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3화 (23/342)

Chapter 23 - 죄와 벌.(1)

"와아, 정말로 다 치유됐네요!"

"...으응, 그렇지."

원래대로 돌아온 성녀에 떨떠름하게 답한다.

전조도 없이 휙휙 바뀌어서는 사람 애간장만 태우고 사라지다니, 성격 나쁜 걸로만 치자면 한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게 분명했다.

용자의 좆에 마구 폭행당해 너덜너덜해진 뱃가죽이 다시 매끈한 처음의 상태로 돌아온 것을 본 성녀가 잔뜩 환호해댔다.

치유 된 건 나인데 왜 네가 더 좋아하는 건데?

"역시 여신님, 역시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수호자 다우시네요!"

"..."

무어라고 딴지를 걸고 싶었지만, 정신적으로 지쳐서 결국 그만둔다.

죽인 만큼 낳으면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준다.

그것에 대한 확답을 받았으니 앞으로는 열심히 용사와 섹스해서 마구 아기를 낳는ㅡ

시팔, 대체 그게 무슨 개 같은 소리냐고?!

결국 의미 없는 질문에 의미 없는 답변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속으로 마구 소리를 지르며 입술을 비죽 내밀자 가느다란 손가락이 인중을 쿡쿡 찔러왔다.

"...뭐냐."

"아니, 너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헤헤."

귀엽다니, 누가. 내가?

속에서 천불이 오르는 듯한 기분에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다.

귀엽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화가 나네, 왜 이러지?

"앞으로는 나한테 귀엽다고 하지 말거라."

고개를 픽 돌리며 한 마디 쏘아붙인다.

나는 암컷이 아니야, 귀엽다는 칭찬을 받고 기뻐하는 그런 녀석이 아니라고!

적당한 키를 가지고, 안경을 쓴 평범한 체격과 인상을 가진 남자ㅡ 였던 사람이 설마 귀엽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살아온 세월 이퀄 여자친구 없던 경력이었기에, 이런 쪽의 칭찬에는 면역이 없었다.

...부끄러움을 넘어서 닭살이 돋는다고. 으, 소름끼쳐.

"히약?!"

"그나저나, 진짜 새하얗네요. 마족들은 원래 다 이런가? 부~러~워~"

"마, 만지지 마라! 쓰다듬지도 마! 엉겨붙지 마! 너, 너무 가까워! 으, 햣?!"

그, 그거 성희롱이야, 성희롱! 갑자기 어딜 만지는 거냐고, 이 미친 변태 성녀야!

하복부를 만지작거리는 야릇한 손길에 반사적으로 비명이 터져나왔다.

감히 내 목소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새된 비명에 성녀의 입꼬리가 비죽 솟아올랐다.

'서, 설마 아직도 그 쓰레기 여신이 빙의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혹시 모를 가능성에 침대보를 그러쥐고는 전력으로 몸을 가린다.

요, 용사 새끼한테 따먹히는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성녀까지 나를 따먹으려 한다니 이게 무슨 경우냐고!

남자한테 따먹히고 여자한테도 따먹ㅡ 어라, 이건 좋은게 아닌가?

"마왕 씨, 용사님이랑 섹스하면서 기분 좋았던 적 있으세요?"

"..."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방금 전까지 간드러지게 웃고 있던 녀석이 이제는 또 진지하게 물어온다.

어떻게 보자면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말문이 막히기도 잠시,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는 시선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기분이 좋기는 개뿔, 아파 뒤질 뻔 했는데.

...아니, 실제로 뒤졌었나?

"용사와 교접을 하다가 숨이 멎을 정도였으니, 빈말로도 기분이 좋았다고는 말하기 힘들겠지."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자아가 남자의 그것인 이상, 용사와의 섹스가 기분 좋을 이유 따위는 존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것이 서로의 합의도, 애정도 없이 벌어지는 강간이라면 더더욱.

나를 죽여버리기 위해, 망가뜨리기 위해 저돌적으로 움직이는 거친 움직임이 기분 좋다면 그건 분병 엄청난 피학 성향을 가진 변태임이 틀림 없을 터였다.

지극히 정상적인 성향을 가진 나에게 있어서는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섹스 경험이라고...

"하지만 언제까지고 고통스러운 섹스를 하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요."

"그러면."

"..."

"그러면, 내가 용사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라도 하라는 말인가? 그런 건 못한다. 아니, 안 한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ㅡ"

그런 쓰레기한테, 마음까지 주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격해진 감정에 목구멍을 타고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내가 어떤 기분인지, 얼만 아픈지도 모르면서 그딴 소리를 내뱉다니.

너무 분한 나머지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내가 용사한테 어떻게 당하는지 바로 앞에서 두 번이나 봤으면서, 씨발 년...'

뺨이라고 휘갈겨주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곧바로 바닥까지 처박히는 기분에 그럴 의욕도 사라져 버렸다.

이 년을 때려서 뭐하냐,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용사 그 새끼한테 있는데.

고간에 흉기를 달고는 보지를 쑤셔대는 악질 살인마 같은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자 하복부가 절로 아려왔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냥, 미리 준비를 하는 편이 좋지 않나ㅡ 싶어서요."

