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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4화 (14/342)

Chapter 14 - 엄마가 되어버린.(1)

"제 옷이라도 빌려드릴까요?"

"...부탁하마."

이런 음란한 옷을 계속 입고 있다가는 또 용사에게 엉망진창으로 강간당할게 분명했다.

저 음란 성녀의 옷이라는게 조금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몸 전체를 완벽하게 가려주는 의상이었기에 지금의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하, 마왕이 성녀의 옷을 입다니.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무거운 배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서 성녀가 부축해줬다.

"임산부는 언제나 조심하셔야 해요."

"...어차피 마왕의 아이이지 않는가.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좋아."

침울하게 답하니 절대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온다.

그렇지 않기는 개뿔이.

뱃속에 있는 아기가 마족인지, 인간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왕의 아이라며 학대당하는 미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야, 내가 본 모든 게임 엔딩에서 마왕이 낳은 아기들은 그런 꼴을 당했는걸.

차마 아기를 죽이는 고약한 짓까지는 구현하지 못하겠는지 전부 커가면서 학대당하고, 큰 뒤에는 배척당한다는 이야기였지만 그게 그거였다.

"자자, 조심스럽게 움직이세요."

"...윽."

과한 친절이 부담스럽다. 성녀라고 한다면 마왕을 쓰러뜨리려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런 성녀가 마왕에게, 그것도 용사의 아이를 가진 마왕에게 이 정도의 관심과 친절을 보인다니.

성녀가 건네는 옷을 받아들어 천천히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니 본인이 도와주겠다며 옆에 찰싹 붙어서는 이것저것 거들어주기 시작한다.

여기는 이렇게 입고, 저기는 저렇게 입고...

쉴 틈 없이 재잘거리는 성녀의 모습에 원래 성녀라는 캐릭터가 이 정도로 말이 많은지 의문이 들었다.

"뱃속에 아기를 가졌을 때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하고, 먹고 싶은게 있다면 바로바로 말해줘야 해요. 그리고ㅡ"

"말이 너무 많군. 원래 그렇게 말이 많은가?"

...이런.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말이 목구멍을 통해 육성으로 터져나갔다.

물론 후회 따위는 하고 있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시무룩해지는 성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주 조금 정도는 죄책감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죄송해요."

"...아니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모양이야."

성녀의 옷을 전부 입고 거울에 서니 평소의 마왕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여인 하나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분명 머리에 뿔이 달린 마왕인데, 걸치고 있는 의복은 성녀의 것이라니.

지금껏 본 적 없는 모습에 속으로 희귀 스크립트를 발견했다며 좋아하다가도, 이게 전부 내 몸뚱아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대로 절망한다.

...좆 같은 인생.

"그나저나,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네요."

"..."

확실히 성녀의 말대로, 이 속도는 이상했다.

처음에는 그저 용사가 싸지른 정액으로 인해 배가 부풀었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더 커지는 복부는 자궁 안에 아기가 들어찼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마치 1년 동안 겪어야 할 임신의 과정을 단 하룻밤만에 겪고 있는 것 같달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상상 이상으로 더 끔찍한 삶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하루에 하나를 낳는다고 한다면, 일 년이면 365 명...'

여전히 100만이라는 숫자를 채우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속도였지만, 1년에 하나를 낳는 것보다는 최소 365 배나 빨리진 속도였다.

과연 그 과정들 속에서 내가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밤 중에 겪었던 쾌감의 감각이 다시 한 번 전신을 엄습해 몸을 잘게 떨었다.

기분 좋았지만, 동시에 무서웠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아니, 화장실 정도는 혼자서도 갈 수 있어. 도망차지도 않을테니 걱정은 하지 마라."

어차피 이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는 제대로 뛸 수도 없었다.

성녀의 의복이 꽤 품이 있어서 겉으로 크게 티나지는 않았지만, 직접 뱃속에 품고 있는 입장에서는 여간 곤란한게 아니었다.

잘 다녀오라며 나를 배웅하는 성녀를 뒤로하고 복도를 걷기 시작한다.

제아무리 마왕성이라도 아침이 되면 해가 뜨는지, 복도 내부가 꽤 환해져 있었다.

"정말 악취미적인 그림이로군..."

무엇 하나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정말 악질이었다.

이런 의미 모를 그림 따위를 복도 전체에 덕지덕지 발라놓으니 성격들이 하나 같이 그 모양 그 꼴이 나지.

속으로 혀를 쯧쯧 차며 기다란 복도를 쭈욱 걸어가고 있을 무렵, 저 너머에서 보이는 사람의 모습에 우뚝 굳어버린다.

"마왕?"

"..."

"네가 왜 여기에 있지? 그리고 그 옷은 또 뭐야. 왜, 꼴에 성녀 행세라도 하고 싶었어?"

씨발 새끼, 말 하는 꼬라지 하고는.

당장 저 재수 없는 면상에 주먹을 꽂아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 쓸데 없이 넓은 마왕성에서 화장실을 찾는게 우선이었다.

