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3 -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8)
앞서 그런 일을 봐서 그런지, 다른 녀석들의 얼굴을 보는게 껄끄러웠다.
아니, 껄끄러운 건 진즉부터 껄끄러웠지만 두려움이 더 커졌다고나 할까.
내게 들러붙는 시선 하나하나가 전부 질척이는 것만 같아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절로 몸이 굳었다.
'...언제 다시 돌변할지 몰라.'
마음의 각오는 언제나 해두는 편이 좋았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앞으로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또 언제 훼까닥 돌아서는 나를 두들길지 모를 일이었다.
"...이제는 아주 식모가 다 되었구나."
요 며칠 사이에 녀석들의 밥을 해주는 것이 내 일이 되어버렸다.
음식을 사오는 것보다는 직접 음식을 해먹는 편이 돈을 더 절약할 수 있다는게 그 이유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부려먹으려고 이유를 가져다 붙인 것만 같았다.
...쓰레기 같은 놈들.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
언제는 마을 구경을 가자며 졸라대던 성녀가, 요즘에는 여관 밖으로 나갈 생각 자체를 안 했다.
마치 나를 가둬두려는ㅡ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호하려는 모양새였지만, 별로 달갑지 않은게 사실이었다.
사람이 많은 것도 싫지만, 그렇다고 이 녀석들과 같이 있는게 좋냐고 한다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였으니까.
"너, 내가 언제까지고 참고만 있을거라 생각하지마."
그리고 마법사.
이 미친 년은 시도 때도 없이 눈깔을 부라리는데, 마치 눈빛만으로 나를 꿰뚫어 죽일 모양새라 언제나 간담이 서늘했다.
언제나 성녀가 내 옆에 붙어 있어서 직접적인 폭력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뭐랄까.
그 눈과 마주할 때면 소름끼칠 정도로 두려워져서 차라리 맞는 편이 나을 것만 같았다.
'잠시만 나갔다가 올까.'
이 상태로 계속 지냈다가는 미쳐버릴지도 몰라.
숨만 쉬어도 속이 울렁거리는게, 절대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몇 번이고 속을 게워내던 날도 있었고, 또 어떤 날에는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울 때도 있었다.
"...저, 성녀."
"네, 마왕 씨!"
조심스럽게 이름을 부르자, 제 주인에게 달려드는 강아지처럼 불쑥 다가온다.
...그런게 부담스럽다는 거야.
고개를 슬쩍 돌리며 우물거리자, 성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그... 잠시 바람 좀 쐬러 나갔다 오고 싶구나..."
명색이 일행이지, 사실상 포로나 다름 없는 입장이었기에 혼자서 여관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녀석들이 자고 있을 때 몰래 나갔다 오려고도 했지만, 그때마다 걸려서 방 안에 강제로 갇힌 것도 몇 번이나 있었더랬다.
특히 용사.
이 정신나간 놈은 잠을 자는 건지, 깨있는 건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제는 진짜 엄청 놀랐지, 그 미친 놈.'
화장실에 가려고 잠시 나왔는데, 복도에 서서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게 정말ㅡ
...으, 소름끼쳐.
"...저한테서 떨어지지 않는다면, 허락할게요."
허락, 허락이라.
그 같잖은 단어에 헛웃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대체 나를 어디까지 비참하게 만들 셈일까.
"그래, 너한테서 절대 떨어지지 않으마."
그래도 나가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다른 녀석들이었다면 절대 나가지 못하게 했을 테니까.
레이나라면 혹시 모르지만, 최근의 그녀는 마치 나를 꽁꽁 숨겨야만 하는 무언가 같은 취급을 하고 있어서 곤란했다.
가끔씩 보이는 집착 가득한 눈빛이 꺼려지기도 했고.
"그러면, 어서 나가죠. 다른 분들이 봤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우물쭈물 하다가는 기껏 잡은 기회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일단은 어서 나가는 편이 좋겠지.
"오는 길에 과일도 사죠! 이번에는 녹색 사과가 아니라 빨간 사과로요!"
"그래."
활기차게 외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다른 녀석들은 칙칙하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고, 미쳤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으니까.
처음에는 분명 비호감이었던 성녀가 지금 이렇게나 호감이라니.
'똥 묻은 개보다는, 확실히 겨 묻은 개가 훨씬 낫지.'
최근에는 내 몸을 노리고 달려들지도 않으니 정을 주지 않을래도 않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나를 지켜주겠다던지 같은 말을 한 뒤로부터는 거의 모든 시간 동안 옆에 있었으니까.
덕분에 다른 녀석들ㅡ 특히 마법사에게 시달리지 않게 되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절대로 다치시면 안 되요. 알겠죠?"
"...그래."
그럼에도 그녀에게 더욱 가까워지지 않는 건, 그 몸에 언제 여신이 깃들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성녀 본인 또한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나에게 매일마다 다치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다.
만약 내가 다치게 된다면 신성력을 쓰게 되고, 신성력을 쓰게 되면 여신이 깃든다.
