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5 - 사랑하는 나의 스승님.(5)
차라리 웃었다면 미쳤다며 욕을 했겠지.
차라리 표정을 찡그렸다면 역겨운 년이라며 외쳤겠지.
하지만 아기를 떨어뜨리는 마법사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노노, 증오도, 하다못해 작은 한 조각의 감정조차도.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기계적으로 아기를 떨어뜨릴 뿐이었다.
"그만, 제발 그만 해다오... 아기가, 아기가 정말로 죽어버려......"
멀쩡하던 아이가 피투성이가 되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 충격적인 장면에 눈알이 뽑혀져 나오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아기가 뭘 잘못했다고?
그냥 태어났을 뿐이잖아.
잘못이 있다면, 낳은 나한테 있는 거잖아.
"아, 아아아아아아아!!!!!!!!!"
머리를 움켜쥔다.
내장을 토해낼 것처럼 울부짖으며 아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만큼은 아기가 마법사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과연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 아, 아아......"
"어때? 마족들이 하던 방식 그대로 따라한 건데."
비죽 치솟는 입꼬리에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리고 말 거야.
감히 내 아기를 이딴 꼴로 만들다니.
"뭐야, 왜 눈을 그렇게 떠?"
"아, 아으아아악?!?!!"
고통이 새겨진다.
동시에, 증오가 새겨진다.
기억해. 절대로 잊지마.
지금 이 광경을 똑똑히 기억해.
머리속에 각인해두고, 계속해서 돌려보라고.
네 원수를.
네가 증오하는 존재를.
언젠가, 죽여버릴 존재를.
"원래는 자궁만 떼어낼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
"...그 몸 그대로 낳게하는 편도 나쁘지 않겠는걸."
생기를 잃어버린 눈동자가 축 늘어진 자궁을 향했다.
감히 너 따위가 나를 그딴 식으로 바라보느냐고 말하는 듯한 시선에, 몸이 덜덜 떨려왔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어올리니, 상대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뒤틀렸다.
"네가 하지 못하니까, 내가 도와준다는 거야."
감사하도록 해.
마법사가 내 머리채를 휘어잡을 때 쯤에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버린지 오래였다.
'...누군가, 도와줘.'
힘 없이 중얼거렸지만, 대답 따위는 돌아오지 않았다.
엘리, 할리벨, 그리고 용사.
마지막으로 떠오른 그 얼굴에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궁지에 몰리니까 그렇게 증오하던 녀석의 얼굴까지 떠오르는구나.
"용, 사..."
하지만 그 녀석 밖에 없었다.
이 미친 년을 어떻게든 하려면, 그 빌어먹을 녀석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찾으러 와.
버티고 있을 테니까, 찾으러 오라고.
'.....제발.'
나를, 찾아줘.
***
무엇이 옳은가.
무엇을 더 우선시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녀 봤지만, 알 수가 없었다.
위대한 대지의 어머니.
그리고 저희들이 신이시여, 제가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이러는 편이 너에게도 좋을 텐데?'
자신을 유혹하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너도 이게 좋잖아.
마왕을 모판으로 사용해서, 세계수가 부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렇지 않아?
...그렇지?
"...하아."
고향과도 같은 숲 속을 돌아다님에도, 폐에 가득 찬 불쾌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 거지.
용사와의 대화에서 자신있게 말하지 않았나.
설령 세계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세계수를 부활시키고 말겠다고.
...그래, 분명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만약, 그녀에게서 세계수가 태어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녀에게 희생을 강요한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않는가.
죄책감이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건 그저, 자신이 죄책감을 가지기 싫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지독한 이기주의였다.
아무래도, 인간들의 틈에서 지내다 보니 이런 것까지 인간을 닮아버린 것만 같았다.
"엘리도, 에밀리도, 용사도..."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변해도 너무 변해버렸다.
마왕을 만난 뒤로부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마왕성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 때보다 더 많은 시험에 들고 있었다.
그녀를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그녀를 핍박할 것인가, 보살필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ㅡ
"이 마력, 틀림 없어... 스승님이야... 스승님이 틀림 없다고!!"
어지럽게 물든 머릿속을 정리하며 복도를 걷고 있자니,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기에 찬 음성.
드디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듯 탐욕으로 얼룩진 떨림까지.
그 짙은 집착의 흔적에, 레이나는 발걸음을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마왕의 안에 있는 것이 정말 그녀의 스승이라면...'
나는, 이 이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고르돌, 그 성격 나쁜 드워프는 이미 제 소중한 것을 되찾아서 고향으로 떠났더랬다.
이번이 에밀리의 스승이 맞다면, 벌써 두 번째.
"듣고 있었구나, 레이나."
"...에밀리."
일부러 기척을 지우지 않았다.
그 이유라고 한다면 역시...
"어때, 나와 같이 가지 않겠어?"