...마왕이면서 화장실은 가야 한다니, 쓸데없는 곳에서 현실성 있잖아.

점점 배를 타고 내려오는 배뇨감에 입술을 꾹 깨무니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들었는지 표정을 와락 구겨댄다.

"엘리는 어디에 있어?"

"...성녀라면 방에 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직접 허락을 받고 나온거니 쓸데 없는 의심은ㅡ"

"속였구나. 그 순수한 애를."

속이기는 개뿔이.

아니, 그보다 방금 용사가 뭐라고 말했지? 순수하다고? 성녀가?

개가 사람 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것보다는 현실성이 있을 터였다.

성녀가 순수하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냔 말인가.

"속인 적 없다. 정말로, 속인 적 따위는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면 뭣 때문에 방 밖으로 나온 건데?"

화장실 가려고 나왔다, 화장실!

그렇지 않아도 어디 있는지 도통 갈피를 못 잡겠어서 미칠 노릇이었는데, 용사까지 방해해대니 아주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대답을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대답을 안 하면 이 미친 새끼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우물쭈물거리자, 놈의 눈매가 점점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씨발, 이러다가 또 따먹히게 생겼네.

"화장실! 화, 화장실에 가려고 했다! 절대 이상한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어!"

"하."

서둘러 이유를 입에 담았지만, 돌아오는 건 차가운 조소 뿐이었다.

조금 더 일찍 말하는 편이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 녀석이라면 내가 무엇을 말해도 믿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씨발 놈. 네가 그러고도 남자냐?

마음이 좁기는 아주 그 쓰레기 여신의 가슴만큼이나 좁아서는 개 좆 같이 커다란 좆으로 남의 보지나 실컷 쑤셔대는 쓰레기 새끼...

"그딴 거짓말에, 속을 것 같아?"

"...나는 거짓말 따위 한 적 없다."

아무리 밉상인 놈이라도 이 정도까지 믿어주지 않으면 서러워질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왜 안 믿는 건데. 만약 속이려고 했으면 겨우 화장실 같은 이유를 댔을 리가 없잖아?!

울적해지기 시작하는 마음을 애써 달래며 고개를 빳빳이 세우자 용사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면, 증명해 봐."

"뭐?"

"증명 해보라고."

...쓰레기 같은 새끼.

분노로 인해 거칠게 달아오르는 숨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용자의 고간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꼭 섹스하다가 오르가즘으로 복상사나 해버려라, 좆 같은 새끼.

내가 바닥에 닿을 듯 길게 늘어진 옷자락을 집어올려 아무것도 걸쳐지지 않은 고간을 내비칠 때 즈음에는 용사의 물건이 완전히 발기해, 존재감만으로도 내 보지를 위협해댔다.

쪼르르르륵.

"..."

"변태 같은 년."

가랑이 사이에서 흘러나온 투명한 액체가 복도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자, 그 모습을 본 용사가 나를 잔뜩 매도해댔다.

...지가 하라고 했으면서.

얼굴이 열이 쏠릴 정도로 수치심이 들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여기서 또 말 실수라도 했다가는, 혹여 저 녀석을 심기를 거스르기라도 한다면 어젯밤과 같은 무자비한 쾌락이 내 전신을 두들길게 분명했으니까.

"흣?!"

"유혹하지 마."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그건 그나마 정신머리가 붙어있는 녀석에게나 통할 법한 대응이었지, 눈앞의 용사는 제 좆에 휘둘려 완전히 미쳐버린 강간마 새끼일 뿐이었다.

순식간에 벽에 밀쳐져, 귓가에 으르렁거리는 상대의 행동에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범해진다, 범해진다, 범해진다, 범해져, 범해진다고...'

팔을 휘둘러 용사를 밀어내려고 했으나, 내 손목이 붙잡혀 완전히 속박되는 것이 더 먼저였다.

내 복부에 닿은 거대한 좆의 감촉은 바지춤 너머에 숨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보지를 뚫고 들어올 것처럼 생생했다.

누가 야겜 주인공 아니랄까봐 쓸데없이 좆만 커가지고는...!

배꼽을 꾹꾹 눌러오는 용사의 하반신에 위기감이 들어 몸을 비틀려고 했지만, 벽에 짓눌리듯 몰려버린 이상에야 그 어떠한 움직임도 취할 수 없었다.

스륵.

"...!"

"죽인 만큼 낳으려면, 노력해야지. 안 그래?"

마침내 바지춤을 집어내린 용사가 제 좆을 세상에 내보이며 나를 향해 위협질을 해댔다.

안 돼.

쿵쿵거리며 요동치는 심장이 머릿속에 강렬한 거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 안 된다. 이번 한 번만 참아다오, 제발!"

"왜? 이제 와서 겁나기라도 했어?"

"아기! 배, 뱃속에 지금 네 녀석의 아기가 있단 말이다! 이, 이대로 그 험악한 물건과 교접을 해버린다면 뱃속의 아기가 죽어버리고 말 거야..."

잔뜩 울먹이며 외치자 용사가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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