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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화 (1/342)

Chapter 1 - 해피 엔딩.(1)

죽인 만큼 낳게 되는 마왕님이라는 게임이 있다.

특정 층들을 노리고 만들어진 듯한 이 마니악한 게임은 제목 그대로 플레이어가 마왕이 되어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인간들을 죽이고, 결국 엔딩에서는 용사에게 패배해 자기가 죽인 사람들의 숫자 만큼 낳게 되는 게임이었다.

마왕이 더 처절하게 망가지는 꼴을 보고 싶다면 더 많이 죽이고, 더 많이 정복해라.

그런 캐치프레이즈가 적힌 썸네일을 그 누가 참을 수 있을까.

물론 썩은 물 속에도 더 썩은 물을 있듯이, 마니악힌 게임을 더욱 마니악하게 즐기는 이들이 있었다.

용사 빼고 전부 죽이기라던지, 용사의 소꿉친구만 죽이기, 아무도 안죽이기 등등.

마왕의 부하들이 제멋대로 날뛰며 인간들을 죽인 것도 결국 마왕이 죽인 걸로 처리되어서 특정 인물만 쏙 죽이거나, 죽이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노력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용사만 빼고 전부 죽였을 때 나오는 '용사의 이백칠십오만이천번 째 아이를 낳았다.' 엔딩이나 '용사의 뒤틀린 분노가 마왕을 소꿉친구의 모습으로 바꿔냈다.' 같은 엔딩은 변태 중의 변태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 충분했다.

물론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의 변태 중의 변태였기에 이 게임을 꽤나 재미있게 즐겼고, 마니악하게 파고들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엔딩을 보고, 그것을 인터넷에 자랑하는 것은 야동을 보며 육봉을 부여잡고 딸딸이를 칠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쾌감을 줬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나는 온갖 수단을 사용해 새로운 엔딩 루트를 뚫었고, 어떤 엔딩이던지 '용사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라는 내용 밖에 없던 최후의 선택지에 추가적인 선택지를 띄우는데에 성공했다.

"'전투를 포기하고 용사에게 항복한다?'"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능욕 게임이었기에 어떤 루트를 통하든 딱히 해피 엔딩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번 선택지는 무언가 달랐다.

전투를 포기하고 용사에게 항복한다니.

용사가 태어난 마을을 불태우려고 한 부하를 막는다던지, 사천왕 증 하나에게 살해당할 뻔 한 도적을 너그럽게 살려준다던지, 악마의 병에 걸려 죽어가던 성직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신도 나를 막지 못할 거다.' 같은 대사와 함께 병의 치료제를 던져주며 비웃는다던지.

그런 선택지를 계속해서 고르기는 했지만, 설마 이런 엔딩을 볼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샀으니까 쌌고... 쌌으니까 샀다..."

능욕계 에로겜에 신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죽인 만큼 낳게 되는 마왕님일 것이고, 그 신은 바로 내 눈앞에 존재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스크린 샷을 찍고, 다음에 나올 처절하고 신박한 마왕의 능욕씬을 기대하며 바지의 지퍼를 내린다.

고블린을 많이 죽이면 볼 수 있는 '고블린의 대모' 엔딩이나, 촉수 마물로 인간들을 많이 죽일 경우 볼 수 있는 '해파리가 마왕님을 상당히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엔딩보다 더 신박한 엔딩이었으면 좋겠는데.

혹시나 '용사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선택지를 고르게 될까 신중에 신중을 기해 '전투를 포기하고 용사에게 항복한다.' 선택지에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댄다.

"..."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키고 거친 숨을 토해내며 마우스를 딸깍이는 순간.

"뭐야."

[축하드립니다! 최초로 '해피 엔딩'에 도달한 사용자가 되셨습니다!]

해피 엔딩이라니. 이 게임에 그런 엔딩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설마 여기에서 항복하면 용사와 행복한 순애 루트로 간다던지, 혹은 용사의 하렘에 끼어 남은 여생을 보낸다던지 하는 건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여러 장면을 넘기며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우스를 꾹꾹 눌러댔다.

[그런 당신에게 드리는 마지막 선택지입니다.]

"..."

[이 '해피 엔딩'을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시겠습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 혼자 생생하게 즐겨보시겠습니까?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르게 된다면 다른 이들은 해당 엔딩을 볼 수 없게 됩니다.]

...뭐, 나 혼자 보겠다고 하면 이 루트를 다른 사람들은 못 보게 된다던지 하는 건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못된 생각에 낄낄거리며 웃어재낀다.

그래, 나는 최초로 해피 엔딩을 본 사람이니까 이 정도 심술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새로운 엔딩의 스크린샷을 인터넷으로 뿌린 뒤에, 너희들은 절대 못 보는 엔딩이라고 능욕까지 해준다면...

"좆됐다."

수 많은 게이머들의 기분으로 나락을 빠뜨리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이건 못참지.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 혼자 생생하게 즐긴다.'라고 쓰여진 선택지로 커서를 옮긴다.

망설임 없이 마우스를 클릭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짙은 쾌감.

