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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58화 (58/342)

Chapter 58 - 스스로를 속이는 방법.(8)

축제는 해가 완전히 질 때 쯤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마을의 중앙에 거대한 불을 피워놓고, 빙 둘러앉아 서로 대화를 나눈다.

딱히 정해진 형식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오직 나만이 혼자 동떨어져 있었다.

"...뭐가 좋다고 저렇게 마시는지 모르겠구나."

술을 무슨 물 마시듯이 퍼마시는 드워프의 모습에 진저리를 친다.

레이나는 마법사와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용사는 라스라는 인간과 함께 잔을 나누고 있었다.

딱히 외로움을 느낀다는 건 아니었다.

그냥, 나라는 존재가 어디에도 섞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지.

"마왕 씨."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고개를 돌린다.

약간 얼굴이 붉어진 성녀가 커다란 술병을 들고는 나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아니, 성녀가 술 마셔도 되는거 맞아?

"마왕 씨만 혼자 외롭게 있으면 안 되니까, 제가 특별히 온거라구요!"

...그렇다고 딱히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지.

떨떠름해진 내 얼굴을 보지 못했는지, 아니면 봤는데도 모르는 척 한 건지 성녀는 내 앞에 잔을 놓아두고는 그 안에 내용물을 채워내고 있었다.

쪼르륵.

"혹시 술 좋아하세요?"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싫어한다는 쪽에 더 가깝겠지.

술에 취해 몽롱해지는 그 감각이 어찌나 무섭던지.

스스로를 잃어가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오늘 같은 날에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요?"

"..."

오늘 같은 날이라니, 그게 무슨 날인데?

마왕이 죽었다고 알리는 날?

...웃기지도 않아서.

"...죄송해요."

"그래."

불쾌함을 가득 담아 노려보니,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해온다.

용사 일행 중에서 이 녀석이 그나마 제일 정상이라는 건 또 어떨까.

헛웃음을 내뱉으며 술잔을 들어올리니, 안쪽에 담긴 투명한 액체가 찰랑찰랑 파도치기 시작했다.

"싫어하시면 굳이 억지로 드시지 않아도 되요."

"잔이나 들어라."

얼떨결에 잔을 들어올린 성녀를 향해 팔을 뻗어낸다.

쨍, 하고 청명하게 울리는 소리 뒤에 남은 건 뜨거운 한 모금.

목이 홧홧 불타오르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이런 걸 대체 왜 마시는지 모르겠는데.

"이제 그만 마시ㅡ"

"딱 한 잔만, 딱 한 잔만 더요!"

꼴꼴꼴 흘러내리는 술을 멍하니 바라본다.

...분명 안 마시겠다고 하지 않았나?

느릿하게 눈을 깜빡여도, 가득 찬 술잔의 모습이 바뀌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 성녀가 진짜.

"그으, 술 마시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요..."

"...웃기는구나, 정말로."

그렇다고 나만 마시고 있을 생각 따위는 없었기에, 나 또한 성녀의 술잔에 술을 한가득 따라주었다.

처음에는 미소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내가 멈추지 않고 술병을 기울이자 얼굴이 점점 요상하게 변해갔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넘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차오른 술에, 상대의 표정이 희게 질렸다.

"저어, 이건 조금..."

"마셔라."

다시 한 번 울려퍼지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불을 집어삼킨다.

뱃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건 과연 무엇일까.

고개를 가로 저으며 성녀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꽉 채우지는 않았다.

적당히 채워지난 술잔에, 성녀가 히히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사 일행이라는 녀석들이 술을 너무 마시는거 아닌가?"

적당히 먹어줬으면 좋겠는데.

자고로 사람이라는 생물체는 적당량 이상으로 술이 들어가면 미친 듯이 날뛰기 때문에, 마실 때 주의가 필요했다.

하물며 과음하는 녀석들이 용사 파티라면, 어떤 개판이 벌어질지 정도는 직접 보지 않아도 눈앞에 훤했다.

"뭐 어때요~ 어차피 사고 칠 사람들도 아닌데."

성녀의 말에 담겨 있는 깊은 신뢰에,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사고를 칠 녀석들이 아니라고?

그런 것 치고는 잘만 괴롭히던데.

주먹을 꾹 쥐니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왕 씨가 취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오~"

"...설마 취했나?"

"네, 마왕 씨의 사랑스러움에 취해버렸어요!"

마치 대형견이 애교를 부리듯 엉겨붙은 성녀에 몸이 우뚝 굳어버린다.

술내음과 함께 풍겨오는 기분 좋은 향기.

제 뺨을 비벼오는 행동에 몸을 뻣뻣하게 굳히니, 성녀가 헤픈 웃음을 마구 흘려댔다.

"에헤헤, 마왕 씨한테서 제 냄새가 잔뜩 나요......"

"...하아."

성녀가 술을 마시고 마왕에게 엉겨붙은 건 둘째로 치더라도, 대사 하나하나가 심장을 뛰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설마 노리고 말하는 걸까.

