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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54화 (54/342)

Chapter 54 - 스스로를 속이는 방법.(4)

"...설마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건가?"

"..."

"..."

한숨이 나올 정도로 한심한 작태에 골치가 아팠다.

아니, 너희 용사 파티라며. 그러면 요리 정도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정상 아니야?

품에서 잠든 아기의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이자 작은 옹알이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드워프. 얼마 전에 나한테 스프를 끓여주지 않았나?"

여러가지 재료를 넣고 끓은 건강 스프였었나.

아무튼, 너 요리 했었잖아.

"그게 맛있었나?"

"어, 응? 으응..."

곰곰히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무슨 맛이었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맛에 표정을 찌푸리자, 성녀가 쿡쿡 웃었다.

"우리 일행 중에서는 이 녀석이 제일 요리를 못한다."

"자네나 나나 똑같지, 뭘."

"엘프는 요리를 하지 않는 종족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레이나의 말에 드워프가 투덜거렸다.

그에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건지, 엘프가 귀를 총총 움직이며 소리를 내질렀다.

뭐든 먹을 수 있지만, 주식은 나뭇잎에 맺힌 이슬이나 과일들.

요리를 해봤을 리가 없었다.

해보지 않았는데 잘 할 수 있을 리도 없었고.

"...어쩔 수 없나."

팔을 걷어붙이며 구석에 놓여진 식칼을 들어올린다.

날카롭게 날이 잘 선 모습이, 사람 하나는 거뜬히 죽여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정도면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서로 왁자지껄 떠들며 시끄럽던 이들의 시선이 갑자기 나를 향해 휙 돌아갔다.

...왜?

"마왕이 날붙이를 들었네."

"제압해야 하나?"

이 새끼들이.

수군거리며 눈을 날카롭게 뜨는 것이, 내가 저들을 위협이라도 할 줄 아는 듯 싶었다.

어차피 위협을 할 생각도 없을 뿐더러, 위협을 해봤자 3초 안에 제압 당할 텐데 굳이?

한숨을 내쉬며 내 옆에 선 엘프의 품에 아기를 안겨준다.

아기나 보고 있어.

"흐앙, 흐아앙, 흐아아아아앙!!!!!"

"아, 아기가 운다! 아기가 운다니까?!"

"아기가 울면 달래라. 호들갑 떨지 말고."

내 품에서 벗어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에 엘프가 잔뜩 당황하기 시작했다.

엘프는 자연의 종족이라서 아기들이 좋아한다고 알고 있는데, 아닌가?

잘못된 선택을 했나 싶어서 이마를 부여잡다가도 괜히 신경질이 나 식칼을 훅 휘둘렀다.

쿵!

"..."

"애나 달래라. 요리는 내가 할 테니."

배고픈 사람이 요리를 한다고 했었나.

감시한다는 명목 하에 나를 마구 노려보는 용사의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쪽도 딱히 요리를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최소한 방금 방금 전의 쓰레기보다는 낫겠지.

성녀가 만들어 냈던 음식 찌꺼기 무언가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그런 걸 먹고 지냈단 말이야?

"와아, 뭔가 요리를 해본 적 있는 사람 같으시네요."

"...해본 적 있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나."

작게 감탄하는 성녀에 불퉁거리며 답한다.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사람 죽이는 기계 비스무리 한 것으로 보고 있는게 분명했다.

아니, 지금은 그냥 애 낳는 모판일까.

...괜히 기분 나쁘네. 정작 나는 사람은 커녕 동물 한 마리도 죽여본 적 없는 사람인데.

"이리 와서 고기나 손질 해라. 설마 고기도 손질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겠지?"

"내가 왜ㅡ"

"그러면 너는 굶거라."

전력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는 용사에 나 또한 차갑게 일갈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몰라?

언제나 제가 우위에 서있다고 기고만장해 하는 것처럼 보여 속이 느글거렸다.

...좆 같은 새끼.

"너야말로 고기 손질 못하는 건 아니고?"

용사가 비꼬듯이 이야기 했지만,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

"못한다. 대신 나는 요리를 하지 않느냐."

"그 요리 안에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그러면 너는 먹지 말거라."

다른 질문에 똑같은 질문이 튀어나갔다.

장난질을 해놓은 것 같으면 먹지 말던지.

누구는 배가 불러서 요리에 장난질까지 칠까.

애초에 칠 생각도 없었지만, 저런 식으로 반응하니 화딱지가 났다.

"너 진짜ㅡ"

"아서, 자네는 가죽이나 벗기지."

"...고르돌 씨?"

옆에서 말을 내뱉는 드워프 녀석이 아니었다면, 정말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누구 손에 칼이 들려있는지 판단을 못하는 모양이지?

그렇다고 정말 찌르지는 않았겠지만.

"흥."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말 없이 고기를 손질하는 용사의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마왕의 말은 코빼기로도 듣지 않으면서 제 동료의 말은 제깍제깍 듣는게 상당히 아니꼬왔다.

아니, 용사가 마왕의 말을 듣지 않는 건 당연한 건가...

"와아, 마치 마마 같아."

그러다가 갑작스레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퍼뜩 굳는다.

아이의 순수함은 너무 깨끗한 나머지 독이 될 때도 있다고 했었나.

심장을 찔러오는 칼날이 내 마음을 난도질 했다.

'엄마 같은게 아니라, 엄마인데...'