자위를 하지 않고도 정신으로 사정을 할 수 있다니 이게 섹스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흐하하, 씨발 내가 이겼다! 이 죽갤럼 새끼들아!"

어두운 방. 그리고 밝은 빛을 토해내는 모니터 앞에 바지를 내리고 고추를 덜렁이며 춤을 추는 인간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나였다.

하지만 추하면 어쩌겠는가, 최후의 승리는 내 차지가 되었는데!

덩실덩실 몸을 흔들며 생생하게 경험하게 될 해피 엔딩을 기대하는 그 순간.

[더욱 생생한 엔딩을 위해, 플레이어와 마왕의 동기화를 시작하겠습니다.]

"...뭐?"

***

용사, 아서는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항복하겠다. 나는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아."

"...뭐?"

마왕의 하수인들을 전부 베어넘기고, 마침내 마왕이 있는 옥좌까지 도착했건만 검을 겨누자마자 돌아온 소리가 바로 저것이었다.

그건 여정을 함께해 온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얼떨떨한 얼굴로 마왕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확실히 마왕이 저딴 말을 내뱉을 리가 없었다.

세상의 반을 불태우고, 인간들을 싸그리 멸종시켜 버릴 기세로 죽여대던 마왕이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다며 항복을 한다고?

"하,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

"...진심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지금껏 잘도 죽여온 녀석이, 이제는 죽고 싶지 않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분노가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어, 당장에라도 몸이 먼저 튀어나갈 것만 같았다.

"진정해 아서. 어쩌면 마왕의 간악한 술수일 수도 있어."

커다란 지팡이를 든 마법사 소녀, 에밀리가 나지막이 말했다.

저런 혼란과 분노를 주는 말을 해, 인내심을 잃게 만든다. 그것을 노리고 한 말이라면 거의 성공할 뻔 했다.

지금까지 온갖 더러운 짓거리를 해 왔던 마왕답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추잡스러운 수를 써대다니.

마음 속에 자리잡은 마왕에 대한 분노가 한층 더 깊어진 것을 느끼며, 아서는 검이 쥐어진 제 손아귀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죽여버릴 테다... 아니, 죽는 것보다 더 한 꼴을 당하게 만들어주마!"

당장 저 마왕의 부하들이 죽인 사람들의 숫자만 해도 눈이 돌아갈 정도였는데, 마왕 본인의 목숨 하나 따위로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용사가 되면 말이지, 아서. 마왕, 그 천박한 년이 죽인 만큼 내 아이를 낳게 할 거라고!'

여자를 밝히기로 유명했던 고향 친구의 말을 떠올린다. 최후의 전장에서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 따위는 당연하게 알고 있었지만, 이미 죽어버린 이가 매일마다 입에 담던 말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졌다.

성검에 마왕의 피를 충분히 묻히게 된다면 얻을 수 있는 소원 한 가지.

여신께서 직접 강림해 용사의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전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텨왔다.

마왕에 의해 죽은 이들을 다시 살려달라.

단지 그 소원 하나를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고, 드디어 끝이 보이고 있었기에 더 이상 자제심을 잃으면 안 됐다.

"모두 방심하지 마세요. 상대는 그 마왕입니다!"

성녀가 성스러운 기운을 내뿜으며 여전히 혼란에빠져 있는 동료들에게 외쳤다.

처음에는 당황하던 용사 일행들이 다시 냉정해지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야, 그들은 이미 마왕에게 소중한 이들을 잃은 자들이었다.

어째서 그들이 이곳에 왔는가.

마탑에서 제 스승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어야 할 마법사가, 땅굴에서 다른 동족들과 풀무질을 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던 드워프가, 숲을 노래하던 엘프와 성당에서 신께 기도를 올리던 수녀 하나가 어째서 이곳에 모였는가.

당연한 일이었다.

설령 마왕의 말이 진짜였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결국 마왕을 쓰러뜨리게 될 터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나를 살려줄거지? 성검에 얽힌 비밀이라도 이야기 해줘야 하는 건가?

어째서 성검에 마왕의 피를 묻혀야 여신이 강림하는지, 그리고 왜 형편 좋게 '소원 하나를 이루어주겠다.' 같은 보상이 있는지 너희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건가?"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이 빌어먹을 년이..."

아서가 외쳤다. 더 이상 듣고 있을 가치조차 없는 말이었다.

자신에게 힘을 준 여신을 의심하고, 성검을 의심하다니 그게 과연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당장에라도 쏘아질 듯 조여진 성검의 손잡이가 용사의 힘에 삐걱거리며 용맹한 포효를 토해내고 있었다.

이대로 달려나가 순식간에 마왕의 목을 벤다.

저 가증스러운 아가리를 놀리는 꼴 따위,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 분명 저 더러운 면상을 일그러지게 만들어줘야 했는데.

"노파심에 한 가지 말해주자면, 성검의 소원으로는 죽은 자들을 되살릴 수 없다."

"...뭐?"

어째서, 일그러지는 건 우리들의 얼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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