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 - 엄마가 되어버린.(2)
끔찍한 악몽이었다.
마족들을 전부 죽이고, 마왕까지 사로잡았건만 제 악몽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고 있었다.
머릿속에 그려진 평화로운 마을 하나.
조금 더 생각을 이어나가니, 푸르게 물든 추억이 순식간에 피와 화염의 붉은색으로 덧칠해졌다.
'도망치렴, 아서! 어서!'
눈물을 흘리며 마족의 손톱에 갈기갈기 찢어지신 어머니.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그런지 과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결과물만큼은 제대로 목격할 수 있었다.
그래,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인간의 내장이 제 어머니의 것이라면 과연 어떤 심정일까.
새빨갛게 터져나오는 핏줄기와 귓가에 맴도는 마지막 단말마가 아서의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뒤흔들었다.
만약 그때 용사의 힘을 각성할 수 있었다면 어머니를 지킬 수 있었을까.
...분명 지킬 수 있었겠지.
'여기는 내가 막아볼게. 나보다는 네가 더 잘생겼으니까, 내 몫까지 살아남아서 내 몫까지 예쁜 여자들을 꼬시라고.'
여자를 꽤나 밝히기는 했지만,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다.
공포심에 절어 도망치는 것 밖에 하지 못했던 자신보다 용감했던 제 친구.
사냥감을 해체할 때 쓰는 단검으로 마족에게 달려들던 모습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았다.
물론 그의 몸이 반으로 갈라져 속의 내용물을 전부 다 길바닥에 쏟아내는 것 또한 머릿속에 강렬히 새겨져, 더 이상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아서, 미안해. 아무래도, 네 고백은 받아주지 못할 것 같아.'
그리고 아리엘.
봄과 닮았던 그 싱그러운 아이의 마지막은 그 어떤 결말보다 지독하고, 끔찍하고, 허무했다.
마족이라는 생명체는 저주 받아 마땅하다.
이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버러지들이다.
아리엘을 집어들어 그 가느다란 목덜미를 핥아대는 선혈빛 혓바닥을 떠올린다.
그 징그러울 정도로 길게 뻗어진 살덩어리를 찢어 없애고 싶었지만, 당시의 자신에게는 힘이 없었다.
'아서, 보지마. 제발, 보지 말아줘. 제발...'
비열하게 웃으며, 제 바지춤을 내리는 마족의 면상. 그 좆 같은 면상.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정도로 역겨운 그 면상!
용사가 주먹을 내지르자 커다란 굉음과 함께 눈앞의 나무가 바닥에 몸을 뉘였다.
눈물을 흘리며 제발 보지 말아달라는 아리엘의 목소리가 뾰족한 송곳이 되어 용사의 머릿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앗, 흑♥ 보, 보지 마아아앗♥'
저보다 훨씬 커다란 마족의 손에 양 허벅지를 붙잡혀, 천박한 모습으로 비명을 내지르는 모양이란.
소꿉친구의 그런 모습을 처음으로 봤다는 충격 다음으로, 그 상황 속에서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힘이 없어서 막아내지 못했다고?
멍청한 소리. 너는 그냥, 겁쟁이 새끼였을 뿐이야.
빌어먹을 정도로 쓰레기라서, 아리엘을 구하지 못한 거라고.
'오, 온다아아♥ 뭐, 뭔가가 와아아아앗♥ 간다, 간, 다앗, 간다간다간다간다간다아아아아아아아앗♥♥♥'
복부 너머에서도 그 윤곽이 보일 정도로 거대한 자지와, 그것에 보지를 쑤셔지며 짐승 같은 비명을 내지르는 아리엘.
눈을 뒤집어 까며 혀를 쭉 내미는 그 음탕한 모습은 용사의 삶 중 가장 큰 실패로 남아, 매일마다 그의 심장을 난도질 해댔다.
'아리엘!!'
'오, 오읏♥ 오으아... 으...'
순박한 시골 처녀의 보지에서 걸쭉한 정액이 폭발하자, 또래보다 자그맣던 몸이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언제나 키가 크고 싶다며 귀여운 불평을 하던 소녀.
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보다는 소녀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었던, 순수했던 제 소꿉친구.
그 끔찍한 광경을 눈에 담으면서도 한심한 제 하반신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잔뜩 발기해, 끈적한 체액을 마음껏 토해내고 있었다.
아주, 좆 같게도.
땅바닥에 생겨난 정액의 웅덩이에 아리엘의 몸뚱이가 떨어져 내리고 나서야,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는 제 소꿉친구를 향해 비틀비틀 뛰어갔더랬다.
'...아리엘, 정신 차려!'
'...'
'...아리엘?'
하지만, 대답이 돌아오는 일 따위는 없었다.
단 한 번의 격렬한 교미였을 뿐이었지만, 아리엘의 연약한 몸은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뭐라고 했더라. 전신에서 미약을 뿜어내, 여자들의 뇌를 쾌락으로 녹여 죽이는 마족이라고 했었나.
눈동자를 까뒤집고, 혀를 빼물고 죽어있는 시체에 남아있는 쾌락이 그 어떠한 것보다 끔찍하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마족 새끼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그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죽, 어. 죽어버려, 이 개 씨발 새끼야!!!!!!'
