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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6화 (16/342)

Chapter 16 - 엄마가 되어버린.(3)

부러진 뼈가 아프다.

용사에게 두들겨 맞은 마왕이 성녀에게 치료를 받고 있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작게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이니, 조금 전보다 더욱 부풀어오른 복부가 눈에 띄었다.

이 정도면 그냥 풍선이 아닐까.

뱃속의 아기가 다 자라게 된다면 펑, 하고 터져버리는 거지.

"괜찮으세요?"

"...덕분에 괜찮아졌다."

성녀인데도 마왕을 치료할 수 있다는게 아이러니 했지만, 모시는 신이 그 쓰레기 여신이었기에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내가 죽게 두지는 않겠지.

옷 너머로 둥글게 크기를 키운 배를 꾹 안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설마 아빠보다 엄마가 더 먼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으음, 이 정도면 곧 태어날 것 같은데요?"

"아직 뱃속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속단하기에는 이르ㅡ"

성녀의 말에 반박하려고 했지만 툭, 하고 느껴지는 태동에 순간 하던 말을 멈추고는 바싹 굳어버렸다.

...이거, 그거지?

손바닥으로 슬며시 배를 밀어올리니 좁아서 불편하다는 것 마냥 다시 한 번 배를 뻥뻥 차댄다.

마치 자기가 안에 있으니까 조심해서 행동하라는 것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물론 단순히 내 생각일 뿐이었지만.

"그러고보니, 아기의 이름은 정하셨나요?"

"아기의 이름, 이라니..."

아기의 이름.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었다.

그저 백만이나 낳아야 하는구나, 하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름를 지어야 한다고?

솔직히 어떤 아기가 태어날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이름을 짓는 건 또 어떨까 싶었다.

남자아이의 이름을 지었는데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해.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나.

"아니, 그런 여성스러운 일을 내가 할 리 없지 않은가..."

"..."

"...그리고, 나는 그저 죽인 만큼 낳을 뿐이니 그럴 자격 따위는 없겠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는 사고를 붙잡아, 잔뜩 자조하며 비웃는다.

왜, 뱃속에 아기가 생기니까 진짜 엄마라도 된 줄 알았어?

정신은 신체를 따라간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임신을 하고 출산까지 앞두고나니 뇌가 말랑말랑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지 않는다. 겨우 이런 일 따위로 암캐가 될까 보냐...

"그런데, 성녀. 질문이 하나 있다."

"네, 말씀하세요."

죽죽 흘러나오는 식은땀에 이마를 훔친다.

그러니까, 그.

"...아, 아기를 가진다는게, 이렇게 아픈거였나?"

"..."

아프다. 아파, 아파.

자궁에 아기가 들어있어서인지 내장이 눌려, 뱃속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이었다.

아기의 탓이라고 하기보다는 더 이상 내 자궁이 커다래진 아기의 몸을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게 더 맞는 말일 터였다.

이대로라면 아기가 내 배를 찢고 나올지도 몰라.

막연한 공포심에 성녀의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겼다.

"무, 뭐라도 말 좀 해다오... 윽, 흐..."

"그치만, 저도 아기는 낳아본 적 없는 걸요."

"후, 흐... 그러면, 손이라도 잡아다오."

전신을 짓누르는 듯함 무게감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원래 임신이라는게 다 이런 건가?

끙끙 앓으며 성녀의 손을 향해 팔을 움직이니 잡기 쉽게 슬슬 다가와준다.

손과 손이 얽히며 느껴지는 사람의 온기에 조금이지만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기도 했다.

"...성녀."

"네."

"...무섭다고 한다면, 비웃을 건가?"

점점 하반신에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저 공포에서 비롯된 거짓된 감각인지 아니면 진짜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공포심 하나만큼은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속 한 구석을 좀먹고 있었다.

무서워, 무섭다고 씨발.

내가 마왕이 되어서, 용사에게 강간을 당하고, 임신을 해서 아기를 낳게 된다니.

어처구니 없는 전개였다. 심지어 그 전개가 상상 이상으로 빨라서 폭주하는 고속 열차에라도 탑승한 듯한 기분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처절하게 망가지지 않을까.

뱃속의 아기를 낳게 된다면,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내 뱃속에서 태어난 아기를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된다면 더 이상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절대 비웃지 않아요. 오히려 생명을 낳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쪽이 더 이상한 법이니까요."

"...그런가."

"그렇죠."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성녀 또한 꽤 긴장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손의 떨림은 오로지 내 것이라고만 생각했건만, 자세히 느껴보면 그녀의 손 또한 긴장감에 덜덜 떨고 있었다.

아기를 낳는 건 나인데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이렇게 떨고 있는지.

