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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65화 (65/342)

Chapter 65 - 스스로를 속이는 방법.(15)

꿈결과도 같은 평화 한 조각을 맞이했다고 한들, 언제까지고 이 마을에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왕이 쓰러지고, 마왕군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어서 알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만 있을 테니까.

"마왕."

"...왜 그러느냐."

마을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흘긋흘긋 고개를 돌리는게, 무언가 걱정을 하고 있는 듯 싶었다.

그 걱정이 무엇인지, 또한 그 안에 담긴 미련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용사는 그녀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미련이 남는다면, 만나보고 오는 것도 좋지 않을까."

만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아프더라도 만나는 편이 더 좋을 터였다.

자신 또한 그랬기에 할 수 있는 우스운 충고였다.

...누가 누구에게 충고를 한다는 건지.

"하지만, 정말."

내가 그 아이를 만나도 될까.

공허한 울림이 방 안을 채워냈다.

이미 아기에 대한 자신감을 전부 잃어버린 마왕은 좋은 말로도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마치 며칠 밤을 샌 사람처럼 초췌해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만나도 돼."

"...네가 뭘 안다고ㅡ"

"그러니까 다녀와도 좋아. 늦지만 않으면 상관 없으니까."

그녀에게 부족한 건 확신이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또한 그랬으니까.

스승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죽어가는 이들의 마지막을 두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더랬다.

황금빛 눈동자가 덜덜 떨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용사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다녀 와."

어깨라도 두드려줄까 싶었지만, 어제의 기억 때문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어색하게 허공을 배회하는 손길을 감추고자 슬쩍 몸을 뒤트니, 마왕이 고개를 숙여 제 발 밑을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다녀오마."

입술을 꾹 깨물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방을 나서는 마왕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만 본다.

그 다급한 움직임이 어찌나 간절해 보이던지,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에 헛웃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미쳤구나. 아주 미쳐 돌아버렸어, 아서."

제 머리를 헝크러뜨리고는 근처에 걸려있던 망토를 집어든다.

희미하게 묻어있는 마왕의 체향에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이내 그것을 어깨에 두른 용사가 느린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였다.

모든 것의 끝을 알리기 위해.

***

"헉, 헉, 하악..."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제이나의 집이 어디인지는 몰랐지만, 내 심장 속의 본능이 아기가 있는 방향을 일러주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만 더 가면, 아기를 만날 수 있어.

"...으."

겨우 이 정도 뛰었는데도 숨이 차다니,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몸뚱이일까.

터질듯이 튀어오르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낡은 통나무집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근거리며 맥동하는 긴장감이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아기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이 훨씬 컸다.

퉁, 퉁, 퉁...

"..."

문을 두드리니 맥 없는 소리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자신감이 없는 만큼 아기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또한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를 보면 또 울텐데.'

내 욕망을 채우고자 아기를 울리는게 맞는 걸까.

순간 아기의 진짜 엄마, 제이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짜 엄마도 아니면서 왜 찾아왔냐고 묻는 듯한 표정에 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몸이 덜덜 떨렸다.

...역시 오는게 아니었어.

용사 녀석의 말 따위를 듣는게 아니었어.

"...안녕."

작은 목소리로 이별을 고한다.

분명 한 번 읊조렸던 두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심장이 천 갈래로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안녕, 아가.

너를 만난 짧은 시간 동안, 행복했었으니까.

그러니까, 안ㅡ

"은인님?"

"흣?!"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린다.

문 안쪽이 아닌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자박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내게 다가왔다.

'왜 찾아온거냐고 묻겠지.'

"여기까지 어쩐 일로..."

"..."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턱, 하고 막혀서는 숨소리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제이나의 푸른 마리카락을 바라보니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한 마디.

나를 부른 '은인님'이라는 세 글자.

어리석게도 그 호칭 하나에 용기를 얻어버려서는 결국 입을 열고 마는 것이었다.

"...작별, 인사를."

"..."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자신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분명 마지막만큼은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한 찰나였는데, 정작 아기의 모습을 마주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가짜 엄마 주제에 이렇게 모습를 드러낸게 아니꼽겠지.

당장 꺼지라고 소리를 질러도 이해할 자신이 있었다.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마음 정도는, 이런 나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떠나시는거군요."

"...그래."

하지만 제이나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건 경멸이 아닌 짙은 아쉬움이었다.

어째서?

