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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162화 (163/344)

Chapter 162 - 162화- 멈추지 않으면 가족을 죽이겠다

인간은 악마를 쓰러뜨릴 수 없다.

초월적인 존재인 악마를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이 어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단련해도, 아무리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금지된 마법을 사용해도 악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복수하겠다고 설치다가 역으로 악마에게 살해당하거나, 악마의 꼭두각시로 전락한다.

그리드라는 악마도 이러한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리드라는 악마를 처치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범선으로는 상대조차 되질 않는 철선을 무려 수십 척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철선이 없어도 자신을 가로막는 적은 맨손으로 다 찢어 죽일 정도로 무력이 상상을 초월하니까. 그리드에 의해 고향을, 가족을, 친구를, 소중한 존재들을 잃어버린 복수자들이 넘쳐나고 있음에도 이 중 누구도 복수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이 두 가지가 원인이었다.

너무나 막강한 함대를 가지고 있어서 도저히 접근할 엄두가 나질 않으며, 너무나 강해서 도저히 맞설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이 세상의 부조리란 부조리는 모조리 다 자신의 것으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드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그 누구도 이 무적의 악마를 쓰러뜨리지 못할 거다, 라고 다들 그리 여겼다.

그 불패 신화가 오늘 깨졌다.

[어 어떻게….]

두 괴물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본래 이 괴물들이 있었던 곳은 동굴이었으나, 완전히 붕괴해서 하늘이 뻥 뚫려 있었다. 조선소가 있었으나, 싸움의 여파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쥐가오리를 연상케 하는 남색 괴물은 수면 위로 몸통만 드러낸 채 상대방을 노려보고 있었고,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조선소가 자리 잡았던 폐허에 서 있는 검은 괴물은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이, 이런 일은 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머리는 절반이 날아갔다. 두개골이 깨지고, 안에 있던 뇌 일부도 박살이 났으며, 뚫린 구멍을 통해 뇌수가 철철 흘러 내렸다. 오른쪽 눈은 눈알이 빠져나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전신을 보호하던 검은 갑주는 산산조각이 나버렸으며, 뱃가죽이 찢어져 창자가 검은 피와 함께 바닥에 울컥 쏟아졌다.

만약 괴수의 육신과 강림의 육신이 일심동체(一心同體)였다면 강림은 즉사하고도 남았을 거다.

[여기서 배드 엔딩을 맞이할 수 없는…데….]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던 강림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끼기기기긱….]

쓰러진 강림을 보며 남색 괴물은, 아르웬은 조소했다.

[끼기기긱, 끼기기기긱!]

너무 좋은 나머지 웃음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당연할 수밖에 없다.

가족의 원수를 드디어 자신의 손으로 갚게 되었으니까. 이보다 아르웬에게 더 기쁜 일은 없었다.

'이겼어, 이겼다. 이겼다고!'

실은 불안했다.

같은 괴수의 힘을 얻었음에도 자신이 패배하는 거 아닐까?

자신과 마찬가지로 괴수가 되었으나 끝내 패배한 전 호랑이족 수장 타이가 있었다. 물량 공세로 그리드를 압박했으나, 끝내는 새끼들을 빼고 몰살당한 트루퍼 고래 무리도 있었다. 그리드와 대등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두 존재가 모두 다 패배했다. 그 패배자들 목록에 자신도 등록되는 게 아닌가, 아르웬은 불안했다. 끝내 패배하고 복수도 이루지 못한 채 평생 그리드에게 능욕당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마저 들었다.

그랬지만, 아니었다.

'내 손으로, 내 손으로 악마를 쓰러뜨렸어!'

악마는 무적이 아니었다. 무적이라는 소문은 헛소문에 불과했다. 소문이 진짜였다면 고작 음파 공격을 정통으로 맞았다는 이유로 뻗지 않았을 테니까.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어냈다는 사실에, 마침내 가족의 원수를 갚았다는 사실에 아르웬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었다.

