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9 - 사랑하는 나의 스승님.(9)
아아, 스승님.
사랑하는 나의 스승님.
어째서 세상은 우리를 갈라놓았을까요.
제가 이토록 사랑하는데, 어째서.
***
가족들을 마족에게 잃었을 때 무렵의 에밀리는 삿된 말로 눈에 뵈는게 없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길거리를 떠돌아 다니고, 쓰레기통을 뒤져 끼니를 때웠다.
처음에는 강렬했던 복수심 또한 그 비참함과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저 마음 속 깊은 곳까지 가라앉았더랬다.
"마법사의 재능이 있는 아이로구나."
스승님을 만난 건 바로 그 시궁창에서였다.
그 누구 하나 손을 뻗어주지 않고, 관심조차 주지 않던 그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쓰레기.
그런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하는 그 모습에, 새삼스럽지만 감동하고 말았다.
아직까지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감정 한 조각을 품고는 스승님을 따라갔더랬다.
"스승님, 어때요? 스승님이랑 같은 색이에요!"
"예쁘구나."
마법사는 마나를 각성할 시기가 되면, 그 마나의 색에 맞춰서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색에 물든다고 했었나.
처음에난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하고 나서는 스승님과 깉은 색이 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었다.
마침내 자신의 색이 스승님의 것과 같아졌을 때는 뛸 듯이 기뻐했었지.
그 기념으로 사역마를 선물 받았던 기억은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었다.
"에밀리."
"네, 스승님."
"언제나 편견을 가지지 마렴."
스승님이 마법 다음으로 가르쳤던 것은 바로 편견에 관한 것들이었다.
세상에 나쁜 인간들과 좋은 인간들이 있듯이, 이 마탑에도 나쁜 마법사와 좋은 인간들이 있단다.
하물며 마족들도, 좋은 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
"네, 스승님."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믿지는 않았더랬다.
에밀리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그리고 마족이란 상종해서는 안되는 사악한 것들이었으니까.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마족에 대한 증오와, 인간을 향한 실망은 그녀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이었으니.
"...언젠가는 너도 깨달을 날이 오면 좋겠구나."
그런 중얼거림을 끝으로 슬픔에 젖은 표정을 지으셨었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 것만 같았다.
제가 사랑 고백을 할 때마다 어째서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는지도.
남자들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는 것과 잠을 잘 주무시지 않는 것까지도, 전부.
***
정신을 차렸을 때는 여관의 방 안이었다.
걱정 어린 눈으로 내려다 보는 엘리와 할리벨이 아니었다면, 분명 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아기, 아기는...?"
"여기 있어요."
아기를 품에 안고 있던 할리벨이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팔을 뻗었다.
작은 무게감을 전달 받자, 감겨 있던 자그마한 눈이 그 속에 감춰져 있던 붉은색을 드러냈다.
"...아가."
품에 안긴 무게감이 꽤 상당했다.
벌써 이렇게 자라버렸구나.
이런 속도로 자라게 된다면 곁을 떠나는 것도 순식간일 터였다.
"내가 싫지 않니?"
꿈에서 보았던 광경을 되새기며 아기에게 물었다.
마왕군에게 죽음을 맞이한 생명이 과연 나를 싫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마법사와 레이나의 시체를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둘도, 언젠가는 다시 낳게 되겠지.
"아리엘 씨, 이제 당분간은 정말 회복에만 전념하셔야 해요."
엘리가 걱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말해왔다.
확실히, 쇠약해진 몸은 몸 이곳저곳에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쉬어.
"레이나를, 낳아야 해."
"아리엘 씨!"
그런 이유 때문에 죽였어.
내가 레이나를 죽인 건, 다시 낳기 위해서였다고!
만약 그게 아니라면 굳이 내 손으로 죽일 필요가 없잖아.
알량한 죄책감이라고 불러도 되고, 미련한 선택이었다며 매도해도 상관 없었다.
상대는 이미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내 손으로.
...내 몸을 신경 쓸 여유 따위가 있을 리가 없잖아.
"이번만큼은 저도 동의해요, 마왕님."
할리벨의 꼬리가 내 팔을 감쌌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곧바로 붙잡을 것만 같은 움직임이었다.
"일단 지금은 아기를 돌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두 사람 다 엉망인 상태니까."
울지 않아서 금방 떠올리지 못했지만, 아기 또한 나처럼 뿔이 잘린 상태였다.
분명 고통스럽겠지.
느리게 숨을 토해내며 뜨거워진 머릿속을 천천히 식혀냈다.
...그래,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낳을 수 없는게 아니야, 분명 낳을 수 있어.
카운트가 올라갔으니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어.
'하지만, 결국 원래대로구나.'
줄어들었던 자릿수가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보고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이러다가는 정말 영원히 낳게 될지도 모르겠네.
