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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48화 (48/342)

Chapter 48 - 눈먼 자들.(10)

제 품에 안겨 앙앙 우는 아기를 바라보며, 레이나가 곤란하다는 듯이 표정을 찡그렸다.

분명 마왕이 안았을 때는 울음을 그쳤는데, 어째서 자신이 안을 때는 우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으음, 배라도 고픈 걸까..."

풍만하게 부풀어 오른 제 가슴을 내려다보고는 흠, 하고 신음을 흘린다.

젖이 나오지는 않는데.

...그래도 물려놓고 있는 편이 더 나으려나?

한참을 고민하며 복도를 서성이고 있자니 건너편에서 사람 하나ㅡ 아니, 둘이 다가오고 있었다.

"레이나?"

"고르돌?"

우뚝 멈춰선다.

길게 뻗은 장신과 단단한 단신이 서로를 마주하고, 서로의 손에 쥐여진 아기와 아이에게 시선을 던진다.

"마왕이 마왕군에 의해 죽은 자들을 낳는다는 건 확실한 모양이군."

"...그 아기도, 마왕이 낳은 거냐?"

"그래."

초면의 사람이 늘자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는 아기에 레이나의 귀가 쫑긋거렸다.

어떻게 해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으니, 이제는 반쯤 포기할 수 밖에.

"그나저나, 마왕은 어디에 있지?"

"아마 방에서ㅡ"

고르돌의 질문에 답하려던 찰나,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입을 꾹 다문다.

용사와 함께 있겠지.

그녀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따위야 쉽게 상상이 가서 더더욱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큼, 그건 왜 묻는 거지?"

"...성녀가 말하더군. 일단 마왕이 낳은 아이니까, 한 번 정도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라고."

진심으로 마왕에게 가기 싫다는 감정과 성녀의 말에 설득 당한 감정이 혼재되어 있는 표정으로, 고르돌이 말했다.

분명 제 딸아이를 죽인 건 마왕군이었지만, 되살린 건 마왕이었다.

만약 댜른 마족들처럼 제가 낳은 아이를 죽이려들거나,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고민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녀는, 용사와 함께 있다."

"...흠."

"무슨 뜻인지 알겠나?"

레이나가 고르돌의 손을 꼭 붙잡은 아이를 흘긋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이가 듣기에는 별로 좋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면, 만남은 다음에 가지는 걸로ㅡ"

"...마왕?"

마음을 정했다는 듯 몸을 돌리려는 고르돌의 뒤로 마왕의 모습이 보였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걷는 마왕은 그 누구보다 위태로워 보였다.

마치 갓 태어난 새끼 양을 보는 것 같구나.

벽에 손을 짚으며, 창백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던 마왕이 그들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

"마왕."

새하얀 목욕 가운 하나만을 걸친 마왕의 모습은 같은 성별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빠져들게 할 수 있을 법한 특유의 매력이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과 창백하게 물든 피부.

애처롭게 떨리는 황금빛 눈동자까지.

"윽..."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은 마왕에 레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숨을 거칠게 토해내고 있는 것이,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마키나?!"

바닥에 주저앉은 마왕과, 그것을 바라보는 엘프와 드워프 둘.

작은 아이가 제 아비의 손을 놓고 마왕에게 뛰어가는 건, 이 자리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언니, 갠차나요?"

"...너는."

걱정이 담긴 아이의 말에 마왕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설마하니 감동의 떨림일까.

하지만 이내 입술을 꾹 깨무는 행동에 그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설마...'

만약을 가정한 레이나의 귀가 축 늘어졌다.

마왕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

배신 당했다는 듯,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바로 그 이유.

"언니?"

"으, 으아, 흑..."

아이가 다시 한 번 그녀를 불렀다.

엄마가 아닌 언니.

같은 두 글자이지만 뜻이 다른 두 글자에, 마왕이 결국 설움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마왕."

"흐, 흐아아아아......"

세상이 무너진 듯 우는 마왕에, 그녀의 앞에 선 아이가 작게 몸을 움찔거렸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표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잔뜩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흐앙, 흐앙, 흐아아앙..."

거기에 제 품 안에 있는 아기까지 울기 시작하자, 주변의 공기가 슬픔에 젖어 눅눅하게 녹아내렸다.

어째서.

어째서 마왕이 겨우 이 정도의 일에 저 정도로 서럽게 오열하는 것인가.

'겨우가 아니잖아.'

자기가 낳은 아이에게 엄마라고 불리지 못하는 심정을 감히 예상이나 할 수 있을까.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고르돌을 지나쳐, 레이나가 마왕을 향해 다가갔다.

"언니 울지 마아. 뚝, 해. 응?"

"흑, 으, 으응......"

제 눈가를 훔치는 작은 손길에, 마왕이 입을 꾹 다물었다.

심장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오열을 억누르는 듯한 행동이었다.

