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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68화 (68/342)

Chapter 68 -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3)

"...죄송해요."

작은 사과가 허공을 타고 흐른다.

이미 눈을 감고 있는데도 더욱 더 꾹 감으려는 듯, 고운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 합니다. 죄송..."

굳게 닫힌 눈의 틈 사이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 광경을 본 건 오로지 자신 뿐.

허벅지를 적시는 뜨거움에 엘리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울지마세요."

손가락에 닿지마자 차게 식어버리는 물기가 어찌나 안쓰럽던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깨우고 싶었다.

그 악몽에서 깨어나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엘리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과연 그녀의 악몽이 그녀의 현실보다 끔찍할까.

"괜찮아요, 괜찮아요. 제가 여기 있으니까..."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마왕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달래는 것 밖에 없었다.

부디 그 악몽이 조금이라도 잦아들도록,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저도 죄송해요."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다른 사람들을 막아내지 못해서 죄송해요.

당신을 괴롭혀서, 죄송해요.

"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어요.

당신 또한 또 다른 피해자라는 사실을 믿어요.

그러니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울지마세요."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인다.

안심시키듯, 동시에 달래듯이 속삭이고 또 속삭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악몽이 파묻혀 그녀가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마왕의 눈에서 흘러나오난 눈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흐느낌 또한 잦아들어, 동시에 얼마 지나지 않아 떨림 또한 줄어들었다.

"푹 주무세요, 마왕 씨."

제가 지키고 있으니까, 푹 주무세요.

조금은 푸석푸석해진 머리카락의 결을 따라 손가락을 쓸어내린다.

눈밑에 짙게 깔린 검은 자국과 함께 말라붙은 눈물자국이 눈에 띄었다.

누가 누구를 가여워하는 걸까.

...우리 모두가 만든 죄악인데.

"엘리, 너도 눈 좀 붙여."

"저는 괜찮아요, 용사님."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마수들을 정리하고 왔는지 용사의 검에는 찐득한 핏자국이 가득했다.

걱정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에, 엘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굳이 잠을 자지 않아도, 마왕 씨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힘이 났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무리는 언제나 용사님이 하고 계시잖아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용사는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않는 건 예사에, 제 주변에 성검을 놓아두지 않는다면 잠시라도 눈을 붙이지 않았다.

하물며 씻을 때나 용변을 보러 갈 때도 성검을 들고 다니니, 그걸 본 다른 이들은 우스갯소리로 성검과 사랑에 빠진 것 아니냐고 말했더랬다.

"......나는 괜찮아."

괜찮지 않으면서.

한때는 용사와 단 둘이서 여정을 떠났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는 둘 모두 어리숙해서 이런저런 실수를 했고, 그 실수로 인해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더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많았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작은 실수 따위도 용납되지 않는, 오로지 죽음만이 존재하는 전장.

얼마나 살리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나 덜 죽게 하느냐의 문제였지.

"그러면, 나는 잠시 주변 좀 돌아보고 올게."

"...네."

언제나 그랬다.

본인이 걱정 받는 걸 끔찍할 정도로 피하는 모습에, 엘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단단한 뒷모습이, 사실은 얼마나 위태로운지 알고 있기에 걱정을 접어둘 수가 없었다.

용사님, 이미 마족들은 전부 처단 했잖아요.

더 이상 전쟁은 없어요. 그러니까 쉬셔도 되는데.

"저 녀석은 언제나 똑같구만 그래."

"고르돌 씨."

일행 중에서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을 꼽자면, 그건 바로 고르돌 씨일 것이 분명했다.

언제나 어두운 얼굴과 고통에 찬 표정을 짓고 있던 분이, 제 아이를 되찾은 뒤로부터는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의 표정이 어두운 걸과는 대조되어서, 이제는 이질적으로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최근에는 레이나 씨도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고.'

마왕 씨에게 친절하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어느새부턴가 관심 자체를 주지 않으려는 듯 행동했다.

마치 마음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무언가를 억누르는 사람처럼, 그렇게.

"자네도 푹 자지 그러나. 내일 안으로는 마을에 도착해야 하니 체력을 채워두는게 좋을 텐데."

"...저는 뭐."

이러고만 있어도 충분해요.

이실직고 이야기 하자면, 그녀 또한 잠에 드는 것이 두려웠다.

