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 - 엄마가 되어버린.(7)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삼아, 멍하니 천장의 얼룩의 수를 세어낸다.
명색이 마왕성이라는 곳이 왜 이렇게 먼지가 많은 거야.
끊어질 듯한 허리의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태연히 그런 생각 따위를 해댔다.
[앞으로 낳아야 할 아이의 숫자 : 1,000,000]
약 백만으로 대충 적혀져 있던 것이 이제 정확히 백만으로 바뀌었다.
뭐, 아기를 낳는데에도 튜토리얼이나 그런게 필요한가?
...웃기지도 않는 소리.
고간에서 느껴지는 고통으로 인한 신음을 억지로 집어삼키며, 품 안에서 느껴지는 작은 존재감을 바짝 껴안았다.
"흡, 흐읏, 흡, 흑..."
"젠장, 젠장, 젠장..."
용사의 자지가 내 안을 통과할 때의 기분은 가장 처음의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잠들어 있을 때 당했던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몰아치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고통.
쾌락에 눈을 떠 암컷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싶던 일이 전부 허상이었다는 듯, 내 몸은 제 안에 들어온 용사의 좆에 강렬한 거부감을 내비치며 격렬히 밀어내고 있었다.
'섹스하면서 하루 종일 욕이나 하는 새끼랑 하다니...'
이런 고통을 한 번 겪어봐서 그런지 용사의 거친 허리놀림에도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고 있달까...
사실 아파 죽을 것 같있지만, 뭔가 신음을 내뱉으면 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잔뜩 들어서 억지로 참아내고 있던 차였다.
이런 녀석과의 섹스에 있어, 그 어떤 소리라도 쉽게 내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설사 그것이 고통으로 인한 비명이라고 하더라도.
"큭, 크하..."
전신을 흥건하게 물들인 식은땀이 기분 나쁘게 달라붙어왔다.
뱃속을 엉망으로 두들겨오는 고통을 견딘게 벌써 몇 시간 째더라.
어쩌면 겨우 몇 십 분이 지났을 뿐일지도 몰랐지만, 용사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제 곧 끝인 듯 싶었다.
살았다, 라는 안도감에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갔다.
"...이제 끝난 건가?"
"...헉, 허억. 이, 씨발 년이..."
하지만, 내 질문에 반쯤 죽어있던 육봉이 다시 거대하게 솟아올랐다.
대체 이 단순한 물음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인 건지 몰라도, 그를 꽤나 화나게 했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성욕과 정력이 끓어오르다니, 이딴 빌어먹을 설정은 대체 누가 만든 거야.
"...그, 그대를 도발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너무 힘들어서, 윽..."
행동은 빨랐고, 말은 느렸다.
이미 쑤셔질대로 쑤셔져, 붉게 충혈되어 있는 보지에 다시 한 번 자지가 틀어박혔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감각이 무뎌지는게 아니라 더욱 선명해져, 이제는 정말 버틸 수 없을 지경이었다.
빼줘, 빼줘, 제발, 내 안에 들어있는 물건 좀 빼줘!
아파, 아파, 아파,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아악, 으, 학..."
퍽, 하고 쳐올리니 허리가 붕 떠올랐다가 볼품없이 나자빠졌다.
내장에 주먹질을 해대는 것 같은 감각을 견디는 것이 이제 한계가 와, 여과되지 않은 비명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거칠게 터져나왔다.
정욕에 찬 신음이 아니라, 고통과 절망에 찬 비명.
그런 비명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자궁을 꿰뚫어 몸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낼 기세로 용사가 제 물건을 내 보지에 처박아댔다.
"켁, 헤... 이제, 그, 만ㅡ"
"..."
"지, 진짜 죽ㅡ"
ㅡ는다...
마지막 생각을 끝으로 잠시간 정신이 새하얗게 물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깜빡깜박 점멸해댔다.
뇌에서 보내는 위험신호.
이대로 섹스를 계속 했다가는, 죽어지릴지도 모른다는 엄중한 경고였다.
"...우웩, 으엑..."
계속되는 충격을 버티지 못한 위장이 그 속에 든 위액을 마구 토해내기 시작했다.
토하고, 토하고, 또 토하고.
죽어가는 감각을 전신으로 느끼며, 만약 이대로 죽어버린다면 이 모든 경험이 그저 하나의 악몽으로 넘어가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래, 이 정도도 많이 버틴거잖아.
여기서 끝내도 괜찮은 거잖아.
...그렇지?
"...흥아, 흥아, 흥아아아...!!"
"..."
그대로 눈을 감으려는 찰나, 귓가에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기가 울잖아. 배라도 고픈 건가? 아기는 뭘 먹지? 밥? 밥은 없는데. 이유식도 없고. 이유식이 없으면 뭘 먹지? 그런데 이유식을 먹을 나이는 아닌거 같은데. 아, 그래 모유를 먹여야지. 그런데 모유가 어디 있어? 그냥 분유나 먹이자. 그런데 분유가 안 보이네. 아니, 움직일 힘이 하나도 없어. 바로 먹일 수 있는게 따로 없을까. 아, 그러고보니 배운 것 같았는데. 그러니까, 그.
아기에게 젖을 물리라고 했었지.