물론 여기서 기뻐해서는 안 된다. 아르웬은 쓰러진 그리드를 향해 입을 벌렸다.

'여기서 숨통을 끊어버리자.'

녀석을 살려둬선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살아서는 안 될 쓰레기다. 이 쓰레기를 살려뒀다간 자신과 똑같은 피해자가 또다시 우후죽순으로 생길 거다. 왕국이 다시 한번 화마에 휩싸이고 말 거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끝내야 한다. 아르웬의 벌린 입으로 마력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잘 가라, 쓰레기 자식아.'

부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아르웬이 음파 공격을 날리려던 그 순간,

"그만둬!"

누군가의 목소리에 아르웬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드를 죽이면 이 녀석들의 목숨은 없는 줄 알아!"

검은색 더벅머리의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남색 머리의 여성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었다. 남색 머리의 여성의 목덜미에다 단도를 겨눈 채로 더벅머리 여성, 탈리아는 소리쳤다.

“네놈이 옹이눈이 아니라면 이 둘이 누구인지 알겠지!”

그리고 옆에는 하반신이 커다란 뱀의 꼬리로 이루어진 여성이 있었다. 머리도, 꼬리도 전부 초록색이다. 뱀 여자, 페르포네의 꼬리에는 말총머리를 한 여성이 붙잡혀 있었다. 머리카락 색상은 남색이었다.

페르포네와 탈리아가 인질로 잡은 두 여성이 누구인지 아르웬은 알고 있었다.

'언니, 어머니!'

언니 카르디안과 어머니 글랜디가 목숨을 위협받고 있었다.

●●●

"저건 분명 아르웬이야."

조선소를 급습한 괴수의 정체를 탈리아는 바로 알아챘다.

"희미하지만, 들었거든."

조선소를 습격했을 때, 남색 괴물이 글랜디를 봤다. 글랜디를 본 남색 괴물의 입에서 어머니라는 말이 작게 들려왔다. 이를 우연히 들은 아르웬은 남색 괴물의 정체가 아르웬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아, 아르웬이 괴수로…."

동생이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카르디안은 경악에 빠졌으며,

"마, 말도 안 돼. 어, 어찌 이런 일이…."

어머니 글랜디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뿐만 아니다. 지금 동굴 밖으로 무사히 도망친 일행 전원이 아르웬이 괴수가 되었다는 사실에 다들 대혼란에 빠졌다.

"설마, 진짜로 성공했을 줄이야."

독사 페르포네는 그리 중얼거렸다. 그리드 섬에 체류 중이던 페르포네는 적이 나타났다는 말에 탈리아 일행을 대피시키기 위해 병력을 이끌고 이곳에 왔다.

"실패할 줄 알았는데…."

아무리 재료를 전부 구해 흑광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어도 그게 괴수화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개나 소나 괴수가 되었을 거다. 페르포네는 아르웬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거라고 여겼다.

그랬는데, 진짜로 성공했을 줄은 몰랐으며,

"야, 저대로 주인님 죽게 내버려 둘 거야?"

진짜로 강림을 쓰러뜨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 가지 방법은 있어."

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도가 뭔지 탈리아는 즉석에서 떠올렸다.

"도박이지만. 이것 말곤 답이 없어."

아르웬이 무슨 동기로 강림을 죽이고 싶어 하는지 탈리아는 알고 있다. 그 점을 이용할 작정이었다.

"그러니 두 사람 좀 협력해줘."

카르디안과 글랜디를 보며 아르웬은 부탁했다.

"사이좋게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면 말이야."

●●●

"내 말 안 들려, 앙? 가족들 죽는 꼴 보고 싶냐!"

탈리아는 언성을 높이며 글랜디의 생살을 살짝 베었다. 글랜디의 목에서 피가 조금 새어 나왔다.

"그래, 네 언니 죽는 꼴 보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아아아아악!”

