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7 - 스스로를 속이는 방법.(7)
한창 축제 준비를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텅 빈 품을 더듬었다.
외롭네.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워.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니.
"몸은 좀 괜찮은가?"
"...레이나."
작은 인기척을 내며 다가온 엘프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커다란 흉부가 흔들렸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건 더이상 나에게 있어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몸이야 뭐, 언제나와 같지."
"안 좋다는 뜻이군."
"..."
순식간에 단정 짓는 말을 들었음에도 반박할 수 없었다.
실제로도 몸 상태가 최악이었으니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범해지고, 아이를 낳고...
"윽..."
순간 두통이 일었다.
이게 머리가 아파서 그런건지 잘린 뿔에서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네.
몸을 웅크리고는 숨을 몰아쉬고 있자니 정수리에서 손길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너는 우리들 중 오직 나만 이름으로 부르는구나."
용사, 드워프, 성녀, 마법사.
그리고 엘프, 레이나.
그건 내 사소한 반항이기도 했고, 내게 유일하게 잘해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그러면, 너 또한 유일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 건 어떤가?"
반쯤은 농담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라니, 나도 제정신이 아닌 건 똑같구나.'
헝크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잘려진 뿔을 가리고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두통이 사라지는 것 같기도 했다.
"...흠."
그런데 상대의 반응이 이상했다.
무언가 고민을 하는 것 같기도 한 그 표정을 보자니 기분이 묘했다.
"아리엘."
"...으응."
손쉽게 튀어나오는 이름에 떨떠름하게 답했다.
뭐야, 이 엘프.
설마 진짜 불러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확실히, 여기서부터는 이름으로 부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녀의 말이 맞았다.
지금까지는 용사 일행과만 같이 있었기 때문에 마왕이라고 불려도 상관 없었지만, 앞으로는 달랐다.
마왕군에게 소중한 것을 잃고, 마왕을 증오하는 이들의 앞에서 마왕이라고 불린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의미로, 잘 부탁한다. 아리엘."
"......그래."
저 잘 부탁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를 담은지 정도는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야, 저런 눈빛을 하고 있는 사람이 평범한 말을 내뱉을 리 없으니까.
"그나저나, 축제 같은 건 가본 적 있나?"
제 눈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껄끄러웠는지, 레이나가 눈을 깜빡이며 화제를 돌렸다.
축제, 축제라...
"아주 어렸을 때를 빼면, 딱히 가본 적은 없다."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는 대학가의 여름 축제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지.
아직까지도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었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그만큼 행복했던 추억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때가 좋았는데."
아무런 걱정도 없던 그 시절의 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 충격을 받고 멀리 도망치지 않을까.
...그야, 이런 꼴이 되어버렸는걸.
"예쁜 아가씨들, 여기서 뭐 하고 계십니까?"
잠시 동안 이어진 침묵을 깨뜨린 건 나도, 레이나도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머리 위에 드리운 그림자에 고개를 들어올리니, 마을 어귀에서 처음 만났던 남자가 우리를 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전형적인 금발 태닝 양아치처럼 생겼네.
실수하면 곧바로 따먹힐 것 같은 외형이었지만, 그 눈동자는 선량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곧 있으면 해도 지는데 슬슬 준비 하셔야죠."
준비라니, 무슨 준비?
고개를 갸웃거리니 남자가 제 품 안에서 작은 천조각 하나를 꺼내들었다.
"소원을 적어 불에 태울 물건이요."
희미한 글자로 무어라 적혀있는 것이 보였지만, 정확하게 무슨 뜻을 담았는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소원을 적어 불에 태울 물건이라.
...딱히 그런 건 가지고 있지 않은데.
"그런데, 그쪽 분은 처음 뵙는 것 같은데..."
"..."
표정을 찡그리며 물어오는 남자에 순간 숨이 멎었다.
애초에 만난 적이 없으니, 당연히 처음 보겠지.
그렇다고 내가 마왕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 리도 없고.
"마왕성에 잡혀 있던 포로다."
어떻게 대답할지를 고민하며 우물쭈물 하고 있자니, 레이나가 먼저 나서서 입을 열었다.
마왕성에 잡혀있던 포로라.
마왕이 마왕성에 포로로 잡힌 상상을 하자니 조금 웃음이 나왔다.
...물론 겉으로 웃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몸이 안 좋아보이시더라니..."
걱정을 가득 담은 얼굴이 눈동자에 비쳤다.
내 상태가 그 정도로 심각해 보이나?
괜히 무안해져서 가느다란 팔뚝을 꾹꾹 눌러대니, 확실히 살이 빠진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어느 누가 이런 꼴을 한 여자가 마왕이라고 생각하겠어.