왜 내가 마을을 떠난다고 하니까 아쉬워해?

"저희,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친구."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어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피가 베어나올 정도로 짓누르니, 따금한 고통과 함께 눈물을 비죽 흘러나왔다.

그래, 이 눈물은 그냥 입술이 아파서 나는 눈물이야.

아무렇지도 않아.

겨우 이 정도 말에 울 정도로, 나약하지 않으니까ㅡ

"한 번 안아보시겠어요?"

"...응."

ㅡ그러니까.

...응, 고마워.

"...아가."

제이나가 선뜻 내민 아기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시야를 가리고 있었지만, 아상하게도 아기만큼은 선명하게 보였다.

과연 내가 이 아이를 안아도 될까.

혹여, 전과 같이 울음을 터뜨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울리기 싫어.'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 마지막 모습을 서로 우는 모습으로 끝내버리는 건, 너무하잖아.

"흣?!?!"

하지만 그런 나의 망설임도 잠시, 반쯤 억지로 내 품에 아기를 안기는 제이나의 손길에 몸이 우뚝 굳어버렸다.

아, 아기를 그렇게 갑자기 안겨버리면 울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조막만한 입을 오물거리는 아기의 모습에 허둥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어라.'

안 울잖아.

아기가, 안 울고 있어.

"으바, 으바아아아..."

"......아."

아기가 손을 뻗어 내 뺨을 툭, 두드렸다.

자그마한 손바닥에 내 눈물이 잔뜩 묻어났지만 아기는 별로 신경쓰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오히려 신이 났다는 듯 내 눈물을 찰박찰박 가지고 놀기 시작하는 모습에, 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안 울어. 아기가 안 울어...'

툭툭 떨어지는 눈물 사이로 아기의 눈동자가 보였다.

새파란 가을 하늘 같은 머리카락과 똑 닮은 색의 눈동자였다.

...예쁘구나.

어째서 지금에서야 알아차린지 모를 정도로, 예뻐.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기의 이름을 알 수 있겠나?"

"물론이죠."

대답은 시원스럽게 돌아왔다.

이쪽은 온갖 생각을 하며 던진 질문이었지만, 제이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답해왔다.

그 태연함이 너무도 고마워, 나도 모르게 눈가가 뜨거워졌다.

"케룸. 하늘이라는 뜻이에요."

"...그렇구나."

케룸, 케룸, 케룸...

아이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는 듯 연신 되뇌인다.

이건 스스로에게 거는 하나의 저주나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구름 한 점 끼지 않는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이 아이를 떠올리게 되겠지.

그럼에도 고통스럽지 않은 건, 진한 그리움 뒤에는 행복했던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일 터였다.

"...감사, 합니다."

"..."

"아이의 이름을 알려주셔서, 정말ㅡ"

ㅡ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무슨 정신으로 걸어왔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기억나는 건 웃는 얼굴로 나를 배웅하는 제이나의 모습이었다.

옷소매로 얼굴을 닦아주며 뭐라고 말했더라.

끙끙거리며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있자니, 이쪽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

"..."

그리고 마주쳤다. 녹색의 눈동자와.

서로 말 없이 시선을 맞추기를 잠시, 먼저 고개를 돌린 건 다름 아닌 내쪽이었다.

저딴 녀석의 말이 맞았다는걸 인정하기 싫어서, 인정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나온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래도, 그래.'

아무리 미운 놈이고, 더러운 놈이고, 때려죽이고 싶은 놈이라고 해도 고마운 건 고마운거였다.

죄를 지은 것을 사죄하지 않는 저쪽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일념 하에,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입술을 억지로 벌려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ㅡ

"고마, 워."

"...뭐?"

그 뒤에는 입을 꾹 다문다.

못들은 척 했다면 그것 나름대로 용사의 인성이 드러나니 좋았고, 진짜로 듣지 못했다면 오히려 더 좋았다.

...쓰레기 같은 새끼.

용사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는 사실이 가시가 되어 내 심장을 찔러댔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언젠가는 이 감사를 후회하게 되겠지.'

분명 그리 될 터였다.

하지만, 그에 대해 별 생각이 들지 않는 건 하늘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와 성공적인 이별을 마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 잠시 동안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거야.

그렇게 한다면, 앞으로 무슨 절망이 닥쳐온다고 해도 이 행복은 되새기며 버텨낼 수 있겠지.

언제까지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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