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9 - 309화- 죽기 싫으면 타락시켜야 한다
그렇게 연꽃, 아니 촉수로 이루어진 이 더러운 공간에 아르웬과 스피어는 갇히고 말았다. 정신을 잃은 아르웬은 갇힌 이후 깨어났지만, 얼마나 시간이 흐른 뒤에 깨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알게 된 사실은,
"호꼭, 호꼬옥, 호꼬오옥, 호꼬오오옥!"
어제와 마찬가지로 가랑이에 악마의 물건과 매우 닮은 검은 촉수가 달려 있다는 것. 그 달린 촉수로 자신은 어제와 똑같이 스피어를 범하고 있다는 것.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닌데도 육신은 말을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
"호까아악, 아까아악, 아오오옥!"
어제와 똑같이 육신의 통제권은 촉수가 가져갔으며, 그 촉수에 의해 원치도 않은 겁탈을 오늘도 하고 있다는 것.
"후오오옥, 호오오옥, 우오오옥!"
그렇게 겁탈을 당하고 있는 스피어와 자신의 머리에 수많은 촉수 가락이 꽂혀 있다는 것. 그 촉수 가락들을 통해 마기가 뇌에 직접 주입되고 있다는 것. 그 마기에 두 사람 모두 점점 미쳐가고 있다는 것.
"좋아, 좋아, 아, 아냐, 싫어, 좋아, 싫어, 좋아아아!"
그리고 마기에 오염된 스피어가 심하게 망가졌다는 것. 본인의 입으로는 망가지지 않았다고 부정하고 있지만, 딱 봐도 망가진 게 눈에 보인다. 아마 내일이면 완전히 새로운 광인(狂人)이 태어날 거다.
'나, 견딜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당하기만 할 뿐인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르웬은 과연 이길 수 있을지 회의감에 빠졌다.
'복수할 수 있을까?'
이젠 이름도 기억나질 않고, 모습도 떠오르지 않는 친아버지. 그 친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그리드다. 어머니를 망치고, 언니를 악마로 만든 녀석도 그리드다. 그 그리드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르웬은 모든 걸 걸었다. 그리드에게 복수하기 위해 똘똘 뭉친 병사들과 함께 그리드 타도에 아르웬은 모든 걸 다 바쳤다.
그렇게 모든 걸 다 바치고,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네치아 왕국의 최후의 결사대는 악마가 내세운 괴수 군단에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 끌어들인 고래들도 괴수 군단에 허망하게 전멸하고 말았다. 악마의 함대를 상대하기 위해 왕국 전역에서 끌어모은 함선들도 허망하게 물고기 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용병왕이 보내준 원병은 결전에 도착하기도 전에 전멸했으며, 성국이 보낸 12군단은 뱀의 먹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스스로 괴수가 된 아르웬도 패배하고 말았다.
그렇게 패배한 자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생지옥뿐이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원수의 자식을 잉태하는 씨받이 도구로 전락했다. 원수를 갚기 위해서 들고 일어섰건만, 결국 원수는 갚지 못하고, 원수에게 평생 암퇘지로 이용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용병들도, 성국의 전사들도 마찬가지였으며,
아르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어쩌며 생존자 중에서 가장 끔찍한 고문에 시달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거다.
아르웬을 간부로 삼는다는 목적하에 그리드는 끊임없이 아르웬을 농락했고, 끊임없이 그녀를 고문했다. 끊임없이 포기하라고, 굴복하라고 속삭였다. 이런 악마의 만행에 아르웬은 쓰러지지 않겠노라 맹세했으나,
날이 날수록 그 맹세는 점점 무뎌져 갔다. 점점 악마에게 기대어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루지 못할 복수 따윈 버리고 그냥 녀석에게 굴복하자는 생각이 조금씩 아르웬의 마음을 잠식했다.
원수에게 패배하고, 원수에게 농락당하는 세상. 생존자들에게 있어서, 아르웬에게 있어서 이런 세상은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이 생지옥에서 자신은 언제까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녀석에게 대항한 여자들이란 여자들은 전부 타락했는데, 자신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이미 타락한 거 아닐까? 타락했는데도 타락하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거 아닐까? 그래서 녀석이 자신을 갖고 노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아르웬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다.
몰려 있었지만,
'아냐, 아직 끝나지 않았어.'
여전히 아르웬은 지푸라기를 놓지 않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처참하게 패배했지만, 이걸로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여전히 그리드를 싫어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면, 가서 협력할 수 있다면 기회가 생길 거다. 다시금 원수를 갚을 기회가 생길 거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해도 상관없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복수하는 것 말곤 남은 게 없으니까. 그러니,
잊지 말자. 절대 잊지 말자. 그리드가 자신의 원수라는 사실을.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리 그리드가 자신의 친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해도 원수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아르웬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헛된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는 걸 전혀 모른 채 말이다.
"…음?"
갑자기 아르웬의 콧등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이건…."
정액이었다. 이 냄새, 잊을 리가 없다.
이건 악마의 정액이다. 자신을 농락할 때 쓰던, 그리드의 정액이다. 콧등 아래로 흘러내리는 정액을 본 아르웬의 표정은 험악해졌지만, 이내 곧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이게 떨어진 거지?"