"걱정해줘서 고맙구나."
"헛, 넵!"
비록 내 정체를 모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순수한 걱정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감사함을 담아 희미하게 웃어보이니 무언가 반응이 이상했지만, 착각이겠지.
"...마왕."
"응?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니다."
레이나가 순간 미심쩍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뒤에 곧바로 얼버무리는 걸 보니 별 것 아니었던 것 같지만.
확실히, 저런 외형의 남자라면 충분히 경계할 법 했다.
금발에 태닝이라니.
양아치가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위험한 조합이잖아, 그거.
"딱히 태울 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데..."
태우고 싶은 물건보다는 태우고 싶은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서도.
그렇게 딱히 정한 물건도 없이 멍하니 자리를 지켰다.
지금은 딱히 무얼 하는 것보다는 그냥 사람들의 움직임을 구경하는 편이 더 즐거웠다.
"드디어 아끼고 아껴뒀던 술을 꺼낼 시간이구나!"
커다란 덩치를 지닌 남자가 껄껄 웃으며 외쳤다.
그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환호를 내지르는 걸 보니, 꽤 좋은 술인 듯 싶었다.
축제와 술의 조합이라.
별로 내키지는 않았다.
"여기 계셨네요, 마왕 씨."
"...성녀."
내 등 뒤로 다가와서는 목에 팔을 두른다.
작게 숨을 토해내며 상대를 부르니 푸스스 웃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여신이 깃들 수도 있는 신체.
그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꺼림칙한 인간이었다.
"저도 마침 혼자인데, 조금 걷지 않으시겠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냈다.
어느샌가 내 팔에 매달려 빙긋빙긋 웃는 얼굴이 보였지만, 딱히 반응하지는 않았다.
"마왕 씨는 어렸을 때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성녀가 물었다.
무얼 노리고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몸뚱이의 과거가, 특히 어렸을 때의 일이 기억날 리 없었다.
"저랑 똑같네요. 저도 어렸을 때의 일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서..."
말 끝을 흐린 성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서도, 저는 교단에 있었어요."
엄마, 아빠라는 단어의 뜻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며, 그녀가 말했다.
엄마가 무엇인지, 아빠가 무엇인지.
그리고 가족이란 무엇인지.
호기심 많은 소녀는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물어보았고, 그에 대한 답을 들었었다.
"너의 어버이는 곧 여신님이고, 너의 가족은 곧 우리들이다."
그렇게 교단에 있는 모든 이들은 그녀의 가족이 되었고, 여신은 그녀의 어머니가 되었다.
가족이란 서로가 아껴주고, 보살펴 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본인 또한 그렇게 했더랬다.
자매님의 말씀이 맞아요.
신관님의 말씀에 따를게요.
"하지만, 사람들은 제가 교단 밖으로 나가는 걸 싫어했어요."
아니, 아예 나가지 못하도록 감금하고 있었다는게 맞는거겠지.
만약 자신이 여신님의 선택을 받아 성녀가 되지 않았다면, 성혈식이 끝날 때까지 교단의 건물 안에서만 지냈을게 분명했을 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까지 온 것도 제 의지로 온게 아니었으니까요."
어버이와 같은 여신님의 뜻으로 성녀가 되어, 여신님의 뜻으로 용사와 함께해, 여신님의 뜻으로 마왕군과 마왕을 토벌한다.
거기에는 그녀의 의사 따위는 단 한 줌도 존재하지 않았다.
교단에서 배우는 교리와, 남녀가 서로 애정하게 만드는 법 등등.
그녀가 원해서 얻은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그들이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뿐.
"그래서 그런지, 최근 들어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라는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모든 일을 끝마쳤으니, 저는 다시 교단으로 돌아가게 되겠죠."
교단으로 돌아가, 성혈식을 마치고 성녀가 아닌 신관으로 살아간다.
그것이 엘리라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미래겠지.
"당신이 저를 변화시켰어요."
가느다란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여신님이, 교단의 모두가 옳다고 말했던 그 길고 긴 여정의 끝.
그곳에서 마주한 마왕의 모습은 제가 상상하던 것과 달랐다.
이것이 옳은 일인가.
옳다면, 과연 이런 것이 대체 어떻게 옳은 일이 될 수 있는가.
"죄송해요.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해서."
"...아니, 괜찮다."
성녀의 사과에 괜찮다며 답한다.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지만, 이것마저도 괜찮지 않게 된다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면 당장 내 옆에서 사라져.
그런 식으로 내뱉고 싶은 말을 억지로 씹어삼켰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제 속내를 고백해 오는 사람을 쉽게 내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내 처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