깊은 절망은 기적을 불러오는 법이었다.
피눈물을 쏟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손에는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성검이 쥐어져 있었다.
여신께서 인간들에게 내린 최고의 무구이자,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찢어발길 수 있게 해주는 한 줄기의 쐐기.
옆집 아저씨도, 친구도, 골목 어귀의 불량배들도, 경비병들도, 근처를 순찰하던 기사들조차 막아내지 못했던 마족의 그 역겨운 몸뚱아리에서 머리통이 떨어져 나가는데까지 걸린 시간.
단, 3초.
"웃기지도 않는 일이야..."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이런 존재에게 마을 사람들이, 부모님이, 제 친구가 목숨을 잃었다고?
이런 쓰레기에게 아리엘이 순결을 빼앗기고 철저하게 범해져서 그 쾌락으로 인해 천박한 모양새로 목숨을 잃었다고?
지랄.
정액 투성이가 된 아리엘의 시체를 땅 속에 묻을 때 즈음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지.
지랄하지마.
마을 사람들의 묘비를 세우고 눈을 뜬 채 죽은 이들의 눈을 감겨줄 때에도, 마찬가지로.
'...이런 결말 따위, 나는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겠어.'
모두의 무덤 앞에서 그렇게 맹새했더랬다.
반드시 되돌리고 말겠다고.
이런 짓을 벌인 마왕을 쳐죽이고, 여신께 소원을 빌어 모두를 되살리고 말 것이라고.
뭐, 지금와서는 전부 산산이 부서진 꿈일 뿐이었지만...
***
"아기! 배, 뱃속에 지금 네 녀석의 아기가 있단 말이다! 이, 이대로 그 험악한 물건과 교접을 해버린다면 뱃속의 아기가 죽어버리고 말 거야..."
개 같은 년.
빌어먹을 과거의 기억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보이는 건,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존재의 모습이었다.
엘리의 옷을 입고, 겁에 질린 것처럼 벌벌 떠는 꼬라지라니...
심지어 지금 말하는 것 또한 자신에게 범해지기 싫어 대충 내뱉는 변명 따위에 불과할게 분명했다.
뭐? 아기?
...하,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죽으면 어때서?"
"...뭐?"
"더러운 마왕의 새끼 따위,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지, 지금 대체 무슨 말을ㅡ"
전부 이 년의 잘못이었다.
마왕, 마왕, 마왕!
그 얼마나 증오스럽고, 듣기만 해도 분노를 일으키며, 몇 번을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이름이란 말인가!
눈앞의 창녀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껏 희생된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뭐? 아기? 아기가 죽는다고?
"씨발 년."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왕이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꼴에 아기를 지키겠다고 제 배를 감싸쥐고 있는 모습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 끔찍했다.
강간 당해 생긴 애한테 그새 정이라도 생긴 건가?
아니면, 나에게 동정심이라도 얻을 생각이었던 걸까.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이유들이 떠올랐지만, 용사에게 있어서는 전부 다 갖잖은 것들일 뿐이었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전투를 위해 철굽을 달아놓은 장화가 마왕의 몸을 무자비하게 짓밟기 시작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을 웅크린 여인의 모습은 분명 동정심을 유발할 정도로 안타까웠지만, 용사의 눈에는 그저 하찮은 연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왕 주제에 이딴거에 아파하면 안 되지. 암, 아파하면 안 되고 말고.
뼈가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마침내 살벌한 소리를 흘리며 부러져 나가도 용사는 마왕을 짓밟는 짓거리를 멈추지 않았다.
차라리 뒤져버리라지. 죽인 만큼 낳던 말던, 그냥 뒤져버리라지!
"...니다."
"..."
"...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흑,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가느다랗게 흘러나오는 사죄에 용사의 발길질이 멈췄다.
잘게 부러져, 기괴하게 꺾인 팔을 부여잡은 마왕이 제 발 밑에 쓰러져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무자비한 발길질에 전신에 피멍이 들고 이곳저곳이 부러져 퉁퉁 부어오른 와중에도, 마왕의 복부는 아슬아슬하게 지켜져 둥글게 부풀어 있었다.
"...하."
고개를 들어올려, 무채색의 천장을 바라본 용사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비웃음 같기도, 마음 속의 후회를 억지로 토해내는 것 같기도 한 기다란 숨결이 허공으로 나풀나풀 피어올랐다.
"그렇게나 많은 아이들을 죽여놓고는, 그 뱃속에 든 아기는 소중하다고?"
"..."
쏘아붙이듯이 말했지만, 그 목소리 안에 담긴 독기는 상당히 빠져나간 채였다.
대답 없이 널브러진 마왕을 내려다보던 용사가 제 머리카락을 거칠게 헝크러뜨리며 연신 거친 숨을 토해냈다.
이 모든 것들이 연기인지, 혹은 진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마왕이.
아니, 감히 마왕 따위가 제 속을 이토록 엉망으로 뒤집어 놓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너는, 이렇게 허무히 죽어선 안 돼."
"..."
"네가 저지른 일들을 그대로 돌려받고 그만한 벌을 받은 뒤, 비참하게 죽어야지."
그래, 단지 그런 이유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