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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7화 (27/342)

Chapter 27 - 죄와 벌.(5)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거지? 성녀가 마왕을 덮치고 있다니 무슨ㅡ"

"에, 에밀리?! 이, 이건 그!"

머리를 덮고도 남는 커다란 고깔모자를 푹 눌러 쓴 여인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보며 표정을 찡그렸다.

그녀의 이름하여 에밀리, 에밀리 디체페이글.

마탑의 위대한 마법사임과 동시에 용사 파티의 일각을 맡고 있는 어쩌구였다.

'타이밍 좋게 나타나준 건 고맙지만 말이지...'

나를 보며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저 마법사로 말하자면 공식 설정상 성격 더럽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인물이었으니까.

어쩌면 기분이 나쁘다며 내 머리통을 커다란 불덩이로 지져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저나, 마왕이 왜 아직까지 살아있는 거야? 목적을 달성했으니 죽여도 되는거 아닌가?"

"에밀리, 그게 ㅡ"

"그래서, 스승님은? 스승님은 어디에 있어? 마왕군에게 살해 당하셨으니 분명 되살아나셨을 텐데..."

심지어 ONLY 스승님 LOVE.

마족들의 침공에 맞서 싸워 죽은 제 스승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던 캐릭터였기에, 망가졌을 때의 스크립트 또한 최상위권에 속할 정도의 꼴림을 가진ㅡ 큼큼...

아무튼, 그런 녀석이 죽은 제 스승이 부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변명을 하기 위해 어버버거리는 성녀의 주둥이를 막아버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죽은 분들은,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어요."

"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기억나지 않으세요?"

조심스럽게 말해오는 성녀에 마법사의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듯한 반응에 반사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잠시간의 침묵.

분명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진 침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억겁과도 같은 고요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제발 기억하지 마라, 제발 기억하지 마라, 제발ㅡ'

"...장난하지 마. 마왕이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정신나간 소리야?"

싸늘한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든다.

마법사의 기억력은 가히 최고라고 부를 수 있었기에, 정신을 잃고 있었다고 한들 겨우 며칠 전에 일어난 일 따위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내 몸 위에서 비켜 선 성녀의 뒤로, 시뻘겋게 충혈된 눈동자가 나를 매섭게 쏘아내고 있었다.

마치, 죽여버릴 것처럼.

퍼억!!!

"캬, 하흑?!"

복부에 커다란 충격이 꽂히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움직인 마법사가 어디서 꺼내든지 모를 지팡이를 휘둘러, 내 배를 강하게 후려쳤다.

마치 거대한 북을 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내 입에서 투명한 위액히 팍, 하고 튀어나갔다.

"...끄으, 흐..."

"...겨우 이 정도가 아닐 텐데."

이상하다는 듯 갸웃거리는 고개 위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아니, 오직 나 하나만을 그 안에 담고는 끝 없는 증오를 불태우고 있었다.

스승님을 살려내, 스승님을 살려내, 스승님을 살려내!!

심장을 움켜쥐던 분노가 이번에는 내 목을 거칠게 붙잡아 왔다.

"아아, 그래. 죽인 만큼 낳으신다고? 정말 대단하신 일을 하는구나, 응?"

"...큭, 흐..."

"용사도 참 머저리야. 이딴 년을 죽이지 않고 아직까지 살려놓다니. 아니면 뭐, 그런 건가?"

성처리용 육인형, 이라던지.

비웃듯이 내뱉어진 말에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성처리용 육인형. 용사가 마음대로 제 좆을 놀리는 하나의 구멍.

그게 바로 나라는 존재의 현주소였다.

'...싫어.'

내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는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마법사의 억센 손길은 더더욱 내 숨통을 조여올 뿐이었다.

...싫어. 이대로 용사의 육인형인 채로 죽을 수는 없어.

나는, 나는 그런 것 따위가 아니야ㅡ

"에밀리, 진정 좀 하세요! 마, 마왕 씨는 아기를 낳은지 얼마 안 된 산모ㅡ"

"마왕 씨? 하, 엘리 너 지금 '이걸' 마왕 '씨'라고 부른 거니?"

툭, 하고 놓아진 손길에 침대 위로 추락해 콜록콜록 기침을 터뜨린다.

이제는 적도, 마왕도, 하물며 하나의 인격체로도 보지 않는 단어 선택에 깊은 절망감이 내 정신을 검게 물들였다.

'그래. 나는 물건이지. 그냥 정액을 받고, 아기를 낳는, 그런...'

이미 이 몸뚱아리에 깃들었을 때부터 나는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물건이나 마찬가지였다.

용사에게 좋을 대로 강간 당하고, 성녀에게는 좋을 대로 희롱당하는 하나의 고깃덩어리.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갑자기 죽고 싶어졌다.

아니, 원래도 죽고 싶었지만 더더욱 죽고 싶어졌다.

"뭘 그렇게 멍 때리고 있는 거야? '장난감'이라면 내 욕구에도 맞춰줘야 하는거 아닌가?"

"..."

"야."

짜악!!!

고개가 돌아간다.

불에 데인 듯이 홧홧 타오르는 뺨에 멍하니 손을 올리자, 희미하게 핏자국이 묻어나왔다.

전력으로 휘두른 수준이 아니라, 신체 강화 마법이라도 썼는지 아주 빌어먹을 정도로 위협적인 손바닥이었다.

...씨발 년. 씨발 년들. 내가 왜 맞아야 하는 건데?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ㅡ"

짜악!!!!!