너, 사실 취한거 아니지?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느냐. 오해라도 받으면 내가 곤란해지니 이제 떨어져라."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만, 술이라는 건 '설마'나 '혹시'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지독한 것이었다.

또 몰라, 성녀를 타락시키려 한다면서 잔뜩 화낼지.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용사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잔에 담긴 술을 홀짝였다.

...이럴 때는 차라리 취해버리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네.

용사의 면상을 떠올리니 절로 소름이 돋아났다.

"자, 더 드세요. 쭈욱, 쭈우우욱..."

"너는 그만 마셔라."

"에에에에엥... 싫어요오..."

성녀의 손에서 잔을 빼앗으니, 마구 앙탈을 부려온다.

미녀의 앙탈이라.

외견으로 봤을때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상대가 성녀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여신이랑 겹쳐 보여서 토할 것 같아.'

내 허리에 팔을 감아오는 성녀의 얼굴을 꾹꾹 눌러 밀어내며 잔 속의 내용물을 비워낸다.

이걸로 한 병은 다 마셨구나.

이 정도면 됐겠지 싶어서 잔을 내려놓는데, 내 옆으로 술병 몇 개가 턱턱 내려앉았다.

"...성녀."

"녜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할까.

술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속이 타는 건 기분 탓이 아닐 터였다.

그래, 그냥 마시고 죽자. 마시고 죽어.

"예뻐요."

성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만. 그건 이제 그만 말하거라."

"귀여워요!"

괜히 부끄러워져서 만류해봤지만, 지지 않겠다는 듯이 소리쳐 왔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비어있는 술병을 집어들까 말까 고민하면서도, 일단은 대화로 해결하겠다며 최대한 참아냈다.

폭력은 나쁜거니까.

응, 용사 녀석과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지.

"그러니까ㅡ"

"실례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옆에 나타난 여인에 입을 꾹 다문다.

정확하게는 여인의 품에 안긴 아기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는게 맞는 말이겠지만.

"역시 아기는 어머니랑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미련이 잔뜩 남는 눈으로 그렇게 말한다.

그 눈동자 안쪽에서는 품 안에 안고 있는 아기가 제 아기라고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잘도 그런 말을 해댔다.

비참하네.

술에 젖어 차라리 전부 잊어버리려고 했는데, 아기와 여인을 보니 술이 확 깨버렸다.

"그러니까, 그..."

"제이나, 제이나에요."

"그래, 제이나."

느릿느릿하게 상대의 이름을 부른다.

게임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심지어 얼굴조차 비추지 않는 엑스트라 중의 엑스트라.

가짜 주제에 내 아기를 빼앗아 가지 마! 같은 소리를 하기에는 이쪽은 몸뚱이부터가 전부 가짜였다.

...그래도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아기를, 안아보게 해다오."

사실 알고 있었다.

아기가 진짜 어머니를 만난 그 순간부터, 더이상 내 자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건 그저 하나의 미련에 불과했다.

동시에 집착이기도 했고.

"흐, 흐응, 흐아아아앙......."

"..."

설마 했지만, 역시나였다.

짙은 술 냄새 때문에 깨어난 건지, 방금 전까지 안겨 있던 품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제 어미의 품에서 떨어져서 그런 건지.

순식간에 울먹이기 시작하는 아기를 다시 제이나의 품에 안겨주었다.

"흐응, 흥..."

조금이라도 나에게 마음을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억누르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내가 낳은 아이와 이별하는데 마지막을 눈물로 장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래.

...안녕.

"사실, 내가 잠시 맡고 있던 아기였다. 부모를 찾으면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이렇게 찾아서 다행이야."

따로 할 말은 없었다.

아기와 제이나의 모습은 다른 누가 봐도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라고 할 정도로 닮아있었으니까.

아들은 엄마를 닮는다고 했었나.

오늘만큼은 그 사실이 너무도 야속했다.

"아기를 잘 부탁한다."

그리고, 행복해줘.

"저기ㅡ!!"

더 이상은 이 자리에 버티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술이 잔뜩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뚱이는 용케 중심을 잃지 않고 잘도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신발이 벗겨지고, 발에 상처가 생겨도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누군가가 쫒아오는 것처럼, 그렇게.

도망치고, 도망치고, 또 도망쳐서ㅡ

"하아, 학... 흐, 하아..."

하늘에 떠오른 달을 올려다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뛰다보니, 심장이 덜컹거리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차라리 심장이 멎어 죽어버렸다면 좋았을 텐데.

"...아."

춥다. 그리고, 외로워.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아프고, 동시에 공허했다.

배 아파서 낳았지만, 어머니가 될 수 없는 존재.

자식을 잃는다는 고통과 공허를 느낄 수 있지만, 자식과 함께하는 기쁨을 얻을 수는 없는 애매한 존재.

하지만,

"괜찮아."

사실, 괜찮지 않아.

"앞으로 낳을 아이는 한참이나 남았으니까."

그 아이들을 전부 낳을 때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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