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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으로 들어간다-239화 (239/241)

Chapter 239 - 239화 - 무협지구(34)

239화 - 무협지구(34)

포션을 안아 든 청유화가 커다란 장원에 들어섰다.

요녕에서 화산파가 머무는 장소였다.

“청사저 오셨습니까?”

“응.”

“사저 그런데 오늘···.”

“미안. 지금 좀 바빠서. 급한 일 아니면 나중에.”

“아, 예.”

화산파 제자들과 스치듯 인사하며 빠르게 걸었다. 몇몇 제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아..’

드디어 그녀 홀로 사용하는 방에 도착했다. 혹시나 해 구석구석 확인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소중히 품속에 넣어 놨던 병을 꺼내 들었다.

매끈하면서 투명한 병에 붉은 물방울이 또르륵 굴러다녔다.

‘이거만 있으면..’

애인인 남궁무혁의 심장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심장 속 벌레를 전부 죽이고, 조각난 심장을 회복시키면 될 것 같았다.

물론 위험한 방법이었다. 가능하다면 시도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이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방책이었다.

‘그런데 진짜로 가능할까..?’

문제는 정말 가능하냐는 것. 붉은 액체를 자세히 관찰했다.

손에 꼭 쥐고 기감을 집중했다.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기운이 손바닥을 타고 스며들었다. 강렬한 생명력이 응집된 듯 신비한 느낌이었다.

“아..”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손톱보다 작은 물방울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정말 될지도..’

이어 투명한 물을 꺼냈다. 그가 약과 섞어서 쓰라고 줬던 물이었다.

또옥.

붉은 물방울이 투명한 물에 떨어졌다. 먹물을 떨어뜨린 듯 스르륵 녹아 뒤섞였다.

은은한 빛과 함께 불그스름한 액체가 만들어졌다.

‘후우..’

숨을 크게 들이쉬고 집중했다. 손가락에 검기를 피워올렸다.

그리고 팔뚝을 스윽 그었다. 남들에게 알릴 수 없으니 스스로 시험해야 했다.

주르륵..

붉은 선혈이 팔뚝을 타고 흘러내렸다. 제법 깊게 베인 상처에 아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망설임은 없었다. 약이 뒤섞인 물을 조심스레 상처에 펴발랐다.

‘어..?”

상처와 붉은 물이 닿은 순간.

깊게 베인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몇 호흡 지나기도 전에 매끈한 피부로 되돌아갔다. 상처가 낫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말도 안 돼..”

겨우 한 방울. 그것도 희석한 것. 그런데도 경이적인 효과였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이거라면 정말로 심장이 조각나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짜였어..”

반신반의 했으나 이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엄청나게 귀중한 약이었다.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비약을 그리 쉽게 준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했다. 말로는 벗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솔직히 믿기 힘들었다.

사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여자로서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건 절대 안 돼.’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있었다. 싫다는 일을 강요 하진 않겠다 약속한 것이다.

‘화경의 고수가 한 입으로 두말하진 않겠지.’

게다가 젊고 예쁜 애인이 둘이나 있으니···. 자신을 억지로 취할 것 같지도 않았다.

만에 하나 정말 단순히 벗이 되길 원하는 것이라면..

그건 자신도 환영이었다. 토벌대에서 본 그는 나름 믿을 만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조금 미안한데..’

같이 시간만 보내는 것으로 약을 받자니 미안했다. 그가 바라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고민하던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부탁받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

요녕 어딘가에 세워진 거대 천막.

그곳에 수십 명의 무림인들이 모여 들었다. 모용세가 토벌에 참여한 여러 세력의 대표들이었다.

“흠흠..”

그들의 얼굴에 긴장이 차올랐다. 눈을 굴려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만큼 오늘 회의는 중요했다. 체면을 잠시 내려 두고 설전을 펼칠 만큼.

“모두 오셨으면 시작하지요. 오늘은 모용세가에서 얻은 재물이나 영약을 어찌 분배할지에 대해···.”

무림맹 군사의 말에 한 중년인이 소리쳤다.

“잠깐. 왜 화산파에서 두 자리나 차지한 것이오.”

순간 청유화에게 시선이 쏠렸다. 확실히 화산파를 제외하곤 모두가 딱 한 명씩만 대표로 내세웠다.

다른 이들은 탁자에 앉지 못하고 천막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에겐 발언권이 없었다.

청유화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저는 사일검수를 대신하여 나온 것입니다. 화산파와는 관계 없습니다.”

“···그대가 어째서 사일검수를 대리한단 말이요?”

“사적인 이유로 자원한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시지요.”

그녀가 차가운 얼굴로 말하자, 옆에 앉은 화산파 장로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합니다.”

“크흠..”

중년인이 물러나자 회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로 자기 몫을 주장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계속됐다.

“아니 그건 너무 많지 않소!”

“뭐가 많단 말이오! 우리 해산파가 죽인 적이 몇인데!”

시장통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오늘만큼은 모두 체면을 내려놨다.

이번에 얻을 재물과 영약은 제자들을 키우는 데 중요한 자원이었다. 문파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줄만큼.

설전이 계속된 가운데. 청유화 차례가 돌아왔다. 그녀의 깨끗한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사일검수 몫은 삼할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뭐! 사, 삼할?! 이보게 소저. 여기 있는 사람 수가 몇인데 혼자서 삼할을 가져간단 말인가.”