그 성격 더러운 마법사도 상처를 치료할 수는 있었지만, 절대 맨입으로 해줄 리가 없었다.
'...뭐, 상처를 치료할 때마다 하나씩 낳으라고 할지도 모르지.'
가능성이 있어서 더 소름끼쳤다.
팔뚝을 쓸어내리며 몸을 잘게 떠니, 성녀가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줬다.
"이, 이제 괜찮으니 그만해도 된다."
"네에ㅡ"
"...대답할 때는 말꼬리 늘이지 말고."
투덜거리며 사람들 사이로 걸음을 옮긴다.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에서 나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오, 또 왔구만 그래."
"이번에는 빨간 사과로 살게요!"
"그래, 그것도 좋지."
큼직한 사과들을 건네주는 주인의 모습에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요즘 사람 같지 않게 인사성이 밝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뭔가 기분이 묘했다.
...요즘 인간보다 인사성이 밝은 마왕이라니, 이게 무슨 질 나쁜 농담일까.
아삭.
"이번 건 어떠세요?"
"...맛있구나."
오랜만에 들어가는 달달한 맛을 만끽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녀의 푸른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이 작은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보니, 사과가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어때요, 신기한게 많죠?"
"...그렇구나."
음유시인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까딱거리다가, 성녀의 질문에 긍정한다.
확실히 방 안에 있을 때보다는 신기한게 많네.
이런 것들도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볼 수 있기는 했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겠지.
웃기는 소리지만, 여기는 진짜 이세계니까.
"그러면 다음에는ㅡ"
"...왜 그러느냐?"
잠시의 웃음 뒤에, 걸음을 옮기던 성녀가 갑작스레 멈춰섰다.
그녀가 무엇을 바라보는지 궁금해서 고개를 돌리자, 새하얀 복장을 입은 여인 하나가 골목 끄트러미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양아치와 키스를 하면서.
"저, 저게 대체..."
"보, 보시면 안 돼요!"
내 눈을 가리기 위해서 펄쩍펄쩍 뛰었지만, 안타깝게도 완전히 가려지지는 않았다.
평범한 입맞춤이 아닌, 혀와 혀를 섞는 관능적인 키스.
이내 온몸을 덮는 의복을 풀어헤치고서는 양아치의 몸에 꾹 밀착하는게, 완전히 야외 스트립쇼 그 자체였다.
"그런데 저 옷, 뭔가 익숙한데..."
"...읏."
성녀의 옷을 바라봤다가, 골목 어귀에서 남자와 고간에 손을 대는 여인의 옷을 바라본다.
비슷하잖아.
설마, 교단의 인간이라거나 그런 거야?
'정상적인 종교 집단이 이닌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미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잔뜩 울상이 된 성녀의 뒤로, 삽입을 시작하는 두 남녀의 모습이 어지럽게 얽혀들었다.
"제, 제발 보지 말아주세요..."
"...그래."
억지로 시선을 돌린다.
교단의 어두운 면을 목격한 것 같았지만, 굳이 그것에 대해서 더 파고들 생각 따위는 없었다.
울상이 된 성녀의 얼굴이 불쌍했기에, 굳이 더 묻지는 않았다.
"어서 가자꾸나. 일단은 여관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어."
"네, 네에..."
흘긋거리며 바라본 골목의 광경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같았다.
붉은색이 섞인 금발을 지닌 여인이 양아치와 거칠게 섹스를 하는 모습.
주변의 소음에 파묻혀 신음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햇빛에 반사되는 무언가 덕분에 그녀가 잔뜩 가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읏..."
불결해.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끔찍할 정도로 불결했다.
누가 R18을 넘어서는 성인 야겜 아니랄까봐, 하는 짓거리들이 당연하리만큼 수위를 넘어선 상태였다.
'...나도 크게 다를 건 없지만서도.'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면 100만을 낳아야 하고, 그 숫자를 낳기 위해서는 그만큼 섹스를 해야 한다.
이제 겨우 둘을 낳은 입장에서 남은 숫자란 앞으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까마득한 미래에 불과했다.
그때가 되면 나도 저 여자처럼 어디서든 섹스를 원하게 될까.
그것도, 용사에게 아양을 떨면서?
"저런 걸 보게 해서 죄송해요..."
"...그래."
사실 나보다는 성녀 쪽이 더 마음이 안 좋을 터였다.
그야, 내쪽은 그저 외부인일 뿐이었지만 성녀는 교단에 몸을 담은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반응을 보니 알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는데, 만약 그렇다면 충격이 상당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말씀드리지만 저는 확실히 처녀니까요?!"
갑작스러운 처녀 어필에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싱숭생숭하던 찰나에 저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뭔가 분위기가 더 가라앉았다.
'......이쪽은 이미 비처녀가 되어버린지 오래인데.'
심지어 그 첫 경험이 강간으로 시작해 강간으로 끝나버린, 최악의 섹스였었지.
...다시 떠올리니까, 그냥 죽어버리고 싶어.
나에게 있어서는 그 정도로 최악의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