"에밀리!!"

이번에는 반대편.

순식간에 극과 극으로 비틀리는 얼굴에 목뼈가 더 이상은 한계라는 듯이 삐걱삐걱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분명 조금만 더 세게 휘둘렀다면 곧바로 의식을 잃었겠지.

아슬아슬하게 정신을 붙잡을 정도로만 힘을 조절해서 때리는 것이 아주 악질적이었다.

"왜 이런 꼴을 당하는지 모르겠다면, 더 맞아야겠지."

"커흑?!"

명치를 꿰뚫는 듯한 고통에 몸이 반으로 접혔다.

마른 기침을 토해내며 상대를 올려다 봤지만, 여전히 그녀의 표정은 어떠한 변화도 없이 활활 불타고 있는 채였다.

잔뜩 괴롭힌 다음, 마음대로 죽여주겠다는 듯한 얼굴.

빌어먹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심지어 아기까지 낳았다고? 역겨워라, 역겨워."

"아, 아기는 욕하지ㅡ"

"닥쳐, 이 빌어먹을 창녀가!"

면상에 주먹을 박아 넣어주니 곧바로 침묵하는 꼴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이런 게 마왕이라고? 이런 게 마왕이라고?!

하, 웃기지도 않아서!

제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감정이 활화산처럼 폭발해댔다.

죽이고 싶은 걸 꾹 참고는 이렇게 놀아주고 있는데, 감히 말대꾸를 해?

"에밀리, 이거 놓으세요! 당장!"

"아니, 너는 거기서 지켜보고 있도록 해. 마왕이 어떤 꼴을 당해야 하는지 똑똑히 보라고!"

양 뺨이 퉁퉁 부어오르고, 한쪽 눈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마왕의 모습은 좋게 말해도 멀쩡하다고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복부를 퍼렇게 물들이는 멍자국까지.

겨우 마법사가 휘두르는 팔다리에 죽어나가는 녀석이 마왕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성녀가 마왕을 감싸기까지? 하, 하하!

제 손을 타고 뻗어져 나간 어둠이, 엘리의 모습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마음껏 구경하고 있도록 해."

비웃음을 잔뜩 담아 손가락을 까딱이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마왕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 꼴에 배는 지킨다고 그러고 있는 거야?"

"...요, 용서해다오... 제발, 흑..."

"...미친 년."

몸을 잔뜩 웅크려 제 복부를 보호하는 마왕에 에밀리는 욕짓거리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마왕이 용서해달라는 말을 내뱉으며 눈물을 흘린다고?

납득이 안 가잖아, 납득이!

"이 미친 년, 미친 년, 미친 년!!

겨우 몇 대 맞았다고 용서를 구할거면, 애초부터 용서를 구할 짓거리를 하지 말았어야지! 아아아아아악!!!!!"

손에 들린 지팡이를 마구 휘둘러, 그 새하얀 몸체를 마구잡이로 두들긴다.

기다란 나무 막대와 가느다란 몸체가 만날 때마다 살벌한 파열음이 울려퍼졌지만, 그 행동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린다.

팔이 기괴하게 꺾여나가고, 전신에 푸르고 붉은 멍자국이 새겨지는 와중에도 에밀리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아, 그래."

그렇게 잠시 뒤.

이제는 약간의 경련 말고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 마왕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기괴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이 와중에도 제 복부만큼은 어떻게든 지키고 있는 꼴이 아주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말이야ㅡ"

"..."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배를 감싸려 들면 더 망가뜨리고 싶어지잖아, 응?"

용사에게 범해지던 마왕의 모습을 떠올린다.

당시에는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지금이 되어서야 생생히 기억났다.

분명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더랬지.

용사의 좆에 박히는게 혐오스럽고 미워서,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더랬지!

"아, 아흐으윽?!?!?!!!"

"아파?"

비명을 내지르는 마왕에 에밀리가 잔뜩 이죽였다.

겨우 보지에 지팡이를 꽂아넣은 것 뿐인데도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너무 쉬운거 아니야?

꽉 막힌 하수구를 꼬챙이로 찔러대듯이 지팡이를 휘적이자, 마왕이 몸을 뒤틀며 새된 비명을 토해냈다.

제 몸에 들어온 것을 밀어내기 위해 질내가 필사적으로 움직이는게 지팡이를 통해 전해져, 더더욱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 상태에서 마법을 쓰면, 어떻게 될 것 같아?"

"힉, 히끅, 힉..."

"자그마한 화염구라도 쏜다면, 네 자궁이 노릇노릇하게 익어서 영원히 애를 못 낳게 되지 않을까?"

딸꾹질을 시작하는 마왕의 복부 위에 붉은색의 마법진을 그려내자, 그렇지 않아도 희게 질려 있던 얼굴이 더더욱 새하얗게 변했다.

잔뜩 겁을 먹은 모양새가 우스워 마력을 더더욱 끌어올리자, 상대가 상처 가득한 팔다리를 바르작거리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 시작했다.

겨우 이 정도에 울면 어떻게 해?

그 더러운 마족 주머니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질 때 쯤에는 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주려고 벌써 우냐니까, 응?!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어주던 스승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지막 글자를 새겨넣는다.

그렇게 완성된 마법진에서 검붉은 열기가 치솟아 오르는 그 순간ㅡ

쉬이이이이이ㅡ

"흑, 흐아, 흑, 하..."

ㅡ볼썽사나운 소리와 함께, 마왕의 보지에서 투명한 색의 오줌이 질질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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