여기는 밀폐된 공간이다.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되어 있다. 그 어떤 것도 들어올 수 없으며, 반대로 나가는 것도 역시 불가능하다.
그런 공간에 정액이 떨어졌다? 어째서? 아르웬이 의문이 든 순간,
"…어?"
정액이 머리 위에 한 방울 떨어졌다.
이어서 또 두세 방울의 정액이 아르웬의 이마에 떨어졌다.
이어서 또 네다섯 방울의 정액이 아르웬의 얼굴에 흘러내렸다.
이어서 또, 이어서 또, 이어서 또, 이어서 또….
이어서, 이어서, 계속 이어서 정액의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르웬과 스피어의 머리가 새하얀 점액질로 범벅이 될 때까지, 너무 많이 쏟아져서 눈을 뜨기 버거울 지경이 될 때까지.
그렇게 쏟아진 정액은 점점 이 작은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왜, 왜 갑자기 정액이 쏟아지는 거야?"
경악한 아르웬은 어떻게든 눈동자를 굴렸다. 천장을 쳐다본 아르웬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무, 뭐야 저 구멍들은?"
온통 검은색 천지이지만, 아르웬은 볼 수 있었다.
검은 천장 곳곳에 작은 구멍들이 숭숭 나 있다는 것을.
그 구멍들을 통해 정액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서, 설마…."
순간, 아르웬은 그리드가 남긴 말을 떠올렸다.
-재밌는 조치를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길.
녀석은 자신이 스피어를 타락시키지 않을 거라 보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타락시키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고 암시를 줬다.
혹시, 저게 그 암시라는 건가?
스피어를 타락시키지 못하면 사이좋게 익사한다. 그것이 녀석이 말한 재밌는 조치란 말인가?
'망할 악마 새끼가….'
잘도 이런 추잡한 짓을 벌이다니! 아르웬은 분노했지만, 지금 화낼 때가 아니었다.
'어,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이대로 두면 이 작은 공간은 정액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자신과 스피어는 사이좋게 익사하고 말 거다.
그리고 익사하면 그리드는 자신들을 언데드로 되살릴 거다. 자신의 어미를 언데드로 개조했듯이 말이다. 언데드가 되어버리면 영원히 녀석에게 복종하는 시체로 전락하고 말 거다.
그렇게 되는 것은 절대 사절이다! 벌써 정액은 가슴 언저리 부근까지 차올랐다. 마음이 급해진 아르웬은 손을 움직이려고 했다.
'움직여,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끊임없이 호소하는 아르웬. 그 호소에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흐꺄아아악!"
또다시 촉수가 흘려보낸 전류에 아르웬은 축 늘어지고 말았다. 축 늘어진 상태에서도 허리는 계속 움직였고,
"후꼬옥, 호꼬오옥, 오꼬오오옥!"
스피어의 교성 또한 멈출 기미도 없었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자신으로는 답이 없자, 마지막 희망으로 아르웬은 스피어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우리 빠져나가야 해요. 나가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 "후오오옥, 호오옥, 호꼬오오옥!" "소리만 지르지 말고 제 말 좀…." "좋아, 싫어, 좋아, 싫어, 좋아, 아냐, 싫어, 싫어, 싫어!" "이 여자가 진짜!"
정액이 목 언저리까지 차올랐음에도 스피어는 아르웬의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정말로 미쳐버린 거 아닌가? 아르웬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스피어는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다.
'결국, 할 수밖에 없는 건가?'
이제 아르웬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스피어를 타락시킨다.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선량한 건지, 아닌지 모르나, 면식도 없는 이 여자를 부숴버려야 한다. 만약 성공한다면, 그 망할 새끼가 이 정신 나간 짓을 그만둘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은 그 새끼랑 다를 바가 없어진다. 녀석처럼 되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살아남을 가치가 있을까? 이런 짓을 한다면 이름도 모를 친아버지가 자신을 인정해주실까? 이런 짓을 해서 복수해도 과연 그게 옳은 걸까?
악마와 똑같아진다고 아르웬은 망설였으나,
'…할 수밖에 없어.'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죽어서도 이용당할 뿐이고, 살아서도 이용당할 뿐이라면,
신념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자신이 아는 모든 이에게 사죄한 뒤, 아르웬은 결심을 굳혔다.
결심을 굳히자, 아르웬은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촉수가 육신의 통제권을 아르웬에게 돌려준 것이다. 왜 돌려준 건지 아르웬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르웬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후읍!"
아르웬은 정액 수면에 머리를 박았다. 볼이 터질 때까지 정액을 입에 담았다. 구토감을 억지로 참아내며 아르웬은 고개를 들었다. 한 손으로 스피어의 몸을 껴안고, 다른 한 손으로 스피어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 상태로,
"후끄으읍!"
아르웬은 스피어의 입술을 덮쳤다. 강제로 열고 정액을 먹이기 시작했다.
"우끅?우끄으읍, 우끄으으읍!"
뒤늦게 정신을 차린 스피어였으나, 이미 정액은 그녀의 목구멍 뒤로 넘어가기 시작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