는지 봐달라고?”

“예. 조금 걸리는 일이 있어서요.”

“흐음..”

검왕이 가볍게 손을 뻗었다.

내력이 지풍 형태로 쏘아졌다. 남궁무혁 몸을 한 바퀴 돌고 되돌아왔다.

“별 이상 없다만?”

“하하. 역시 그렇지요? 다행입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남궁무혁 얼굴이 살짝 굳었다. 사일검수를 떠올리니 묘하게 찝찝했다. 그자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꺼림칙했다.

특히..

청유화가 했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는 정말 대단한 무인이에요···.

그녀의 입술에서 나온 다른 남자를 인정하는 말. 진심 어린 표정이 도저히 잊히질 않았다. 불쾌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니다.’

머리를 휘저어 쓸데없는 생각을 흩어 버렸다.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별거 아닙니다.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흠.. 무혁아. 괜찮으니 말해 보거라. 가족끼리 숨길 일이 무어가 있다고 그리 빼는 게냐.”

“아하하.. 진짜 별거 아닙니다. 그저 사일검수란 자가 제 심장이 이상하다고 하기에···.”

“사일검수?”

멈칫한 검왕이 손을 뻗었다.

“사일검수라면 이번에 화경에 오른 기재가 아니냐. 그자가 한 말이라면 흘려들을 수 없지. 무혁아 이리 와보거라. 다시 살펴봐야겠다.”

진맥하듯 손목을 짚고 진지하게 살폈다. 눈까지 감고 집중했다.

“으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돌연 검왕의 안색이 굳었다. 어두워진 얼굴로 걸왕에게 말했다.

“이런··· 쉽지 않군. 자네가 좀 봐줄 수 있겠나?”

“응? 쉽지 않다고?”

차를 홀짝이던 거지 노인이 손을 까딱거렸다.

“이리 와 봐라. 내가 봐주마.”

“···예.”

걸왕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동안 집중한 끝에 멈칫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그렇군. 쉽지 않아.”

“예?”

남궁무혁이 당황했다. 어두워진 어르신들의 표정에 입안이 바싹 말랐다.

게다가 걸왕이라면 신의라 불릴 정도로 의술이 뛰어난 존재였다. 그런데도 쉽지 않다고 말하다니.

마른침을 삼켰을 때. 걸왕이 혀를 찼다.

“자세히 설명해 봐라. 그 녀석이 뭐라 했다고?”

“그게.. 갑자기 심장에서 피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피 냄새? 겨우 보는 것만으로 알아챘단 말이냐? 이걸?”

걸왕의 표정이 구겨졌다. 눈치 보던 남궁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실입니다.”

검왕과 걸왕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거지 노인이 고개를 젓더니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어린놈이 대단하군. 이미 내 감각을 뛰어 넘었다.”

흠칫한 남궁무혁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어찌 어르신보다..”

“대단한 젊은이로다. 얼마 안 가 따라잡힐지도 모르겠어.”

검왕마저 감탄을 내뱉자 남궁무혁의 표정이 구겨졌다.

차마 대꾸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걸왕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크흐흐.. 무혁이 네 녀석이 질투를 하다니. 오래 살고 볼일이구나.”

“질투라니요! 아닙니다!”

검왕이 고개를 저었다.

“무혁아. 사람인 이상 뛰어난 자를 보고 질투하는 건 당연하다. 잘못된 게 아니니 인정하고 받아들이거라. 억지로 눈 돌려 봐야 화근이 될 것이야.”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남궁무혁이 입을 다물었다. 질투는 아니었다. 아니 질투가 맞긴 했지만 뭔가 미묘하게 달랐다.

저번에 꿨던 꿈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사일검수만 보면 기분이 나빴다.

본능적인 거슬림. 불안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설명할 순 없었다.

거지 노인이 피식 웃곤 손을 까딱거렸다.

“됐고, 심장이나 다시 보자. 일단 이거부터 해결해야 될 거 아니냐.”

“···예.”

걸왕이 남궁무혁의 가슴팍에 손바닥을 댔다.

“조금 아플 테니 참아라.”

우웅!

불꽃처럼 일어난 뜨거운 기운이 심장에 스며들었다.

“끄으읍..!?”