"자, 여기 네 아이다."

"...아."

마왕의 품에 안기자마자 울음을 그치는 아기를 보며 씁쓸하게 웃어보인다.

언젠가는 이 아이도 고르돌의 딸처럼 마왕을 어머니로 여기지 않겠지.

만약 아기가 마왕이나 용사 중 하나라도 닮았다면 이런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 터였다.

"추한 꼴을 보여서 미안하구나."

아기를 품에 안자 울음을 그치는 건 마왕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울어서 그런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이에게 답한 마왕이 아슬아슬한 움직임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네 아빠에게 가야지."

부드럽게 등을 떠미는 마왕에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고르돌은 그런 마왕과 아이의 모습에서 괴리감을 느꼈는지 표정이 요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마지막으로 깨어난 건가?"

"그래. 잠을 자도 빌어먹을 정도로 너무 오래 잤지."

"...그건 장수종의 특성이다."

놀리듯이 말하는 고르돌에 레이나가 투덜거렸다.

원래부터 사이가 안 좋은 드워프와 엘프 아니랄까봐, 만나자마자 시비를 걸어댄다.

하지만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쌓아온 유대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랬다.

"그나저나, 씻고 온 건가?"

"...그래."

마왕의 얼굴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무심하게 떼어낸 레이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표정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무슨 일이 있다고 말하는 듯 싶었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

용사 일행이 한 자리에 모인 건 그로부터 이틀 정도가 지난 뒤였다.

아직까지 생각의 정리가 끝나지 않았는지 초췌한 얼굴의 용사가 나를 흘긋 바라봤다가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모두 모이니 좋네요."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지 않던 그때, 성녀가 먼저 나서서 입을 열었다.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한 행동인 듯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흥."

특히 저 마법사 년.

나와 내 품에 안긴 아기를 죽일 듯한 기세로 노려보는게 심상치 않았다.

...왜 눈을 저렇게 뜨고 지랄이람, 지랄은.

"이제 어떻게 할까."

혼잣말처럼 내뱉어진 말이었다.

마왕군의 말살과 마왕 토벌이라는 숙업이 끝난 이상, 더는 이렇게까지 뭉쳐다니지 않아도 될 터였다.

"나는 네가 가는 곳으로 따라갈게, 아서."

먼저 입을 연 건 마법사였다.

스승의 부활을 제 눈으로 꼭 보고야 말겠다는 듯 일그러진 얼굴 안에, 집착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저 스승이라는 작자는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 정도로 집착당하는 걸까.

스크립트에서나 스치듯 본 얼굴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속으로 혀를 쯧쯧 차댔다.

'뭐, 내가 불쌍하다고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여신이 언제 빙의할지 모르는 성녀.

나를 죽일 기세로 괴롭히는 마법사.

내 아이를 빼앗아간 드워프.

그리고 그냥 용사.

"하."

"..."

어이가 없어서 반사적으로 헛웃음을 토해내니, 시선이 잔뜩 쏠렸다.

...으.

"콜록, 콜록 콜록!!"

무언가 꼬투리라도 잡힐까 기침을 해대니 미심쩍어 하면서도 시선이 흩어진다.

나한테 신경 쓸 시간에 이야기나 더 하지 그래?

품에 안긴 아기를 부둥거리며 고개를 숙인다.

'...누굴 닮았는지는 몰라도 참 예쁜 아기네.'

용사를 닮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점에 가까웠다.

크면 어떤 모습이 될까, 하고 상상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랄까.

내가 낳기는 했어도 내 아이가 아니란 건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내 품에 안긴 무게감이 가짜는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게 우선이겠지."

마족들은 전멸했고, 마왕은 토벌 당했다고.

용사의 말에 다른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이라면, 거기인가?'

어렴풋이 떠오르는 스토리를 천천히 되짚는다.

마왕성 근처에 숨겨져 있는 인간 마을.

그곳이 바로 마왕과의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 직전, 용사 일행들이 들리는 마지막 스토리 포인트였다.

"그런데, 저 모습 그대로 가면 들키지 않겠나?"

드워프가 내 머리, 정확히는 내 머리 위에 난 자그마한 뿔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지 손가락보다 약간 큼직한 뿔.

마족의 상징이자, 그 누가 봐도 마족이란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악의 표식이었다.

"들키지 않으려면 충분히 들키지 않겠지만..."

"가장 확실한 건 뿔을 자르는거겠지."

제 옷가지의 후드를 떼어내며 말하던 엘프의 말을 자르며,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내 머리 위에 달려있는게 끔찍하다는 듯, 곧 토악질이라도 할 것처럼 바라보는 모습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뿔을 자른다고? 뜬금 없이?

"왜, 겁이라도 나?"

비웃어지듯 튀어나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내리깔았다.

안타까울 것도 없이, 마법사의 말에 반발하는 사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위선자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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