"...무슨 준비?"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성녀에 불퉁거리며 답한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꽤나 진지하게 말하기에 일단은 한 번 들어보기로 했다.

"전희요, 전희. 섹스를 하기 전의 준비!"

"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당당하게 외치는 성녀에 왁왁 소리친다.

그런 태연한 얼굴로 진지하게 그런 말 하지 말란 말이야!

어째서 저딴 변태 같은 이야기를 하는 성녀가 아닌 내 얼굴이 뜨거워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세, 섹스를 하기 전의 준비라니.

자위라도 하라는 말인가?

"예를 들자면 자위를 한다던지 하는 것들이요."

...진짜냐.

검지 손가락을 픽 치켜들며 얼굴을 들이밀어 오는 성녀에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런 내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지만, 음흉하게 치솟은 입꼬리가 성녀를 한층 더 몹쓸 인간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자위를 해본 적이 없다."

"네?"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귓가를 뚫고 들어온다.

진심으로 놀란 듯 반쯤 엇나간 음성에 슬쩍 시선을 피했다.

좆 잡고 흔드는 딸딸이라면 얼마든지 해봤지만, 보지에 손가락을 넣는 자위 따위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요.

평생을 남자로 살아왔는데, 여자의 몸뚱이로 하는 자위를 내가 대체 어떻게 알겠는가.

'자기는 자위를 많이 해봤으니 나도 당연히 해봤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역시 변태 성녀다운 생각이었다.

"감촉 때문에 반쯤 확신하고는 있었지만, 설마 진짜 자위 한 번 하지 않았을 줄이야..."

"감촉 때문에 반쯤 확신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아, 아아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식은땀을 삐질거리는 성녀를 쏘아붙였지만, 돌아오는 건 수상하게 더듬거리는 답변 뿐이었다.

뭐야, 사람 궁금해지게 왜 그러는데.

눈을 가늘게 뜨자 눈을 질끈 감는 모습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면, 그저 기분 탓일까.

'...설마 자고 있을 때 내 보지 안에 손가락이라도 넣었나?'

생각해보면, 아무리 자는 도중에 범해졌다고 하더라도 기절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던 건 이상할 정도였다.

아무리 방심을 했다고는 해도, 그 정도로 갑작스럽게 자지가 쳐박혔는데 암캐처럼 신음을 흘렸다고?

내가?

불현듯 생겨난 심증이 성녀의 면상을 쿡쿡 찔러댔다.

이 씨발 년, 역시 뒤로는 공작을 펼치고 있었구나. 이 여신의 앞잡이가!

"그, 그치만 그렇게나 야한 냄새를 풍기시면 저도 참을 수 없다구요오오오..."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게냐?!"

"으와아아아아, 죄송, 죄송해요!"

이 변태 성녀, 쓰레기 성녀, 창녀가아아아앗!!!

이실직고 그 날 밤에 있었던 일을 실토하는 성녀에 결국 참지 못하고 몸을 내던진다.

무, 뭐? 내 보지랑 자기 보지에 손가락을 넣고는 조임을 비교했다고?

이 미친 년이 진짜!!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에 와악, 하고 달려들어서는 성녀의 머리통을 마구 내려쳤다.

"내가 그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느냐! 그, 그런 이상한 감각 따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단 말이다!"

별로 아파하는 기세는 아니었지만, 거칠게 몰아치는 주먹에 성녀가 꺅꺅 비명을 질러댔다.

겨우 이 정도로 내 분노가 풀릴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이 망할 녀석!

그렇게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몰아쳤지만, 결국 먼저 지쳐버리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뭐야, 이 몸. 상상 이상으로 약골이잖아.

"그, 그치만 전희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또 위험해지실지도 모른다구요!"

"헉, 흐, 위험해진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헉헉거리며 숨을 토해내자, 성녀가 버럭 소리쳤다.

섹스를 하기 전에 자위를 하지 않으면 위험해진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뭐, 꼴림 요소가 줄어들어서 위험하다는 건가?

또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면 이번에는 정말 면상을 때려주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마왕 씨도 겪어봐서 잘 알고 계시잖아요. 질내가 넓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용사님의 그 거대한 물건을 계속 받아들였다가는 정말 죽어버릴거에요."

이미 한 번 죽었지만.

아무튼, 성녀가 하는 말의 요지는 그거였다.

용사와의 섹스에도 아무런 쾌락을 느끼지 못해 질이 제대로 늘어나지 않으니 고통이 동반되고, 고통스러우니 경직되어서는 더 큰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자위를 통해 먼저 질을 이완시키고, 애액으로 질내를 촉촉하게 적신 뒤에 섹스를 하라고.

"할까 보냐!"

"꺄앗?!"

괘씸한 소리를 내뱉는 성녀의 말에 머리에 열이 뻗쳐, 그 탐스러운 정수리를 강하게 두들겨주자 성녀가 비명을 내질러댔다.

자위를 하려면 너나 하라고, 이 자위 중독 변태 성녀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