마왕군과 마왕의 토벌이라는 공통적인 목표가 달성된 이상, 그들은 이제 남이라고 봐도 좋을 사이였다.
네 마음 가는대로 하면 돼.
너도, 세계수의 부활을 보고 싶잖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너랑 내가 닮았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제안을 하는 거야.
스승님께 미친 나와, 세계수에게 미친 너.
이렇게 잘 맞는 조합이 있을 수가 있을까?
"나는..."
그녀의 말이 옳았다.
스스로가 인정할 정도로, 나는 세계수에 미쳐있었으니까.
비참하게 죽은 왕녀님과 그 아이보다 세계수를 선택할 정도로.
"...함께 가겠다."
제 대답에 에밀리의 붉은색 눈동자가 둥글게 휘어졌다.
너라면 그럴 줄 알았다.
마음에 들었다는 듯 흘러나오는 자그마한 미소에, 레이나 또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너는 알까.
"조금만 기다려. 내가 꼭 네 소원을 이루어 줄 테니."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고, 마왕이 사라졌다.
모두가 잠든 새벽이었지만 레이나 만큼은 깨어있었기에 느낄 수 있는 기척이었다.
다른 이들이 깨어난다면 분명 난리가 나겠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밀리가 그 범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터였다.
찍찍.
"...착한 아이구나."
어깨를 타고 올라, 제 손에 자그마한 쪽지를 쥐여주는 사역마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는다.
레이나의 손길이 기분 좋았는지 몇 번이고 머리를 비빈 사역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녘 너머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이 쪽지를 펼쳐보는 순간 에밀리와 한 배를 타게 되겠지.
'세계수를 위해서라면.'
마음을 굳힌 레이나가 손에 쥐어진 쪽지를 펼쳐내었다.
그곳에 적혀있는 건, 다름아닌 에밀리와 마왕이 있는 곳이었다.
***
계속되는 고통이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법이었다.
매일마다 가해지는 고문과도 같은 실험과 억지로 무언가를 쑤셔박히는 그 끔찍함.
품 안에 안긴 아이조차 없었다면, 이미 목숨을 버렸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아가..."
마법사와 닮은, 분홍빛 머리카락을 가진 아기의 몸을 꼭 껴안는다.
차갑게 식어버린 신체는 죽음과 가까웠지만, 희미하게 뛰는 심장은 아기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어주었다.
나 때문에 이런 꼴을 겪는구나.
"미안하구나..."
아기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움직임 하나 없이 그저 심장만 뛰어, 마치 망가진 인형처럼 보였다.
젖을 물려줘도 전혀 빨지 않고 힘 없이 늘어진 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젖을 짜서 그 입에 넣어주기까지가 벌써 며칠 째였다.
"아직도 미련을 가지고 있는 거야?"
"..."
끔찍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비웃듯이 휘어진 눈동자가 나를 향해, 품 안의 아기를 바라보며 낄낄 웃어댔다.
...인간도 아닌 년.
이 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그건 마족이 아니라 저 녀석일 것이 분명했다.
그래, 분명 그러겠지.
"그렇게까지 매달리니, 안쓰러워서 못 봐주겠잖아..."
그런 의미에서 제안이 하나 있는데, 들어볼래?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상대를 뾰족하게 노려봤다.
제안? 제안?!
이딴 짓을 해놓고, 제안이라고?
'쓰레기 같은 년.'
응할 생각도, 이유도 없었다.
저딴 녀석의 말을 듣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는 편이 수십 배는 나을 터였다.
...나을, 터였는데.
"아기를 살리고 싶잖아, 그렇지?"
"...!!"
"그 흉물스러운ㅡ 실례, 아기를 왜 그렇게 소중하게 다루는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소중하다면, 당연히 살리고 싶겠지?
"너, 너, 너......"
목에 덜덜 떨려서 목소리가 이상하게 튀어나갔다.
나한테, 나한테 힘이 있었다면 저 아가리를 가장 먼저 찢어버렸을 텐데.
차마 거절의 말을 내뱉지 못한 채 이를 악물자, 상대의 미소가 더더욱 진해졌다.
"그래서, 싫어?"
그 짧은 질문에, 품 안의 아이를 내려다 본다.
아직까지지 의식을 되찾지 못한 자그마한 생명.
기껏 태어난 아이가 이 세상의 빛 한번 보지 못하는게 과연 올바른 일일까.
시야가 울렁거려서 눈을 꾹 감으니 이번에는 숨이 턱턱 막혔다.
"바라는게, 뭐지?"
반쯤 쉬어버린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결국 나는 아이를 위해서 뭐든지 하게 되어버렸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 하나로 아기가 살 수 있다면 차라리 싼 값일 터였다.
...그래, 나 하나였다면, 그랬을 텐데.
"그 아기의 뿔, 날개, 그리고 꼬리."
그걸 내게 주면, 아기를 살려줄게.
악마가 미소지음과 동시에, 깊은 절망이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