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 - 죄와 벌.(8)
마법사와 전사의 전투란 그 무엇보다 간격이 중요한 법이었다.
가까워질수록 전사가 유리고, 멀어질수록 전사가 불리.
하지만 지금의 경우에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자네, 진심으로ㅡ"
"진심이지. 마왕이 낳은 애새끼를 죽이는데 진심이 아닐 리가 있겠어?!"
거대한 불덩이가 날아듦에 고르돌이 작은 몸뚱이를 노련하게 움직였다.
'직격이 문제가 아니라, 근처에 다가오기만 해도 아기가 위험하다.'
제아무리 불에 강한 드워프라고 해도, 저 정도로 살벌한 공격에 당했다가는 살점 하나 남기지 못하고 증발할 것이 뻔했다.
얼마 전까지는 분명 등을 맞대고 싸워오던 동료였음이 분명한데, 어째서 이렇게 되었지?
하지만 고르돌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지금은 마왕의 아이를 이 세상에서 지워 없애겠다는 듯, 마구잡이로 마법을 난사하는 저 미친 마법사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우선이었다.
"도망치지 마! 대체 왜 도망치는 건데?! 그 년의 아기잖아! 네 아내와 딸을 죽인 녀석의 아기라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기를 내놓을 수는 없었다.
필사적으로 몸을 날린 고르돌의 옆으로 기다란 흑색의 창이 쏘아져 나갔다.
그림자가 물질이 되어 빚어진 것 같은 창이, 바닥에 닿자마자 그 주변의 것들을 주욱 빨아들였다.
"미쳤군, 이제는 나까지 죽이려 드는 건가?!"
"원래부터 그랬잖아, 뭐가 문제인데?"
마왕군에게 가담하는 자는 죽인다.
태연하게 내뱉어지는 에밀리의 말에 고르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갔다.
...방금 뭐라고?
지금,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온 거지?
"미쳤군,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ㅡ"
"미친 건 너야, 고르돌!!! 아니, 너 뿐만이 아니라 아서 그 자식도 똑같이 미쳤다고!"
으르렁거리듯 입을 여는 그의 말을 끊으며, 신경질적인 외침이 터져나온다.
마치 비명처럼 들리기도 하는 목소리에 고르돌의 품에 안긴 아기가 앙앙 울음을 터뜨렸다.
빌어먹을.
단순하게 보자면 그저 아기가 울고 있는 것일 뿐인데도, 고르돌은 제 속에서 치솟는 감정들을 억누르지 못했다.
감히.
감히 누구를.
감히 누구를 울려?
"에밀리, 디체페이글!!"
멀어지던 상대의 모습이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설마 아기를 품에 안은 채로 자신에게 접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상대의 눈이 동그랗게 떠져있었다.
"컥..."
뱃가죽을 두들기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에밀리의 몸통이 허공을 날았다.
아무리 자그마한 몸집을 가지고 있어도 마족들과의 전투에서 언제나 선두를 맡았던 고르돌이었기에, 그가 휘두르는 주먹은 상상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왜. 대체, 왜..."
땅바닥 위에 누워, 마른 기침을 토해내던 에밀리가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체 왜 그걸 죽이지 않는 거야.
끝까지 듣지 않아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말에 고르돌의 주먹이 희게 질렸다.
그녀를 이 이상 패놓지 않는 건, 전부 지금까지의 여정을 통해 쌓아온 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참는다.
품에 안긴 아기를 달래며 고르돌이 눈살을 찌푸렸다.
"마왕이라면 참견하지 않을 테니, 아기에게는 신경 끄게."
"하, 큭, 그 아이가 대체 뭐라고..."
뭘까.
이 아기가 대체 자신의 무엇이길래 이토록 격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자기 자신도 정의 내릴 수 없는 답에 표정을 찌푸리자 콧잔등이 씰룩이기 시작했다.
딸을 닮은 아기.
아니, 딸과 똑같이 생긴 아기.
제 수염을 쥘 때의 힘이 똑같은 아기.
마치 성난 회오리 바람처럼 마구잡이로 몰아치던 생각들이, 그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고요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중앙에 다가선 끝에, 고르돌은 마침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었다.
"내 딸일세."
품 안에 안긴 아기는, 자신의 딸이었다.
***
엘리에게 있어서 지금까지의 여정은 전부 여신의 뜻에 불과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여의고, 평생을 신전에서 실아온 그녀가 본 것이라고는 매일마다 상담을 하러 오는 부부와 여신의 모습을 본따 만든 신상 뿐이었다.
'엘리.'
언젠가는 본인도 신전 밖으로 나가게 될 날이 올까, 하던 때도 있었더랬다.
그렇게 하루 이틀, 똑같은 일상을 보내던 중 저를 부르는 한 신관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었지.