꿈 속에서 나오는 건 분명 성스러운 여신의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그 존재와 계속 마주하다가는 제 육신을 빼앗길 것만 같았다.

...이제 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 보잘 것 없는 몸뚱이 하나가 전부인데.

성녀의 자리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자신은 신성력도 뭣도 없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처녀로 돌아오게 될 터였다.

물론 지금까지의 경험이 없던 것이 되지는 않겠지만, 제 가치가 급락한다는 사실만큼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 그보다. 이제는 더 안 크네요, 그 아이."

"...다행이지. 이번에는 애비보다 빨리 죽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라서 말이야."

확실히, 상상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자라기는 했다.

마치 수명이 한 달이라도 되는 것처럼 급격한 성장이었지.

태어나서, 말을 하고 걷는데까지 며칠 걸리지도 않았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나는 자네들을 배웅하고 고향으로 떠날 생각일세."

"...그렇군요."

지금껏 함께 전장을 헤쳐온 동료가 행복을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간다.

분명 기쁜 일이 분명함에도 엘리는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했다.

저에게 있어서는 여러분들이 가족이었는데.

여정을 끝낸 뒤에도 분명 함께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도 아니잖아.'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다른 사람 또한 그렇게 생각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 이 여정은 가족들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녀에게 있어서는 가족을 만들어가는 여정이었으니까.

그 차이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괴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에밀리와도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거겠지.

"뭐, 쉬게. 나도 쉬러 갈 테니."

"주무세요, 고르돌 씨."

차라리 전장에 있었을 때가 더 좋았다면, 너무 바보 같은 생각일까.

쓰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니, 곤히 잠든 마왕의 얼굴이 보였다.

조금이라도 괜찮으니 부디 좋은 꿈을 꿀 수 있기를.

작게 기도한 엘리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이라서 그런지 그 규모가 크고, 사람들이 많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도로와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까지.

얼마 전에 들렀던 곳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마왕성에서 제일 가까운 마을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맞아요."

내 물음에 성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왕성에서 제일 가깝다고 하기에는 너무 멀쩡하잖아.

오히려 이쪽의 행색이 너무 초라해서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시선이 이쪽으로 쏠려있는 것 같기도 했고.

"이 이상으로 가까운 마을들은 이미 다 사라졌거든."

지도를 들고 있던 용사가 음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짚어 보여준 곳을 확인하니, 이 마을과 마왕성 사이에 수십 개가 넘는 마을이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오면거 본 것이라고는 숲과, 허허벌판과, 마수들 뿐.

그곳들이 전부 원래는 사람들이 살아가던 마을이었다고?

"..."

"마왕군이 싸그리 불태워버렸지."

다른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몰려들었다.

그 날카로움을 견딜 수 없어 고개를 숙이니, 작은 비웃음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겨우 게임이 아니었잖아.

마왕이 직접 나서지 않았어도 이정도나 죽었는데, 마왕이 나섰던 회차에서는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죽었을까?

"..."

어제 꾸었던 꿈이 생각나 여관에 도착할 때까지 멍한 정신으로 걸음을 옮겼다.

옆에서 나란히 걷던 성녀가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러면, 정말 불살 루트라도 했었어야 했단 말이야?'

마왕도, 마왕군도 그 어떤 사람조차 죽이지 않는 절대 불가의 루트.

모든 엔딩이 마왕의 죽음으로 끝나는 그 루트를 어떻게든 끝까지 끌고 나갔어야 했다고?

"...갈까요?"

"응? 으응, 그래. 네 마음대로 하거라."

내 시야를 가득 채우며 불쑥 튀어나오는 성녀에 무슨 질문인지도 제대로 듣지 않고 대답한다.

나갈 채비를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잠시 바깥으로 나갈 생각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다른 녀석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 어디에도 그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뭐, 오랜만에 도착한 제대로 된 마을이니까 여러모로 둘러보고 온다는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저희도 가죠!

들뜬 목소리로 팔땅을 껴오는 걸 차마 뿌리칠 수가 없어서, 그냥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방 안에서 푹 쉬고 싶었지만, 혹여 잠들었을 때 꾸게 될 악몽이 두려워 일단은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은 질색이지만, 소란스러우면 그만큼 정신이 없으니 머리를 비우기에도 도움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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