쓰게 웃이며 애써 고개를 돌린다.

젖까지 먹여가며 키운 아기는 말을 시작함과 동시에 나라는 존재를 잊어버린 듯 싶었다.

좋겠네. 딸을 돌려받아서.

누구는, 딸을 잃었는데 말이야.

"마왕 씨..."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거들기나 하거라."

걱정스럽게 이쪽을 바라보는 성녀에게 핀잔을 주고는, 열심히 채소들을 썰어내기 시작한다.

앞으로 백만을 전부 다 낳을 때까지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걸까.

속에서 울컥이는 감정을 억지로 집어삼킨다.

옆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물이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자 다 됐다."

애초에 별로 한 것도 없었다.

끓는 물에 고기와 채소를 넣고, 간을 한 다음 뭉근하게 끓인다.

단순하기 그지 없는 음식이었지만 단순한 만큼 맛을 내기는 쉬웠다.

"...확실히 색깔은 괜찮은데."

"...냄새도 괜찮고."

한 숟가락 떠올려서는 이리저리 품평을 시작하는 녀석들에 혈압이 치솟았다.

그렇게 의심할거면 처먹지 말라고.

누구는 배가 안 고파서 이렇게 멍하니 서 있는 줄 아나.

"움, 맛도 괜찮다."

"레이나?!"

냄비 안에 떠 있는 큼직한 고기를 푹 떠올린 엘프가 그대로 내용물을 우물우물 씹어삼켰다.

천천히 음미하는가 싶다가도, 눈을 빛내며 말해오는게 뭔가 기이했다.

아니, 그보다.

"...엘프가, 고기를 먹어도 되는 건가?"

"마왕이 드워프도 낳고, 인간도 낳는 세계인데 뭐 어떤가. 전부 다 고정관념이야."

물론 다른 엘프들은 고기라면 손도 대지 않지만 말이지!

큼직한 흉부를 주욱 내밀며 말하는 엘프에 크게 한 국자 떠서는 그릇에 담아준다.

그래 먹어라, 먹어. 많이 있으니끼 더 먹어.

머리가 이상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그나마 제일 정상적인 녀석이었다.

"저, 정말 괜찮아요?"

"우물, 음, 어차피 이상이 있어도 성녀가 치료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일 리 있는 말이었다.

만약 정말로 음식에 독이 들었다고 한들, 이곳에 성녀가 있는 이상 누군가가 위험해질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겠지.

내가 마왕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랬을 텐데.

"확실히..."

엘프의 말에, 용사가 맞는 것 같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행동에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져서,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설마 그런 것도 생각 못한 것이냐? 멍청하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이때다 싶어서 잔뜩 비꼰다.

아니, 그대로 직진해서 들이박는다.

어차피 이때가 아니라면 이겨볼 기회가 없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마음 속에 쌓인 걸 풀지 않는다면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았다.

"...갑자기 왜 그래?"

"나는 원래부터 이랬다."

내 앞에서 팔을 주욱 뻗어낸 성녀의 그릇에 스프를 담아주며 불퉁인다.

무엇을 말하던 저 용사의 뇌내 필터링은 나를 안 좋은 쪽으로 바라볼 터였지만, 지금만큼은 특히 더 속을 긁어내리고 싶었다.

저 녀석이 화를 내던 말던 알게 뭐람.

...빌어먹을 새끼.

"와아, 맛있어요!"

한 입 먹고는 화사하게 웃어보이는 성녀의 모습에 나 또한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변변찮은 요리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먹어줘서 그런지 괜히 우쭐해졌다.

"...뭐, 나쁘지는 않네. 스승님이 해주신 음식에 비하면 별로지만 말이야."

의외로 마법사에게서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마탑의 마법사는 거의 귀족에 버금간다는 설정을 본 것 같기도 한데, 용사 파티에 끼어 이리저리 치이다보니 입맛이 꽤나 저급해진 듯 싶었다.

"...뭐야, 그 건방진 얼굴은? 내가 이런 걸 먹는게 신기하기라도 해? 확실히, 내가 마왕이 만든 음식 따위를 먹고 있다는게 신기해 보이긴 하겠지."

조금만 더 깝죽거리면 손에 들린 그릇 채로 내 얼굴에 끼얹을 기세라,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자그마한 위협에도 반사적으로 덜덜 떨어대는 몸뚱이가 괜히 원망스러웠다.

...무서워.

"설마 마왕이 이런 솜씨를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음, 요리사가 만든 음식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무언가 연륜이 느껴지는 맛이다."

드워프의 말을 엘프가 받았다.

툭 하면 티격태격거리는 녀석들이 이번에는 아주 죽이 잘 맞았다.

"...그냥, 언제나 혼자 밥을 먹었으니 그렇게 된 것 뿐이다."

"..."

"음식을 해줄 사람도 없었으니까, 배가 고프면 직접 해먹는 수 밖에 없었지."

한때는 배달 음식만 시켜먹던 때도 있었지만, 밥조차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진짜 글러먹은 인간이 될 것만 같아서 시작한게 바로 요리였다.

요리라고 하기에는 딱히 정해진 레시피 없이 손 가는 대로 만든게 전부였지만.

"...음? 뭐냐, 그 표정들은."

무언가 괴상한 맛의 젤리를 씹은 것 같은 얼굴들에 고개를 갸웃한다.

혼자 사는 사람의 특징인데 뭘 모르시네.

...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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