남궁무혁이 눈을 부릅떴다.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빠득 악물었다. 두 손이 벌벌 덜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지독했다. 마치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듯 숨이 턱 막혔다.

“크으..”

치밀어 오르는 핏물을 억지로 삼켰다.

짧은 시간이 지독하게도 길게 느껴졌다.

치이익···.

어느덧 방안에 탄내가 가득했다. 걸왕의 손에서 일어난 양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맨살이 익어가는 고통에 남궁무혁의 정신이 흐릿해져갈 때쯤.

거지 노인이 손바닥을 뗐다.

“쿨럭..! 으으.. 끄, 끝난겁니까..?”

걸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두워진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생각보다 지독한데..”

한동안 고민하던 노인이 말을 이었다.

“네 녀석 심장 속에 벌레 같은 것들이 자리 잡았다. 아마도 혈교놈들 수법이겠지. 문제는 벌레가 심장과 거의 하나 되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단 것이다.”

“예? 그, 그냥 죽이면 되는 거 아닙니까?”

걸왕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벌레를 건드렸더니 발광을 하더구나. 벌레를 죽이기 전에 심장이 먼저 조각 날 것이다. 쉽지 않아..”

“그, 그게 무슨..”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볼 테니. 당분간 평소대로 생활 하거라. 벌레에 대해 알아챈 것을 혈교한테 들키지 않도록.”

***

그 시각 청봉밀사.

수련실에 도착한 시우가 가부좌를 틀었다.

토벌대에 참가한 보상을 받는 등. 요녕에서 할 일이 남았지만 잠깐 청봉현으로 돌아왔다.

‘경지를 갈무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보상에 대한 일은 청유화와 점창파 명장로에게 부탁했다.

눈을 감고 양손바닥을 가슴께로 모았다. 화경에 오른 감각을 되새길 생각이었다.

우웅!

의지를 발하자 주변 기운이 요동쳤다.

천지에 가득한 자연지기. 방대한 천지원기가 나선을 그리며 모여 들었다.

생각보다 수월했다. 한번 각인된 감각은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다행이네.’

우우웅!

끝도 없이 모여든 기운이 점 하나로 압축됐다. 푸른 구슬로 변해 부르르 진동했다.

묘일해가 사용했던 강환이었다.

‘시험해 볼까.’

인벤토리에서 사람 상체만 한 철괴를 꺼냈다. 대형 몬스터도 쉽사리 끊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한 합금이었다.

손바닥 사이에 있던 푸른 구슬이 스르륵 움직였다.

강기 구슬을 조종해 철괴와 맞닿게 한 순간.

프스슥.

소리 없이 관통했다. 닿은 부분이 소멸되듯 사라졌다. 구멍이 뻥 뚫린 철괴를 보다가 끄덕였다.

만족스러운 위력이었다.

‘던져볼까?’

강환의 진정한 위력은 압축된 기운이 터질 때 일어난다. 말 그대로 강기로 만들어진 폭탄이었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구슬을 보다가 손을 휘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실내에서 터뜨릴 순 없었다.

천천히 흩어진 기운이 자연지기로 되돌아갔다.

‘이건 됐고.’

자연지기를 다루는 감각은 천천히 익숙해지면 될 것 같았다.

다음은 예민해진 오감과 기감을 다스릴 차례였다.

명상하듯 두 눈을 감았다.

안 그래도 염화비술 덕에 감각이 예민했는데, 화경에 오르며 한 차원 더 강해지니 통제하기 힘들 정도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우..”

눈을 뜨니 한층 더 선명해진 세상이 보였다.

수련실 바깥에서 서성이는 청월선자가 느껴졌다.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기척을 감추고 있었지만 훤히 보였다.

문을 향해 가까이 갈수록 그녀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딸깍.

“아..! 나오셨어요?”

주인 기다리던 강아지처럼. 뛰듯이 다가와 와락 안겨들었다.

가슴팍에 볼을 비비적 거리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얼굴 이곳저곳을 빤히 살피며 말했다.

“서방님 정말 어디 불편한 곳 없어요? 너무 빨리 경지가 올라서 불안한데..”

“괜찮아. 이제 안정됐으니까 수련만 하면 돼. 같이 할래?”

“수, 수련이요..?”

그녀의 허벅지가 바짝 오므려졌다. 두 눈동자에 열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달짝지근한 모유 향기가 맡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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