지켜보는 사람도 이 정도로 긴장하고 있는데, 직접 낳는 사람은 얼마나 더 무서울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신기할 정도로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지금은 여자던, 얼마 전까지 남자였던 상관 없이 지금만큼은 뱃속의 아이를 낳는 것에 집중해야 할 시기였다.

"성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그래, 갑자기 나타난 난쟁이 똥자루 새끼만 아니었다면 아름다운 한 장면으로 기억됐을지도 몰랐겠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버럭 소리를 지르는 드워프의 등장에 성녀나 나나 할 것 없이 동시에 화들짝 놀라버렸다.

고통을 참기 위해서 배에 힘을 주고 있었는데, 그 아슬아슬함이 순간적으로 끊겨버리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마왕을 살려두는 걸로도 모자라, 마왕이 애새끼를 낳는 것까지 도와?! 그게 정녕 성녀가 할 짓이란 말인가?!"

"하, 하지만 아기의 탄생은 축복 받아야만 하는 일이라고요!"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씩씩거리며 나에게 다가오려고 하는 드워프 자식과, 그런 난쟁이 새끼를 붙잡는 성녀.

이 근처에 오기만 하면 내 배를 짓눌러 터뜨릴 듯한 기세에 심장이 절로 철렁였다.

...성격 더러운 드워프 새끼, 그 크기 만큼이나 인정머리도 없어서는.

나 뿐만이 아니라 내 뱃속의 아기에게까지 향하는 농밀한 살기에 반사적으로 배에 팔을 둘러 꼭 감싸안았다.

'내가 이딴 행동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저 난쟁이 새끼에게 아기를 잃느니, 이런 짓을 하는게 백 번 천 번은 더 나았다.

"마족이 어떤 존재들인지 벌써 까먹었나? 다 큰 새끼들이던, 그냥 애새끼들이건 사악함으로 꽉꽉 채워진게 바로 그 부류들이야!"

"그, 그건, 맞지만..."

"마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인다. 그 방침을 잊지 말게."

여러모로 마족들에게 당한게 많았는지, 이번에는 성녀도 딱히 반박하지 못했다.

하긴, 스토리상으로도 마족은 희대의 씹새끼들만 태어나는 설정이었으니 꼭 틀린 말도 아니었다.

태어나면서 제 어미의 정기를 빨아먹고, 걸어다닐 때 즈음에 작은 소동물을 죽이기 시작한다.

성악설을 수천 배 증폭시켜 빚어진 듯한 종족이 바로 마족이었기에, 저들의 반응이 조금 정도는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고 해도...'

죽게 놔둘 수는, 없는 거잖아.

태어나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 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일이지 않을까.

내 뱃속에서 나오고 싶어 발버둥치는 아기의 움직임을 온몸으로 느끼며 눈을 꾹 감았다.

마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인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아니, 정말 그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저 드워프 자식의 손에 죽게 두지는 않을 터였다.

"내 뱃속에서 태어난 아기가 마족이라면, 내 손으로 직접 죽이마."

"마왕, 그게 대체 무슨 소리에요! 자기가 낳은 아기를 직접 죽이다니ㅡ"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 앞뒤가 꽉 막힌 드워프 새끼는 이 정도의 맹세가 아니라면 절대 들어쳐먹지 않을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평생 동안 마왕을 증오하고, 마족들을 죽이는데에 앞장서온 존재.

그런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 정도까지 내뱉지 않고서야 소용도 없을 터였다.

그렇기에 말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제 심장에 스스로 대못을 박으며, 그렇게 말했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이고, 그 뒤에는 나 또한 죽도록 하지."

아기 또한 생명이다.

생명을 죽인 자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행복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지.

"마왕..."

"그러니, 한 번만 기회를 다오. 내 뱃속의 아기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단 한 번만..."

진심을 담은 부탁에 드워프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 절반을 덮는 수염 때문에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정확히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뭔가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

잠시의 침묵 뒤에 한 걸음 물러서는 드워프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막무가내로 달려들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렇게까지 꽉 막힌 녀석은 아닌 듯 싶었다.

"대신, 아기를 낳는 건 내가 직접 봐야겠다."

"...성녀가 있지 않느냐."

"나는 내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면 믿지 않아. 혹시라도 아기를 바꿔치기 했을지 누가 알겠나?"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억지였다.

어떻게 이런 놈들만 모아서 용사 파티를 꾸렸는지 너무 궁금하고 신기해서 팔짝 뛸 노릇이었다.

제길, 저 드워프한테 내가 아기를 낳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가랑이를 벌리고 아기를 낳는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하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신이 덜덜 떨려왔다.

그렇게 분노와 수치심 언저리에 있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자, 드워프 자식의 목소리가 마치 총알처럼 쏘아져왔다.

"빨리 낳아라. 꼭 마족이어서 둘 다 뒤졌으면 좋겠군."

...말하는 뽄새 봐라, 이 좆 같은 난쟁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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