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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2화 (32/342)

Chapter 32 - 죄와 벌.(10)

"뭐야, 살아있었나?"

처음 만나자마자 내뱉는 말이 이따위 말이라니.

고함이라도 쳐볼까 싶었지만, 드워프 녀석의 품 안에 안겨있는 아기를 보고 어떻게든 참아냈다.

...운 좋은 줄 알아.

"아기를 데리고 밖에 나오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혹여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드워프의 아기는 겨우 이 정도로 쉽게 병들지 않지. 괜한 걱정이야."

"그렇지만, 내가 낳은 내 아기다. 걱정하는 것도, 돌보는 것도 내 자유다."

끝까지 제가 옳다며 완강하게 말해오는 드워프 녀석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에 순간 열불이 나, 곤히 잠든 아기를 빼앗아 오려고 손을 뻗으니 민첩한 움직임으로 내 손길을 피해냈다.

뭐야, 해보자는 건가? 이 난쟁이 똥자루가!

"도, 돌려줘라!"

하지만 내가 저 드워프 녀석을 붙잡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 작은 체구에 걸맞지 않은 속도로 요리조리 피하는 꼴이, 마치 나를 잔뜩 약오르게 하려는 것만 같았다.

'내 아기인데. 내가 낳은 아기인데!'

분명 코앞에 있는데도 닿지 않는 아기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짓을 당해가며, 그런 고생을 해가며 낳은 아기인데 내 마음대로 안아볼 수도 없다는 건 상당히 야박한 처사였다.

"제, 제발 돌려다오..."

나를 무시하는 듯한 드워프 녀석의 행동에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너무해, 너무해, 너무해...

속을 시커멓게 태우는 슬픔에 뇌가 마비되는 것만 같았다.

"고르돌 씨."

"...그래."

내 애원에도 꿈적하지 않았으면서, 성녀의 말은 참 잘도 듣는다.

이게 바로 성녀와 마왕을 대하는 온도 차이라는 걸까.

드워프 녀석의 품에서 성녀의 품으로, 그리고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온 아기를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따끈따끈하고, 부드럽고, 심지어 말랑말랑하다.

절로 마음이 따스해지는 듯한 기분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부, 아부우!!"

"읏, 가만히 있어주거라..."

그새 덩치가 또 커져서는 그 커진 만큼 힘도 세졌다.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팔 다리를 휘적이는 아기에 당황해서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 그러다가 떨어지면 크게 다친다고!

자그마한 등을 토닥이며 달래보려고 했지만, 아기는 계속해서 팔과 다리를 쭉쭉 뻗어낼 뿐이었다.

"아부, 아부부으으, 아브아아, 아빠으아아..."

"...마키나!"

겨우 수십 초.

내 품에 안겨있던 온기가 다시 빼앗기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마키나, 라니. 그 아기를 부른 건가?"

"그래."

"...그렇, 군."

드워프 녀석의 품 안에 안긴 채로 그의 수염을 죽죽 잡아당기는 아기를 보니 심장이 쥐어짜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낳은 아기인데, 왜.

아기를 향한 배신감보다는 아기를 잃었다는 것에서 나오는 상실감이 훨씬 컸다.

심지어 다른 누구도 아닌 아기 스스로의 선택으로 부모의 자리를 잃었으니, 더 이상 내뱉을 변명도 없었다.

"마왕."

성녀가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다."

물론 괜찮지 않았다.

분명 내 얼굴에도 전부 드러나 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괜찮다고 말한 건 말이라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울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러면, 아기를, 잘, 부탁한다."

목소리를 토해낼 때마다 물기가 섞여나오는게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꼴불견이었다.

아니, 오히려 좋잖아. 억지로 모성애라던지 그런 걸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지.

애써 좋게 생각하려고 했지만, 등을 돌리자마자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에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진짜 엄마처럼 되어버렸잖아, 나.'

겨우 아기 하나일 뿐인데, 그 겨우 하나가 내 마음을 이토록 힘들게 만들 수 있다니.

프하, 하며 숨을 토해내자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울컥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참는다, 참아낸다.

이런 꼴불견인 모습은 아기에게도, 저 드워프 녀석에게도 보일 생각이 없었다.

"마왕, 정말 괜찮ㅡ"

"흐, 흐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성 안으로 들어온 직후, 나를 향해 디날아온 성녀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슬픔이 복도를 내달렸다.

옆에서 잔뜩 당황하고 있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지만,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겪어왔던 모든 고통들을 버텨낸 끝에 이루어낸 결실이 이토록 허무히 품을 떠나버리는 건 결코 쉽게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내, 내 아기, 흑, 인데에..."

손바닥으로 눈가를 훔쳤지만, 그 사이를 또 다른 눈물이 가득 채웠다.

그 누구도 편들어주지 않는 세계에서, 내가 직접 낳은 아기 만큼은 내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는데.

버텨낼 수 있을거라고, 다짐했었는데.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야.'