“혼자라니요. 사일검수가 데려온 동료들을 잊으셨습니까. 그녀들도 초절정 고수이니···.”

말이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확실히 당화린과 소향, 그녀들을 합치니 어지간한 세가만큼 지원 병력이 많았다.

“그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공을 세웠는지가 아니겠습니까. 사일검수는 화경의 고수를 죽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삼할을 받기 충분합니다.”

회의장에 앉아 있던 이들이 입을 열지 못했다.

중년인이 머뭇거리다 겨우 말했다.

“···그래도 삼할은 너무 많소. 걸왕이나 검왕 어르신께도 성의를 표시해야 할 텐데.. 그러면 남는 게 너무 없지 않소.”

검왕이 거론되자 남궁세가를 대표하던 장로가 헛기침했다.

“큼..”

순간 시선이 쏠렸고, 장로 뒤에 서 있던 남궁무혁과 청유화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지만 곧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제가 한발 양보하겠습니다. 이할로 하지요.”

“끄응..”

누군가의 표정이 구겨졌다. 눈가에 경련까지 일어난 남궁무혁이었다.

‘청매.. 어째서 저렇게까지?’

짜증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청유화 태도가 이해 안 갔다. 아무리 봐도 너무 과했다. 제 문파의 일도 아닌데 너무 적극적이었다.

말끝마다 사일검수, 사일검수. 그녀의 도톰한 입술에서 듣기 싫은 이름이 계속 튀어나왔다.

‘후우..’

눈을 질끈 감고 회의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에겐 발언권이 없었다.

“맞습니다. 공을 세웠으면 보상을 해야지요.”

지금껏 말 한마디 없던 낙화신녀의 말이었다. 청유화를 빤히 보던 그녀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미래라도..?”

한 중년인의 말에 낙화신녀가 시선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이건 미래를 떠나서 당연한 일입니다. 공을 세웠는데 박대한다면 누가 맹을 위해 싸우겠습니까.”

“끄응..”

“이 이할에는 당연히 모용세가가 관리하던 지역도 포함돼야 할 것입니다.”

청유화가 낙화신녀의 미소를 보며 멈칫했다. 예상치 못한 지원군이었다.

“···사일검수는 홀로 다니시는 분이니 관리할 만한 인력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무림맹에서 무사를 파견해 대신···.”

두 미녀가 앞다퉈 사일검수를 위해 말했다.

사일검수와 친한 점창파 명장로까지 쓴웃음을 지을 정도였다.

“애초에 이건 맹 입장에서도 손해가 아닙니다. 젊은 나이에 화경에 오른 고수와 가까이 지내서 나쁠 게 있겠습니까?”

탁!

가만히 듣고 있던 무림맹 군사가 부채를 접었다. 시선이 집중됐다.

“이할.. 조금 과하긴 한데.. 받아들이겠소. 다른 이들도 너무 걱정 하지마시오. 혹여 재물이 부족하다면 맹의 창고를 털어서라도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보상을 할 것이오. 다음은 사상자에 대한 보상을···.”

시간이 지나 회의가 끝났다.

남궁무혁이 지친듯 한숨을 내쉰 청유화에게 곧바로 달려갔다.

“청소저.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소?”

“아.. 네.”

그녀와 함께 외진 곳으로 간 순간.

구겨지려는 얼굴을 억지로 펴면서 물었다.

“청매. 오늘 도대체 왜 그런 거요.”

“아.. 저는 그저 사일검수를 대신해서..”

인상이 팍 찡그려졌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으며 최대한 친절히 말했다.

“그냥 적당히 하면 되지 않소. 어째서 그렇게까지 소리를 높이냐 이 말이오. 어르신들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을 텐데.”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어쩔 수 없었어요.”

“은혜라니?”

입술을 오물거리던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게.. 아! 모, 목숨도 구해주셨는데 이 정도는..”

“목숨?”

당황한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흘러나온 말을 되돌릴 순 없었다.

남궁무혁이 다그치듯 말했다.

“목숨을 구해 주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그게.. 토, 토벌에서..”

“토벌? 설마 토벌 중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요? 별일 없었다면서!”

안절부절못하던 그녀가 말했다.

“···사실 사일검수께서 치료해주시기 전에 조금 많이 다쳤었어요.”

“뭐, 뭐라고! 그걸 도대체 왜 이제 말하는 것이오!”

남궁무혁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손끝이 덜덜 떨렸다. 지금 머릿속을 점령한 감정이 걱정인지 질투인지 구분이 안 갔다.

“···숨겨서 죄송해요. 걱정하실까 봐 그랬어요.”

“끄윽..”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욕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후우···. 아니오. 내가 더 미안하오. 분명 나 때문에 무리하다 다쳤을 테지.”

“아, 아니에요! 제가 더 조심했으면..”

짜증이 사라지자 미안함이 올라왔다. 머뭇거리다 그녀에게 말했다.

“청매.. 오랜만에 나들이라도 가지 않겠소? 변장하고 가면 남들 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텐데.”

“아..”

한순간 표정이 밝아졌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급히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아요.”

“어디를 간단 말이오..? 약속이라도 있소?”

어색하게 웃은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요.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알겠소. 위험한 일은 아니지?”

“그럼요.”

빙긋 웃은 청유화가 떠났다.

짧은 시간 동안 수십 번 고민했으나 잡지 않았다. 그녀의 강직한 성격이라면 다그쳐봐야 소용없었다.

우두커니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하아.. 내가 너무 예민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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