매일마다 저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고, 여인이 아기를 가지기 쉽게 만드는 법을 배우던 그녀에게 있어서 그건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네가 성녀가 되어주어야겠다.'
'제가요?'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이 신전 안에 뛰어난 신관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본인에게 이런 제안을 했을까.
아직 신전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이 남아있었음에도 이런 제안을 해오다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여신님께서 요구하시더구나. 가장 순결한 처녀만이 성녀가 될 수 있다고.'
확실히, 지금까지 태어나서 남자의 품에 안긴 적이 없기는 했다.
엘리 본인의 육체가 이 신전 내에서 가장 순결하다는 것 쯤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쉽사리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별 다른 의문조차 없이 그 제안을 그저 '그렇구나ㅡ' 하는 느낌으로 쉽사리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러면, 제 성혈식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성혈식, 신전에 입적한 신관이 신전의 모든 것들을 깨우치게 되면 실시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신전의 모두가 그것을 중히 여긴다는 것 만큼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용사와 여정을 떠나게 된다면 성혈식을 실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엘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건 네가 모든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날, 그때 하기로 했단다.'
모든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날.
이 세계를 어지럽히는 마족들을, 그리고 마왕을 척살하는 그 순간.
물론 그것이 쉽사리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쯤은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래도, 여정을 다니는 동안에도 신성수를 마시는 건 잊지 마렴.'
'네, 베고니아 신관님.'
여신님께서 직접 빚어 만들었다는 신성수를 받아든다.
성혈식을 하기 전까지는 무조건적으로 하루에 한 병씩 마셔야 하는 것.
처음 마셨을 때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베고니아 신관이 살풋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너에게 여신님이 깃들기를 기도하마.'
여신님의 축복이 아니라, 여신님이 깃들기를 기도한다니.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성녀가 되기 위한 세례를 받을 때 배운 의식이 그녀의 의문점을 해소해주었다.
성녀 본인의 신체에 여신을 깃들게 할 수 있는 수단.
'여신님을 직접 몸에 깃들게 할 수 있으면, 마왕 정도는 쉽게 쓰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왜요?'
정수리를 타고 흐르는 신성수의 차가움을 느끼며 멍하니 묻자, 세례식을 하던 신관이 감정 하나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답해왔다.
'여신님께서 성녀의 몸에 깃들 수 있는 건, 성검을 매개체로 세상에 강림하신 뒤의 일이다.'
'그러면 쓸모없는 거잖아요.'
마왕군과, 마왕의 싸움에서 사용할 수 없는 힘이란 하등 쓸모가 없은 것일 뿐이었다.
코 끝을 찌르는 묘한 향기에 뇌가 눅진하게 녹아내려, 평소라면 머릿속에 담아두었을 질문이 제멋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갔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상대의 얼굴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새겨지지 않았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의심도 할 필요 없다는 듯 처음과 같이 단단한 모습이었다.
'때가 되면 알게 될거다.'
그래, 분명 그런 대답이었었지.
***
"...마왕, 괜찮아요?"
"..."
"마왕, 정신 차려봐요. 어서요, 어서!"
에밀리가 만든 어둠의 장막에서 빠져나온 엘리가 황급히 마왕을 향해 뛰어갔다.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도 가려린 몸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죽은 시체와도 같이 축 늘어진 팔다리는 잘게 경련하는 것 빼고는 움직임이 없었다.
마왕, 정신 차려요. 이대로라면 정말 죽어요.
출혈이 심했다.
그렇지 않아도 에밀리에게 두들겨 맞아서 신체가 아주 작살이 났는데, 그 상태로 용사에게 범해지기까지 했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시, 신성력으로 치료를ㅡ"
"켁, 케헥..."
"윽?!"
조금의 신성력을 집어넣자마자 피를 토하는 마왕의 모습에 엘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몸이 너무 망가졌어. 그래서 최소한의 신성력마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야.
덜덜 떨리는 손이 차갑게 식은 피부 위를 쓸어내렸다.
"어, 어떻게, 어떻게 해야..."
에밀리가 깨어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에 순간적으로 입을 다문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느니, 다시 되살려야 한다느니 하는 건 그녀에게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여신님의 뜻이라고 말하기에 그저 따랐을 뿐이고, 고통받는 이들이 있었기에 그저 도왔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만큼은 명심하도록.'
마왕을 치료하는 방법 따위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해봤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한 마디가 그녀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여신님의 힘을 빌리고, 여신님이 네 몸에 깃들 때마다 네 영혼은 점점 희미해진다는 것을.'
제 생각 한 구석을 차지한 경고에, 꽉 쥐어진 주먹이 벌벌 떨려오기 시작했다.
결정해야 해. 더 이상 지체한다면 죽어버리고 말 거야.
꾹 깨물고 있던 입술에서 피가 터져나오는 순간, 엘리가 눈을 부릅떴다.
"해야만 해."
누가 뭐래도, 그녀는 마왕을 살려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