잘게 금이 간 마음이, 마침내 깨져나갔다.

***

그렇게 복도에서 한참을 울던 마왕을 달랜 뒤, 지쳐 쓰러진 그녀와 함께 침대에 누운 엘리가 머릿속으로 조금 전의 상황을 되새겼다.

"당신은, 정말 마왕 같지가 않네요."

무릇 마왕이라고 한다면 냉철하고 냉혹하며 냉정하다는 소문이 세상에 만연했었는데, 직접 만나본 마왕을 그 소문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아픈 걸 싫어하고, 죽는 걸 무서워하고, 자주 운다.

혹시 이름이 마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기이한 마족이었다.

"마족은 제 아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라고 했었나요..."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마족들의 생태와 성향을 연구하던 한 마법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아무리 제 뱃속에서 태어난 아기라고 한들, 모든 마족은 제 혈육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했더랬다.

'마족에게 아기란, 거추장스러운 무언가에 불과합니다.'

뱃속에 있으면 몸을 둔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제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내 죽이는 여성 마족.

남성 마족들 같은 경우에는 상대를 임신시킨 뒤, 아기가 태어나면 그것을 영양분으로 더욱 강한 힘을 얻는다는 정보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아기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듯이 대하고 있었죠."

처음에는 단순히 그 야한 몸뚱아리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마왕이라는 존재 자체가 제 마음속에 파고든 상태였다.

예쁘고, 엄청나게 야한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자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순수함과 더불어 아기를 낳은 어머니이기까지.

무엇 하나 그녀의 취향을 벗어가는 것이 없었다.

"제가 남자였다면, 마왕 씨를 하루 종일 덮쳤을지도 몰라요."

귓가에 맴도는 속삭임에 마왕이 몸을 뒤척였지만, 그것마저도 엘리의 눈에는 귀엽게 보일 뿐이었다.

만약 마왕과 성녀의 관계로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결코 이루어질 리 없는 가정이었지만, 최근 들어 자주 생각하게 되는 주제였다.

"마왕."

묘하게 들떠오르는 기분에 엘리가 잠시 말을 끊었다.

'상대는 마왕이야. 사악한 마족들의 왕이라고. 그러니까 정신 차려, 엘리.'

지금까지의 여정 중 만나왔던 마족들을 떠올리며, 그 위에 곤히 잠든 마왕의 얼굴을 덧씌운다.

여인을 겁탈하던 마족, 사람들을 죽이고 그 피를 빨아먹던 마족, 비열한 얼굴을 한 채 낭떠러지 너머로 사람들을 떨어뜨리는 마족까지.

하나 같이 마왕의 얼굴이 된 그들이 엘리의 머릿속을 난도질하며 사악한 웃음을 내뱉었다.

'귀엽다.'

하지만, 한 가지.

'그리고, 쭈글쭈글해.'

아기를 향해 사랑으로 가득 찬 시선을 보내던 마왕의 모습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못생겼어.'

그런 말을 하면서도 제 품 안에 안긴 아기가 그 무엇보다 사랑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

얼마 전에 보았던 마왕의 모습을 떠올린 엘리는 그제서야 자신이 하려던 짓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마족들이 퍼뜨린 모든 사악을, 전부 마왕이 한 것들로 하려했다니.

"정말, 여신님의 말씀대로 당신은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으신 건가요?"

"..."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길게 이어진 눈물자국을 얼굴에 새긴 채로 곤히 잠든 마왕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잔뜩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에 엘리가 주름진 이마를 살살 문지르며 속삭였다.

"그렇게 얼굴을 찡그리시면 고운 얼굴에 주름이 생긴ㅡ"

"...엄마."

하지만, 순간 들려온 두 글자에 움직임이 멈춰섰다.

지금, 뭐라고?

멍청히 마왕을 바라보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상대의 입이 열렸다.

"아파, 죽고 싶어. 그런데 죽는 건 무서워. 엄마, 나 어떻게 해야 해? 더 이상은 싫어, 싫어, 싫ㅡ"

"...!!"

"ㅡ흑, 흐으, 흑..."

끝내 잠든 채로 울기 시작하는 마왕에, 성녀가 침대 위에 눕혔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언가 엄청난 비밀이라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이 오늘따라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여신이시여, 정말 그녀가 죄를 범한 것이 맞습니까?"

작은 의심이 싹튼다.

흩어져 있던 기억 속, 가학적인 미소를 짓고 있던 여신의 얼굴을 어렴풋이 떠올린 엘리가 두 손을 모으고는 눈을 꾹 감았다.

'의심하지 마. 의심하지 마, 엘리. 너는 성녀잖아. 그 누구보다 여신님의 기적을 봐왔던 존재잖아.'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다.

본인이 마왕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과 마왕이 저지른 죄를 두둔하고 여신님을 의심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성가대의 성가가 아닌, 작은 흐느낌을 배경으로 시작된 기도는 마왕이 눈물을 그치고 나서야 겨우 마무리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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