진심이라고 보이기 위해 페르포네는 꼬리에 힘을 주었다. 으드득, 뼈가 팽팽해지는 소리가 나고, 그 소리에 맞춰 카르디안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만둬!]

아르웬이 노성(怒聲)을 질렀다. 풍압까지 동반한 소리에 탈리아와 페르포네는 하마터면 날아갈 뻔했다.

[내 가족을 건드리지 마!]

"돌려줄 테니까, 주인님을 그대로 놔두고 가!"

탈리아는 맞대응했다. 다리가 떨리지만, 그래도 강단 있게 행동했다.

"어차피 너도 더는 못 싸울 텐데, 여기서 우리한테 포획당하고 싶어?"

[무슨 개소리….]

아르웬이 그렇게 말하던 순간이었다.

[윽?]

갑자기 남색 괴물이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어, 어째서 모, 몸이 구, 굳어지는 것 가, 같지?]

몸이 조금씩 마비되어간다. 영혼이 육신과 떨어져 저 멀리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몸이 갑자기 이러니 아르웬은 당혹스러웠으며,

'역시 주인님과 똑같아.'

아르웬은 빙고를 맞춘 것에 속으로 크게 환호했다.

'여자가 안에 없으니 당연히 멈출 수밖에 없지.'

괴수를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은 성욕. 그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선 동력실이라 불리는 신체 기관에 여자를 넣어야 한다. 여자는 동력실 내부에 있는 촉수에 농락당하는 것으로 괴수의 성욕을 해결해줘야 하며, 성욕이 해결되어야만 괴수는 움직인다. 이러한 약점이 존재하기에 강림은 항상 괴수로 변할 때 여성을 삼켜야만 했다.

그 약점을 아르웬에게도 적용되지 않을까? 이렇게 격렬하게 싸웠다면 분명 한계도 금방 찾아왔을 거다.

탈리아의 예상은 적중했고, 더욱 아르웬을 몰아붙일 수 있게 되었다.

"이대로 잡힐래, 아니면 사이좋게 실험체가 될래?"

[그, 그딴 협박 따위에 내, 내가….]

"오, 그러셔?" "윽?"

탈리아는 글랜디의 머리를 더욱 세게 움켜잡았고, 조금 더 깊숙이 목에 칼끝을 쑤셨다. 아까보다 피가 좀 더 흘러내렸다. 아픈지 글랜디는 신음을 흘렸다.

"우리 조건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네 언니를 먹겠어." "으아아아악!"

페르포네는 더욱 꼬리에 힘을 주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지 카르디안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만, 그만!]

결국, 아르웬은 꼬리를 내렸다.

[물러나면 되잖아! 물러날 테니까 언니와 어머니를 놔 줘!]

어쩔 도리가 없다. 녀석들의 말대로 이 자리에서 포획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리드를 죽이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가족들이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어차피 조선소 파괴에는 성공했으니 일단 여기서 물러나자. 괜히 고집을 부려서 언니와 어머니를 잃을 순 없다. 어차피 그리드를 죽일 수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 다음에 와서 확실히 죽이면 그만이다.

그렇게 판단을 내리며 아르웬은 뒤로 물러났다.

"자, 어서 딸한테 가 봐."

탈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글랜디를 놔줬다. 페르포네 역시 꼬리를 풀어 카르디안을 풀어줬다.

"아르웬이 변덕 부리기 전에 얼른 가 봐. 주인님 죽게 만들지 말고." "…알았다."

적의로 가득 찬 표정을 지은 채로 글랜디는 아르웬한테 다가갔다.

"미안해, 탈리아."

카르디안은 사죄했다.

"동생 때문에 주인님이…." "그런 말 말고 얼른 가 봐."

아르웬은 어서 가라는 식으로 손을 저었다.

"가서 역병 노릇 잘하라고." "…."

카르디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어머니 뒤를 따라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괴수 대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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