"너..."
용사가 허리를 흔드는 와중에도 젖가슴을 꺼내, 아기의 입에 물려준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아니, 뭘 하려고 했었지?
...여기가 어디였더라.
내 영혼을 붙잡고 저 지옥 너머로 끌고 가는 듯한 차가움에 천천히 손을 뻗어 눈앞의 사람을 붙잡았다.
"...죽, 고 싶지 않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너."
"아기라면, 흐, 얼마든지 낳을 테니. 죽이지 말아, 다오..."
홀몸이었을 때도 겁이 나서 죽지 못했건만, 아기가 생긴 지금은 또 어떨까.
얼마 전까지 남자였던 새끼가 아기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드니 뭐느니 운운하는게 스스로 생각해도 역겨웠지만, 제 몸에서 태어난 아기에 남자 여자가 어디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러니까 죽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 뱃속을, 더 이상 휘젓지 마ㅡ"
끝맺히지 못한 단어를 끝으로, 시야가 검게 물들어갔다.
이대로 정신을 잃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
피로와 고통의 누적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그저 잠드는 것일 뿐일까, 아니면 정말 죽음의 기로 위에 선 걸까.
서럽게 울어대는 아기의 소리를 마지막으로, 의식이 끊겼다.
***
제 밑에 깔려 정신을 잃은 마왕을 보며, 용사가 그녀의 안에 박혀 있던 좆을 뽑아냈다.
몇 번이나 싸질렀는지 희어멀건 액체를 울컥거리는 둔덕에 시선이 가기를 잠시, 초점을 잃은 눈동자에 잠시 몸이 굳었다.
이 눈. 이 눈동자.
생기를 잃어버린 눈동자.
"...하."
죽은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눈동자에 용사가 작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죽었다고? 정말로?
상대의 어깨에 손을 대자 싸늘히 식은 피부의 온도가 느껴져왔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마왕이, 겨우 이딴 일에 죽는다고?
"연기는 그만하지 그래?"
"..."
"마왕."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침대 위에 올려진 손가락들이 고통을 참기 위해 붙잡았던 이불보를 놓은 채로 힘 없이 늘어져 있었다.
어지럽게 물들어가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천천히 손을 뻗어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용사는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거짓말이지?"
"..."
"하, 하하, 하... 씨발 진짜..."
분노가 솟아올랐지만, 그의 고간이 부풀어 오르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의 분노는 마왕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향하고 있었기에, 그저 짙은 자괴감만이 커져갈 뿐이었다.
마왕이 죽었다. 그것도 자신과의 섹스 때문에!
차라리 죽어버리라며 저주의 말을 내뱉기는 했지만, 정말로 죽어버릴 줄은 몰랐다.
출산으로 인한 소모가 그 정도로 컸던 건가.
한계의 끝에 다다른 몸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말도 안되는 소리."
마왕의 젖가슴을 빨고 있는 아기를 거친 손길로 떼어내, 이불보 옆에 놓아둔다.
반쯤 내던지듯 이루어진 행동에 아기가 앙앙 울어대기 시작했지만, 용사의 귀에는 전혀 닿지 않았다.
왼손과 오른손을 겹쳐 깍지를 끼고, 마왕의 명치에 올려두고는 강하게 짓누른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심장이 그녀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지만, 그는 일련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
명치를 짓누르고, 짓누르고, 또 짓누른다.
무겁게 내리누르는 압력에 침대가 삐걱여, 방 안을 물들였지만 마왕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숨을 쉬고 있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숨을 불어넣어야 한다.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창백하게 물든 입술로 시선을 옮겼다.
고통을 참기 위해 얼마가 씹어댔는지 엉망으로 뜯어진 모습이었다.
"후우ㅡ 흐읍!"
잠시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마왕의 턱을 집어올린 용사가 제 입술을 마왕의 입술에 가져다 대, 깊게 숨을 불어넣었다.
이대로 죽어서는 안 되지, 응?
용사의 숨결에 마왕의 흉부가 약간이나마 부풀어 올랐다.
그 모습을 확인한 그가 다시 깍지를 낀 채 그녀의 명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흐, 흐아ㅡ"
"..."
그렇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한 순간, 희미한 숨을 토해내며 몸을 비트는 마왕의 모습에 용사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웃기지도 않아. 용사가 마왕을 살려내다니!
마른 기침을 토해내며 고통에 찬 숨소리를 내뱉는 꼴이 꽤 안쓰럽게 보인다면 거짓말일까.
'...마왕 따위가 안쓰러워? 정말 미쳤구나, 아주 단단히 미쳤어.'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돌리니, 순간적으로 희미하게 초점이 돌아온 눈동자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흉기에 버금갈 정도의 좆으로 자신을 죽여놓고는, 어째서 다시 되살렸냐고 묻는 듯한 시선 속에 커다란 두려움이 진하게 물들어 있었다.
어쩌면, 똑같은 짓을 해서 나를 다시 죽일지도 몰라. 죽인 다음에 다시 살리고 죽이고, 살리고ㅡ
촉촉하게 젖어드는 황금색 눈동자에 용사가 진한 한숨을 토해냈다.
분명 나쁜 건 마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자신이 나쁜 놈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