시덥지 않은 생각을 하며 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아기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저건."
아기의 시선이 향한 끝에는, 자그마한 팔찌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그 미친 마법사가 아기의 신체 일부를 재료로 해서 만든, 팔찌.
멍하니 그것을 집어올리니 아기가 손을 뻗었다.
마치 자신에게 달라는 듯이.
"자, 여기 있단다."
줘야지. 당연히 줘야지.
아기의 신체 일부로 만들어진 물건이니, 아기에게 돌려주는 것이 옳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읏?!"
기묘한 기류가 팔찌를 타고 흘렀다.
순식간에 아기를 향해 쏘아진 무언가가 그대로 그 자그마한 몸뚱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이 기운... 마왕님, 설마 이 아기 마족인가요?"
"...그래."
"하지만 마족이라기에는 인간의 향이 짙은데요."
할리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는 납득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분명 마족인데, 인간의 향이 짙다.
하지만 그럴 수가 있나?
의문을 가지고 있던 찰나에, 아기의 몸에서 자그마한 변화가 일어났다.
"...자랐, 어?"
아기의 모습을 벗어나, 아이의 모습이 된 아기에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길어진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리니 아이가 손을 뻗어서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울지 마세요."
그리고 한 마디.
순식간에 정적으로 물든 방 안에서, 나는 숨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뭐야, 방금 누구 목소리였지?
엘리? 할리벨? 그것도 아니라면, 나?
...그럴 리가 없잖아.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품 안에 안겨있던 아이가 어색한 움직임으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마치 제 신체에 대한 시험을 하는 듯 이리저리 팔다리를 움직인 아이가, 침대 아래로 내려섰다.
...그 어떠한 흔들림도 없는, 완벽한 두발서기였다.
"제 제자가 폐를 끼쳤습니다. 음, 그러니까..."
어머니?
의문으로 끝나는 말에 무언가가 울컥였다.
어머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울림인지.
속에서부터 치솟아 오르는 설움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반쯤 오열하고 있음에도 소리를 내지 않은 건, 마지막으로 남은 자존심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미친 년의 스승이 마족이었다니,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제 손에 들린 팔찌를 만지작거리는 아이의 모습에 자그마한 의문이 들었다.
원래는 평범한 인간이었는데 마족으로 태어난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마족이었던 걸까.
아이의 보드라운 정수리를 슬슬 쓸어내리니 붉은색의 눈동자가 자그맣게 반짝였다.
"마족이기도 하고, 인간이기도 해요."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한 목소리였다.
"저는, 마족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니까요."
이야기가 이어진다.
서큐버스 어머니와 인간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평생을 떠돌았더랬다.
마족과 인간 그 어디에도 낄 수 없는 비참한 인생.
그러던 도중 노예상에게 잡혀 노예가 되고, 창관에 팔려갔었다고.
"거기에서 저에게 은혜를 내려주신 마법사 님을 만났죠."
마법사의 마나를 쫒아 찾아온 마법사.
자살을 결심하고 있던 아이의 앞에 나타난 남자는 별안간 저와 함께 가자고 선언했다.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하기도 했었지.
'...어째서?'
처음 들었던 건 의문이었다.
인간들은 전부 마족을 증오하지 않았던가?
창관에 방문하는 손님들 전부 제 목을 조르는 걸 즐겼다.
때리고, 짓밟고, 모욕했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저주하며 강제로 제 자존심을 무너뜨리기도 했었더랬다.
'저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아이인데요. 아니면, 마법사 님도 제 몸을 원하시는 건가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창가에 사는 서큐버스 혼혈의 아이.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 아이에게 무언가를 원한다면, 분명 그런 것 밖에 없을 터였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구나.'
마법사의 손길이 제 정수리를 쓰다듬을 때 즈음에는 그 불신조차 반쯤 녹아 사라졌던 것 같았지만.
그때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믿음이라는 것을 알려주마.'
동시에, 편견을 버리는 방법 또한 알려주마.
그렇게 말하는 마법사의 눈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드시 깨닫게 될 것이라고.
내가, 그 모든 것들을 깨우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음, 일단은 그 모습을 숨기는 편이 좋겠구나.'
확실히, 자신의 모습은 다른 인간들에게 너무 자극적이었다.
서큐버스의 피가 어디로 가지는 않는다고,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다른 이들을 유혹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이유로 혼혈의 아이가 가장 처음 배운 마법은 자신의 외형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이었다.
예를 들자면, 여자의 모습이 아닌 남자의 모습으로.
예를 들자면, 마족의 모습이 아닌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결국 에밀리를 속여버리는 꼴이 되었지만... 당시의 저에게는 그게 최선이었어요."
아이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 모습이 울지 못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거짓말일까.
참으로 슬픈 미소였다.